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동양의 가을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7. 9.
728x90
반응형
SMALL

 나는 히비야 공원을 걷고 있었다.
 하늘에는 옅은 구름이 겹쳐져 지평에 가까운 나무 위에만 희미하게 희미한 푸른색을 남기고 있다. 그 탓인지 가을 나무 사이의 길은 아직 저녁노을이 오지 않은 새에 모래도 돌도 마른풀도 푹 젖어 있는 듯하다. 아니, 길의 좌우에 가지를 뻗은 버즘나무에도 이슬에 씻긴 듯한 여명이 역시 나 노란 잎 한 장마다 희미한 음영을 품은 채로 울적하게 떠다니고 있다.
 나는 등나무 지팡이를 옆구리에 끼고 불이 꺼진 담배를 문 채로 이렇다 갈 곳도 없이 쓸쓸하고 정처 없는 산책을 계속했다.
 그 쌀쌀한 길 위에는 나 이외엔 아무도 걷지 않았다. 길을 사이에 둔 버즘나무도 조용히 노란 잎을 늘어트리고 있다. 살짝 이슬이 맺힌 길가의 나무 사이서는 단지 분수 소리만이 백 년 전과 다를 바 없이 멈추지 않고 들려온다. 그런 데다가 오늘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고요한 나무 사이 너머의 바깥 거리마저도 마치 바람이 그친 바다 같은 조용함만을 되돌려 주고 있다――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날카로운 학의 울음이 울적한 분수의 울림을 누르며 먼 숲 안쪽 연못에서 한 번, 두 번 높게 하늘을 찔렀다.
 나는 산책을 계속하면서도 말로 못할 피로와 권태가 내 마음 위에 무겁게 내려앉는 걸 느꼈다. 조금도 쉴 틈 없는 글장사 생활이라니! 나는 이대로 나 홀로 어려운 내 창작력의 하늘에 공허한 황혼이 다가오는 걸 기다려야만 하는 걸까.
 그러는 사이 이 공원에도 서서히 황혼이 찾아왔다. 내가 가는 길 좌우에선 이끼 냄새나 낙엽 냄새가 뒤섞인 흙의 냄새와 함께 조용히, 차갑게 움직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희미하게 단내가 나는 건 사람들 몰래 나무 사이서 썩어 가는 꽃이나 과일 냄새일지도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길가의 물웅덩이에도 누가 꺾어 버린 건지 모를 창백한 장미꽃 한 송이가 흙에도 뒤섞이지 않은 채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만약 이 가을 냄새 속에 고달프기 짝이 없는 나를 아낌없이 뿌리내릴 수 있다면――
 나는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내가 가는 길에는 두 남자가 조용히 대나무 빗자루를 움직이며 거리 위에 흩뿌려진 버즘나무 낙엽을 쓸어내고 있었다. 그 까치집 같은 머리나 피부도 거의 덮지 않은 회색 넝마도, 또 짐승의 것과 구분이 가지 않는 긴 손톱 발톱까지도. 두 사람 모두 이 공원을 청소하는 인부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뿐 아니라 내가 서있는 사이에 어디선가 날아온 까마귀 두세 마리가 커다란 원을 그리고는 묵묵히 빗자루를 움직이는 두 사람의 어깨나 머리 위로 앞다투어 내려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두 사람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모래 위에 가을을 흩뿌린 버즘나무 낙엽만 치워 갔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돌려 불이 꺼진 담배를 문 채로 쓸쓸한 버즘나무 사잇길을 되돌아갔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이제까지의 피로나 권태 대신에 어느 틈엔가 조용하면서 희미하게 내뿜는 기쁨으로 넘치고 있었다. 저 두 사람이 죽었다 생각한 건 애처로운 나의 망설임에 지나지 않았다. 한산과 습득은 살아 있다. 영원한 환생을 거듭하면서도 오늘 이 공원의 버즘나무잎을 쓸어내고 있다. 그 두 사람이 살아 있는 한 그리운 옛 동양의 가을꿈은 아직 도쿄 거리서 사리지지 않은 게 분명하다. 글장사 생활에 지친 나를 되살아나게 해준 가을꿈은.
 나는 등나무 지팡이를 옆구리에 낀 채로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버즘나무잎으로 빛나는 히비야 공원을 뒤로했다. "한산과 습득은 살아 있다." 입안으로 그렇게 혼잣말하면서.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