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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사종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2.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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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얼마 전 영주님 시대에 가장 사람을 놀래킨 지옥변 병풍의 유래를 이야기해드렸지요. 이번에는 도련님의 일평생 중 단 한 번뿐인 기이한 일을 이야기해 드릴까 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영주님께서 생각지도 못한 급병으로 서거하신 일부터 이야기해둬야겠지요.

 그건 분명 도련님께서 열아홉이 되던 해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병이긴 했으나 사실 반 년 전부터 저택 위로 별이 지나가질 않나, 정원의 홍매가 때에 맞지 않게 한 번에 꽃을 피우질 않나, 마굿간의 백마가 하루만에 새까매지지 않나, 연못의 물이 순식간에 말라버려 잉어나 붕어가 진흙 안에서 헐떡이지 않나 이래저래 흉조가 끊이질 않았지요. 하지만 개중에서도 특히 무서웠던 건 어떤 여종의 꿈자리에 요시히데의 딸이 탄 듯한 붉게 타오르는 수레 하나가 인면수에 끌려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그 차 안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리를 이걸로 모시거라"하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때 그 인면수가 기이하게 으르렁거리며 고개를 든 걸 들여다 보니 꿈속의 어둠 속에서도 입술만은 생생하게 붉어 그만 비명을 질렀다지요. 그 비명 덕에 겨우 정신은 찾았습니다만 온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이었고 가슴마저 마치 종처럼 빠르게 울렸다고 합니다. 그 모양이니 안주인께서는 물론이요 저까지 마음이 아파 저택 곳곳의 문에 음양사의 부적을 붙였습니다. 영험한 스님을 불러 갖은 기도를 올리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 또한 정말로 피하기 어려운 운명이었던 걸 테지요.

 어느날――그것도 눈 내리는 차가운 날의 일이었습니다. 이마데가와의 다이나곤 님의 저택에서 돌아오시는 수레 안에서 갑자기 큰열을 앓으시더니 저택으로 돌아오셨을 적에는 단지 "죽는다, 나 죽어"하는 말만 할 뿐이셨습니다. 더군다나 온몸에 꺼림칙한 보란색이 감돌고 앉아 계셨던 하얀 방석도 타기라도 한 것처럼 꺼림칙한 색을 하고 있었지요. 그때도 머리맡에는 스님, 의사, 음양사가 제각기 열성을 들여 필사의 힘을 다 했습니다만 열은 더욱 심해지기만 했고 이윽고 마루에 벌렁 누우시고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갈라진 목소리로 "아아, 온몸에 불이 붙었구나. 이 연기는 다 무엇이냐"하고 미친 듯이 소리치시더니 고작 세 시간만에 가셨습니다. 무어라 올릴 말이 없는 안타까운 마지막이셨지요. 당시의 슬픔, 무서움,아쉬움――이제와 생각해도 덧문에서 감도는 호마의 연기, 우왕좌왕 울음을 터트린 여종들의 붉은 소매, 망연자실한 스님과 술사들의 모습과 함께 갖은 게 눈앞에 떠올라 띄엄띄엄 이야기할 때마저 눈물이 앞서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추억 속에서도 그 어린 도련님께서 조금도 혼란스러워하는 기미도 없이 단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흐리면서 가만히 나리의 머리맡에 앉아 잇었던 걸 생각하면 어째서인지 잘 갈고 닦아 불에 올린 칼날의 냄새라도 맡는 듯한, 몸에 스며 들면서도 오싹해지고 그러면서도 역시나 듬직한 묘한 심리가 들었습니다.

 

        둘

 

 부모 자식 사이 중에서도 나리와 도련님 사이 만큼 모습부터 성질까지 복잡한 경우도 드물 겁니다. 아시다시피 나리는 덩치가 크시고 살집이 많으신데 도련님은 키도 그리 크지 않고 굳이 따지자면 마른 쪽에 가깝습니다. 생김새도 나리의 남자 답고 신장을 방불케하는 모습하곤 도무지 닮지 않아 사람 좋게 보이시지요. 이는 분명 아름다운 어머니를 똑닮은 덕일 겁니다. 좁은 미간과 단정한 눈빛, 어쩐지 입가도 특징적인 여자와 같은 얼굴이셨는데 어딘가에 옅고 어두운 그림자 같은 게 깔려 있어 의복이라도 차려 입으시면 품위보다는 쓸쓸함이라 해도 좋을 조용한 위광을 두루시곤 했습니다.

 하지만 나리와 도련님을 가르는 가장 큰 요소는 역시 그 성미겠지요. 나리께서는 모든 게 호방하시며 남자 답고 무엇이든 남을 놀래키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으셨는데, 도련님은 참으로 섬세하며 또 어딘가 우아한 기품 같은 걸 지니셨습니다. 거처만 해도 그렇지요. 호리카와의 대저택이 나리의 심상을 말해준다면 도련님이 왕자가 되셔 만든 타츠타노인은 규모는 작습니다만 관상승의 우타를 고스란히 옮긴 듯한 단풍 정원도 그렇고 그 정원을 둘러싼 좁은 강줄기도 그렇고 또 그 강줄기에 풀어 놓은 몇 마리일지 모를 백로까지도 모두가 도련님의 깊은 생각을 보여주고 있었지요.

 그런 마당이니 나리께선 어떤 일이든 힘을 쓰시는 걸 좋아하셨습니다만 도련님은 시와 노래, 악기 연주 같은 걸 가장 좋아하셨지요. 그런 방면의 명인하고는 신분의 위아래도 잊은 것처럼 격없이 어울리시곤 했습니다. 아니, 단지 좋아하기만 할뿐일까요. 스스로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조예를 품고 계셨기에 쇼는 연주하지 못하실지언정 샨슈에 탈 수 있는 건 그 명성 높은 사민부경 이후론 도련님 하나 밖에 없을 거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지요. 그러하니 지금도 가문의 자료에는 도련님의 우수한 시나 우타가 잔뜩 남아 있지요. 그 중에서도 가장 평판이 좋았던 건 그 요시히데가 오취생사의 그림을 그린 료가이지에서 의식을 치를 때에 두 당인의 문답을 짓고 지은 우타일 겁니다. 이는 당시 경쇠의 장식으로 잎이 여덟인 연꽃을 사이에 둔 채 두 공작이 그려져 있는 걸 그 당인들이 바라보며 "捨身惜花思"하고 한 사람이 말하니 다른 한 사람이 "打不立有鳥"하고 대답했지요――주위 사람들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해 제각기 의견을 나누고 있자니, 그걸 들은 도련님께서 곧장 들고 있던 부채 뒤에 아름다운 글자를 새겨 넣으시더니 그 사람들에게 이런 우타를 들려주신 겁니다.

몸을 버려가며 꽃을 아쉬워 하느냐

아무리 두들겨도 떠나지 않는 새로구나

 

        셋

 

 나리와 도련님은 이렇게 많은 게 달랐으니까요. 그만큼 두 분의 사이 또한 맞물리지 않는 부분이 있었나 봅니다. 이것도 세간에는 제법 소문이 자자한 이야기인데, 개중에는 부모자식 사이에 황녀의 여종을 두고 다퉜다는 자도 있는데 그런 바보 같은 일이 존재할 리도 없지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도련님이 열다섯인지 열여섯 되셨을 때엔 이미 두 분 사이에서 불화의 싹이 튼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게 앞서도 조금 말해드린 도련님이 쇼를 연주하지 못하는 것과 연관된 이야기입죠.

 그쯤에 도련님께선 쇼를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먼 친척형에 해당하는 나카미카도 쇼나곤의 제자로 들어갈 정도였지요. 이 쇼나곤이란 사람은 가료라는 명성 높은 쇼와 다이지키쵸뉴지키쵸라는 악보를 대대손손 간직하고 있는 희대의 명인이었습니다.

 도련님은 이 쇼나곤 밑에서 오랫동안 절차탁마 공을 쌓으셨습니다. 또 다이지키쵸뉴지키쵸를 전수 받길 원하셨는데 쇼나곤은 무슨 생각인지 그것만은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몇 번이고 부탁해도 역시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 못 했지요. 아직 젊은 도련님은 그게 많이 아쉽고 침울하셨던 걸 테지요. 어느 날 나리의 스고로쿠 상대를 하면서 문득 그런 불만을 토해내셨습니다. 그러자 나리께서는 여느 때처럼 큰소리로 웃으며 "그런 불평 말거라. 언젠가 그 악보도 네 손에 들어 올 게야"하고 부드럽게 위로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보름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나카미카도 쇼나곤은 호리카와의 저택에서 열린 연회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불쑥 피를 토하더니 사망해버렸습니다. 거기까진 별 문제는 없을 테지요. 하지만 그 다음날, 도련님께서 별 생각 없이 거실로 나오시자 나전으로 만든 탁자 위에 가져온 기억도 없는 가료의 쇼와 다이지키쵸뉴지키쵸의 악보가 놓여 있었다지 뭡니까.

 그리고 나리께서 다시 도련님과 스고로쿠를 두게 되었을 때,

 "이제 쇼는 잘 좀 부느냐"하고 확인하듯 물으시니 도련님께선 조용히 판만을 바라보며

 "아뇨, 이제 쇼는 두 번 다시 불지 않으려 합니다"하고 차갑게 답하셨습니다.

 "왜 또 그런 생각을 했느냐."

 "조금이나마 쇼나곤의 명복을 빌어볼까 합니다."

 그렇게 말한 도련님께선 가만히 아버지의 얼굴을 들여다 보셨습니다. 하지만 나리는 마치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양 기세 좋게 통을 흔들며

 "이번 판은 내가 이긴 거 같구나"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승부를 계속하셨습니다. 그런 마당이니 이 문답은 금세 끊기고 말았지요. 하지만 그날부터 이 부자 사이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걸로 가로 막힌 듯 했습니다.

 

        넷

 

 그 후 나리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부자 사이는 마치 두 쌍의 매가 서로를 견제하며 비행하는 듯한, 조금도 끼어들 여지가 없는 신경전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하만 앞서 말한 것처럼 도련님은 모든 종류의 싸움을 크게 싫어하셨지요. 그러하니 나리 하는 일에 정면으로 맞선 일은 거의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단지 그때마다 비꼼 섞인 웃음을 그 특징적인 입가에 드리우며 한두 마디 날카로운 비판을 흘리실 뿐이셨죠.

