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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세 개의 반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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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옛날, 바그다드의 이슬람 사원 앞에 한 거지가 자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때 설교가 끝나 사원에서 사람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이 거지에게 적선하는 법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상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왔는데, 그 거지를 보고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폐하. 알라께서 당신을 지켜주실 겁니다"하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상인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가려 했기에 거지는 말했습니다. "폐하, 잠시만 기다려주시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자 상인인 듯한 사람은 돌아보아 "나는 폐하가 아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거지는 "아뇨, 이번 폐하는 낙타꾼이나 물 운반부로 꾸며 아래 것들을 살피신다 합니다. 저는 아침부터 이렇게 연민을 팔고 있는데 누구 하나 제게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폐하께 보답으로 반지 하나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 반지는 아라비아의 마신 진이 만든 걸로, 만약 누군가가 폐하를 독살하려 하면 이 반지에 붙어 있는 붉은 돌이 파랗게 변합니다."하고 말하며 놀란 상인 차림의 사람 손에 반지를 쥐여주고는 그대로 사라지듯이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다음 날 저녁. 바그다드의 우물 하나가 물 뜨는 마을 연인들 덕에 북적였습니다. 그 우물 앞에 어제 절 앞에서 폐하 소리를 들은 상인이 한 소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굉장히 볼품 없는 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굉장히 아름답고 맑은 눈을 가진 여자였습니다. 그때 상인이 소녀에게 말하길 "저는 꽤나 오랫동안 매일 당신과 여기서 대화를 했는데, 당신은 항상 제가 내는 수수께끼를 바로 푸시지요. 저는 당신의 좋은 머리와 아름다움에 감탄했습니다. 부디 제 아내가 되어주시겠습니까." 소녀 "제 남편이 될 사람은 정말로 저를 사랑해주셔야 합니다. 얼굴이 아름답다던가 추하단 것만으로 아내로 삼고 싶다는 사람에게는 제 몸을 맡길 수 없습니다."하고 말하자 상인은 "그럼 제 집에 와서 저와 같은 생활을 하여 제가 정말로 당신을 사랑하는지 어떤지 보시고 제 마음을 알게 되면 아내가 되어주시지요. 그동안 저는 당신을 동생으로 대하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소녀 "저는 오랫동안 당신과 대화했지만 아직 당신의 이름도 알지 못 합니다." 상인 "나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를 받은 이 나라의 왕 아브타르다." 그렇게 말하고 휘파람을 불자 어디선가 수많은 노예가 상아로 장식된 아름다운 가마를 가지고 와 그 소녀를 태워 궁성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소녀를 왕궁으로 데리고 간 다음 날 아침. 임금님은 그 소녀와 이야기를 하려 소녀의 방으로 향했습니다. 놀라운 건, 그 소녀의 얼굴이 하룻밤만에 종기투성이가 되어 봐줄 수 없는 여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걸 본 임금님은 순간 성가신 걸 데리고 왔다 싶었습니다만 목소리, 태도, 좋은 머리는 전과 다르지 않았기에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임금님은 이야기하던 도중 "나는 꽤나 오랫동안 나라를 다스렸는데 아직까지 신뢰할만한 대신을 얻지 못 했다. 너는 누군가 대신이 될만한 사람을 모르는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소녀는 "제가 아직 변방 마을에 있었을 때, 길라루리란 노인이 시장에 있었습니다. 그 노인을 써보시는 건 어떻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임금님은 신하를 보내 시장에서 항아리를 만들던 길라루리 노인을 모셔왔습니다.
