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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이 드는 거리를 홀로 느긋이 걷는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봄볕이 드는 거리를 홀로 느긋이 걷는다. 반대편에서 보이는 건 지붕 가게 주인이었다. 지붕 가게 주인도 이 계절엔 남색 정장에 중절모를 쓰고 고무인지로 된 장화를 신고 있다. 그건 그렇고 참 긴 장화다. 무릎――정도가 아니다. 허벅지도 절반가량 가려져 있다. 저런 장화를 신었을 때엔 장화를 신었다기보다도 모종의 박자로 장화 속에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 테지. 단골 골동품상을 찾았다. 정면의 붉은 선반 위에 무시아케에서 만든 듯한 술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술병 입구가 묘하게 외설적이다. 그래그래, 언젠가 본 고비젠의 술병도 살짝 입을 얹어 보고 싶었다. 눈앞엔 문양이 그려진 접시 한 장이 놓여 있다. 남색 버들 가지 아래에 역시 남색으로 된 사람 하나가 바보 같이 긴 낚시대를 뻗고 있다. 누구인가 싶어 .. 2021. 6. 22.
[리뷰] 왓챠 팝콘 가끔 네가 보고 싶긴 해, 그렇게 자주는 아니고 팝콘 이야기 전에 왓챠 이야기부터 해보자면... 아마 제가 가장 먼저 사용했던 OTT 서비스였던 거 같네요. 정확히 언제 사용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17년인가부터 썼던 거 같습니다. 당시엔 아직 왓챠플레이였죠. 그래도 제법 열심히 썼던 거 같습니다. 하나둘 넷플릭스 유저가 늘어가는 와중에도 꾸준히 왓챠만 썼죠. 사실 지금도 왓챠 쪽에 입맛이 맞는 게 더 많긴 합니다. 왓챠피디아랑 연동도 되니 감상 후에 굳이 검색해서 평가할 필요도 없고요. 문제는... 넷플릭스가 너무 퍼졌죠. 어머님들도 으레 웨이브 + 넷플 정도는 쓰시게 되는 와중에 저희집도 비슷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미 엄마가 넷플을 쓰는데 내가 왓챠까지 구독할 정도인가...? 하는 생각이.. 2021. 6. 21.
타츠무라 헤이조 씨의 예술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현대는 참 어려운 세상이다. 이 어려운 세상 속에서 타츠무라 헤이조 씨처럼 하나에 이, 삼천 엔이나 하는 온나오비를 짜는 건 어쩌면 시대의 여론에 괜한 비난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개중에는 그런 사치품에 생산 능력이 낭비된다는 사실에 분개하는 경향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 온나오비가 단순한 온나오비로 그치지 않는다면――공예품보다도 예술품으로서 감상해야 마땅할 성질을 지녔다면 아무리 내일 먹을 쌀밥마저 구하기 어려운 어려운 세상이라도 마냥 사치품 퇴치라 소리 높이며 타츠무라 씨의 사업과 작품을 나무랄 건 없지 싶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절박한 시대 앞에 악랄무쌍히도, 거리낌도 없이 당당히 타츠무라 씨의 온나오비를 천하에 절찬할 수 있단 사실을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게 여길 수밖에 없다. 물론 나는 직.. 2021. 6. 21.
포의 일면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포란 애드거 앨런 포를 말합니다. 포가 처음 프랑스에 소개되었을 때에는 포어라 불렸습니다. 영국인 중에서도 이렇게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포가 바른 건 명확합니다. 또 하나 이름 이야기를 하자면 애드거는 괜찮지만 앨런은 결코 스스로가 바란 게 아니라 합니다. 즉 앨런만은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 포의 아버지는 에드거 데빗 포라고 하며 포는 차남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포를 포함해 세 아이를 남기고 죽었습니다. 때문에 도리 없이 포는 존 알란이란 담배학자 아래서 자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을 벗어납니다. 때문에 포 본인은 단 한 번도 앨런 포라는 서명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 앨런이라 불리게 된 건 포의 전집을 편집한 그리스보트란 남자가 고의로 덧붙인 게 처음입니다.. 2021. 6. 20.
6월 19일 - 다자이 오사무 아무런 볼일도 없이 원고용지를 마주했다. 이런 게 진짜 수필이란 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6월 19일이다. 맑은 날이다. 내가 태어난 날은 메이지 42년 6월 19일이다. 나는 어릴 적에 묘하게 삐뚤어져서 자신을 부모님의 진짜 아이가 아니라 믿었던 적이 있었다. 형제 중에서 나 혼자만 동떨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용모가 곱지 않아 일가족이 챙겨주는 통에 서서히 삐뚤어진 걸지 모른다. 한 번은 창고에 들어가 여러 서류를 찾아 본 적도 있었다.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옛날부터 우리 집에 출입하던 사람들에게 몰래 물어보고 다닌 적도 있다. 그 사람들은 크게 웃었다. 내가 태어난 날의 일을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이었죠. 저 작은방에서 태어나셨어요. 모기장 안에서 나셨지요. 굉장히 순조로웠어요. 금.. 2021. 6. 19.
선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상 언제 적 일인지는 알 수 없다. 중국 북쪽의 마을서 마을로 오가는 거리 공연가 중에 이소이李小二라는 남자가 있었다. 쥐에게 연극을 시켜 벌어먹고사는 남자였다. 쥐를 넣은 주머니 하나, 의상이나 가면을 넣은 상자 하나. 그리고 무대 역할을 하는 작은 노점 같은 것 하나――그 외에 건 특별히 지닌 게 없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왕래가 많은 사거리에 선다. 먼저 노점 같은 걸 어깨로 짊어맨다. 그리고 북을 두드리고 노래를 불러 사람을 끌어모은다. 호기심 강한 거리인들은 어른아이를 가리지 않고 하나같이 발을 멈춘다. 그렇게 사람들이 주위를 두르면 이는 주머니 안에서 쥐 한 마리를 꺼낸다. 쥐에게 의상을 입히고 가면을 씌운 후 판자의 귀문도로 무대에 오르게 한다. 쥐는 꽤나 익숙한 듯했다. 무대 위를 졸졸졸.. 2021.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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