 언젠가는 나리께서 니조 오오미야의 백귀야행을 만나도 끄떡 없으실 거란 말이 저택 안팎으로 크게 떠들석한 적이 있었지요. 그러자 도련님을 저를 향해 "귀신이 귀신을 만났는데 아버님께 해가 없었던 것도 이상할 게 없지"하고 자못 재밌다는 양 말씀하셨습니다만 그 후 또 히가시산죠의 카와라노인에서 밤이면 밤마다 나타나는 토오루노 사다이진의 망령을 나리께서 일갈하셨을 적에도 도련님은 여느 때처럼 입술을 일그러트려 웃으시며

 "토오루노 사다이진은 풍월의 재능이 뛰어났다지 않으냐. 허면 아버님은 이야기 거리 삼을 것도 없다 싶어 사라진 걸지도 모르지"하고 말씀하신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리께선 그게 가장 귀에 따가우셨던 걸 테지요. 우연찮게 도련님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시자 겉으론 쓴웃음으로 숨기시면서도 내심 화가 나신 게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실제로 꽃구경 연회에서 돌아오실 적에 나리의 달구지를 끄는 소가 길거리의 노인을 다치게 했을 때, 그 노인이 되려 손을 마주하여 대단하신 나리의 소에 치인 건 영광이며 고마운 일이라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도련님은 나리가 계신 앞에서 소를 끄는 아이를 향해 "멍청한 것. 소에 치이게 할 거면 왜 찻바퀴에 걸어 저 미천한 걸 끌어 죽이지 않았느냐. 다치고도 손을 맞잡으며 기뻐하는 늙은이다. 찻바퀴에 깔려 죽었다면 부처님의 환영을 받았다는 양 고마워했을 게 분명하거늘. 허면 아버님의 명예 또한 한 층 더 높아졌을 게 아니더냐. 그런 것도 모르다니 마음 가짐이 글러 먹었구나"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나리가 얼마나 불쾌해 하셨는지 당장이라도 손에 든 부채를 들어 벌을 내리시진 않으실까 저희 신하 일동이 오싹해질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도련님은 아름다운 이빨을 드러낸 채 활짝 웃으며

 "아버님, 아버님 화를 거두시지요. 소를 끄는 저 아이도 저렇게나 송구해하지 않습니까. 앞으로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사람 하나를 확실히 죽여 아버님의 명예를 저 먼 중국까지 전하실 겁니다"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양 말씀하시니 나리께서도 기어코 마음이 꺾이셨는지 씁쓸한 표정을 지으신 채 아무 일 없이 일어나셨습니다.

 그런 마당이니 나리의 임종을 조용히 지켜만 보시는 도련님의 모습만큼 저희의 마음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광경도 없었겠지요. 지금도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 마치 잘 갈고 닦아 불을 올린 칼날 냄새를 맡는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끼칩니다. 그러면서도 참으로 듬직하면서 묘한 기분이 드는 건 방금 전에도 말했었지요. 정말이지 당시 저희의 마음에는 정말로 시대가 바뀐 듯한――그것도 저택만 아니라 천하에 드리운 그림자가 불쑥 남에서 북으로 바꾼 듯한 번잡함이 느껴졌던 것입니다.

 

        다섯

 

 그러하니 도련님이 집을 이끌게 된 그날부턴 저택 안에도 어디선가 모를 이제까지와 다른 느긋한 경치가 봄바람처럼 불어 오는 듯했습니다. 노래, 꽃구경, 혹은 연문 등을 이전보다 더 빈번히 접하게 된 건 말할 필요도 없을 테지요. 또 여종들을 비롯해 사무라이들의 풍속이 마치 과거의 에마키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고상해진 것도 당연한 일일 겁니다. 하지만 이전과 특히 달라진 점은 저택을 찾는 손님들일까요. 아무리 잘 나가는 대신이나 장군이라 해도 예술적 재능이 없는 분은 허투루 도련님 앞에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설령 나타나더라도 달리 저택을 찾는 분들이 모두 풍류가 뛰어난 분들이니 몸이 움츠러들어 자연스레 걸음이 멀어지고 마는 것이었죠.

 대신 또 시나 노래, 악기 연주가 뛰어난 사람이라면 설령 지위가 없는 사무라이도 과분할 정도의 포상을 받곤 했습니다. 이를테면 어느 가을 밤에 달빛이 격자 사이로 들어오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릴 쯔음, 문득 사람을 부르시기에 신참 사무라이가 올라갔지요. 헌데 도련님께선 무슨 생각인지 불쑥 그 사무라이를 향해

 "그대도 귀뚜라미 소리는 들릴 테지. 이를 소재로 한 수 지어보거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사무라이는 자세를 낮춘 채로 한동안 머리를 갸우뚱거렸습니다만 이윽고 "푸른 버들 속"하고 첫 구를 입에 올리셨습니다. 계절에 맞지 않은 그 구가 우스웠던 걸 테지요. 여종들이 소리 죽여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사무라이가 이어서

 "그 여름 푸른 실을 짜는 동안에 가을은 또 질세랴 귀뚜라미 울리네" 하고 시원하게 대답하니 곧장 웃음 소리가 가시고 장작 무늬가 새겨진 히타타레가 격자 사이의 달빛 안에 드리웠습니다. 실은 그 사무라이가 제 누나의 외동아들입니다. 도련님과 비슷한 나이의 젊은이였는데 첫 봉공을 이렇게 마치니 그 후로 번번히 도련님의 이쁨을 받을 수 있었지요.

 도련님의 평생은 대강 이야기해드렸다 봐도 될까요. 그 동안 아내도 들이셨고 관위도 높아졌습니다만 그런 일은 세상 누구나 잘 알고 있을 테니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보다 일이 급하니 당초 약속한 것처럼 도련님 평생에 단 한 번 있었다는 신기한 일의 이야기로 들어가지요. 비록 나리와 달리 하늘이 내려주신 미인이란 별명은 있었을지언정 한 평생을 무사히 보내신지라 이 일 이외에는 남 입에 오를 만한 일이 무엇 하나 없었던 것입니다.

 

        여섯

 

 그 이야기는 아마 나리께서 떠나신 후 대여섯 년이 지났을 쯤이라 기억합니다. 그쯤 도련님께선 마침 앞서도 말한 나카미카도노 쇼나곤 님의 외동딸이며 아름답다 평판이 자자한 아가씨께 종종 글을 써서 보내셨습니다. 단지 지금도 열심이셨던 그 마음이 저희 입에서 나오면 도련님은 늘 밝게 웃으시며

 "이 사람아, 하늘이 아무리 넓다 해도 그 시절에 내가 보잘 것 없는 시나 우타를 만드는데 푹 빠진 건 모두 사랑이 만든 일일세. 말하자면 여우 무덤을 밟아 미쳐버린 거나 다름 없지"하고 마치 자신을 비웃 듯이 그럴싸하게 말씀하시곤 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도련님께서 평생서 달리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연모삼매경에 빠져 계셨던 건 분명하지요.

 단지 이는 비단 도련님 한 분께만 국한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 젊고 고귀한 분들 중에 나카미카도 아가씨께 마음을 두지 않은 분은 아마 한 분도 없을 테니까요. 그분이 아버님 대부터 줄곧 지내던 니시노토인 저택 주위에는 그런 분들이 어떤 분은 수레를 끌고 또 어떤 분은 직접 걸어서 끝없이 오고가곤 했습니다. 개중에는 달빛이 드리운 저택의 배나무 꽃 아래서 피리를 연주하는 타테보시가 하룻밤 사이에 둘이나 나타났단 소문마저 돌기도 했지요.

 아니, 실제로 한 때는 수재로 명성이 높았던 스가와라 마사히라란 분도 이 아가씨를 연모하셨고 심지어 그 연모가 이뤄지지 않은데 억하심정을 품어 세상을 버려 이제는 저먼 츠쿠시를 방랑하신다니 혹은 또 토카이의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건너가셨다느니 어찌 됐든 행방불명이 되셨다고 합니다. 그 분은 도련님하고도 시문을 주고 받는 분 중 하나셨는데 소식을 감추시기 직전에 도련님을 낙천에, 자신을 동파에 비교하셨다는데, 나카미카도 아가씨가 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이처럼 풍류를 아는 수재가 잠깐의 한탄에 평생을 변두리서 보내신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밖에 할 수 없군요.

 허나 또 뒤집어 생각하면 그마저도 이해가 갈 정도로 나카미카도 아가씨가 아름다웠단 뜻도 되겠지요. 제가 한두 번 본 바로도 버들과 벚꽃을 한데 섞고 비단에 옥을 박은 휘황찬란한 옷춤의 허리를 윤기가 잘 드는 빛에 반짝이며 눈꺼풀을 무겁게 기울이고 계시던 그 모습은 평생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아가씨께선 기품도 아주 뛰어나셨으니 어지간한 분들은 마음이 이뤄지는 건 고사하고 금세 본성이 탄로 나 총애 받는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한참이나 놀아난 끝에 두 번 다시 얼굴을 볼 수 없었다지요.

 

        일곱

 

 그러하니 이 아가씨께 마음을 둔 분들 사이에선 마치 카구야 공주 이야기에서나 볼 법한 우스운 일도 잔뜩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중에서도 특히 유감이었던 건 쿄고쿠의 사다이벤 님이시겠죠. 이 분은 교토 젊은이들이 까마귀 사다이벤이라 부를 정도로 얼굴색이 까무잡잡했는데 그럼에도 역시 남들 만한 인정을 지녀서 나카미카도 아가씨께 연모를 품었습니다. 헌데 이 분은 똑똑한 동시에 소심한 성격을 지니셨는지 아무리 아가씨를 가슴에 품고 계셔도 먼저 이를 밝히는 일이 없었고 주위 사람에게도 그런 분위기를 품은 말을 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몰래몰래 아가씨를 보러 가는 건 숨길 수가 없으니 어느 날, 친구 중 하나가 이를 꼬투리 잡아 이래저래 말을 꼬아가며 원하는 답을 들으려 했답니다. 그러자 까마귀 사다이벤은 도리 없이

 "아니, 그게 꼭 나만 마음을 품은 게 아냐. 실은 아가씨께서도 마음을 품은 기미를 보이시기에 그만 발을 옮기고 마는 거지"하고 도망치셨습니다. 심지어 이를 진실처럼 보여야겠단 생각에 아가씨께 받은 글이나 우타라면서 있는 사실 없는 사실을 한데 모아 자못 아가씨께서 초조해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니 질이 나빴지요. 장난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반신반의하면서 공주님의 가짜 편지를 만들어 등나무 가지에 꽂은 채로 사다이벤 님께 보냈습니다.

