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전화를 걸고 주름진 프록코트의 소매를 신경 쓰며 현관으로 오니 아무도 없었다. 손님방을 들여다보니 아내분이 누구인지 검은 몬츠키를 입은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과 서재의 경계에는 아까까지 관의 뒤에 세워져 있던 하얀 병풍이 세워져 있다. 어찌 된 건가 싶어 서재 쪽으로 가보니 입구에 와츠지 씨와 두세 명 가량이 멈춰 서있었다. 안에도 물론 많은 사람이 있었다. 마침 다들 선생님의 얼굴에 마지막 인사를 하려던 참이었던 것이다.
나는 오카다 군의 뒤를 따라 내 순서가 오는 걸 기다렸다. 이미 밝아진 유리창문 바깥에는 서리 방지용 밀짚을 씌운 파초가 가장 빠르게, 어두컴컴한 곳에서 올라와 있었다――막연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이윽고 사람이 줄어 서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서재 안에 전등이 켜져 있었던가 촛불이 켜져 있었던가. 거기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듣자 하니 바깥 빛은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묘하게 굳은 심정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오카다 군이 인사를 하고 관 앞으로 갔다.
관 옆에는 마츠네 씨가 서계셨다.. 오른손을 눕혀 절구라도 당기 듯이 움직이신다. 인사를 하면 차례로 관 뒤로 돌아 나가달라는 신호이리라.
관은 눕혀져 있었다. 아래에 놓인 받침은 삼 척에 지나지 않았다. 옆에 서니 눈과 코 사이로 안을 볼 수 있었다. 안에는 얇은 종이에 나무아미타불이라 적혀 있었던 게 눈처럼 뿌려져 있었다. 선생님의 얼굴은 뺨의 절반 가량을 그 종이 안에 묻은 채로 조용히 눈을 감고 계셨다. 마치 밀랍으로 만든 얼굴 조형 같은 느낌이었다. 윤곽은 생전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어딘가 느낌이 달랐다. 입술의 색이 검게 변하거나 얼굴색이 달라진 거 이외에 어딘가 다른 게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거의 감동도 없이 인사를 했다. "이건 선생님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이건 처음부터 그랬다. 실제로 나는 지금도 과장 없이 선생님이 살아 계신 것처럼만 느껴진다.) 나는 관 앞에서 1, 2분가량 서있었다. 그리고 마츠네 씨의 안내를 받아 뒷사람과 자리를 바꾸어 서재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자 불쑥 다시 선생님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무언가 잘 보고 오는 걸 잊은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게 돌이킬 수 없는 아둔한 짓인 듯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지간히 다시 한 번 가볼까 싶었다. 하지만 그런 게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게다가 감정을 과장하고 있는 듯한 기분도 조금은 들었다. "이젠 별 수 없지"――그렇게 생각하고 포기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괜히 슬퍼졌다.
밖으로 나가자 마츠오가 "잘 보고 왔냐?"하고 물었다. 나는 "응"하고 대답하며 거짓말을 한 것만 같아 불쾌해졌다.
아오야마의 장례식장에 갔더니 안개가 걷혀서 잎 없는 벚꽃 가지에 아침해가 들고 있었다. 아래서 보니 그 벚나무 가지가 마치 철망처럼 세밀하게 하늘을 덮고 있었다. 우리는 그 아래에 깔린 벚잎 위를 걸으며 몸을 풀고는 "겨우 눈이 떠지는 거 같네"하고 말했다.
장례식장은 초등학교 교실과 절의 본당을 하나로 합친 듯한 구조였다. 둥근 기둥이나 양족의 유리창이 굉장히 볼품없었다. 정면에는 한 단 높은 곳이 있어서, 그 위에 붉게 칠한 등받이가 굽은 의자가 세 개 놓여 있었다. 세 의자는 그 아래에 놓인 간이 의자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 의자를 서재에 놓으면 재밌겠다."――나는 쿠메에게 그런 말을 했다. 쿠메는 의자 다리를 쓰다듬으며 그러게니 뭐니 적당한 대답을 했다.
장례식장을 나와 입구의 휴게소에 돌아오니 모리타 시, 스즈키 씨, 아베 씨가 불이 붙은 난로 주위에 모여서 신문을 읽거나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신문에 나온 선생님의 일화나 내외 사람의 추억이 이따금 화제에 올랐다. 나는 와츠지 씨께 받은 "아사히"를 피우며 난로 한 쪽에 발을 대어 젖은 구두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걸 멍하니, 먼 곳이라도 보듯이 바라보았다. 어쩐지 모두의 마음에 구멍이라도 난 거 같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는 사이 장례식이 시작될 시간이 가까워졌다. "슬슬 가야 하지 않을까."――성급한 아카기 군이 신문을 던지며 "가"에 독특한 억양을 붙여 말했다. 그렇게 다 같이 휴게소를 나와 입구 양쪽에 놓인 방명록을 쓰러 갔다. 내 뒤에는 마츠우라 군, 에구치 군, 오카 군이, 반대편에는 와츠지 씨, 아카기 군, 쿠메가 섰다. 그 외에 마이니치 신문사의 사람이 한 명씩 양쪽을 도와주고 있었다.
