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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키시다 쿠니오

여행의 고생 - 키시다 쿠니오

by noh0058 2022.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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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은 좋아하나. 사람들이 흔히 묻는 말이다. 나는 언제나 미적지근하게 대답한다. 싫어한다곤 할 수 없으나 그리 즐거운 여행을 한 경험도 없기 때문이다. 싫어한다고 할 수 없단 건 종종 여행하는 공상을 하기도 하고 공상 속에서 하는 여행은 일종의 해방이니 진심으로 가벼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실제 여행은 왜 즐겁다 여기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이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이 이유란 게 나중에 덧붙인 것일 경우도 있으나 무엇보다 출발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전날 밤까진 큰 용기를 품고 있더라도 막상 아침이 되어 열린 가방을 보면 묘하게 속이 타는 기분이 들고 만다.

 역에서 티켓을 살 걸 생각하고 기차 시간은 괜찮겠지 싶어 시계를 보면서 밥을 먹을 때면 지긋지긋해질 지경이다.

 그럴 때 내 마음을 격려해 주는 건 전화벨 소리다――그래, 이 소리에 떨지 않아도 되는 곳에 간다!

 얼마 전에도 나는 친구를 꼬셔 이삼일 푸른색이 감도는 산에 휴양을 갈 결심을 했다. 제대로 예정된 시간에 우에노에서 친구와 만날 약속을 해두었는데 막상 그날 아침이 되어 전화가 오더니――아이가 갑자기 아파, 의사한테 한 번 보여주고 괜찮다 그러면 갈게……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가 아프단 말에 오싹해졌으나 또 한편으론 황당하다며 느슨해지는 마음에 억지로 박차를 가해 준비를 갖추었고 곧장 그의 집을 보러 갔다. 맞이해준 친구의 아내는 밤새 간호하다 지친 기색을 보이면서 아이가 많이 좋아지긴 했으나 남편이 아침 일찍부터 산책을 나갔다고 살짝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확실히 철야를 하고 난 아침엔 바깥공기를 쐬고 싶어진다. 내게도 그런 경험은 있었다.

 "그럼 애 옆에 붙어 있어줘야지요. 이번에는 저 혼자 가겠습니다. 또 언제 한 번 같이 갈 기회를 만들죠."

 그런 연유로 그대로 우에노로 달려갔으나 생각해둔 기차에 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이걸 놓치면 신에츠선 준급행열차는 오후에나 탈 수 있다. 카루이자와 안쪽으로 들어가는 와중에 해가 지면 큰일이니 아카바네까지 갈 시간을 생각해두며 전철에 몸을 실었다. 이거라면 늦지 않겠지 싶었던 것이다.

 이케부쿠로에서 환승한 건 좋았으나 아카바네에서도 역무원이 보이지 않아 무거운 가방을 든 채로 긴 플랫폼을 걸었다. 꽤 한가해져 가방을 내려 신문을 샀다. 카미카제호의 소식은 어떻게 됐을까.

 그때 마침 우에노에서 전철이 왔다. 너무 늦지도 않고 너무 이르지도 않아서 계산이 딱 맞았다며 콧대를 새운 채 이등 객차에 올라탔다.

 세 종류의 신문을 다 읽고 나는 존경하는 친구 사토 마사아키 군에게 받은 번역 소설 네르발의 '꿈과 인생'을 가방에서 꺼내 빠진 듯이 페이지를 넘겼다. 이건 꽤 재밌다. 역시 발광과 발광 사이에 쓴 이야기인 덕에 일반인의 잠꼬대하고는 격이 다르다.

 이따금 창밖을 보면 오 월의 들판은 상쾌한 녹색 바람을 품고 있어서 여행의 정취를 더욱 돋워주었다.

 어디쯤 왔을까 궁금해져도 기차가 달리는 동안엔 알 방법이 없다. 정차했을 땐 네르발의 펜에 매료되어 숨도 쉴 수 없는 찰나였다. 도리가 없으니 기억을 헤집으며 시계를 본다. 대략 다카사키쯤에 이를 시간이다.