 사다이벤 님께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울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내용물을 열어 보았지요. 허니 아가씨께서 마음에 둔 사다이벤 님께서 참으로 차가우니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 포기하여 평생을 비구니로 살겠단 생각지도 못한 말이 참으로 애처롭게 적혀 있지 뭡니까. 설마 아가씨께서 그리도 마음 고생을 하셨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니 까마귀 사다이벤 님은 슬픈 건지 기쁜 건지 모를 심정으로 한동안 멍하니 편지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셨습니다. 허나 어찌 되었든 직접 뵈어 이제까지 마음에 숨겨둔 마음을 말해야겠다 싶으셨던 거겠죠. 마침 5월 장맛날의 저녁이었으니 어린 시종을 하나 데리고 우산을 쓴 채로 조용히 니시노토인 저택까지 향했습니다. 하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아무리 소리를 내고 두드려도 열릴 기미가 없었지요. 그러는 사이 밤이 되었고 사람 왕래도 드문 츠이지미치에는 단지 개구리 우는 소리만이 울렸습니다. 그런 와중에 비는 더욱 거세지니 옷까지 젖는 데다 눈까지 흐릿한 참으로 한심한 꼴이 되었지요.

 그렇게 얼마쯤 지나 문이 겨우 열리나 싶었더니 헤이다유라 하는 저와 비슷한 또래의 늙은 사무라이가 이 역시 등나무 가지에 묶인 편지를 건네고는 말도 없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렇게 엉엉 울며 돌아와 그 편지를 열어보니 오래된 우타 한 구절이 적혀 있을 뿐으로 다른 말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내가 품어도 품지 않았다고만 말하면 그래 나도 더는 도무지 품을 수가 없구나.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장난을 좋아하는 친구분을 통해 건너건너 까마귀 사다이벤 님의 겉과 속을 알고 있었단 뜻이겠지요.

 

        여덟

 

 이렇게 말하면 개중에는 다른 아가씨들을 끌고 와 나카미카도 아가씨의 행실을 거짓말로 여기실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도 모시는 도련님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헛소리를 덧붙일 이유가 없지요. 그즘 교토는 떠드는 걸 참 좋아하여 나카미카도 아가씨 이외에도 벌레를 아주 좋아하며 뱀마저 기른다는 신비한 아가씨 한 분이 유명할 정도였으니까요. 그 외의 아가씨 이야기는 전부 여담인 셈이니 여기선 아무 말도 않겠습니다. 하지만 나카미카도 아가씨는 두 부모님이 돌아가시어 저택에 방금 전에 이야기한 헤이다유를 필두로한 시종들만 몇몇 있을 뿐이며 선대가 남기신 재산 덕에 유복하셨으니 무엇도 거리낄 게 없었단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하니 아름다움과 활달함을 살려 주위 시선도 아랑곳 않는 대담한 행동이 가능했던 거지요.

 그러니 떠들기 좋아하는 세간에선 이 아가씨부터가 사실 쇼나곤 님의 안주인과 나리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가 죽은 것도 둘 사이에 원한을 가진 나리께서 독살했기 때문이라 떠드는 사람도 나타나기 마련일 겁니다. 하지만 쇼나곤 님이 갑작스레 죽게 된 데엔 앞서 말한 사연이 존재하지요. 그 소문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근거 없는 거짓말인 셈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도련님께서도 아가씨께 그만한 마음을 둘 리도 없고요.

 제가 건너건너 듣기로는 당초 도련님이 아무리 열성을 보이셔도 아가씨께선 되려 그 누구한테보다 쌀쌀 맞게 대했다 하십니다. 아뇨, 그뿐일까요. 한 번은 도련님의 편지를 전달한 제 조카에게 그 까마귀 사다이벤과 마찬가지로 문 한 번 열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 헤다이유란 늙은 사무라이는 어째서인지 호리카와 저택을 원수마냥 대했지요. 그때도 배꽃에 봄바람을 드리우는 츠이지 위에서 백발 머리를 드러내며 히와다 카리기누의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어떻게든 문을 열려고 하는 제 조카에게

 "허허, 그대는 대낮부터 도적질이라도 하나? 도적이라면 용서할 수 없지. 한 발이라도 문 너머로 발을 들이면 이 헤다이유의 칼로 두쪽을 내주마"하고 으르렁거리듯 외쳤답니다. 이게 만약 저였다면 누구 하나는 상처를 봤을 테지만 조카는 단지 길에 있는 소똥만 던져준 채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런 마당이니 설령 무사히 편지를 전해도 제대로 대답을 받을 수가 없지요. 하지만 도련님은 아랑곳 않고 편지를 쓰고 우타를 짓고 혹은 에마키 같은 것도 만들어 삼일을 너머 세 달 가량을 끈기 좋게 아가씨께 보냈습니다. 그러하니 앞서 도련님께서 하신 "그 시절에 내가 보잘 것 없는 시나 우타를 만드는데 푹 빠진 건 모두 사랑이 만든 일일세"하는 말씀도 정확히 맞는 말인 셈이지요.

 

        아홉

 

 마침 그즘의 일입니다. 교토에 기이한 모습을 한 스님 하나가 나타나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마리교라는 걸 퍼트리기 시작했지요. 이것도 한 때 꽤 유명했던 이야기니 개중에는 들어보신 분도 계실 테지요. 소시 따위에 중국에서 텐구가 건너 왔다 적힌 건 궐안의 안주인께 오니가 깃들었다는 것처럼 이 스님의 이야기를 적은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제가 처음으로 가 스님을 본 것도 역시 그즘의 일이었지요. 기억하기로 늦봄의 점심 쭘인 듯한데, 무언가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신센엔 바깥을 지나고 있자니 축토 앞에 이삼십 명 가량의 모미에보시니 타테에보시니 혹은 또 호기심 많은 아가씨들과 죽마 따위에 탄 아이까지 서로 뒤엉켜 이리저리 소란을 떨고 있지 뭡니까. 저는 신께 제사를 올리고 있거나 오우미의 상인이 왔거나 이도저도 아니라면 도둑이라도 들었나 싶었습니다. 단지 그 소란이 보통 소란이 아닌지라 별 생각 없이 뒤에서 들여다 보니, 그 한 가운데에는 거지꼴을 한 사문이 시종 무어라 떠들면서 본 적 없는 여보살의 그림을 건 장대를 한 손에 든 채 서있지 뭡니까.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었지요. 연배는 이래저래 서른 쯤 먹었을까요. 색이 까무잡잡하고 눈초리가 올라 있는 참으로 무시무시한 얼굴에 옷이야 비록 구깃구깃한 검은색 법의였습니다만 휘감아 어깨 위로 올린 머리모양도 그렇고 목에 건 괴이한 황금 호부도 그렇고 평범한 스님이 아니란 건 확실했습니다. 제가 들여다 봤을 때는 흐르는 바람에 날리는 신센엔 벚꽃을 온머리로 받고 있는지라 인간이라기 보다는 지라영수의 권족이 솔개 날개를 법의 아래에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괴이한 모습처럼 보였지요.

 그러자 그때, 제 옆에 있던 듬직한 대장장이 하나가 재빠르게 아이의 손에서 죽마를 뺏고선

 "이놈아, 잘도 지장보살을 텐구라 일컫느냐."하고 으르렁거리며 상대의 얼굴을 때렸습니다. 하지만 그 스님은 얻어 맞으면서도 히죽 꺼림칙한 웃음을 지은 채로 여보살의 그림을 늦봄 바람에 높게 들어 올리며

 "설령 이번 생에 어떠한 부귀영화를 누리더라도 천상 황제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자는 한 번 목숨을 잃는 순간 곧장 아비규환의 지옥에 떨어지고 꺼질 줄 모르는 지옥불에 온몸이 불타 영원히 울부짖게 될 거다. 하물며 그 천상 황제가 남기신 마리시 스님을 때려서는 목숨을 잃을 때는 고사하고 당장 내일이라도 제천 동자의 벌을 받아 온몸에 나병이 나게 될 거다"하고 당당히 소리치지 뭡니까. 그 기세에 삼켜진 저는 물론이요 그 대장장이도 죽마를 단지 가만히 내려 놓은 채로 미치광이 같은 스님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기만 할 따름이었습니다.

 

        열

 

 하지만 그건 아주 잠깐으로 대장장이가 다시 죽마를 쥐고는

 "아직도 그런 헛소리를 하는 거냐"하고 굉장히 험악히 매도하며 스님을 향해 달려 들었습니다.

 그때는 저를 시작으로 누구나 대장장이의 죽마가 상대의 얼굴을 박살 낼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니, 실제로도 그 죽마는 햇살에 그슬러진 이마에 길다란 멍자국을 남긴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 죽마가 다시 튕겨져 아직 어린 대나무 잎을 떨군다 싶었더니 대뜸 땅에 쓰러진 건 스님이 아닌 때린 대장장이 쪽이었지요.

 이에 당황한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도망치고 싶어진 걸 테지요. 모미에보시도 타테에보시도 기개 없이 등을 돌려 곧장 스님 주위를 벗어났습니다. 잘 보니 대장장이는 죽마를 쥔 채로 상대의 발밑을 구르며 입에서는 마치 발작 환자처럼 하얀 거품마저 물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한동안 숨을 고르는 듯 보였습니다만 이윽고 우리를 보고는

 "이 보라, 내 말에 거짓이 있었는가? 제천동자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검으로 이 흉악무도한 사람을 친 거다. 하물며 머리가 깨져 대로에 피를 흘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테지"하고 자못 거창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때였습니다. 조용해진 인파 속에서 울음 소리가 터지더니 방금 전까지 죽마를 들고 있던 어린애 하나가 어깨까지 내려 온 머릿결을 흔들며 쓰러진 대장장이를 향해 구르듯이 달려가더니

 "아빠, 아빠. 아빠 말 좀 해봐."

 아이는 몇 번이나 그렇게 소리쳤습니다만 대장장이는 정신을 차릴 기미가 없었습니다. 입술에 머금은 거품마저 여전히 늦봄 바람에 날려 가슴가로 하얀 침을 질질 흐르게 했지요.

 "아빠, 제발."

