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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원숭이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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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원양항해를 마치고 겨우 구슬 반쪽(군함에선 후보생을 이렇게 부릅니다) 시기를 마쳤을 때였습니다. 제가 타고 있던 A가 요코스카항에 들어 와 3일째 되던 오후, 이래저래 세 시쯤이었겠지요. 기세 좋게 상륙원 정렬의 나팔이 울렸습니다. 분명 우현이 상륙할 차례였는데, 우현이 상갑판에 정렬하자 이번에는 대뜸 전원 집합의 나팔이 울렸습니다. 물론 평범한 일은 아닐 테지요. 사정을 모르는 우리는 해치를 오르며 서로 "무슨 일이지"하고 말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집합했습니다. 그러자 부장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요 근래 함내에서 도난 사건이 두어 건 있었다. 특히 어제 거리의 시계 장수가 왔을 때도 은제 회중시계가 두 개 분실되었다는군. 때문에 오늘은 전수 신체검사를 진행하며 동시에 소지품 검사도 실시한다……" 대강 그런 뜻이었습니다. 시계 장수의 일은 처음 듣지만 도난이 있었다는 건 저희도 아는 일이었습니다. 하사관 한 명에 수병 둘이 돈을 도둑맞았다고 합니다.
 신체검사이니 물론 모두 전라가 되어야 했습니다. 다행인 건 10월 초이며 항내에 떠있는 붉은 부표가 햇살을 받고 있는 걸 보면 아직 여름이 남아 있는 시기였기에 그리 큰 고생은 아니었습니다. 곤란한 건 상륙 초기라 다들 들떠 있었던 통에 주머니에서 춘화나 콘돔이 나오는 소동이었습니다. 얼굴을 붉히며 우물거려도 도리가 없습니다. 듣자 하니 두세 명은 사관한테 얻어맞았다고 합니다.
 여하튼 다 해서 육백 명이나 되니 일제 조사에도 시간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이만한 가관이 또 있을까요. 육백 명의 남자가 전라로 상갑판에 줄지어 있는 꼴이니까요. 개중에서 얼굴이나 손목이 새까만 게 기관병인데, 이 녀석들은 한 때 이번 도난의 의혹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덕분에 팬티까지 벗으며 조사할 거면 얼마든지 해보라며 굉장히 사나웠습니다.
 상갑판에서 이런 소동이 벌어지는 사이, 중갑판이나 하갑판에선 소지품 검사가 이뤄졌습니다. 창구에는 후보생만 배치되어 있으니, 상갑판 녀석들은 아래쪽에 한 발짝도 들일 수 없습니다. 저는 마침 그 중하갑판의 검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다른 동료와 함께 병사들의 옷가지나 손궤 따위를 검사하며 걸었습니다. 이런 일을 군함을 탄 이후로 처음인데, 장막 뒤편이나 옷가지가 덮인 선반 안족을 보는 건 생각보다 성가신 일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저와 같은 후보생 중 마키타란 남자가 장물을 발견했습니다. 시계와 돈이 한 데 모여 나라시마란 신호병의 모자 상자 안에 담겨 있었던 겁니다. 또 급사가 잃어버렸다는 자개 자루 나이프도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산"되고 이어서 "신호병 소집"이 되었습니다. 다른 녀석들은 좋아하네 어쩌네 하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기관병은 한 번 의심을 산 적이 있는 덕인지 아주 기뻐했습니다――그런데 모인 신호병을 확인하니 나라시마가 없습니다.
 저는 아직 겪어 보지 않아 잘 몰랐는데, 군함에선 도난품이 나와도 범인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이따금 있다고 합니다. 물론 자살하기 때문인데, 십중팔구는 석탄고 안에서 목을 매지 투신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물론 저희 배에선 한 번 나이프로 배를 긋는 소동이 있었다는데 미처 죽지 않는 사이에 발견되어 목숨은 건졌다고 합니다.
 그런 일도 있는 마당이니, 장교들도 나리시마가 보이지 않는 사태에 제법 긴장한 듯했습니다. 특히 지금도 당황한 부장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요전 번 전쟁 때에 꽤나 명성을 떨쳤다는 사람이 얼굴색을 바꾸며 걱정을 하고 있지 뭡니까. 그 모습이 기가 차서, 우리는 모두 서로 경멸의 눈을 주고받았습니다. 평소에 정신수양이니 뭐니 하는 주제에 뭘 저리 당황하냐며 화가 난 것입니다.
 그렇게 부장의 명령으로 함내 수색이 개시되었습니다. 그때 일종의 유쾌한 흥분에 휩싸인 건 저 하나뿐이 아니겠지요. 불구경 하는 사람들의 심정――딱 그런 격입니다. 순사가 범인을 체포하러 가면 저항할지 모른다는 불안도 있겠지만, 함내에서 그런 일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와 수병 사이에는 상하 구별이 엄격하여――군인이 되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하여 그런 게 아주 강점이 됩니다. 저는 거의 뜀박질을 하며 창구를 뛰다녔습니다.
