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홍당무'를 보고 가장 먼저 느낀 건 감독 뒤뷔베가 단순히 르나르의 소설 및 희곡에서 그 주제를 따온 것만 아니라 르나르식의 '문장적 표현'을 영화의 리듬으로 구성해보려 꾀했다는 점에 있다.
"이미지의 사냥꾼"인 원작자는 어떤 의미에서 카메라와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을지도 모르나 슬프게도 암시와 간략이란 점에서 영화는 문학에 한 걸음을 양보해야만 한다.
단 르나르의 작품 자체에서 자연과 생활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건 일본 독자에겐 충분히 전해지지 않는 점이며 뒤뷔베의 영화적 표현으로 프랑스 농촌을 둘러싼 빛과 어둠이 우리의 마음에 또렷이 다가온다.
배우도 적합하다 해야 하리라.
주인공 '홍당무'를 연기하는 리난 소년은 지나치게 미소년이란 느낌이란 게 결점일까. 어머니 폰츠네 부인은 우화적 인물로서 가진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 고전 비극의 시녀 역할을 떠올리게 하는 그 딕션도 감독은 곤란했겠으나 이 영화에는 큰 방해거리가 되지 않는다.
부친 알리 폴은 '진정류로를 거꾸로 가는 인물'로서 후반이 지나치게 사람 좋게 다뤄졌다. 좀 더 괴팍한 반면이 드러났다면 좋겠지 싶다.
여종 안넷, 노파 오놀린 모두 르나르적 타입이었다.
전반적으로 '홍당무'가 지나치게 '착한 아이'가 되었으며 '삐뚤어진' 꼬맹이의 심리가 그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원작의 유머가 얄팍하며 인정미가 너무 눈에 띈다. 특히 '대사'를 모르는 사람은 르나르의 기지가 통하지 않으리라.
제목은 내가 책임자처럼 느껴지나 대기실을 뒤집어도 좋다면 사진을 보지 않고 '대화'만을 번역하게 되었으니 완성도는 보다시피다. 책임에서 도망칠 생각은 없지만 딱히 자랑스럽지도 않다.
대단히 마음에 들지는 않으나 이만큼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는 나와의 관계를 제쳐두더라도 그리 많지 않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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