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어느 가을의 점심쯤.. 나는 도쿄에서 놀러 온 대학생 K군과 같이 신기루를 보러 외출했다. 쿠게누마 해안에 신기루가 보이는 건 누구라도 알고 있으리라. 실제로 우리 집 여종은 거꾸로 뒤집힌 배를 보고 "얼마 전에 신문에 나온 사진이랑 똑같아요."하고 감탄했었다.
우리는 아즈마야의 옆을 지나 겸사겸사 O군도 부르기로 했다. 여전히 붉은 셔츠를 입은 O군은 점심밥 준비라도 하고 있는지,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우물 옆에서 펌프를 다루고 있었다. 나는 진피수 지팡이를 들어 올려 O군에게 신호를 보냈다.
"거기로 올라와――아, 너도 왔구나?"
O군은 내가 K군과 같이 놀러 온 거라 생각한 듯했다.
"우리 신기루 보러 가려고. 너도 같이 갈래?"
"신기루?――"
O군은 불쑥 웃기 시작했다.
"신기루가 유행이네."
5분이 지난 후, 우리는 벌써 O군과 같이 모래가 깊은 길을 걷고 있었다. 길 왼쪽은 모래사장이었다. 그곳에 소수레 축 두 줄기가 오르막길을 검게 오르고 있었다. 나는 이 깊은 축에서 무언가 압박에 가까운 걸 느꼈다. 듬직한 천재의 업무 흔적――그런 생각도 뒤따랐다.
"나는 아직도 건전하지 못 하나 봐. 저런 바큇자국만 봐도 묘하게 비참해져."
O군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O군에게 똑똑히 전해진 듯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소나무 사이를――띄엄띄엄 놓인 낮은 소나무 사이를 지나 히키지가와의 언덕을 걷고 있었다. 바다는 넓은 모래사장의 너머서 푸른 남색으로 맑게 개어 있었다. 하지만 그림 속 섬은 집이나 나무들도 무언가 우울하게 흐려져 있었다.
"신시대네요?"
K군의 말은 갑작스러웠다. 그뿐 아니라 작게 웃고 있었다. 신시대?――심지어 나는 곧장 K군의 "신시대"를 발견했다. 모래사장의 풀 울타리 뒤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남녀였다. 확실히 인버네스 코트에 중절모를 쓴 남자는 신시대라 부르기에 적합했다. 하지만 여자의 단발은 물론이요 파라솔이나 뒤꿈치가 낮은 신발마저 확실히 신시대로써 완성되어 있었다.
"행복해 보이네."
"부럽겠어?"
O군은 K군을 놀렸다.
신기루가 보이는 장소는 그들과 삼천 걸음 가량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하나같이 배로 누워 태양열이 올라오는 모래사장을 강 너머로 바라보고 있었다. 모래사장 위에는 푸른 게 한 줄기, 리본 정도의 폭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바다의 색이 태양열에 비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외엔 모래사장에 위치한 배의 흔적도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저걸 신기루라 하는 걸까요?"
K군은 턱에 모래를 잔뜩 묻힌 채로 실망한 듯이 이렇게 말했다. 그때 어디서 까마귀 한 마리가 모래 사장 위를, 남색으로 흔들리는 그것의 위를 스쳐 더욱이 그 너머로 날아갔다. 동시에 까마귀의 그림자가 그 태양열 위에 거꾸로 비쳤다.
"이것만으로도 오늘은 꽤나 잘 본 편이야."
우리는 O군의 말과 함깨 모래 위로 일어났다. 그러자 우리 앞에는 어느 틈엔가 우리가 남기고 온 "신세대" 두 사람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조금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둘은 여전히 삼천 걸음 가량 떨어진 울타리 뒤에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우리는――특히 O군은 맥이 빠진다는 양 웃었다.
"이쪽이 되려 신기루 아냐?"
우리의 앞에 있는 "신시대"는 물론 그들과 다른 인물이었다. 여자의 단발이나 중절모를 쓴 남자의 모습이 둘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꺼림칙했잖아."
"난 언제 왔나 싶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이번에는 히키지가와의 언덕을 벗어나 낮은 모래산을 넘었다. 모래산은 울타리 끝에 역시나 낮은 소나무를 심어두었다. O군은 그때를 지날 때 "영차"하고 허리를 낮추며 모래 위에서 무언가를 주웠다. 그건 아스팔트로 보이는 검은 틀 안에 서양말을 적어둔 목판이었다.
