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나이 카오루 씨의 업적을 가장 이해하고 있으며 동시에 가장 상세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달리도 많이 있겠지요. 그야말로 오늘날의 연극, 특히 신극 방면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모종의 의미로 오사나이 씨와 친근한 관계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불행히도 같은 극단에 소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사나이 씨와 가장 먼 곳에 있던 관계상, 그 높은 명성을 통해 눈부신 일류로서의 활동을 조금 엿본 정도로 여기서 이야기할만한 소재를 많이 지니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남몰래 알고 있는 건 오사나이 씨가 일본에서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근대 극장인으로서의 존재의의를 보여주었고, 이에 따라 소위 신극 조직의 어떤 기초를 가장 곤난한 지반 위에 세울 수 있게 한 제일의 공헌자란 점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오사나이 씨는 그 기반 위에 무언가를 남기고 갔습니다. 이건 여러 견해도 있을 테지만 저는 한편으로 그게 미완성인 동시에 굉장히 풍부하고 혹은 아주 복잡한 무언가처럼 느껴집니다.
오사나이 씨는 일본 신극을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보여주는 대신에 이렇게 만들 수도 있다, 이렇게 꾸밀 수도 있다, 하고 여러 플랜과 그에 필요한 소재를 정성스레 보여줬다 할 수 있겠지요.
어떤 한편으론 그건 응접에 가까운 모습이었고 또 어떤 한편으로 새로운 걸 추구하는 세상 사람들을 향한 비꼼 섞인 경고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오사나이 씨는 그런 젊은 일본 신극을 이끌고서 세계를 돌아보게 하는 한편으로, 스스로는 그 '밑바닥에서'의 연출 등을 통해 카피를 벗어난 한 개의 고전적 작품을 일궈냈기 때문입니다.
오사나이 씨는 아마 앞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새로운 출발점을 주려 하지 않았을까요.
오사나이 씨를 잃어 츠키지 소극장의 장래가 불안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히지카타 씨도 말씀하신 것처럼 오사나이 씨가 해온 일은 많은 후계자들의 손에서 눈부신 완성을 이룰 테지요. 또 여기서 제 억측을 내놓을 수 있다면 츠키지 소극장은 그 자체로 한 층 더 빠르게 단색적인 특징을 발휘하게 되겠지요. 크게 기대되는 일입니다.
저는 극작가 오사나이 씨에 대해 논할 어떤 자격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구태여 말하자면 오사나이 씨는 예로부터 그 극평 내지 희곡평을 통해 제 작품을 비난하고 공격한 흔적이 확연히 남아 있습니다. 이는 제가 자신의 감정을 겉꾸미지 않았단 증거로 덧붙이는 바인데, 저로선 평생 잊지 못할 일입니다. 하지만 그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지요. 그 이유는 언젠가 밝혀질 겁니다. 저는 단지 이번 기회에 일본 신극계의 대선배를 향해 그 생전에 살짝 예의를 잃었단 사실을 깊게 사과할 뿐입니다.
또 일개 학생으로서 바라는 바는 오사나이 씨 같은 연극 실제가의 업적은 자칫하면 기억에서 멀어지기 쉬우니 고인의 공적을 전하는 의미에서도, 장래에 일본 신극 운동사의 페이지를 장식하는 의미에서도 이를 빨리 완전한 기록으로서 정리 보존하는 기관을 세워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정부 당국의 주의 환기를 재촉하고 싶습니다. 같은 예술가나 문학자라도 다른 사람은 예외로 해도 한 나라의 특수한 문운에 이만큼 현저한 공헌을 한 우리 오사나이 카오루 씨껜 국가로서 충분한 표창 수단을 강구해줬으면 하는 바입니다. 이것도 굉장히 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아마 오늘날 세계 극단계의 시선을 모을 게 분명한 그 위대한 테아틀의 계보에 국가적 조의의 뜻이 담기길 바라는 건 비단 저 혼자만이 아닐 테지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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