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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일부 연극 평론가 사이에서 '진보적 연극'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물론 특별한 의미를 품고 있어서 우리가 쓴 건 그 안에 들어가지 않는 듯하다. 들어가지 않아도 별 상관은 없으나, 이렇게 제멋대로인 이름을 어떤 연극이 쓰고 있는가 하고 들여다 보니 구시대 좌익 계통의 이데올로기 향을 살짝 풍기는 연극. 요컨대 사회주의적 문제극이 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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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전위극'이란 말이 프롤레탈리아극의 대명사였다. 일본만(혹은 러시아도 그럴지 모르나) 그렇게 제멋대로 말을 써선 지극히 곤란할 따름이며 예술 영역상의 '아방가르드' 운동이란 반드시 기성 진영의 이탈과 돌출, 선행을 낳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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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한 정세에선 반자본주의적 사상의 투쟁적 자세만을 '진보적'이라 칭하는 건 굉장한 독선처럼 보이게 되며, 적어도 신극의 갖은 발전과 진보를 가로 막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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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하니 신극 중 '진보적이지 못한' 것을 '예술적 연극'――(예술지상주의 연극의 약칭일까)라고 부르는 건 어떨까 싶다. 욕은 얼마든지 듣겠지만 예술지상주의 같은 세련된 게 태어나지 않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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