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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잡신일속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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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유럽적 한커우


 이 물웅덩이에 비친 영국 국기의 선명함――이런, 차에 부딪힐 뻔했다.
 

둘 중국적 한커우


 복권이나 마작 도구 사이에 서쪽에 뜬 태양의 붉은빛이 감도는 모래길. 그곳을 홀로 걸으며 문득 헬멧 아래서 한커우의 여름을 느낀 건――
 

한 바구니의 더위를 받아 가는 천도복숭아

 

셋 황학루


 감당주다루라는 붉은 벽돌의 찻집. 유정현진루라는 건 역시 붉은 벽돌의 사진관――그 외에는 보이는 게 없다. 물론 갈색의 양자강은 눈앞에 줄지은 벽돌 지붕에 밝은 흰색을 빛내고 있다. 장강 너머는 대별산. 산 정상에는 나무 두세 그루. 그리고 작은 하얀벽의 우묘……
 나――앵무주는?
 우츠노미야 씨――저 왼쪽에 보이는 겁니다. 물론 지금은 살풍경한 목재 저장소가 되었지만요.
 

넷 고금대


 앞머리를 내려놓은 어린 기생 하나. 복숭아색 부채를 흔들며 달빛 머금은 연못과 접한 난간 앞에서 구름 낀 하늘 아래의 물을 바라보고 있다. 띄엄띄엄 놓인 갈대와 연꽃 너머의 어둡게 빛나는 구름 낀 하늘 아래의 물을.
 

다섯 동정호


 동정호는 연못이지만 항상 물이 있는 건 아니다. 여름 이외에는 진흙탕 안에 강이 한 줄기 있을 뿐이다――그 증명이라도 하듯이 삼 척 가량 수면을 뚫고 나온 잔가지 많은 검은 소나무 한 그루.
 

여섯 장사


 길거리서 사형이 집행되는 곳. 티푸스나 말라리아가 유행하는 곳. 물소리가 들리는 곳. 밤이 되어도 길에 깔린 돌 위에 아직 더위가 남아 있는 곳. 닭마저 나를 위협하듯 "아쿠타가와 씨!"하고 소리를 지르는 곳……
 

일곱 학교


 장사의 천심제1여자사범학교 및 부속 고등소학교를 참관. 고금에서 보기 드문 무뚝뚝한 얼굴을 한 연소 교사에게 안내를 받는다. 여학생은 모두 배일[각주:1]을 위해 연필 같은 걸 쓰지 않으니 책상 위에 붓과 벼루를 둔 채 기하나 계산을 하고 있다. 다음으로 기숙사도 보고 싶어 통역 소년에게 부탁하니 교사는 더더욱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말하길 "그건 거절하겠습니다. 얼마 전에도 여기 기숙사에 병졸 대여섯 명이 들어와 강간 사건을 벌였으니까요"!
 

여덟 경한철도


 침대칸 문만 잠그는 걸로는 불안하군. 트렁크도 문 앞에 기대어 둬야겠어. 이걸로 도둑을 보더라도――잠깐만. 도둑을 만나면 팁은 안 줘도 되는 건가?
 

아홉 정주


 길가의 커다란 버들 가지에 변발 두 개가 걸려 있다. 또 그 두 변발은 마침 남경옥을 꿰뚫은 것처럼 무수한 푸른 파리를 두르고 있다. 썩어 떨어진 죄인의 목은 개가 먹어 버린 걸지 모르겠다.
 

열 낙양


 이슬람교 여관 창문은 오래된 卍자 격자 창문 너머에 레몬색의 하늘을 드러내고 있다. 엄청난 수의 보리의 색으로 젖은 하늘을.
 

보리에 누운 어린 아이가 한 명 잠도 잘 자네

 

열하나 용문


 검게 빛나는 벽 위에서 아직도 부처를 공경하는 당조 남녀의 단려함이란!
 

열둘 황하


 기차가 황하를 건너는 사이 내가 쓴 걸 열거하면 차가 두 잔, 대추가 여섯 알, 첸멘하이의 담배 세 개, 칼라일의 '프랑스 혁명사'가 두 페이지 반, 그리고――파리 열 마리를 죽였다!
 

열셋 북경


 기와가 노란 자금성을 두른 합환이나 회화나무의 대밀림――누구냐, 이 밀림을 도심이라 한 녀석은?
 

열넷 전문


 나――어라, 비행기가 날고 있네. 너 은근 하이 컬러인데?
 북경――감사합니다. 잠시 전문을 봐주세요.
 

열다섯 감옥


 경사 제2 감옥을 참관. 무기형 죄수가 하나, 장난감 인력거를 가지고 있었다.
 

열여섯 만리장성


 쥐융관, 탄금협 등을 본 후, 만리장성에 오르고 있자니 어린 거지 하나가 우리 뒤를 쫓아와 창망한 산들을 가리키며 "몽고! 몽고!"하고 말했다. 하지만 그게 거짓인 건 지도를 볼 필요도 없었다. 한 전의 동전을 받기 위해 우리의 십팔사략적 로망주의를 이용하다니, 그야말로 늙은 대국의 거지에 부끄러움이 없다고 크게 감복하였다. 단 성벽 사이에는 에델바이스 등의 꽃도 같이 보였기에 도무지 쓸쓸함 따위의 감정에는 이르지 못 했다.
 

열일곳 서불사


 예술적 에너지의 홍수 속에서 돌 연화가 몇 개나 환희의 소리를 지르고 있다.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이건 목숨을 걸어야겠군. 잠깐 한숨 돌리게 해주게.
 

열여덟 천진


 나――이런 서양풍 거리를 걸으면 묘하게 향수가 느껴지네요.
 니시무라 씨――아이는 아직 하나 뿐이신가요?
 나――아뇨, 일본이 아니라 북경에 돌아가고 싶어져서요.
 

열아홉 봉천


 해가 진 정차장에 일본인이 4, 50명이 걷고 있는 걸 보았을 때, 나는 자칫하면 황화론[각주:2]에 찬성할 뻔했다.
 

스물 남만철도


 옥수수 뿌리를 기는 지네 한 마리.

 

 

 

  1. 일본의 것들을 멀리하는 것 [본문으로]
  2. 1895년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가 주창한 황색인종 억압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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