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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키시다 쿠니오

아름다운 이야기 - 키시다 쿠니오

by noh0058 2022.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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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걸 "아름답다" 느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정말 아름다운 것"과 "겉보기에만 아름다운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꽤 많다. 또 "아름답다"는 걸 착각하는 사람, 요컨대 "추한" 부류에 들어가는 걸 어느 틈엔가 좋아져 그걸 "아름답다" 착각하는 사람이 또 적지 않다.

 "정말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으로서 굉장히 불행할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 탓에 점점 살기 힘들어지고 더욱이 그런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전쟁에 이기더라도 외국의 매도를 받으며 정신적으론 대등한 관계가 될 수 없다.

 "아름다움"이란 건 여러 종류가 있어서 눈에 보이는 것만 아니라 귀로 듣는 소리에도 존재한다. "자연적인 아름다움"이라 말하면 문제가 없지만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육체적 아름다움보다도 주로 정신의 아름다움을 뜻한다.

 그럼 우리 일본인은 이제까지 "인간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가르쳐 왔는가? 우리 일본인의 정신은 어떤 점에서 그 "아름다움"을 자랑했던가?

 이 반성은 정말 중요한 반성이나 지금 여기서 직접 이야기할 새는 없다. 하지만 나는 단지 이제까지 여기저기서 떠들어 온 일본인이 좋아하는 "미담"의 성질을 음미해 보고 싶다.

 신문이나 잡지가 앞다투어 거는 '감격 미담'이나 국민학교 교과서 교재로 실리는 '교훈 미담'은 대개 일본 이외의 나라에선 '아름다운 이야기'로 통용하기 어려운 것뿐이다.

 왜 그런 결과가 되었는가. 이것도 이야기하면 길어지나 극히 간단히 이야기하면 일본인은 아직 '인간'이란 자각이 부족하단 것과 국가와 사회의 관계를 또렷이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일본인은 사람 대 사람의 관계에서도 상대의 특별한 부분만 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한 인물을 그 직함이나 용건, 이용 가치를 생각하며 고르는 것 이외에는 다루는 법을 알지 못한다. 자신의 태도를 되돌아보면 지인을 단순한 친구가 아닌 격상이나 격하, 또는 동급으로만 보며 때로는 적이냐 아니냐로만 구분한다는 걸 금세 알 수 있으리라.

 요컨대 어떤 사이라도, 또 무엇을 하더라도 서로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태도를 갖추고 서로 이를 자연히 표현하는 일이 굉장히 드물기 짝이 없다. 이런 식으로 인간의 모습은 '진정한 아름다움'에서 서서히 멀어진다.

 하지만 우리 일본인도 마음 깊은 곳부터 그 모양인 건 아니다. 역시 진정한 마음을, 인간 사이의 존경과 애정을 자연스레 보여주는 걸 더 좋아한다.

 요컨대 '아름다운걸' 아름답다 느끼는 소질은 지니고 있다. 인간으로서 태어난 이상 그런 본성은 자연스레 심어질 터이다. 하지만 일본인의 경우엔 주위 환경 탓에 그걸 키우지 못한다. 적어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말하지 못하는 세간의 묘한 분위기가 존재하며, 그렇게 말하지 못하면 행동으로도 옮기지 못하기 마련이다.

 "입"과 "배"의 차이, "마음"과 "행동"의 모순은 이윽고 한쪽을 불순하게 만들고 만다.

 "불순함"은 "아름답지 못한 것"의 필두이다. "미담" 대다수가 "아름답지 못한" 건 결과로 본 행위의 도덕적 가치를 가볍게 판단하고 그 행위의 진정한 동기를 깊게 파고 들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위만을 떼어놓고 보면 확실히 칭찬해 마땅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행위의 시작을 더듬어 보면 외려 추한 인간의 모습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꽤나 많다. 그리고 또 하나론 모처럼 "아름다운" 일이라도 그걸 떠드는 사람의 인격이 얄팍하거나 그걸 칭송하는 목적이 추한 경우도 많다. 하물며 "아름다움"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그 색조합을 알지 못하고 단지 혼자서 거창하게 감탄하며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이야기'를 무조건적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라 추앙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름다운 이야기"란 게 꼭 "도덕적"이며 모범으로 삼을만한 인물이나 행위를 말하는 건 아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란 건 딱히 만인의 눈물샘을 자극할 만한 비장한 이야기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하물며 "아름다운 이야기"엔 "멋진 이야기"나 "달콤한 이야기"가 아닌 것도 물론 존재한다.

 

 한 마디로 하자면 "아름다운 이야기"란 "인간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아름다움 마음"이 포착하여 "아름다운 말"로 표현한 것이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아름다움"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수준이든 질이든 천차만별이나 "아름다움"을 맛보는 감각 또한 제각기 발달 단계에 따라 다르다.

 여기에 담은 다섯 편의 글은 우리의 손안에 있는 자료 속에서 주운 것인데 하나같이 우리의 오늘날에 "아름다운 이야기"로서 깊은 맛을 내리라 생각한다.

 하나하나의 맛은 제각기 다르다. "이야기"로서의 "아름다움"도 다양하다. 심지어 그 모든 "아름다움"도 앞으로의 일본인이 정말로 "인간으로서" 추구해야만 하는 것이며, 추구하면 반드시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한단 걸 알 수 있으리라.

  쇼와 21년 8월

정화회 출판 위원회를 대표해서, 키시다 쿠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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