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2, 3년 동안 내가 읽은 것중에 쥘 르나르의 일기만큼 내 마음을 움직인 건 없다.
나는 결코 그를 소위 '위대한 작가'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나 '인간의 작음'을 겸비한 남자인 줄은 몰랐다. 나는 이 일기를 편집하면서 미간에 주름을 잡고 겨드랑이에 땀을 흘렸다. 이 비좁은 어깨, 오만함, 깊은 질투, 명성을 향한 비속한 집착, 병적인 에고이즘……그는 정말로 불쌍해 웃어주기에 마땅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러한 '추함'을 폭로하면서 그 '추함' 뒤에서 맹렬히 빛나는 걸 보여주고 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안도했다. 그는 남이 자신을 향해 해야 할 말을 자기 스스로에게 하고 있다. 심지어 그 태도에는 고해와 같은 시끄러움도 없으며 악을 드러내어 뽐내는 모습도 없다. 그는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가진 '정직함'을 발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정직함'이 운명적으로 보이는 점에 이 일기 전권에 감도는 '무서움'이 있으며 인간 르나르의 신비한 매력이 잠들어 있는 듯하다.
스스로를 '작은 작가의 두목'이라 부르며 음악과 미술과 인연 없는 중생이라 공언하며 인간, 그중에서도 자신의 어머니를 혐오하고 사회주의에 날을 세우며 조레스를 사랑하고 자연파안에 들어가면서 유고와 로스탱을 찬미하고 유부하다 여겨지나 빈곤하고 건강하게 보이나 실은 병환으로 고민하는 그를 생각하면 나는 다시 한번 가장 사랑하고 친근하게 여기는 한 작가를 떠올린다. 알폰스 도데의 말처럼 그야말로 갖은 의미에서 '작기에' '위대한' 길을 보여준 유니크한 작가이다.
4권에 이르는 일기는 그의 사후 15년, 그 전집 간행과 동시에 출간되어 일기 겸 노트란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단 점, 특히 적나라한 자기해부와 용서 없는 주위를 향한 매도로 가득 찼단 점에서 근래의 불문단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어떤 비평가는 이 일기야말로 르나르 전집의 최대 걸작이리라 소리쳤을 정도이다. 일기 일자는 1887년 6월 그가 스물세 살일 적부터 시작되어 1910년 4월 임종 한 달 전에 끝이 난다. 언젠가 완역하고 싶다 생각하고 있으나 여기선 1권 안에서 약간의 견본만 보여주고 싶다.
1888년 11월 15일
친구란 옷과 같다. 닳기 전에 벗는 게 좋다. 안 그러면 그쪽이 먼저 떠나간다.
12월 29일
얼마나 많은 인간이 자살을 생각하고 사진을 찢는 것만으로 만족하는가.
1889년 4월 4일
위스망스 작품 '바타르 자매'. 이는 아연 양철의 조라, 회의의 자연주의다.
4월 10일
부르주아에게 침을 뱉는 건 부르주아적이다.
5월 29일
인간! 아아, 벌써 오줌이 나오려 한다.
1819년 3월 7일
나는 아무것도 읽지 않는다. 좋은 것과 만날 게 무서워서.
내 웃음에는 황담이 걸려 있다.
1896년 8월(일자 없음)
나는 아마추어 극작가의 극만을 좋아한다――뮈세, 방빌, 고티에가 그렇다. 살두, 오제, 뒤마. 이쪽은 자는 게 훨씬 낫다.
11월 9일
매일 쓰는 이 노트는 내가 언젠가 쓸지 모르는 '글러 먹은걸' 무사히 '떨구기' 위해 있다.
11월 6일
제작 극장에서 '페르 귄트'를 봤다.
누군가는 비탄의 나머지 자살하려 하고 있다. 여기서 하는 건 참아줬으면 한다. 내가 없는 데서 하면 된다. 좋고 나쁘고는 둘째치고 프랑스 정신이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 중 누구도 설령 쓰란 말을 들어도 입센의 희곡을 쓸 용기는 가지지 못하리라.(중략)
우리 또한 우리의 '파우스트'를 써보려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걸음을 멈춘다. 북쪽 사람은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한 사람의 부르주아를 자유롭게 취한 죄인으로 만들어낸다.(중략)
프랑스 정신은 '큼지막한걸' 사랑한다. 또 동시에 그게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보려 한다. 걸작의 방점을 그곳에 둔다.
아아, 얼마나 많은 천재가 내게 '일격'을 주었는가. 내 머리는 이제 쪼개져야 하는 거 아닌다.
나는 나의 갖은 고뇌를 걸고 타인에게 완벽한 조용함을 주려 하고 있다.
11월 1일
아아, 한심하다. 나는 더 이상 허투루 쓸 수 없게 되었다.
이젠 비평할 수 없다. 뒤에서 나를 칭찬하는 작가들을 화내게 만들 테니까.
'고전 번역 > 키시다 쿠니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카다 군 - 키시다 쿠니오 (0) | 2022.12.30 |
---|---|
새로운 연극 - 키시다 쿠니오 (0) | 2022.12.28 |
아름다운 일본어와 대화 - 키시다 쿠니오 (0) | 2022.12.25 |
희곡집 '까마귀'의 인상 - 키시다 쿠니오 (0) | 2022.12.24 |
감상 - 키시다 쿠니오 (0) | 2022.12.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