"뭐야 그게? Sr. H. Tsuji …… Unua …… Aprilo …… Jaro ……1906……"
"이게 뭐지? dua …… Majesta ……인가요? 1926라 되어 있네요."
"이건 왜, 수장한 시체에 달아두는 거 아냐?"
O군은 이런 추측을 했다.
"왜 시체를 수장할 때엔 돛천 같은 걸로 감싸잖아."
"그러니 거기에 이 목판을 붙이는 거지. ――봐, 여기에 못이 박혀 있잖아. 이거 원래는 십자가 형태를 하고 있었을 거야."
우리는 그때 별장으로 보이는 조릿대 울타리나 소나무숲 사이를 걷고 있었다. 목판은 O군의 추측에 가까운 듯했다. 나는 또 태양 아래에선 느낄 리 없는 꺼림칙함을 느꼈다.
"재수 없는 걸 주웠네."
"뭐, 내가 행운의 물건으로 삼을란다……그나저나 1906년부터 1926년이면 스무살 정도에 죽은 거네. 수므살 정도에――"
"남자려나요? 여자려나요?"
"모르지……어찌 됐든 이 사람은 혼혈아였을지 모르겠어."
나는 K군에게 대답하면서 배 안에서 죽어 간 혼혈아 청년을 상상했다. 그는 내 상상에 따르면 일본인 어머니를 두고 있을 터였다.
"신기루인가."
O군은 똑바로 앞을 보며 대뜸 이렇게 혼잣말했다. 어쩌면 별 생각 없이 한 말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 심정에는 무언가 희미하게 닿는 게 있었다.
"잠깐 홍차라도 마시고 갈까."
우리는 어느 틈엔가 집이 많은 큰길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집이 많은?――하지만 건조한 모래가 깔린 길에는 거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K군은 어쩔래?"
"저야 뭐 아무래도………"
그때 새하얀 개 한 마리가 반대편에서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둘
K군이 도쿄로 돌아간 후, 나는 또 O군이나 아내와 함께 히키지가와의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이번에는 오후 일곱 시 경――막 저녁을 먹은 참이었다.
그 밤은 별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별 대화도 없이 인기척 없는 모래사장을 걸었다. 모래사장에는 히키지가와의 시작 지점에서 등불 하나가 움직이고 있었다. 바다에 물고기를 잡으러 간 배를 위한 등불이라고 한다.
파도 소리는 물론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파도 쪽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바다 냄새도 강해졌다. 바다 자체보다도 우리의 발밑으로 밀려온 해초나 바닷물을 머금은 모래의 냄새인 듯했다. 나는 어째서인지 이 냄새를 코 외에도 피부 위로 느꼈다.
우리는 잠시 동안 파도 앞에 서서 물결이 잔잔해져 가는 걸 바라보았다. 바다는 어디를 보아도 어두웠다. 나는 이래저래 10년 전 카즈사의 어떤 해안가에서 머물던 걸 떠올렸다. 동시에 그곳에서 함께 지내던 어떤 친구들을 떠올렸다. 그는 자신의 공부 이외에도 "참마죽"이라는 내 단편의 교정본을 읽어주고는 했다………
그러는 사이 O군은 파도 위에 꿇어앉은 채로 성냥불 하나를 붙였다.
"뭐 하는 거야?"
"딱히 대단한 건 아닌데………그냥 이렇게 불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많은 걸 볼 수 있잖아?"
O군은 어깨너머로 나를 올려다보며 반쯤은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확실히 성냥 하나의 불은 해송이나 우뭇가사리 사이에서 여러 조개껍질을 비추었다. O군은 그 불이 꺼지자 새로운 성냥을 꺼내 천천히 파도 쪽으로 걸어갔다.
"우와, 꺼림칙해라. 익사자 발인 줄 알았잖아."
그건 반쯤 모래에 파묻힌 수영용 신발의 한 짝이었다. 그 안에선 해초나 커다란 해면도 굴러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불을 끄자 주위는 전보다도 더 어두워져 버렸다.
"낮만한 수확은 없었네."
