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옷을 입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적은 물론 없으나 언제까지 이런 걸 입어야 하나 하는 생각은 번번이 든다.
밖에 나갈 땐 양복, 집안에선 일본옷이 최고다. 누구나 그렇게 말하니 비 내린 직후에 높은 게다를 신고 걷는 정취도 또 재미가 있다. 이는 비꼬는 게 아니다. 가만히 있을 때 바지 가랑이만큼 거슬리는 것도 없을 테지.
하지만 일본옷을 입고 의자에 앉으면 어쩐지 조마조마 해진다. 소매로 바람이 들어오는 것만 같다――바람이 전부라면 그나마 형편이 낫지만……
새로 만든 양복을 입고 북적이는 거리를 산책하는 기분. 이는 상상만이라면 좋다. 하지만 쇼윈도에 비치는 모습을 보면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다. 이상한 줄무늬의 셔츠가 소매 사이로 빠져 나온 게 전부라면 또 몰라도……
따듯해져 처음으로 외투를 입지 않고 나온 날에는 전라로 뛰쳐나온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겸연쩍다. 신발이 너무 큰 것도 눈에 띈다.
그건 그렇고 겨울에 일본옷에 메리야스 팬티를 입고 나오면 그 팬티가 접혀 올라가 걸리는 게 성가시다.
인바네스 코트는 저녁거리를 둘이서 걸을 때에만 입고 싶다.
맑은 날에 검은 우산을 가지고 나오는 세심함을 나는 사랑한다.
음식은 어떤 거라도 먹을 때에만 내 머리를 지배한다. 요컨대 뭔가를 먹고 싶다 생각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 밖에 나와 식사 시간이 되면 "뭘 먹을까"하는 문제로 꽤나 고민한다. 때문에 기어코 아무것도 먹지 못할 때가 있다. 결국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그럴 때 아스피린마냥 먹으면 배가 부르는 약은 누가 안 만들어주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집에 있을 때도 하루에 세 번이나 식탁을 차리는 게 귀찮아서 도리가 없다.
먹으면 맛있다 느끼는 것도 있으나 뒤돌아서면 잊고 만다.
미각의 기억――네 살인가 다섯 살일 적에 마차를 타고 어디 뒷골목 과자집에서 난생처음 라무네를 마셨을 때의 그 깊은 감각.
파리 거리의 다락방에서 화가 O가 만들어진 챠메시 한 그릇.
나는 언제부터인가 급하게 밥을 먹는 버릇이 생겼다.
혼고에서 하숙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결코 밥상 앞에 앉지 않았다. 엉거주춤하게 있었다. 눈을 감고 국을 마셨다. 단무지를 물고 토해냈다.
치즈라면 까망베르. 맛보다도 추억이 그립다.
이런 집에 살고 싶다 하는 생각은 그래도 두세 번 했었다.
물론 베르사유 궁전이어서야 복도만 해도 너무 넓으니……헛소리는 그만할까. 건축은……그런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단지 서재와 침실은 쾌적했으면 좋겠다.
만약 식당이 있다면 고풍스러운 가구로 꾸미고 싶다. 튼튼한 굴뚝과 잘 칠한 피아노만 있다면 손님방은 필요 없다.
이만한 주문도 현재는 몽상에 가까운 듯하나 얼마 전에 막냇동생이 아자부의 고물전에서 발견했단 굉장히 재미나 보이는 회전의자는 굉장히 따로 노는 느낌은 있어도 내 서재를 단조로움에서 구해주고 있다.
겨울 방에 자리한 등나무 의자의 볼품없음도 그렇지만 싱글베드에 적당히 줄무늬가 그려진 이불을 두는 건 나도 참 세련되지 못하다 싶은 적이 있다. 하물며 저렴한 화로에 역시나 저렴한 주전자를 얹어 증기가 솟으면 그게 곧 난방이다.
교외의 셋방도 좋으나 이웃 닭이 시끄러운 게 단점이다. 한 쪽 발을 들어 내쫓으면 여 보라는 양 우는 그 밉상함이란.
"많이 찾았어요"하는 인사도 웃으며 흘려 넘기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관 격자를 여는 손님의 모습이――그보다도 그 손님을 배웅하는 사람의 모습이 쓸쓸하다.
안개가 걷힌 정원에 생사를 알 수 없는 벚나무 두세 그루……
설거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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