 하지만 도착한 건 우츠노미야였다. 기차를 착각하여 한 타임 앞의 닛코행을 타버린 것이다.

 그리 당황할 건 없다. 역무원이 우츠노미야에 볼일 없냐고 묻길래 '없다'고 대답하는 것도 무뚝뚝한 일이지 싶었지만 솔직히 '없다'고 대답했다. 그럼 어쩔 거냐고 묻길래 오오미야까지 돌아가 다섯 시간쯤 걸리는 철도간 버스를 이용하게 되었다.

 때문에 예정을 변경해 타카사키에서 야쿠시온센으로 빠져 하룻밤을 머물고 다음 날 아침 말로 산을 넘기로 했다. 당초엔 반대로 키타카루이자와에서 말로 야쿠시로 빠질 계획이었다.

 야쿠시온센은 과거에 있던 하토노유란 곳의 바로 옆으로 삼사 년 전에 한 번 간 적이 있다. 여관 주인 X 씨는 굉장히 장사에 열심이었고 나를 붙잡아선 온천 경영의 의견을 묻기도 했다. 나도 흥이 올라서 살짝 비결을 전수해 주니 그게 굉장히 잘 되었는지 이번에 갔을 때 온갖 좋은 말을 다 해주었다. 이러면 꼭 아첨이라도 하는 듯하니 이쯤 하겠지만 타카사키에서 십몇 리의 산 안쪽의 따듯한 강가 계곡은 특별할 건 없어도 사람이 없어 한적하며 나무들도 적당히 자라서 산바람에 벚꽃이 잘 날리기에 아직 꽃이 만개하기 직전이 딱 보기 좋다.

 목욕을 하고 어김없이 맥주를 기울여 식사를 끝냈을 즘, 지금 잡았다는 산천어 바구니를 보여주었다.

 다음 날 아침, 말이 준비되어 있다. 도시락인 주먹밥을 안장에 매달고 손수건을 찢어 각반 삼고 채찍 대신에 부러트린 대나무를 써 말발굽 소리를 내며 여관을 나왔다. '아사마카쿠시'라 불리는 산봉우리가 눈앞에 우뚝 서있다. 곶을 넘어 약 이 리 정도 되는 길이나 말위에서 담배를 물면 시베리아도 별것 아닌 거 같아진다.

 "비 내리진 않겠지?"

 "괜찮을 겁니다."

 "이 말 다리 힘은 괜찮겠지?"

 "괜찮고 말고요."

 "자네는 도시락 챙겨 왔나?"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다 괜찮고 걱정할 게 없다니 나는 단지 마부가 들어주는 가방이 무겁지 않을까만 마음에 걸렸다.

 삼나무가 검게 두른 산맥 위로 안개 같은 게 흘렀다. 한 줄기 바람이 뺨을 쓰다듬고 말의 머릿결을 나부끼게 한다. 산꼭대기가 어느 틈엔가 구름에 뒤덮이고 자작나무뿌리가 크게 흔들렸다. 공중을 올려다보니 큼지막한 빗방울이 뚝뚝 얼굴에 떨어진다.

 "이봐, 이거 정말 괜찮은 건가……"

 "글쎄요……"

 "나는 갈아입을 옷이 없어. 젖으면 감기 걸릴 거야."

 계곡은 서서히 안개 바다가 되어 갔다. 숲이 소리친다. 폭풍이다.

 말을 빠르게 끌어 되돌아간다. 여관에서 곧장 자동차를 부르고 타카사키를 돌아 키타카루이자와로 가기로 정한다. 주인도 차를 타는 김에 타카사키까지 보내주기로 했다.

 "여기가 쿠니사다 츄지의 기반이 된 곳인데 ……"

 그런 말에 그 장소에 세워진 비석을 보자 머리에 초여름 햇살이 내려왔다.

 정말이지 볼품없는 여행이지 싶다. 여행을 못 하니 고생이 끊이질 않고 고생이란 즉 신경을 낭비하는 게 된다. 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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