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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키시다 쿠니오

감상 - 키시다 쿠니오

by noh0058 2022.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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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이란 걸 전문적이다 생각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또 이를 전문적이지 않다 생각하는 일면도 있을 터이다.

 전문가만이 관심 가지는 문학과 전문가는 관심 가지 않는 문학(?)이 확연히 갈리는 점에 우리나라 현대 문화의 특수성이 있다 본 나는 오늘날 우리가 하는 작업의 고된함을 절절히 느끼고 있다.

 개개인의 문제는 제쳐두고 일반적인 문학자가 세간을 얼마나 먼곳에서 바라보고 있는가, 또 세간은 문학자를 어떤 '특이한 존재'로 대하는가. 이 점은 모두가 아는 듯하면서도 사실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단 사실을 나는 신기하게 생각한다.

 이제 문단이란 특수국에는 세간에 통용되지 않는 풍속이나 습관이, 또 언어가 존재하며 이를 존중하고 따르지 않으면 전문가의 자격을 잃게 된다. 때문에 순문학은 이를 따라 심경을 갈고 닥고 대중 문학은 이를 따라 진한 화장을 해야 한다. 그렇게 보면 더더욱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순문학과 대중문학을 같은 울타리 안에 살게 할 생각은 없다. 순문학은 세간을 상대하지 않고 대중문학은 독자를 따라 만들어진단 정도의 구별은 알고 있다. 단지 세간이란 게 꼭 속중만으로 이뤄져 있지 않단 것도 알고 있다. 요컨대 속중이 우수한 문학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 하여 그 이유로 세간 전체를 경멸하고 적시하는 건 맞지 않음으로 그 경향이 이미 '일반 사회에 거는 말'을 문학자에게서 뺏았단 관찰을 내렸다.

 이는 문학자만의 죄는 아니다. '세간'에도 죄는 있지만 세간은 이제 문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에 있지 않은가. 그러니 도리가 없다. 문학자 쪽이 이를 깨닫고 세간의 주의를 돌리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물론 일본이란 나라를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함이다. 그걸 위해선 무엇보다 '공통된 말'을 찾는 게 급선무다. 문학자가 관심 가지는 게 지극히 직업적이고 고립적인 데다가 그 말이, 또 '말투'가 참으로 은어적이고 암호적이게 된다. 평범한 교양으로 해석하고 얻을 수 있는 표현으론 문학이 성립되지 않는단 말인가?

 문학자 동지가 아니고선 통용되지 않을 말과 몸짓이 문학 그 자체를 얼마나 비좁게 만들며 때로는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가. 나는 수많은 사례를 들어 이야기할 수 있다.

 문학의 독자성이란 게 그렇게 비좁고 갑갑한 게 아니다. 시나 소설은 세간 사람들이 이를 논해도 이상할 게 없다. 정치가든 군인이든 사업가든 기술직이든 좋아하는 장소에서 문학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 일본에는 그런 분위기를 용납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공극인가, 장애인가. 아마 양쪽 모두이리라.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직업을 입에 올리는 순간 주위 분위기는 얼어 붙는다. 화제도 한 줄기 줄 위에 올라 타 자칫하면 엉뚱하게 끝나는 게 고작이다. 그러니 우리 문학자는 현재, 어떤 시대를 살며 어떤 역할을 연기해야 할지가 도마에 오른다.

 문학을 대하는 국가적 관심, 문학자의 사회적 지위, 체재 따위가 어떻게 변해도 이상할 게 없단 의견도 성립하는 동시에 의외로 그런 목소리에서 실질적인 무언가가 만들어질 수 있단 견해도 못 믿을 건 없다. 일본이란 나라는 원래 그런 기현상에 축복 받은 나라이다. 그런 정열 속에서 우리가 가장 갑갑하게 느끼는 건 문학에 한정된 '문단적 기이한 관습과 방언'의 존재이다. 문학이 동등하게 '세간'을 그리면서도 그 안에 '세간'이 살게 두지 않은 비좁은 역량이나 결벽증이다. 우리 안에 없는 걸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유치한 마술은 왕왕 비문학적 속취를 내뿜게 한다. 서툰 표준어와 마찬가지로 세간 지식인을 망연자실하게 하는 이유이다.

 실제로 이런 걸 성을 내며 말해봐도 문학의 면모가 일신되기까지는 족히 50년은 걸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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