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모다 부부를 중심으로 한 츠키지좌의 작업은 매일 눈부신 약진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 현재의 신극단 중에 가장 착실하며 가장 순수하게 연극 정신을 지키고 기르고 있을 이 츠키지좌는 서서히 적막한 연구극 영역에서 탈피하여 '극' 그 자체의 본질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적어도 진정으로 연극의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꽤나 만족시킬 무대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배우 제군도 물론 끝없는 정진을 통해 연기상의 진보를 보여주고 있으나 그와 나란히 이 츠키지좌가 소위 '올바른 목표'를 위해 유망한 두세 배우를 얻은 것 또한 정말로 그 동향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 동시에 이 행복한 결합은 기존의 신극에 대한 편견을 일소하는 명확한 데먼스트레이션이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칸사이 공연에서 특별히 선택된 연극은 결코 놓쳐서는 안 되리라.
카와구치 이치로 군의 '26번관'은 배경을 뉴욕 이민지로 선택해 '뿌리 뽑혀진' 일본인의 변질적 생활을 세밀한 관찰과 주도면밀한 기교로 조합한 '흐뭇한 비극'이며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건 이 한 편의 희곡이 우리 신극사가 시작된 후로 가장 전면적으로 서양 연극의 무대적 전통을 반영한 획기적인 작품이란 점이다. 이는 즉 오늘까지 누구나 미치지 못했단 뜻이다. 바꿔 말하자면 이 희곡이 처음으로 연 일본어로 된 서양 희곡의 본질적인 리듬은 이제까지의 우리 신극 속에서 거의 등한시되어 왔단 뜻이다. 그리고 그 탓에 신극은 연극으로서 미완성품이었다. 굉장히 전문적인 설명이나 이 희곡을 무대에서 본 사람 중에 이게 국산이 맞냐는 의심을 품는다면, 또 그게 결코 외국을 무대로 했기 때문만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면 내 설명에 긍정할 게 분명하다.
카와구치 이치로가 수년 동안 심혈을 들여 이 희곡의 소재적 재미, 작가의 눈이 가진 확실함, 이러한 특징을 충분히 강조한 이 처녀작을 세상에 소개하고 싶다.
다음으로 다나카 치카오의 '어머니'도 그렇다. 이 또한 우연찮게도 다나카 군의 처녀작인데 지극히 일상다반사적인 소재를 통해 아주 희곡적인 효과를 얻는데 성공한 좋은 작품으로 '대화하게 만드는 기술'이 희곡 제작의 근본적 기술이며 이 기술 습득은 극작가의 본질적 감각에 의존한다면 다나카 군은 분명 그 얼마 안 되는 극적 재능의 소유자이리라. '어머니' 한 편은 그런 걸 증명하는데 충분하나 이 '눈물 나는 작은 희극'을 발랄한 생명감 위에 밝은 시적 정취를 드리우게 한 건 의심할 여지 없는 작가의 진중한 예술가적 '눈'이리라. 때문에 '어머니' 속 인물은 모두 우리의 가슴에 살아 있는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이며 대사 하나하나는 단순히 즉흥적으로 적은 게 아닌 혼의 신비한 속삭임이다. 이 무대를 본 모든 관객은 제각기 자신의 모습, 자신의 어머니, 자신의 아들, 자신의 동포의 모습을 발견하여 슬퍼하고, 경멸하고, 감사하면서 그 표정은 웃고, 쓴웃음을 짓고, 실소하고 끝내는 울고 마리라. 참 무서울 정도로 즐거운 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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