 아이는 다시 한 번 그렇게 말했지만 대장장이가 대답하지 않는 걸 보더니 곧장 얼굴색을 바꾸더니 벌떡 일어나 아버지가 손에 쥔 죽마를 두 손으로 잡더니 스님을 향해 기운 차게 똑바로 달렸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그 죽마를 들고 있던 그림의 장대로 어려움 없이 튕겨내더니 또 꺼림칙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러곤 일부러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며 "이러면 쓰나. 그대의 아버지가 정신을 잃은 건 이 마리시 스님이 한 일이 아니야. 허니 나를 어떻게 한다고 아버지가 살아 돌아 올 리도 없지"하고 타이르듯 말했습니다.

 아이한테 그런 도리가 통했다기 보다는 아무리 이 스님에게 달려 들어도 이길 도리가 없다 생각했던 거겠지요. 대장장이의 자제는 죽마를 대여섯 번 휘두르더니 엉엉 울면서 거리 한 가운데에 서있었습니다.

 

        열하나

 

 스님은 이를 보더니 또 히죽히죽 웃으며 아이를 향해 다가가

 "보아하니 그대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말귀를 잘 알아 먹는 똑똑한 아이구나. 그렇게 얌전히 있으면 제천동자께서 머지 않아 아버지를 제정신으로 되돌려주겠지. 나도 지금부터 기도를 올릴 테니 그대 또한 나를 잘 보고 천상 황제의 자비에 기대보거라."

 스님은 그렇게 말하고는 장대를 크게 두 손에 쥐고서 대로에 무릎을 꿇더니 공손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로 무언가 괴이한 다라니 같은 걸 큰 목소리로 외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얼마 쯤 지났을까요. 스님 주위에 원을 두른 채 이 기이한 가지를 보던 저희로선 이래저래 삼십 분 가량 되었지 싶었는데, 이윽고 스님이 눈을 뜨고서 무릎 꿇은 채 뻗고 있던 손을 대장장이의 얼굴 위로 뻗었습니다. 그러자 그 얼굴이 서서히 따듯한 혈색을 되찾더니 거품 투성이 입에서는 괴로운 신음 소리마저 길게 새어나오기 시작했지요.

 "와아, 아빠가 살아났어."

 아이는 죽마를 던지더니 기쁜 발걸음으로 다시 아버지의 옆으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대장장이는 그 품에 안기기도 전에 신음을 하더니 마치 술에라도 취한 듯한 비틀거리는 몸놀림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만족스럽다는 양 유유히 일어나더니 여보살의 그림을 부자 위에 높게 들어 올리고는

 "천상 황제의 덕이 이렇게 하늘처럼 넓고 끝이 없으시다. 이제 좀 믿기는가?"하고 엄숙히 고했습니다.

 대장장이 부자는 서로를 껴안은 채로 땅바닥 위에 몸을 작게 말고 있었으나 스님의 무서운 법력에 혼이라도 날아간 것이겠지요. 여보살의 그림을 올려다 본 두 사람 모두 기특하게 두 손을 모은 채 벌벌 떨면서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런가 하니 주위에 선 인파 안에서도 두세 명 가량 삿갓을 벗고 에보시를 고치는 등 예를 갖추는 기미가 보였습니다. 단지 저로선 그 스님이나 여보살 그림이 마치 마계의 바람에 물든 듯한 꺼림칙한 기척에 느껴져 대장장이가 정신을 되찾은 걸 끝으로 제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지요.

 이는 나중에 건너 들은 건데 이 스님이 설교한 게 중국에서 건너 왔다는 마리교인가 하는 것으로, 마리시 스님이란 남자도 이 나라 사람인지 중국 사람인지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개중에는 또 중국도 우리나라도 아닌 천축에서 온 스님으로 낮에는 그렇게 거리를 걸어다녀도 밤이면 검은 법의가 날개가 되어 야사카데라 탑에서 하늘을 향해 날아 오른단 소문도 있었지요. 물론 이는 아무 근거 없는 거짓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마리사 스님이 하는 일에는 여러모로 환상적이고 기묘한 일이 많았기에 그런 소문이 도는 것도 납득이 갈 정도였지요.

 

        열둘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건 마리시 스님이 그 괴이한 다라니의 힘으로 순식간에 수많은 환자를 고쳤다는 점입니다. 장님이 눈을 뜨고 저름발이가 일어서고 벙어리가 입을 열고――하나하나 세는 것도 번거로울 지경인데 개중에서도 가장 유명했던 건 셋츠수가 고민하던 인면창일까요. 이는 조카를 활로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은 원한 탓에 왼쪽 무릎에 조카의 얼굴을 한 이상한 종기가 생겨 낮이고 밤이고 고통외 괴로워하던 이야기인데, 그 스님의 가지를 받자 종기의 얼굴색이 많이 좋아지더니 이윽고 입마저 열고 "나무아미타불"하고 외자마자 곧장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런 마당이니 여우에게 홀린 이도, 또 텐구에게 홀린 이도 혹은 이름 모를 요매귀신에게 홀린 이도 십자 모양의 호부만 받으면 마치 나뭇잎을 먹는 벌레가 태풍에 날아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싹 떨어져 나갔다 합니다.

 하지만 마리시 스님의 법력이 평판이 자자했던 건 그뿐만이 아닙니다. 앞서 제가 거리에서 본 것처럼 마리교를 비방하거나 그 신자를 헐뜯으면 그 스님은 곧장 그 상대에게 무서운 신벌을 내렸습니다. 덕분에 우물물이 비린내 나는 피바다로 바뀐 적도 있고 논밭의 쌀을 하룻밤만에 메뚜기한테 뜯기게 된 일도 있었습니다. 특히 하쿠슈샤의 무녀 따위는 마리시 스님을 주살하려던 응보로 보는 것마저 꺼림칙한 백라 환자가 되었다지요. 그래서 그 스님이 텐구의 화신이란 소문이 한 층 더 커진 걸 테지요. 하지만 텐구라면 자신이 사냥하겠다며 저 먼 쿠라마에서 찾아 온 사냥꾼마저도 제천 동자의 검에 당했는지 불쑥 눈이 멀더니 끝내는 마리교 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하니 날이 흐름에 따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신자는 늘어만 갔지요. 또 그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물로 머리를 적신다는 관정과 같은 의식이 있었는데, 이를 한 번 마치지 않으면 천상 황제께 귀의하는 게 되지 않는다 합니다. 이는 제 조카가 본 바인데 어느날 시조의 대교를 건너고 있으니 다리 아래의 강가에 엄청난 인파가 모여 있었답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한 번 들여다 보니 이 역시 마리시 스님이 사무라이 하나에게 그 괴이한 관정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날이 더워져 벚꽃이 흐르는 카모가와에 검을 찬 사무라이와 십자 모양의 호부를 건 이형의 스님께서 그림자를 떨군 채 눈에 익지 않는 의식을 하는 모습이 꽤나 재미나게 비쳤던 걸 테지요――그러고 보니 말하는 걸 잊었는데 마리시 스님은 시조 강가에 위치한 사람 없는 오두막을 꾸려 시종 홀로 조용하게 사셨다고 합니다.

 

        열셋

 

 이쯤에서 이야기를 돌릴까요. 그 동안 도련님께선 생각지도 못한 일로 이전부터 마음을 두고 있던 나카미카도 아가씨와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함은, 탱자나무의 꽃향기와 불여귀의 울음 소리가 빗기운을 감돌게 하는 밤에 있었던 일이지요. 그날 밤은 웬일로 달빛이 잘 들어서 밤인데도 불구하고 희미하게나마 사람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라 하였습니다. 도련님은 한 여인을 찾았다 돌아오는 길이셨는데, 사람 눈에 띄지 않도록 시종도 고작해야 하나인가 둘만 둔 채로 밝은 달빛 속을 달구지로 느긋이 달리고 계셨지요. 하지만 늦은 시간인 만큼 인기척 하나 없는 거리에선 저 먼 논밭의 개구리 소리와 찻바퀴 소리 뿐이었고 특히 그 쓸쓸한 비후쿠몬 바깥은 곧잘 여우불이 감도는 만큼 어딘가 오싹해지는 기미가 있어 소의 걸음마저 평소보다 빠르게 느껴졌다지요――그런 와중에 불쑥 건너편 뚝 뒤편에서 괴이한 기침 소리가 들리더니 복면을 쓴 도적 예닐곱 명이 달빛에 하얀 칼날을 빛내며 도련님의 달구지를 향해 맹렬히 달려 들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소를 끄는 아이를 시작으로 시종들도 놀라서 혼이 달아난 거겠지요. 무어라 비명 한 번 지를 새도 없이 일사불란히 본래 온 길로 도망쳐버렸습니다. 하지만 도적들은 그들에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한 사람이 소의 고삐를 쥐어 달구지를 거리 한 가운데 멈추더니 사방에서 칼날벽을 만들어 주위를 둘러샀습니다. 그러고는 대장인지가 난폭하게 발을 열더니 "이 나리가 확실하겠지?"하고 동료를 보며 확인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모습이 도무지 평범한 도적 같지 않기에 도련님은 놀란 와중에도 수상쩍게 여겨진 걸 테지요. 이제까지 가만히 있었으나 상대를 비스듬하게 올려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때 도적 중 한 명이 갈라진 목소리로

 "그래, 이 나리가 맞다"하고 원망스레 대답했습니다. 그 목소리가 영 들어본 듯하여 더욱 괴이해진 도련님께서는 밝은 달빛의 힘을 빌어 그 목소리 주인을 가만히 들여다 보셨습니다. 복면은 두르고 있었으나 나카미카도 아가씨를 모시는 헤이다유란 사무라이가 분명했지요. 그 찰나엔 아무리 도련님이라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 하셨답니다. 왜냐하면 그 헤이다유가 호리카와 가문을 원수처럼 미워한다는 걸 들으신 적이 있기 때문이었죠.

 아니, 실제로 그 때도 헤이다유의 답을 들은 도적 중 한 명이 한 층 더 목소리를 높이며 칼 끝을 도련님의 가슴을 향해 뻗더니

 "허면 목숨을 받아가겠소"하고 말하지 뭡니까.

