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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키시다 쿠니오

앙리에트의 지방 요양 일기 - 키시다 쿠니오

by noh0058 2022.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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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일(수요일) 흐림

드디어 파리를 떠나게 되었다.

아침 여덟 시, 택시로 케도르세 정차장에 간다. 춥다.

병 때문에 요양 가는데 거창한 준비도 필요 없다는 게 아빠의 의견이었다.

그럼에도 사람이 모이는 곳이니 잘 챙겨야 한다는 게 엄마의 의견.

루이즈 이모도 엄마 편을 들어주었다.

기차 안에서 정오의 체온을 잰다. 37.4도. 속은 편하지만 얼굴이 뜨겁다. 엄마가 계속 '괜찮아?', '괜찮아?'하고 묻는 통에 다른 사람들도 힐끔힐끔 쳐다봐 곤란하다. 엄마 무릎에 누워 자는 척을 한다.

보르도에 도착하니 날이 저물어 있었다. 환승할 때에 앞에 있던 미국인이 짐을 내려줬다.

2월 4일(목요일) 맑음

아침, 침대차 창문 너머로 안개에 휩싸인 피레네 산맥이 보인다.

일곱 시, 포에 도착한다. 처음으로 동백꽃이 핀 걸 보았다.

외투를 벗고 싶을 정도로 따듯하다. 햇살이 눈부시다.

마차로 마을 외각의 선투리움 선 몰로 향한다.

우리가 안내받은 건 스페인풍 건물의 한 방으로, 건물 입구에는 뷜라 세류반이란 푯말이 걸려 있었다.

 

2월 18일(목요일) 비온 뒤 맑음

오늘은 처음으로 혼자서 산책한다.

공원에서 공작이 나는 걸 보고 야채 시장에서 처음 듣는 방언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앙리 4세의 성을 한 바퀴 둘러보고 호텔 드 프랑스 앞까지 이르니 무슈 로벨과 만났다. 내일 마차로 '웃음의 계곡'에 데려가 주신단다.

무슈 로벨은 시를 쓰는 사람인 덕에 아름다운 '웃음의 계곡'의 광경을 눈에 보이듯이 설명해 주셨다. 말은 또렷이 기억나지 않지만 겨울 추위에서 깨어나려는 자연이 웃음을 머금고 우리를 맞이해주는 밝고 그리운 계곡 이름이라고 한다.

돌아와 엄마한테 그 이야기를 하니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나도 같이 가도 된다면……"하고 말하신다.

2월 27일(일요일) 맑음

갑자기 파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열은 내렸지만 원장님은 좀 더 있는 게 좋다는 걸 엄마가 내일 꼭 출발해야 한다며 듣지 않았다. 그게 어제 일이다.

나는 좀 더 여기 있고 싶다. 평생 있어도 좋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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