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 5학년 때 도데의 '사포'란 소설의 영역판을 읽었다. 물론 어떻게 읽었는지는 말할 바도 없다. 적당히 사전을 옆에 두고 몇 페이지를 팔랑거렸을 뿐이지만 어찌 되었든 그 책이 내가 가장 먼저 친근해진 프랑스 소설이었다. '사포'에 감탄했는지 어땠는지는 확실히는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무도회에서 돌아올 때에 파리 광경을 그린 대여섯 줄의 문장이 있다. 그게 아름다웠던 것만은 기억하고 있다.
그 후로는 아나톨 프랑스의 '타이스'란 소설을 읽었다. 와세다분가쿠 신년호에 야스나리 사다오 군의 소개글이 있었는데 그걸 읽고 바로 마루젠에 가서 사온 기억이 있다. 이 책에는 크게 감복했다.(지금도 프랑스의 저서 중 뭐가 가장 재밌느냐 물으면 나는 바로 '타이스'라 대답한다. 다음으로는 '여왕 렌느 뻬도크'를 꼽는다. 명성 높은 '붉은 백합' 같은 소설은 그리 대단하다 보지 않는다.) 물론 의논의 즐거움은 일부에게만 통용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타이스'의 줄 밑에 무작정 색연필 줄을 그었다. 그 책은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당시 줄을 그은 부분은 니시아스의 대사가 가장 많았다. 니시아스란 건 경구만 뱉는 알렉산드리아의 고등유민이다――이 또한 내가 중학생 5학년 때의 일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로는 어학도 조금 실력이 붙어서 이따금 프랑스 소설을 읽었다. 다만 그런 길을 걷는 사람이 읽는 것처럼 계통적으로 읽은 건 아니다. 손이 닿는 대로 이것저것 훑었을 뿐이다. 개중에서 기억하는 건 '성 앙투안의 유혹'이란 소설이다. 그 책은 몇 번을 도전해도 기어코 끝까지 읽지 못했다. 물론 로터스 라이브러리란 보라색 영역본으로 보면 엄청나게 생략된 탓에 어려움 없이 읽어버리고 만다. 당시의 나는 '성 앙투안의 유혹'도 잘 아는 것처럼 굴었지만 실은 그 보라색책의 신세를 졌을 뿐이다. 요즘 케벨 선생님의 짧은 글들을 읽고 있는데 선생님 또한 성 앙투안과 '살람보'는 지루한 소설이라 말하고 있다. 나는 크게 기뻤다. 하지만 앙투안에 비하면 '살람보' 쪽이 그나마 재밌었다. 또 드 모파상은 경복은 해도 좋아하지는 않았다.(지금도 두세 작품은 읽다 보면 불쾌해진다.) 또 어떻게 된 일인지 졸라는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한 편의 장편도 읽지 않았다. 또 도데는 그 때부터 묘하게 쿠메 마사오와 닮아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당시의 쿠메 마사오는 고작해야 제일고등학교의 교우회 잡지에 시를 내는 정도였으니 도데가 훨씬 대단해 보였다. 또 고티에는 즐겁게 읽었다. 현란하기론 비할 자가 없으니 장편이든 단편이든 유쾌했다. 하지만 평가가 좋은 '모팽 양'은 서양인이 말하는 것 정도는 아니지 싶었다. '아바타르'나 '클레오파트라의 하룻밤'이란 단편도 조지 무어가 경외할 정도로 뛰어난 거 같지는 않았다. 같은 칸다울레스 왕 전설에서 헤벨은 그 무시무시한 '기게스의 반지'를 만들어냈다. 반면 고티에의 단편을 보면 주인공인 임금님은 발랄한 매력이 없다. 단지 이건 훗날 헤벨의 읽었을 때 편집자의 서문 중에 어쩌면 고티에의 단편이 헤벨에게 영감을 주었을지 모른다는 그럴싸한 설을 보았기에 고티에를 끌어와 그 감각을 깊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이제 귀찮아져 버렸다.
애당초 내가 학창 시절에 아무개 책을 읽었느니 마느니 해본들 재미가 있을 리도 없다. 독자를 얼떨떨하게 만드는 정도 고작일 테지. 하지만 모처럼 펜을 들었으니 이것만은 더해두고 싶다. 당시 혹은 당시로부터 대여섯 년 동안 내가 읽은 프랑스 소설은 대개 현대와 멀지 않다. 혹은 현대 작가가 쓴 글이었다. 거슬러 올라 보면 샤토브리앙이나――아슬아슬하게 올라가 본들 루소나 볼테르보다 더 올라가지 않는다.(몰리에르는 예외이다.) 물론 문단에는 공부에 열심인 사람이 많으니 개중에는 Cent nouvelles Nouvelles du roi Louis XI까지 읽은 대가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예외를 제외하면 내가 읽은 소설이 문단에서 일반적으로 읽히는 프랑스 문학이라 해도 좋을 터이다. 그럼 내가 읽은 소설을 이야기하는 건 넓은 문단에도 큰 관계가 있는 것이니 허투루 들을 게 못 된다――이래도 부족하다면 내가 그런 책밖에 읽지 않았다는 건 문단에 영향을 준 프랑스 문학은 대개 그런 책밖에 없다는 뜻이 되지 않는가. 문단은 라블레의 영향도 라신이나 코르네유의 영향도 받지 않았다. 단지 전적으로 19세기 이후의 작가들의 영향만 받고 있다. 그 증거로 프랑스 문학에 가장 정통하단 아무개 선배의 소설에도 소위 레스프리 골루아로 충만한 작품은 보이지 않는다. 설령 19세기 이후의 작가들 중에 고올 정신에서 벗어난 웃음소리가 이따금 울리더라도 문단은 그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일본의 문단은 오가이 선생님의 소설대로 영구히 진지한 장송 행렬이었다――이런 논리로 이어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나의 이런 이야기도 더더욱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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