 

        열넷

 

 하지만 어떤 일에나 흔들리지 않으시는 도련님께선 곧장 용기를 다시 갖추시곤 유유히 부채질을 하면서

 "기다려보거라. 내 목숨을 원한다면 상황에 따라선 못 줄 것도 없지. 허나 그대들은 왜 그런 걸 바라는 게냐"하고 마치 남일처럼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두목으로 보이는 도둑은 칼날을 더더욱 가슴가로 뻗으며

 "나카미카도 쇼나곤 공은 누구 때문에 돌아가셨소."

 "나야 누군지 모르지. 허나 내가 아니란 것만은 확실한 증거도 있느니라."

 "당신이든 당신 아비이든 원수인 건 매한가지요."

 도적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자 남은 도적들도 복면 아래에서

 "그럼 매한가지지"하고 하나둘 매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개중에서도 그 헤이다유는 이를 갈면서 짐승 같은 눈초리로 달구지 안을 보며 검으로 도련님의 얼굴을 가리키더니

 "허튼 말로 속여 넘길 생각 마라. 그럴 새가 있으면 염불이라도 외우시지"하고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도련님께서는 여전히 침착하게 가슴가의 칼날도 보이지 않는다는 양

 "허면 그대들은 모두 쇼나곤의 사람들인가?"하고 내던지듯 물었습니다. 그러자 도적들은 어찌된 일인지 답을 주저하였습니다만, 그 기색을 본 헤이다유는 거침 없이 목소리를 높여

 "그렇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아니, 어쨌다는 건 아니지만 만약 이 안에 쇼나곤 사람이 아닌 자가 있다 생각해 보게나. 그 사람은 정말 천하의 바보 아니겠나?"

 도련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곤 아름다운 이빨을 보이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웃으셨습니다. 그 모습에는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도적들도 잠시 간담이 서늘했던 걸 테지요. 가슴가에 다가온 칼날마저도 이때는 자연스레 달구지 밖의 달빛에 끌려 나오고 말았으니까요.

 "무슨 소리냐 물어야지"하고 말을 이으신 도련님께선 "나를 살해하면 여기 있는 자들은 모조리 검비위사의 눈에 드는 대로 극형 처분을 받겠지. 그나마도 쇼나곤 사람이라면 자신의 충의를 위해 버린 목숨이니 지극히 바라는 일이겠지. 허나 그렇지 않은 자가 이 안에 있어 얼마 안 되는 돈에 눈이 멀어 내 몸에 칼날을 뻗는다 생각해 보게나. 허면 그 녀석은 둘도 없는 목숨을 그 푼돈과 바꾸려는 바보 아닌가.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지."

 그 말을 들은 도적들은 새삼스레 얼굴을 마주했습니다만 헤이다유만이 미치광이처럼 소리치며

 "뭐가 바보란 거냐. 그 바보의 칼날에 죽게 되는 당신이 백 배는 바보인 걸 모르는가?"

 "아니, 이 자들이 바보였을 줄이야. 허면 이 중에는 쇼나곤 사람이 아닌 자도 있는 걸 테지. 이거 한 층 더 재밌어졌구나. 그럼 그 쇼나곤 사람이 아닌 자에게 할 말이 있다. 그대들이 나를 죽이는 건 오로지 돈 때문이겠지? 그럼 내가 그대들에게 원하는 만큼의 돈을 상으로 내리마. 대신 부탁할 게 하나 있지. 잘 생각해 보게, 같은 돈을 위해 하는 일이라면 더 많이 주는 내 편에 붙는 게 더 이득 아니겠나?"

 도련님은 거창하게 웃으시며 부채로 무릎을 탁 치시더니 달구지 밖의 도적들에게 물었습니다.

 

        열다섯

 

 "상황에 따라선 못 따를 것도 없지요."

 무서울 정도로 조용해진 도적들 사이에서 두목이 반쯤 머뭇머뭇 대답하니 도련님께선 만족스레 부채질하며 여전히 가벼운 분위기로

 "그거 다행이로구나. 무얼, 부탁이라 해도 대단히 어려운 건 아니야. 왜, 저기 있는 늙은이는 쇼나곤 사람이며 헤이다유라 하겠지? 항간의 풍문으로 듣자하니 저 녀석은 매일 같이 나를 미워하여 운 좋으면 내 목숨을 뺏을 수 있겠지 싶어 이런 거창한 일마저 벌인 듯하구나. 허면 여기 있는 사람들도 헤이다유 녀석이 불어 넣는 목소리에 일을 일으킨 게 분명할 테지――"

 "그렇습니다."

 도적들 서너 명이 일제히 복면 아래에서 말했습니다.

 "내가 부탁하고 싶은 건 그 장본인인 늙인을 붙잡아 오랜 원한을 뿌리 뽑는 게야. 어디, 그대들 힘으로 헤이다유를 붙잡아주지 않겠는가?"

 그런 말에는 도적들도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차를 두르고 있던 복면들이 서로 눈을 마주하며 술렁이 듯 움직이는 듯했습니다만 이윽고 그게 또 조용해지더니 대뜸 도적들 사이에서 마치 밤새가 우는 듯한 갈라진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야이, 팔랑귀들아. 아직 젖내 나는 녀석의 말에 놀아나서 뽑은 칼날마저 썩히는 걸로 모자라 배신하여 말까지 들으려 하다니 네놈들에겐 체면도 없느냐. 좋다, 좋아. 그럼 너희 손은 빌리지 않으마. 고작해야 사람 하나 목숨, 헤이다유의 칼날이 받아내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니라."

 그렇게 말한 헤이다유는 검을 정면으로 휘두르며 도련님을 향해 달려 들었습니다. 하지만 달려 들은 순간에 도둑 두목이 재빠르게 검을 뽑아 옆에서 달려 들었다고 하지요. 그러니 다른 도적들도 검을 자루에 돌리더니 마치 메뚜기마냥 사방에서 헤이다유를 향해 달려 들었습니다. 싸움에서 머릿수만한 게 또 있을까요. 하물며 헤이다유는 늙인이기도 하지요. 이래서야 승부를 겨룰 것도 없습니다. 그 노인네는 곧장 소의 고삐 뺀 밧줄에 묶여 달빛 드는 길거리로 끌려 나왔습니다. 그때의 헤이다유의 모습은 마치 굴에 빠진 여유라도 되는 것처럼 이빨을 드러낸 채 미련 섞인 신음을 내며 몸부림 쳤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를 보신 도련님께선 하품 섞인 웃음을 지으시더니

 "오오, 좋구나 좋아. 이걸로 내 속도 좀 풀어지겠어. 허나 기왕 하는 김에 그대들에게 내 달구지를 호위할 겸 그 늙은이를 끌고 호리카와의 저택까지 와줬으면 하는구나."

 그렇게 말하니 도둑들도 이제와서 못 한다고는 할 수 없었지요. 그렇게 일동이 모여 난잡하게 소를 몰고 밧줄을 끌면서 달빛 아래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천하가 참 넓다지만 이렇게 도적들마저 품에 낀 채 돌아 오신 건 도련님 말곤 없을 테지요. 물론 이 기이한 행렬도 저택에 이르기 전에 소식을 듣고 달려 온 저희와 만나 그 자리서 상을 주곤 해산하게 되었습니다.

 

        열여섯

 

 그렇게 도련님께선 헤이다유를 저택으로 데리고 오셨지요. 그러시더니 그대로 마굿간 기둥에 매달아서는 종들에게 지켜보라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밝자마자 그 늙은이를 아직 어두운 정원에 부르시더니

 "헤이다유여, 그대가 쇼나곤 경의 한을 풀자는 심정은 확실히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허나 또 신묘하다고도 할 수 있지. 특히 그 달밤에 복면 쓴 자들을 끌고서 나를 살해하려 한 건 남들은 쉽게 흉내낼 수 없는 풍류야. 단지 비후쿠몬 옆은 장소가 좋지 않았구나. 기왕 한다면 타다스노모리의 늙은 나무 아래에서 해줬으면 좋았을 게야. 그곳은 여름 달밤이면 물줄기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고 병꽃나무가 허옇게 빛나는 게 아주 정취 있는 곳이지. 물론 이는 내 과한 바람일지도 모르겠지만. 무슨 말인고 하니, 네 기특한 충의와 풍류를 높게 사서 이번만은 그 죄를 용서해주겠단 뜻이니라."

 그렇게 말씀하신 도련님은 여느 때처럼 환하게 웃으시며

 "대신 그대도 모처럼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겸사겸사 내 편지를 아가씨께 전해다오. 알았나? 잘 전해야 한다."

 저는 그때 본 헤이다유의 얼굴만큼 신비한 걸 본 적이 없습니다. 그 고집불통에 갑갑한 얼굴이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기미를 띄우더니 눈동자만 번잡하게 굴리지 뭡니까. 그러자 그 모습이 참 우스우면서도 안타까웠던 걸 테지요. 도련님은 웃음을 거두시고는 밧줄을 잡은 시종에게

 "이놈들아, 계속 그러고 있으면 헤이다유가 불편하지 않으냐. 어서 그 밧줄을 풀어주거라"하고 본부하셨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하룻밤만에 허리마저 활처럼 굽은 헤이다유는 도련님의 편지를 매단 탱자나무 가지를 어깨에 짊어진 채로 뒷문으로 도망치듯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 뒤를 따른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제 조카 사무라이였지요. 만에 하나 헤이다유가 편지를 해칠까 싶어 도련님께는 말도 하지 않고 남몰래 그 늙은이의 뒤를 밟은 것입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대략 반 정町, 100 미터 가량 정도 되었을까요. 헤이다유는 마음이 느슨해졌는지 다리를 힘없이 질질 끌면서 아직 구름 낀 하늘에서 어린 감나무 향이 나는 축토가 이어진 미야코오오지를 터벅터벅 걸었습니다. 도중에 엇갈리는 채소 팔이 여자 등은 보기 드문 파발꾼인가 싶었는지 괴이하다는 양 돌아보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만 늙은이는 이를 돌아 볼 기미도 없었다지요.

 이러면 별 일은 없겠지 싶어 도중에 발걸음을 돌리려던 제 조카였습니다만 혹여나 하는 생각에 또 한동안 뒤를 밟고 있자니 마침 아부라노코지에 자리한 도조 신의 신사 앞에서 십자로를 돈 익숙지 않은 한 스님이 헤이다유와 부딪힐 뻔했습니다. 여보살 그림이 달린 깃발, 검은 법의, 그리고 십자 모양의 괴이한 호부, 제 조카는 그 유명한 마리시 스님이란 걸 한 눈에 알아차렸다 합니다.