 다음 날, 대신 취임식을 마친 임금님은 굉장히 불쾌해져 소녀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저 노인은 결코 믿을만한 인간이 못 된다. 그는 나를 독살하려 했다." 소녀는 놀라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임금님은 "내 반지에 박힌 돌이 파랗게 변했다. 수상해져 노인을 조사해보니 독약을 갖고 있었지."하고 말했습니다. 소녀 "그 노인은 그런 무서운 분이 아닙니다. 분명 모종의 착오가 있겠지요. 부디 노인을 여기로 불러주세요. 제가 물어보지요. 임금님께서는 부디 옆방에서 노인이 어떤 대답을 할지 들어주세요." 그렇게 소녀가 노인에게 독약에 관해 물으니 노인이 말하기를, "제가 오늘 궁성에 오는 도중에 한 거지가 제게 철반지 하나를 주었습니다. 그 반지를 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의 비밀을 모조리 알 수 있다고 말했는데, 저의 오랜 경험에 비추어 보면 꼭 남의 비밀을 알 필요는 없습니다. 때문에 그 반지를 차지 않고 허리띠 안에 넣어두었지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를 임금님은 모두 제멋대로니 만약 제가 수치를 겪을 만한 일이 생기면 독을 마시고 죽을까 싶어 그렇게 독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임금님은 옆방에서 그 말을 듣고 자신이 노인을 괜히 의심했음을 깊이 사과하며 같이 밥을 먹었습니다. 그때 옷을 갈아입고 온 소녀가 들어왔는데, 놀랍게도 고약투성이였던 소녀는 굉장히 아름다운, 이전의 아름다움하고도 비교되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놀라서 보고 있는 임금님께 소녀가 말하길, "임금님 저는 결코 나쁜 병에 걸린 게 아닙니다. 저는 당신의 마음을 떠보려 얼굴에 고약을 발랐던 겁니다"하고 말하며 테이블에 반지 하나를 꺼냈습니다. "제가 아직 마을에 있을 적에 한 거지에게 이 반지를 받았습니다. 이 반지를 차고 있으면 어떤 남자의 마음도 알 수 있다고 했지요. 하지만 저는 그런 수단이 옳지 않다는 걸 깨닫고 결코 이 반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반지에 기대지 않고 자신을 정말로 사랑해주는 분을 찾은 건 정말로 기쁜 일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임금님은 "세 사람 모두 반지를 받았는데 실제로 반지를 찬 건 나 하나고 심지어 그 탓에 실수를 범한 것 또한 나 하나로구나. 이런 반지는 내게 필요 없다."하고 마루에 반지를 던졌습니다. 그러자 반지는 갈라져 안에서 불꽃이 솟았고, 알라가 그 반지 속에서 나와 세 사람에게 축복을 주고 사라져 갔습니다.
 임금님은 소녀를 왕비로 삼고 또 노인을 대신으로 삼아 정치를 행했습니다. 끝내 만년에 이르러서는 반란이 일어나 임금님은 대신과 왕비를 데리고 나라를 벗어나 티그리스 강 옆에 머무르며 스스로 먹을 걸 만드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어딘가 즐겁기도 했습니다.(담화)


       하나
 바그다드의 어떤 사원 앞입니다. 나이를 먹은 거지 하나가 길 위에 누워 있었습니다. 마침 예배가 끝난 시기였기에 늙은 사람 젊은 사람 구분 없이 수많은 아라비아인이 어두컴컴한 현관에서 아침해가 드는 거리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거지에게 돈을 주는 법은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 젊은 상인 하나가 조용히 돌계단을 내려왔습니다. 상인은 거지의 모습을 보고는 안타까워졌는지 동전 하나를 던져주었습니다
거지 감사합니다 폐하!
 상인은 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폐하란 건 아라비아에선 칼리프(왕)에게만 쓰는 존칭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상인은 아무 말도 않고 거지 앞
거지 알라(신)은 폐하를 지켜주실


을 지나려 했습니다. 그러자 거지는 뒤쫓듯이 다시 한 번 이렇게 반복했습니다.
거지 감사합니다, 폐하! 알라는 폐하를 지켜주실 겁니다.
 상인은 발을 멈추었습니다.
상인 무슨 착각을 하는 거 아닌가? 나는 단순한 상인이라네. 야자나무를 파는 버지란 자야. 폐하라 부르지 말아주게.
거지 아뇨, 폐하는 상인이십니다. 폐하는 칼리프 아브타르 폐하십니다.
상인 내가 그 아브타르 폐하라! 하하, 너는 미치광이구나. 미치광이라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너무 오래 있으면 이번에는 알라랑 착각하겠어.
 상인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지나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거지는 뼈만 남은 손으로 상인의 소매를 잡으며 다시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거지 폐하! 숨기실 거 없습니다. 폐하는 총명함으로 이름 높으신 아브타르 폐하입니다. 어느 때는 상인이 되고, 또 어느 때는 낙타꾼이 되고, 정치의 옳고 그름을 보신다는 아브타르 폐하시죠. 부디 본명을 밝혀주시지요. 아니, 밝히지 않으시더라도 부디 이 반지를 받아 주시지요.
