오랜만에 소세키 선생님댁을 찾았다. 선생님은 서재 한가운데 앉은 채로 팔짱을 끼고 무언가 생각에 잠겨 계셨다. "선생님, 무슨 생각하세요?"하고 물으니 "지금 고코쿠지의 삼문에서 운케이가 인왕을 새기는 걸 보고 온 참이야"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요즘 세상에 운케이 같은 건 아무래도 좋지 싶어서 내키지 않아 하는 선생님을 붙들고 톨스토이니 도스토옙스키 같은 이름이 들어간 어려운 의논을 조금 나누었다. 그리고 선생님댁을 뒤로하여 에도가와 종점에서 전철을 탔다.
전철은 지독히 복잡했다. 하지만 겨우 구석 손잡이를 붙들고 품에 넣어둔 영역판 러시아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혁명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노동자가 어쩐 일로 미치광이가 되어 다이너마이트를 던지고 끝내는 그 여자마저 어떻게 했다. 어찌 되었든 만사가 절박하고 암담한 힘이 담겨 있어서 일본 작가 따위는 도무지 한 줄도 쓰지 못할 법한 내용이었다. 물론 나는 크게 감탄하여 선 채로 행간에 몇 줄이나 색연필 선을 그었다.
그렇게 이이다바시에서 환승하던 차였다. 창밖 거리서 묘한 남자 둘이 걷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있었다. 심지어 머리나 수염은 제멋대로 길러 있어서 참으로 수상쩍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두 남자를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하지만 도무지 기억은 나지 않았다. 그러더니 옆 손잡이를 잡고 있던 도구점 상인 같은 남자가
"한산과 습득이 걷고 있군."하고 말했다.
듣고 보니 확실히 두 사람은 빗자루를 짊어매고 마키모노를 들고 있는 게 타이가의 그림에서 뛰쳐나온 것처럼 천천히 걷고 있었다. 아무리 모든 게 쉽게 나도는 시대라지만 진짜 한산과 습득이 나란히 이이다바시를 걷는 것도 신기하니 옆자리의 도구점 상인 같은 남자의 소매를 잡아끌며,
"정말 저 사람들이 그 옛날의 한산과 습득입니까"하고 확인하듯 물었다. 하지만 남자는 지극히 일상다반사란 얼굴로,
"맞습니다. 저는 요전 번에도 상업회의소 밖에서 만났어요"하고 대답했다.
"흐음, 저는 두 사람 다 진작에 죽은 줄 알았죠."
"무얼, 죽을 리가요. 저리 보여도 보현과 문수니까요. 그 친구인 풍간 선사란 대장도 자주 호랑이를 타고 긴자 거리를 걷지요."
그로부터 5분이 지난 후, 전철이 움직이는 동시에 나 또한 읽다 만 러시아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페이지도 다 읽지 못한 채로 다이너마이트의 냄새보다도 방금 본 한산과 습득의 수상쩍은 모습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창으로 뒤를 돌아보니 두 사람은 이미 콩처럼 작아져, 그럼에도 또렷히 낭랑한 늦은 가을 햇살 속에서 빗자루를 짊어매고 걷고 있었다.
나는 손잡이에 매달린 채로 서적을 다시 품에 넣고는 집에 돌아가면 바로 소세키 선생님께 오늘 이이다바시에서 한산과 습득을 보았다는 편지를 쓰려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들이 현대 도쿄를 걷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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