 

        열일곱

 

 자칫 부딪힐 뻔한 마리시 스님은 곧장 몸을 피했습니다만 왜인지 발을 멈추더니 가만히 헤이다유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늙은이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단지 두세 걸음 양보했을 뿐으로, 여전히 터벅터벅 쓸쓸한 걸음을 옮겼지요. 그러하니 아무리 마리시 스님도 헤이다유의 이상한 분위기를 수상쩍게 여긴 걸 테죠. 제 조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이윽고 그 옆까지 가니 여전히 넋이 나간 것처럼 신사 앞에 서있는 스님의 눈초리가 참으로 텐구의 사신처럼만 느껴져 도무지 평범한 일로는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니, 되려 그 눈초리는 평소의 꺼림칙한 빛은 찾아 볼 수 없고 마치 눈물이라도 머금은 듯한 상냥한 촉촉함이 감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얼굴이 신사 지붕에 가지를 뻗은 모밀잣밤나무의 어린잎이 드리우는 그림자를 받아 그 여보살의 장대를 비스듬하게 어깨에 짊어진 채 빤히 건너편을 바라보는 모습의 쓸쓸함은, 조카마저 그 스님을 그윽하게 여기게 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조카의 발소리에 놀란 걸 테죠. 마리시 스님은 꿈에서 깬 것처럼 황급히 조카를 보더니 불쑥 한 손을 높게 들며 기이한 손짓을 긋더니 무어라 주문 같은 걸 입안으로 반복하며 재빨리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들은 주문 속에 나카미카도란 말이 들렸다고 하는데, 이는 어쩌면 제 조카가 잘못 들은 걸지도 모르겠군요. 또 헤이다유는 그 동안에도 역시나 탱자나무 가지를 어깨에 짊어진 채 곁눈질도 하지 않은 채 머뭇머뭇 걸어 떠났다고 합니다. 그러니 제 조카는 다시 뒤에 숨어 그 뒤를 밟았고 이윽고 니시토인 저택까지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불쑥 그 마리시 스님의 신비한 거동이 마음에 걸려 도련님의 편지마저 잊을 뻔할 정도로 초조한 마음에 괴로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편지도 별 문제 없이 아가씨의 손에 이른 모양이었고 이번에는 보기 드물게 답장도 금세 돌아왔다지요. 저희 아래 것 입장에서야 확실히 단언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알다시피 기운 찬 아가씨니까요. 헤이다유에게 암습의 사정이라도 듣고서 도련님의 심성이 고으신 걸 처음으로 깨달으신 걸 테죠. 그 후로 두세 번 소식을 나눈 약한 비가 내리는 어느 밤, 도련님은 제 조카를 데리고 여름 버들로 뒤덮인 세이토인을 몰래 찾으셨습니다. 이렇게 된 걸 보면 아무리 그 헤이다유라도 그 고집을 꺾은 걸 테죠. 그날 밤에도 험악하게 눈은 찌푸릴지언정 제 조카를 향해서도 험한 말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열여덟

 

 그 후 도련님은 거의 매일 밤마다 니시토인 저택을 향하셨습니다. 그때 가끔씩 저와 같은 늙은이를 대동하는 일도 계셨지요. 제가 처음으로 그 아가씨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접한 것도 바로 그때였습니다. 한 번은 두 분이서 저를 부르더니 세상 이야기 좀 해보라 하셨지요. 분명 그때였을 겁니다. 발 사이로 보이는 연못물에 밝은 달빛이 드리우고 아직 지지 않은 등나무 냄새가 희미하게 감도는 밤이었는데, 그런 시원한 밤기운 속에서 소수의 여종만 둔 채로 조용히 술을 즐기시는 두 분의 아름다움은 마치 옛날 그림에서 뛰쳐나온 것만 같기도 했습니다. 특히 하얀 히토에가사네에 옅은색 우치기를 하신 아가씨의 청초함은 거의 카구야 공주와 다를 바가 없을 정도였지요.

 그러는 사이 술 기운이 도신 도련님께서 문득 아가씨를 보시더니

 "영감이 말한 것처럼 이 좁은 교토에도 상전벽해의 변이 번번히 일어나는군. 세간의 모든 법은 이처럼 찰나의 순간에 만들어졌다 떠나가는 모양이오. 허니 무상경에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무상에 사로 잡힌 적이 없으니'하는 말도 있는 거겠지. 아마 우리의 사랑도 이 법칙에서 빗겨나가진 않을 거요. 단지 언제 시작해 언제 끝나는가, 내가 마음에 걸리는 건 그뿐이외다."하고 농담처럼 말씀하시자 아가씨께선 살토라지신 것처럼 등불의 밝은 빛을 일부러 피하시면서

 "어머, 원망스러운 말만 골라 하시는군요. 허면 처음부터 저를 버리실 심산이셨습니까"하고 부드럽게 도련님을 노려보셨습니다. 하지만 도련님은 더욱 기분 좋게 잔을 기울이며「

 "아니, 그보다는 처음부터 버려질 심산이었다 하는 게 내 마음에 더 잘 맞을 거요."

 "사람을 가지고 노시는군요."

 아가씨께선 그렇게 말하며 한 번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셨습니다만 또 불쑥 발 바깥의 밤경치에 젖은 눈초리를 보내시며

 "세상이 사랑이라 말하는 건 모두 그처럼 덧없는 것뿐일까요"하고 혼잣말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도련님은 여느 때처럼 아름다운 이빨을 보이시며 웃으시더니

 "허면 덧없지 않다고는 못 하겠군. 허나 우리 인간이 만법의 무상도 잊은 채로 연꽃과 세상의 묘약을 잠시 맛볼 수 있는 건 단지 사랑하고 있을 때 뿐일세. 아니, 그 동안에는 사랑의 무상마저 잊는다 해도 좋지. 그러하니 나의 눈에서는 연애삼매로 보낸 나날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지식이라오. 우리가 세상의 더러움과 괴로움을 잊어 항상 쓸쓸한 빛 속에 살기 위해서는 이세 모노가타리를 그대로 사랑할 수밖에 없지. 그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하고 옆에서 아가씨의 얼굴을 들여다 보셨습니다.

 

        열아홉

 

 "허면 사랑의 공덕이야말로 천만무량이라 해도 좋을 테지."

 이윽고 도련님은 부끄럽다는 양 고개를 낮추신 공주님에서 저를 향해 취한 얼굴을 보이시더니

 "어때, 영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냐? 물론 그대에겐 사랑이라 안 하마. 좋아하는 술은 어떠냐."

 "아니요. 가진 게 많은지라 더는 뒷날이 무서울까 합니다."

 제가 백발을 긁으며 당황스레 그렇게 대답하자 도련님은 또 이따금 웃으시면서

 "아니, 그 대답이면 충분하구나. 영감은 뒷날이 무섭다지만 피안서 살려는 마음은 어두운 밤의 등불에 의지하여 이 세상의 무상함을 잊으려는 심정과 다를 바 없지. 허면 그대도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사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결국은 나와 같은 마음인 셈인 게야."

 "말씀은 감사합니다. 허나 아가씨의 아름다움은 기예천에도 필적하겠지만 결국 사랑은 사랑이요 석가의 가르침은 석가의 가르침입니다. 하물며 좋아하는 술 따위를 한데 묶을 수는 없지요."

 "그리 생각하는 건 그대가 마음이 비좁기 때문이야. 부처도 여인도 내 앞에서는 모두 슬픔을 잊기 위한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으니 말야――"

 도련님이 그렇게 주장하시자 아가씨께선 불쑥 눈길을 훔치듯이 도련님을 보면서

 "여자가 꼭두각시가 싫다고 하면 어쩌실 겁니까"하고 작은 목소리로 여쭈셨습니다.

 "꼭두각시가 싫다면 보살이라고 해둘까."

 도련님은 기세 좋게 그렇게 답하셨습니다만 문득 무언가가 떠오른 것처럼 가만히 등불을 바라보시며若

 "과거에 스가와라 마사히라와 친교를 나눌 적에도 번번히 이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지. 그대도 알겠지만 마사히라는 나와 달리 쉽게 사람을 믿는 말하자면 소박하고 올곧은 성품이었어. 허니 내가 석가의 경전도 실은 연가와 다를 바 없다 비웃을 때마다 화를 내면서 내가 바로 번뇌외도라며 지독하게 매도하곤 했지. 그 목소리마저 아직도 귀에 감도나 막상 마사하라는 행방도 알 수 없구나." 하고 여느 때 이상으로 침울한 목소리로 울적히 중얼거리셨습니다. 그러자 그 모습에 매료된 건지 공주님을 비롯해 저까지도 한동안 입을 다문 채로 조용한 방에는 등나무꽃의 향기만이 한 층 더 높게 풍기는 듯했습니다. 헌데 이를 술자리가 식었다 생각한 걸까요. 여종 하나가 머뭇머뭇

 "허면 교토에서 유행하는 마리교란 것도 역시나 무상함을 잊기 위한 새로운 방편이겠지요"하고 끼어 들었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여종도

 "그러고 보니 그 교를 퍼트리고 다니는 스님께는 이래저래 괴이한 소문이 도는 듯합니다"하고 자못 꺼림칙하다는 양 등불을 거창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스물

 

 "뭐라, 마리교? 그건 또 별난 가르침이 다 있구나."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도련님은 떠올랐다는 양 잔을 드시더니 그 여종을 보시며

 "마리교라 하면 마리지천을 모시는 게로구나."

 "아뇨, 마리지천이라면 차라리 망정이지 그 가르침이 모시는 건 잘 알려지지 않은 여보살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합니다."

 "허면 파사닉왕의 후궁에 있던 마리 부인인 모양이구나."

 그때 제가 얼마 전 신센엔 밖에서 본 마리 스님의 행동거지를 설명해드리고는

 "그 여보살은 결코 마리 부인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보다도 이제까지 본 어떤 보살님의 모습하고도 닮지 않았지요. 또 그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은 거의 인육을 먹는 여자 야차처럼만 보였습니다. 어찌 됐든 우리나라서는 찾아 보기 힘든 사악한 종교임엔 분명하지요"하고 제 의견을 올리자 아가씨께선 아름다운 눈썹을 가만히 찌푸리시며

 "그리고 그 마리 스님이란 남자는 정말로 텐구의 화신처럼 보였다 하였지?"하고 확인하시듯 물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차림은 거의 불타는 산에서 날개짓해 나타났다고 해야 좋다지요. 하지만 백주대낮의 교토 안에서 그런 괴이한 게 출몰할 일은 없을 테지요."