 마침 그때 저와 함께 아래로 내려 온 녀석들 중에 마키타가 있었는데, 이 녀석도 재밌어서 견딜 수 없다는 양 뒤에서 제 어깨를 두드리며
 "야, 원숭이 잡을 때 떠오른다."
하고 말합니다.
 "응, 오늘 원숭이는 그 녀석만큼 빠르지 않으니 괜찮아."
 "그렇게 얕보다 놓친다?"
 "뭐 도망쳐 본들 원숭이는 원숭이잖아."
 이런 농담을 하면서 아래로 내려갑니다.
 이 원숭이란 원양 항해로 오스트레일리아에 갔을 때, 브리즈번에서 포술장이 누군가에게 받은 원숭이를 말합니다. 그 녀석이 항해 중 빌헬름스하펜에 입항하기 이틀 전에 함장의 시계를 들고는 어딘가로 가버린 것입니다. 덕분에 배 안에서 대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긴 항해의 무료함에 괴로워하던 탓도 있었지만 그 포술장은 물론이요 우리마저 모두 나서 작업복을 입은 채로 위로는 기관실부터 위로는 포탑까지 찾아다니는 게――보통 혼란일 리도 없습니다. 게다가 바깥 사람에게 받거나 산 동물이 잔뜩 있어서, 빠르게 걷다 개가 발에 걸리질 않나 페리컨이 울기 시작하질 않나, 로프에 걸린 바구니 안에서 잉꼬가 미친 것처럼 날개를 퍼덕이지 않나, 마치 동물농장에서 불이라도 난 거 같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원숭이 녀석은 어딜 어떻게 통한 건지 대뜸 상갑판으로 튀어나오더니 시계를 든 채로 마스트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그곳에선 수병 두세 명이 일하고 있었기에 놓칠 리는 없었습니다. 곧장 한 사람이 목덜미를 붙잡아 어려움 없이 포획했습니다. 시계도 유리에 흠집이 난 정도라 큰 손해도 없었습니다. 포술장은 그 일로 원숭이에게 꼬박 이틀 동안 금식하란 처벌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우스운 건 포술장 스스로 그 기간이 다 되기도 전에 당근이나 마를 건네준 것입니다. 그러고는 "시무룩해 하는 걸 보니 원숭이라도 불쌍해져서 말이야"하고 말하지 뭡니까――이건 여담인데 실제로 나리시마를 찾아 걷는 우리의 심정이 원숭이를 뒤쫓을 때의 심정과 꽤나 닮아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가장 먼저 하갑판으로 내려갔습니다. 아시겠지만 하갑판은 항상 어둡습니다. 그런 가운데 갈고 닦인 금구나 페인트칠이 된 철판이 여기저기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죠――어쩐지 묘하게 숨이 막히는 거 같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 어둠 속을 석탄고 쪽을 향해 두 걸음, 세 걸음 걸었더니 저는 자칫하면 비명을 지를 뻔했습니다――석탄고 적입구에 사람 상반신이 삐져나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 좁은 입구로 석탄구에 들어가려 하기에 발을 먼저 넣어 본 것일까요. 저로서는 남색 수병복 어깨와 모자 탓에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빛이 부족해 그 상반신이 어둡게 튀어나온 게 보이는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나리시마구나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살할 생각으로 석탄고에 들어 오려는 것이겠지요.
 나는 이상한 흥분을 느꼈습니다. 온몸의 피가 끓는 듯한 뭐라 말 못 할 유쾌한 흥분 말입니다. 총을 손에 쥐고 기다리던 사냥꾼이 가냥감이 오는 걸 보았을 때의 심정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거의 본능을 따라 그 남자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렇게 사냥개보다도 재빠르게, 두 손으로 남자의 어깨를 붙들었습니다.
 "나리시마."