"수확? 아, 그 판 말야? 그런 게 자주 나올 리도 없지."
우리는 끊이지 않는 파도 소리를 뒤로하여 넓은 모래사장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우리의 발은 모래 이외에도 이따금 해초 따위를 밟고는 했다.
"여기에도 많은 게 있겠지."
"한번 더 불을 붙여 볼까?"
"됐어………어라, 종소리가 들리네."
나는 조금 귀를 기울였다. 요즘 들어 자주 듣는 환각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선가 진짜 종소리가 울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다시 한 번 O군에게 물어보려 했다. 그러자 두세 걸음 뒤를 따라오던 아내는 웃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제 신발의 종이 울리는 거예요――"
하지만 돌아보지 않더라도 아내가 신발을 신고 있음은 분명했다.
"오늘밤엔 아이처럼 신발을 벗고 걷고 있어요."
"제수씨 소매자락 안에서 울리는 거네――아, Y의 장난감이야. 종이 달린 셀룰로이드 장난감."
O군도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이윽고 아내는 우리를 따라 잡아 셋이서 한 줄을 이루어 걸었다. 우리는 아내의 상담을 기회로 전보다도 더 기운차게 이야기했다.
나는 O군에게 어젯밤 꾼 꿈을 이야기했다. 그건 어떤 문화 주택 앞에서 트럭 자동차의 운전수와 이야기하는 꿈이었다. 나는 그 꿈속에서도 이 운전수와 만난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서 만났는지는 꿈에서 깬 후로도 떠올리지 못 했다.
"그런데 문득 떠오른 게 3, 4년 전에 딱 한 번 담화필기로 온 부인 기자였어."
"그럼 여자 운전수였던 거야?"
"아니, 물론 남자였지. 단지 얼굴만 그 사람이었던 거야. 역시 한 번 본 건 머리 어딘가에 남는 거려나."
"그렇겠지. 인상 깊은 얼굴이라면………"
"정작 난 그 사람 얼굴에 관심도 없었는데 말야. 그런 만큼 되려 꺼림칙하더라고. 어쩐지 의식의 바깥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 거 같아서………"
"즉 성냥에 불을 붙이면 여러 가지가 보이는 격이지."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연히 우리의 얼굴만이 또렷이 보이는 걸 발견했다. 하지만 별빛마저 보이지 않는 건 전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또 무언가 꺼림칙해져 몇 번이나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그러자 아내도 알아차렸는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사이에 내 의문에 대답했다.
"모래 때문인 거죠?"
아내는 두 소매를 한데 모아 넓은 모래사장을 돌아 보았다.
"그런 듯하네."
"모래는 장난꾸러기군. 신기루도 이 녀석이 만드는 거니까………제수씨는 아직 신기루 못 봤죠?"
"아뇨, 요전 번에 한 번――뭔가 파란 게 보인 게 고작이었지만요………"
"오늘 저희가 본 거도 그게 전부에요."
우리는 히키지가와의 다리를 건너 아마즈야의 바깥을 걸었다. 소나무는 어느 틈엔가 불기 시작한 바람에 가지끼리 스치며 울었다. 그때 키가 작은 남자 하나가 빠른 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는 문득 요번 여름에 본 어떤 환각을 떠올렸다. 그것 역시 이런 밤에 양버들 가지에 걸린 종이가 헬멧처럼 보인 것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환각이 아니었다. 그뿐 아니라 서로 가까워짐에 따라 와이셔츠의 가슴가도 보이게 되었다.
"저 넥타이핀은 뭐지?"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한 후, 곧 핀인 줄 알았던 게 담뱃불이란 걸 발견했다. 그러자 아내는 소매를 잡고 누구보다도 먼저 몰래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 남자는 곁눈질하는 법도 없이 우리와 엇갈려 갔다.
"그럼 잘 가라."
"주무세요."
우리는 가볍게 O군과 헤어져 소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안을 걸었다. 그 소리 안에는 벌레 소리도 작게 섞여 있었다.
"할아버지 금혼식이 언제셨죠?"
"할아버지"란 아버지를 말하는 거였다.
"언제였더라………도쿄에서 버터 왔던가?"
"버터는 아직이에요. 소세지는 와있지만요."
그러는 사이 우리는 문앞에――반쯤 열린 문 앞에 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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