 그러자 도련님은 다시 이전처럼 잘 울리는 웃음 소리를 내시며

 "아니, 또 모르는 일이지. 실제로 엔기 시대의 고죠 부근에선 일주일 동안 텐구가 부처의 모습을 한 채 백호광을 내뿜었다지. 또 부츠겐지의 닌쇼 아자리를 매일 밤 능욕한 것도 겉이야 여자일지언정 실은 텐구였다고 말이야."

 "어머, 꺼림칙한 말을 다 하십니다."

 아가씨는 물론이요 두 여종도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하고는 소매를 마주하였습니다만 도련님은 술기운에 젖은 얼굴을 푸시더니

 "그만큼 삼천세계가 넓다는 뜻이야. 한줌 뿐인 인간의 지혜로 없다고 치부할 수 있는 일은 무엇 하나 없는 법이지. 이를테면 그 스님 행세를 하는 텐구가 이 저택 아가씨께 마음을 빼앗겨 어느 밤 몰래 바람 부는 하늘에서 손톱 투성이 손을 뻗는다 해도 마냥 없는 일이라고는 못하겠지. 허나――" 그렇게 말하시며 거의 색도 바꾸지 않은 채로 옆에서 머뭇거리시는 아가씨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허나 그 마리 스님이란 자도 다행히 아직까진 그대의 모습을 엿보지 못한 듯 하오. 일단 그 전까지는 마도의 사랑이 성취될 일은 없을 테지. 허면 그리 무서워할 것도 없소이다"하고 마치 아이를 달래듯이 웃으며 위로하는 것이었습니다.

 

        스물하나

 

 그 후 한 달 가량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습니다만 이윽고 한 여름이 되었을 적, 카모가와의 물이 한 층 더 눈부신 햇살을 반사하며 뜨거운 강줄기 탓에 배마저 뚝 끊겼을 쯤이었습니다. 평소부터 낚시를 좋아한 제 조카는 교조 다리 밑으로 가 사철쑥 안에 앉은 채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빌어 줄어든 강줄기 속에 찌를 내린 채로 줄창 피라미만 낚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머리 위 난간에서 어디서 들어 본 듯한 목소리가 들리지 뭡니까. 별 생각 없이 위를 올려다 보니 그 헤이다유가 커다란 부채로 부채질을 하면서 난간에 몸을 기댄 채 그 마리사 스님과 함께 여념 없이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지요.

 그걸 본 제 조카는 이전에 아부라코지에서 본 마리시 스님의 기이한 행동거지가 떠올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두 사람 사이에 무어라 사정이 있는 듯했지――제 조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은 실을 보아도 귀로는 다리 위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들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도 인기척이 거의 사라진 일몰의 적적함에 마음을 열어놓은 걸 테죠. 제 조카가 있다는 건 알아차릴 기미도 없이 엄청난 이야기를 나누던 것입니다.

 "당신이 이 마리교를 퍼트리고 있단 건 이 넓은 교토 사람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요. 저마저 당신이 먼저 말하기 전까지 어디서 봤지 하면서도 생각이 안 날 정도였으니까요. 그 또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지요. 언젠가 달빛 드는 봄밤에 사쿠라비토의 우타를 부른 젊은 당신과 지금 이렇게 찌는 하늘 아래서 맨발로 걷고 있는, 외람되나 마치 텐구와 같은 겉모습부터 무서운 당신. 그 둘이 같은 사람일 거라곤 저기 누워 있는 무녀에게 물어도 알 수 없을 게 분명합니다."

 헤이다유가 이렇게 농담하며 부채 소리를 한 번 내자 마리시 스님 또한 어딘가의 높은 사람을 떠오르게 하는 거창한 말투로

 "나도 그대와 만난 건 아주 만족스러운 일이었지. 언젠가 아부라코지의 도조신 신사 앞에서도 잠깐 본 적이 있는데 그대는 곁눈질도 하지 않고 편지를 엮은 탱자나무 가지를 힘없이 맨 채로 울적하게 터벅터벅 저택을 향해 걷고 있었고."

 "그러십니까. 제가 나이값도 못하고 결례를 범하였군요."

 헤이다유는 그날 아침의 일을 떠올린 걸 테지요. 괴롭게 이렇게 말했습니다만 이윽고 기세 좋은 부채 소리가 다시 퍼덕이더니

 "허나 이렇게 오늘 만나뵐 수 있었던 건 모두 키요미즈데라의 관세음보살 덕분일 테죠. 헤이다유의 평생 중에 이만큼 기쁜 일은 또 없습니다."

 "아니, 내 앞에서 부처 이름을 꺼내지 말거라. 부족한 몸이지만 나는 천상황제의 칙명을 받아 우리 일본에 마리교를 퍼트리러 온 스님의 몸이니 말이야."

 

        스물둘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는 듯한 기미로 마리사 스님이 끼어들었습니다만 의외로 헤이다유는 겁먹은 기색도 없이 부채와 혀를 동시에 움직이며

 "확실히 그렇군요. 헤이다유도 요즘 들어 부쩍 늙었는지 하는 일마다 실수 투성이입니다. 그래도 뭐, 그렇다면 당신 앞에서는 두 번 다시 부처의 이름을 꺼내지 않지요. 단지 이런 늙은이라도 그리 신앙이 깊은 건 아닙니다. 단지 지금 불쑥 관세음보살 이야기를 꺼낸 건 오랜만에 뵌 게 정말로 기뻤기 때문이지요. 그러고 보면 아가씨께서도 소꿉친구인 당신이 무사하시단 걸 들으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하고 평소에 저희에게는 답하는 것도 귀찮다는 양 무겁게 입을 다무는 태도와 달리 기세 좋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 이에는 그 마리시 스님도 대답할 길이 없는지 한동안은 단지 고개만 끄덕였다는데 이윽고 아가씨란 말이 나온 걸 기회 삼아

 "해서 그 아가씨 말인데, 내가 긴밀히 부탁하고 싶은 게 있네."하고 말하곤 한 층 더 목소리를 죽이며

 "헤이다유 그대가 힘을 써서 밤에라도 만날 수 있게 해줄 수는 없나?"

 그러자 다리 위에선 부채 소리가 뚝 그쳤습니다. 그와 동시에 제 조카는 자칫하면 난간 쪽을 올려다 보려 했습니다만 그런 허튼 행동을 했다간 숨어 있는 게 들통날지 모릅니다. 그러니 역시 사철쑥 안을 흐르는 강표면을 바라본 채 숨도 쉬지 않고 난간 위 상황에만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헤이다유는 이제까지 기운 넘치던 모습과 달리 간단히 입을 열지 않았지요. 그게 얼마나 길었는지 다리 아래에 있는 제 조카로선 온몸의 등골이 묘하게 간지러울 정도로 갑갑하게만 느껴졌다 합니다.

 "설령 강가라 해도 나 또한 교토 사는 몸이야. 호리카와 나리가 요즘 들어 아가씨 옆을 들락날락 거린단 것도 알고 있지――"

 이윽고 마리시 스님은 여전히 조용한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말을 잇고는

 "허나 나는 아가씨의 마음을 얻고 싶은 게 아니네. 업욕에 동경하는 내 마음은 이미 당토에 한 번 버려두었고 적모벽안의 호승 입을 통해 천상황제의 가르침을 듣는 동시에 사라졌으니 말이야. 단지 내가 가슴이 아픈 건 그 옥과 같은 아가씨가 이 천지를 만드신 천상황제를 모른다는 점일세. 허면 신이든 부처 같은 천마외도를 신앙하며 그 형태를 본딴 목석에도 꽃을 바칠 테지. 그리고 이윽고는 임종의 순간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불탈 게 분명하네. 나는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아비대성의 어두운 밑바닥에 거꾸로 떨어지는 거 같은 기분일세. 위태로운 아가씨의 모습도 고스란히 눈에 떠오르고 말이야. 실제로 어젯밤에도――"

 그렇게 말하던 스님은 자못 감개를 견딜 수 없었는지 서서히 힘이 담기는 입을 잠시 다물어버렸다고 합니다.

 

        스물셋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곧 헤이다유가 걱정스레 상대의 말을 재촉했습니다. 그러자 마리시 스님도 문득 정신을 차린 것처럼 또 본래의 조용한 목소리로 한 마디씩 뜸을 두며

 "아니, 무슨 일이 있었다 할 정도는 아니야. 하지만 나는 어제도 그 움막 안에서 잠에 들어 있었다. 그러자 꿈속에서 오의를 입은 아가씨가 내 머리맡에 걸어오지 뭐던가. 단지 현실과 달랐던 건 늘 아름다운 그 흑발이 몽롱한 안개 속에서 황금빛의 꺼림칙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네. 나는 오랜만에 만난 게 기뻐서 '잘 왔다'고 말을 걸었으나 아가씨는 슬픈 눈초리로 고개를 낮추어 내 앞에 앉은 채로 도무지 대답하지 않으셨지. 그런가 하면 붉은 소맷자락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모습이 보였어. 그게 소매를 시작으로 서서히 어깨나 가슴으로 퍼졌고 개중에서는 머릿속에서마저 꿈틀이니 퍽 우스꽝스러웠지――"

 "그렇게 말씀하시면 알기 어렵군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그때는 헤이다유도 저도 모르게 스님의 분위기에 끌려가고 만 걸 테죠. 그렇게 묻는 목소리에는 방금 전의 무거운 기미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리시 스님은 역시나 뜸을 들이는 말투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네. 나는 단지 갓 태어난 아이 같은 괴이한 자가 수없이 무리지어 아가씨 몸 주위서 꿈틀이는 걸 바라보았을 뿐이니까. 하지만 그걸 보는 동시에 나는 꿈속임에도 불구하고 슬퍼져서 소리를 참지 않고 울고 소리쳤어. 아가씨도 내가 우는 걸 보고 내내 눈물을 흘리셨지. 그게 한동안 계속되는가 했더니 이윽고 어디선가 닭이 울었고 내 꿈은 거기서 끝나버렸어."

 마리시 스님이 그렇게 말을 마치자 이번에는 헤이다유도 입을 다물고 한참을 멈추고 있던 부채를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 조카는 그 사이 찌에 걸린 피라미도 잊을 정도로 귀를 세우고 잇었습니다만, 이 꿈 이야기를 듣는 동안엔 다리 아래의 시원함이 어쩐지 피부에 스며 들어 그런 아가씨의 슬픈 모습을 어디선가 몽롱히 본 듯한 신비한 기분이 들었다고 합니다.