 거지는 멍하니 있는 상인에게 반지 하나를 건넸습니다. 큰 다이아몬드가 박힌 아름다운 금반지였습니다.
거지 폐하는 총명하다 명성 높은 아브타르 폐하십니다. 하지만 악당의 독만은 간파하실 수 없겠지요. 하지만 이 반지의 다이아몬드는 독약의 기척을 느끼면 곧 검베 변합니다. 그러니 부디 앞으로는 항상 이 반지를 하고 계시지요. 그러면 설령 신하 중에 악당이 있더라도 독에 죽을 일은 없습니다.
 황당해진 상인은 단지 거지와 반지를 번갈아 보기만 합니다.
거지 그 반지는 평범한 반지가 아닙니다. 진(마신)이 보물로 삼던 마법 반지지요. 폐하는 지금 제게 돈을 주셨습니다. 저 또한 보답으로 그 반지를 드립니다.
상인 너는 누구냐?
거지 저 말입니까? 제 이름은 누구도 알지 못 합니다. 아는 건 단지 하늘 위의 알라뿐이시죠.
 거지는 이렇게 말하더니 향이 풍기는 연기와 같이 어딘가로 모습을 감추어버렸습니다. 그 뒤엔 햇살이 비치는 거리의 길만 남았습니다. 버지라 자칭한 상인은 한사코 반지를 손에 얹은 채로 신기하다는 양 주위를 보았습니다.
       
 바그다드 시장의 분수 위에 커다란 무화과가 잎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 분수 오른쪽에는 버지라 자칭한 방금 전 상인이, 왼쪽에는 물병을 든 아름다운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는 빈곤한 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넓은 아라비아 안에서도 이만큼 아름다운 소녀는 찾아 볼 수 없겠지요. 특히 오늘의 저녁노을이 희미하게 떠오른 눈의 맑음은 밤하늘의 별에도 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상인 "마르시아나 씨. 저는 당신을 아내로 삼고 싶습니다. 당신은 반지마저 하고 있지 않지요. 하지만 저는 당신 손가락에 어떤 보석도 달아줄 수 있습니다. 또 당신은 비단을 몸에 두른 적도 없겠지요. 하지만 저는 중국 비단이나……"
 소녀는 시끄럽다는 양손을 저었습니다.
소녀 "제 남편이 될 사람은 저를 사랑하기만 하면 족합니다. 저는 빈곤하지만 사치를 부리고 싶진 않습니다."
상인 "그럼 제 아내가 되어주시지요.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소녀 "저는 아직 믿을 수 없네요. 설령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 해도 거짓말일 수 있으니까요."
 상인은 무어라 말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소녀는 가로막듯이 빠른 말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녀 "그야 제 얼굴은 사랑하실지 모르죠. 하지만 제 혼도 사랑해주시나요? 만약 사랑해주시지 않는다면 정말로 저를 사랑한다고는 하지 못 할 테죠."
상인 "마르시아나 씨. 저는 당신의 혼 또한 얼굴과 마찬가지로 사랑합니다. 만약 거짓말 같다면 제 집이 오시죠. 한 달이든 두 달이든 혹은 일 년이든 저와 같이 살아주세요. 저는 알라의 이름에 맹세하여 동생처럼 대하겠습니다. 그동안 만약 부족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나가주셔도 됩니다."
 소녀는 조금 주저했습니다.
상인 "대신 제 마음을 아신다면 제 아내가 되어주세요. 저는 요 3년 동안 아내가 될 여자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당신 한 명을 제외하면 누구도 제 마음에 들지 않았죠. 부디 제 바람을 이루어주세요."
 소녀는 얼굴을 붉히며 겨우 작게 대답했습니다.
소녀 "저는 이곳에 물을 뜨러 올 때마다 몇 번이나 당신을 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무슨 말을 하셨는지도 알지 못 해요. 하물며 거처가 어디 있는지도……"
 이번에 말을 끊은 건 버지라 자칭한 상인이었습니다. 상인은 작게 웃으며 정중히 소녀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상인 "바그다드에 사는 자는 누구라도 제 집을 알고 있지요. 제가 칼리프 아브타르입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은 아라비아의 왕이죠. 부디 왕궁으로 와주세요."
 상인은――아니, 칼리프는 입술에 손가락을 얹고는 날카로운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소녀는 깜짝 놀라 맑은 눈을 크게 뜨며 칼리프의 얼굴을 바라볼 따름입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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