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극이란 말도 꽤나 낡아졌다. 그리고 신극이라 하면 세간이 아 그거,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그런 게 아닐 터이다. 적어도 오늘날 현장서 벗어나 신극 운운하는 사람은 현재의 신극에 꽤나 정이 떨어져 어떻게 안 되냐고 탄성하고 있다.
어떤 이는 신극이 재미없다고 말한다. 재미있느냐 없느냐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니 이는 뭐라 말할 수 없으나 어찌 됐든 그 이유를 여럿 꼽아가며 타개책을 강구하는 경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신극 대중화 방법도 그중 하나다. 대중화가 무엇이냐 하면 결국 질 나쁜 걸 잘 겉꾸며 파는 것이다. 그래서야 정작 중요한 신극이 어딘가로 가고 만다. 신극이란 딱히 어려운 극이 아니다. 그러니 침착히 잘 생각하면 그렇게 대중화를 꾸미지 않더라도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고 누구라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연극이다.
그러니 희곡 방면이든 무대 방면이든 연극의 본질이란 문제가 진지하게 고려되기 시작했다. 희곡에선 잡지 '극작'의 신인들이 '꾸밈없이 재밌는 희곡'을 쓰고 무대에선 츠키지좌가 '대사'를 정확히 말하는 것만으로 '대사부터 재밌는 연극'을 만드는 실험을 시도했다.
이런 경향은 확실히 올해의 가장 눈에 띄는 현상으로 화려한 성원은 동반하지 않지만 언젠가 멋진 열매를 맺으리라 본다.
작년부터 올해에 걸쳐 쿠보타 만타로 씨의 작품이 하나둘 무대화되어 세계는 약간 한정되어 있으나 현대극의 한 견본을 제공하였고 신인 중엔 카와구치 이치로, 코야마 유시, 미야케 유키코, 타나카 치카오, 이가야마 세이조 등의 제군이 제각기 특색 있는 작품을 보여주었다. 사카나카 마사오 군 또한 진지하게 일을 거듭하고 있다. 이 기운을 밀어 붙이면 아마 신극의 면모도 요 몇 년 동안 크게 변모하리라. 이는 즉 작가도 배우도 그 '직업'에 대해 자각을 가질 때가 오는 셈이다. 신극이 '자활'의 첫걸음을 내딛는 셈이다. 그건 기성 극단과 상업주의의 악수를 보이는 타협이 아닌 예술작품이 사회적 존재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193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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