이윽고 영구차가 왔다. 이어서 일반 방문객들이 띄엄띄엄 오기 시작했다. 휴게소 쪽을 보니 사람이 제법 늘었다. 개중에는 코미야 씨나 노가미 씨의 얼굴도 보였다. 널널한 하얀 목면을 약사처럼 프록코트 위에 입은 사람이 있다 싶었더니 미야자키 토라노스케 씨셨다.
처음엔 시각이 시각인 데다가 전날 신문에 장례식 시간이 잘못 올라 문상객도 적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정반대였다. 농땡이 부리다가는 방명록 기록도 쉽지 않았다. 나는 여러 사람의 명함을 받는데 바빴다.
그러자 어디선가 "죽음은 엄숙하다"란 말이 들렸다. 나는 놀랐다. 우리 중에 이런 연기투가 가미된 말을 할 사람은 있을 리도 없었다. 그래서 휴게소를 들여다보니, 미야자키 토라노스케 씨가 의자 위에 올라 전도연설을 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 불쾌해졌다. 하지만 너무나도 미야자키 토라노스케 씨 다워서 그 이상은 화가 나지 않았다. 우리 중 한 명이 말렸다는데 관둘 생각이 없는 듯했다. 역시 오른속으로 거창한 제스처를 하면서 죽음은 엄숙하네 마네 했다.
하지만 그것도 곧 그만하게 되었다. 문상객은 모두 응대인의 안내를 받아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장례식이 시작될 시기가 온 것이리라. 이제 방명록을 적으로 온 사람도 얼마 없었다. 방명록이나 향전을 넣고 있자니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이 나란히 나왔다. 그리고 그 앞에 선 아카기 군이 어째 화를 내고 있었다. 듣자 하니 누가 우리 같이 방명록 앞을 지키는 사람들은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그 앞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 듯했다. 지극히 당연한 분노였기에 나도 그에 찬동했다. 그렇게 다들 방명록을 넣어두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정면의 높은 곳에 놓여 있던 세 의자는 어느 틈엔가 하나만 남아 등을 돌린 종연노사가 앉아 있었다. 그 양옆에는 여러 악기를 가진 스님이 일렬로 서있었다. 안쪽에는 관이 있으리라. 나쓰메 긴노스케 1의 관이라 적힌 종이가 아래쪽만 보이고 있다. 어두컴컴하고 향의 연기 때문에 다른 게 무엇이 있는지는 확실히 보이지 않았다. 단지 국화만이 그 안에서 희미하게 하얀색을 겹겹이 꽃피우고 있었다――식은 벌써 송경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식에 임해도 슬퍼질만한 감정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너무나 형식적이고 만사가 거창했기 때문이다――그런 생각에 아무렇지 않게 종연노사의 병거법어를 들었다. 그러니 마츠우라 군이 우는 소리를 들었을 때에도 처음엔 누가 웃는 거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이다.
그런데 식이 진행되어 코미야 씨가 신로쿠 씨와 같이 조사를 들고 관 앞으로 가는 걸 보니 불쑥 눈꺼풀 뒤쪽이 뜨거워졌다. 내 왼쪽에는 고토 스에오 군이 서있었다. 내 오른쪽에는 고등학교의 무라타 선생님이 앉아 계셨다. 나는 어쩐지 울어서는 안 될 거 같았다. 하지만 눈물은 점점 흘렀다. 내 뒤에 쿠메가 있다는 걸 나는 전부터 알았다. 그러니 그쪽을 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이런 애매모호한, 도움을 청하는 심정으로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쿠메의 눈이 보였다. 하지만 그 눈에도 눈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나는 도무지 참을 수 없어져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옆에 있던 고토 군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본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 후로 뭘 어떻게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쿠메가 내 팔을 부여잡고 "야, 가자."하고 말한 것만은 기억하고 있다. 그 후 눈물을 닦고 눈을 떴더니 내 앞에 쓰레기장이 있었다. 아무래도 장례식장과 어떤 집의 사이였나 보다. 쓰레기장에는 계란 껍질이 서너 개 가량 버려져 있었다.
조금 지나 쿠메와 장례식장으로 돌아오니 문상객은 대강 빠져나간 후였다. 넓은 건물 안은 어디를 보아도 썰렁했다. 그리고 그 안에 희미하게 향냄새가 묻어나 있었다. 우리는 아베 씨의 뒤를 이어 향을 올렸다. 그러자 또 눈물이 났다.
밖으로 나오자 토라진 해가 서리가 녹은 땅을 비추고 있다. 그날의 해를 가로질러 휴게소에 들어가니 누군가가 소바만쥬를 먹으란다. 나는 배가 고파서 곧장 하나를 들어 입에 넣었다. 그때 대학의 마츠우라 선생님이 오셔서 유골을 줍는 과정을 내게 이야기해주셨다. 나는 소바만쥬를 먹고 있었으니 꽤나 무례한 답을 했을 게 분명하다. 선생님은 손쓸 도리가 없다는 얼굴로 돌아가신 듯했다. 지금 그때 일을 생각하면 적잖이 몸이 움츠러든다.
눈물을 닦은 후에는 어쩐지 느슨한 피로만이 남았다. 문상객의 명함을 다발로 뭉친다. 조의 전보나 조의문을 하나로 합친다. 또 장례식장의 바깥 거리에서 영구차가 화장터로 가는 걸 지켜보았다.
그 후에는 단지 머리가 멍해서 졸리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 나쓰메 소세키의 본명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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