 화를 내지도, 매도하지도 않고 그렇게 말한 제 목소리는 묘하게 상기되고 또 떨렸습니다. 그 그림자가 범인인 나리시마였던 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
 나리시마는 제 손을 떨치는 법도 없이 상반신을 내놓고 조용히 저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조용히 해." 단지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어떤 힘을 내야 하고, 심지어 조용할 필요마저 있는 "조용히 해" 였습니다. 여유가 없고, 다급한, 말하자면 반쯤 부러진 활대가 바람이 지난 후에 남은 여력으로 본래 위치로 돌아가려 하는 그런 도리 없는 "조용함"이었습니다. 저는 무의식적으로 예상했던 저항이 없었기에 어떤 불만 같은 걸 품었습니다. 심지어 그 때문에 한 층 더 짜증이 난 걸 느끼며, 말없이 "조용히" 들어 올린 얼굴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저는 그런 얼굴은 처음 보았습니다. 악마라도 한 번 보면 울 거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해본들 실제로 보지 못 한 당신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겠지요. 저는 당신께 눈물을 머금은 그 눈을 이야기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갑자기 불수의근[각주:1]처럼 변한 입가의 근육 경련도 어쩌면 알려 드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 땀을 머금은 꺼림칙한 얼굴마저도 그게 전부라면 간단히 설명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 전부에서 오는 무서운 표정은 어떤 소설가라도 쓸 수 없습니다. 저는 소설을 쓰시는 당신의 앞에서도 안심하고 이것만은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표정이 제 마음 속에 담긴 무언가를 번개처럼 부수는 걸 느꼈습니다. 이 신호병의 얼굴은 제게 그만큼이나 강한 충격을 주었던 것입니다.
 "너 이 자식, 뭐 하려 했던 거야."
 저는 기계적으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이 자식"이 어전지 저 자신을 가리키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너는 뭘 하려 했는가"――그렇게 묻는다면 저는 무어라 대답할 수 있겠지요. "나는 이 남자는 죄인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누구나 간단히 그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이 얼굴을 보고도 그럴 수 있을까요. 이렇게 쓰면 오랜 시간이었던 거 같지만 실제로는 아주 잠깐이었습니다. 그런 찰나 속에 제 마음에 이런 자책이 번쩍인 것입니다. 마침 그때였습니다. "면목 없습니다"――그런 말이 작지만 예리하게 제 귀를 지른 것은.
 당신이라면 저 스스로의 마음이 제게 말한 것처럼 형용하시겠지요. 저는 단지 그 말이 바늘처럼 제 신경을 찌르는 걸 느꼈습니다. 정말이지, 그 당시 제 마음은 나라시마와 같이 "면목 없습니다"하고 말하며 저보다도 큰, 무언가의 앞에 고개를 숙인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어느 틈엔가 나라시마의 어깨를 붙잡던 손을 내려놓고 저 스스로가 붙잡힌 범인처럼 멍하니 석탄고 앞에 서있었습니다.
 그 뒷이야기는 말하지 않더라도 대개 아실 거라 봅니다. 나라시마는 그날 하루 동안 금고실에 감금되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우라가의 해군 감옥으로 보내졌습니다. 이건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데, 그곳에선 죄인에게 자주 "탄환 운반"이란 일을 시킨다고 합니다. 팔 척 정도의 거리를 둔 받침에서 받침으로 5관가량 되는 철포탄을 계속해서 번갈아 옮기는 일이라는데 그만큼 죄수를 괴롭게 하는 일도 없겠지요. 언젠가 본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 속에도 "바구니 갑에서 바구니 을로 물을 옮기고, 그 물을 다시 갑으로 옮기는 무의미한 일을 몇 번이나 반복시키면 그 죄수는 반드시 자살한다"――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 걸 실제로 죄수에게 시키고 있으니 자살하는 사람이 없는 게 되려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곳에 간 겁니다. 제가 잡은 그 신호병은. 주근깨를 가진 키고 작고 심약해 보이는 얌전한 남자였는데 말이죠……
 그날, 저는 다른 후보생 동료와 난간에 기대어 해가 지는 항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마키타가 제 옆으로 와 "원숭이를 생포하다니, 한 건 올렸네"하고 야유하듯 말했습니다. 아마 제가 속으로 의기양양해할 거라 생각했겠지요.
 "나라시마는 사람이야, 원숭이가 아니라."
 저는 냉담히 그렇게 말하고는 난간에서 비켰습니다. 다른 녀석들은 의아했을 테지요. 마키타와 저는 학교에 다닐 때부터 친구로 이제까지 한 번도 싸우지 않은 사이였으니까요.

 저는 홀로 상갑판의 함미부터 함수까지 걸었습니다. 나라시마의 생사를 신경 쓰던 부장의 당황하던 모습을 그립게 떠올려 보았습니다. 저희가 그 신호병을 원숭이 취급할 때도 부장만은 인간 다운 동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 걸 경멸한 우리의 멍청함은 말할 게 되지 못 합니다. 저는 묘하게 찝찝해져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고 되도록 신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어두워진 갑판을 다시 함수부터 함미까지 되돌아 걸었습니다. 금고실에 있는 나리시마에게 우리의 기세 좋은 신발 소리를 들려주는 게 미안해졌기 때문입니다.
 나라시마가 도둑질한 건 역시 여자 때문이라고 합니다. 형기는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적어도 몇 달은 어두운 곳에 있었겠지요. 원숭이는 형벌을 용서받아도 인간은 용서받지 못 하니까요.

  1.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근육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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