 "나는 그 괴이한 걸 요마라 보네. 허면 천상황제는 지옥의 업을 짊어지신 아가씨를 어여삐 여겨 내게 교화하라고 꿈으로 알리신 게 분명하겠지. 내가 그분의 힘을 빌려 아가씨를 돕고 싶다는 건 그런 연유일세. 내 부탁을 들어주겠나?"

 그럼에도 헤이다유는 한동안 주저한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윽고 부채를 접더니 그걸로 난간을 툭툭 치면서

 "좋습니다. 이 헤이다유는 언제인가 키요미즈의 언덕 아래에서 불량배의 칼에 죽을 뻔한 걸 당신 덕에 간신히 연명한 거니까요. 그 은혜를 떠올리면 당신 하는 말에 싫다고 할 수는 없지요. 마리교에 귀의할지 안 할지는 아가씨의 뜻에 달렸습니다만 오랜만에 당신을 뵙는다면 아가씨도 싫다고는 안 할 테지요. 어찌 됐든 제 힘이 닿는 한 대면할 수 있도록 꾀해보겠습니다."

 

        스물넷

 

 조카 입을 통해 그 밀담 이야기를 들은 건 그로부터 사나흘 쯤 지난 어느 아침의 일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사람이 많은 저택의 사무라이 대기소도 그때는 저희 둘뿐이었고 눈부신 아침 햇살이 드리운 매화나무의 푸른 잎 사이로는 시원한 바람이 슬슬 움직이려 하는 가을 정취를 돋구곤 했지요.

 그 이야기를 마친 제 조카는 한 층 더 목소리를 낮추고는

 "그 마리시 스님이란 사람이 어떻게 아가씨를 아는지는 저도 신기했습니다만 어찌 됐든 그 스님이 아가씨를 뵙게 되면 이 저택 나리에겐 생각지도 못한 흉변이라도 일어날 듯한 불길한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사안이 이러하니 나리께 올려도 결코 진지하게 받아 들이시지 않겠지요. 해서 저는 제 독단으로 그 스님과 아가씨를 못 만나게 하려는데 숙부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야 나도 그런 괴이한 텐구 스님과 아가씨가 만나는 게 내키지는 않지. 허나 너도 나도 나리 옆을 지켜야 하니 니시토인 저택만 경호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느냐. 허면 네가 그 스님이 아가씨께 못 다가가게 한다 해본들――"

 "바로 그점입니다. 저희는 아가씨의 생각을 알 겨를이 없고 하물며 그곳에는 헤이다유란 영감도 있으니까요. 마리시 스님이 니시토인 저택을 찾는 건 쉽사리 방해할 수 없지요. 허나 시조 강가에 위치한 오두막에선 그 스님이 매일 밤 잠에 들지 않습니까? 제가 생각하기론 두 번 다시 그 스님이 교토에 오지 못하게 쫓아내는 것도 가능할 듯합니다."

 "그렇다 한들 그 오두막서 계속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느냐. 네가 하는 말이 영 수수께끼 같은 구석이 있어 나 같은 늙은이는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구나. 너는 대체 그 마리시 스님을 어떻게할 생각인 게야."

 제가 수상쩍다는 양 그렇게 물으니 제 조카는 자못 누가 듣는 걸 경계라도 하듯이 매화나무의 어린잎 그림자가 드리운 방 전후에 눈길을 주며 제 귀에 입을 얹더니

 "어쩔 거냐니요. 뻔한 이야기지요. 밤 늦은 시각에라도 시조 강가로 숨어 들어 그 스님의 목숨을 끊는 겁니다."

 그 말에는 아무리 저라도 어처구니가 없어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조카는 젊은이 다운 강한 고집으로

 "무얼, 고작해야 밥 빌어 먹고 사는 스님입니다. 설령 돕는 사람 둘셋 있을지언정 해치우는 건 일도 아니지요."

 "하지만 그건 너무 무법천지 아니더냐. 그야 그 마리시 스님이란 자가 사종문을 퍼트리며 걷기는 하나 그 이외엔 마땅한 죄 하나 없는 사람이야. 허면 그 스님을 죽이는 건 설령 무사히 죽이더라도――"

 "아뇨, 이유 따위야 얼마든지 붙일 수 있지요. 그보다 만에 하나라도 그 스님이 그 천상황제인지의 힘을 빌려 나리나 아가씨를 저주하는 일이라도 생긴다 생각해보세요. 숙부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무얼 위해 녹봉을 받고 있겠습니까."

 제 조카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제 말은 거의 귀에도 안 들어오는 듯 했지요――그러자 마침 그때 다른 사무라이가 부채 소리를 내면서 두세 명 가량 들어왔습니다. 기어코 그 이야기도 적당히 흘려넘길 수밖에 없었지요.

 

        스물다섯

 

 그로부터 또 사나흘 지난 걸로 기억합니다. 어느 달빛 드는 밤의 일인데 저는 조카와 함께 코타케에서 시조 강가로 숨어 들었죠. 저는 그때에도 아직 그 텐구 스님을 죽일 생각도 없었고 또 죽이는 게 좋다는 생각도 안 했습니다. 하지만 조카가 제 생각을 버리지 않는 데다가 조카를 혼자 보내는 게 어쩐지 묘하게 마음에 걸렸기에 기어코 저까지 나이값도 못한 채로 사철쑥 이슬에 젖으며 마리시 스님이 사는 오두막을 찾아가게 된 거지요.

 알다시피 그 강가에는 보기 갑갑한 비인들의 오두막이 몇 개나 이어져 있는데 지금은 여기에 많은 백병 거지들도 저희가 생각지도 못할 괴이한 꿈을 꾸면서 푹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저와 조카는 발소리를 죽인 채로 조용히 그 오두막 앞을 지났는데, 그때도 갈대벽 뒤편에선 단지 높은 코고는 소리만 들릴 뿐으로 온갖 곳이 조용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단 한 곳만 불씨가 타서 바람도 불지 않는 밤하늘에 하얗고 똑바른 연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 연기 끝이 띄엄띄엄 이어진 은하수와 하나로 이어진 걸 보면 마치 셀 수 없는 별부스러기가 교토 하늘에 기울어져 하나씩 떨어지는 소리마저 또렷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제 조카는 미리 확인해둔 걸 테지요, 가모가와의 자그마한 줄기에 맞아 있는 갈대 오두막 하나를 가리키고는 사철쑥 안에 선 채로 저를 돌아보며 '저거입니다'하고 한 마디만 했습니다. 모닥불이 아직도 내뿜는 희미한 불빛을 통해 보니 오두막은 다른 오두막보다 한 층 더 작았고 대나무 기둥도 석곡 지붕도 주변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옥상 위에는 나무 가지를 엮은 십자가 표시가 어두운 밤중에도 잘 보였지요.

 "저건가."

 저는 힘 없는 목소리로 대단할 거 없이 대답했습니다. 실제로 저는 그때도 아직 마리시 스님을 죽일지 죽이지 않을지 뚜렷한 결단이 없었던 거지요. 하지만 그러는 사이 제 조카가 이번에는 돌아보는 기미도 없이 가만히 그 오두막을 지켜보면서

 "맞습니다" 쌀쌀맞게 대답하는 목소리를 듣자 이윽고 칼에 피를 묻힐 때가 왔다는 무어라 말못한 심정에 저도 모르게 온몸이 떨렸습니다. 그러자 조카는 일찍부터 준비를 마쳤는지 칼 코등을 정성스레 밀고는 제게는 눈길 조차 주지 않고서 강가를 가르며 굶주린 거미처럼 소리도 없이 오두막 밖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아뇨, 모닥불의 희미한 빛이 들어오는 벽에 가만히 몸을 붙인 채로 안을 살피는 제 조카의 뒷모습은 어쩐지 커다란 거미 같은 꺼림칙한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스물여섯

 

 하지만 이런 상황이 된 마당에 저라고 가만히 손 붙들고 지켜볼 수만은 없는 법이지요. 허니 스이칸 소매를 뒤로 묶고는 저 또한 조카 뒤를 쫓아 오두막 밖에 기대어 짚 사이의 안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먼저 눈에 들어 온 건 그 장대에 걸어 걷는 여보살의 그림이었습니다. 그 그림이 지금은 건너편 벽에 걸려서 형태는 또렷하지 않았습니다만 입구에서 새어들어오는 모닥불 빛을 받아 아름다운 금빛 고리가 마치 월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또 그 앞에 누워 있는 건 낮동안 쌓인 피로에 기진맥진한 마리시 스님이었지요. 또 그렇게 잠든 모습을 반쯤 덮고 있는 옷 같은 게 보였는데 이는 모닥불을 등지고 있어 소문으로 듣는 텐구 날개인지 아니면 천축에 있다는 불쥐옷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희는 어떤 말도 없이 양쪽에서 스님의 오두막을 둘러싸고 조용히 검을 뽑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처음부터 묘하게 마음에 걸렸던 걸 테지요. 그 박자에 손이 꼬여서 저도 모르게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지 뭡니까. 그러자 제가 마음 속으로 놀랄 새도 없이 이제까지 숨도 쉬지 않았던 마리시 스님이 곧장 몸을 일으키는 기척을 보이며

 "누구냐"하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조카는 물론이요 저마저도 호랑이와 같은 기세로 그 스님을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앞과 뒤에서 일제히 하얀 칼날을 뻗으며 오두막 안으로 들이 닥쳤지요. 그 칼날이 맞닿는 소리, 대나무 기둥이 부러지는 소리, 벽이 갈라지는 소리――그런 소리가 격하게 한 번 울린다 싶었더니 곧장 조카가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나며 "이 자식 놓칠 거 같으냐"하고 검을 휘두르며 괴로운 목소리로 신음했습니다. 그 목소리에 놀란 저도 빠르게 뜀박질하며 아직 불타는 모닥불에 건너편을 보니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가루가 된 오두막 앞에는 그 꺼림칙한 마리시 스님이 옅은색 옷자락을 어깨에 걸친 채 마치 원숭이처럼 자세를 낮추며 그 십자가 호부를 이마에 얹어 저희의 행동을 보고 있지 뭡니까. 이를 본 저는 곧장 검을 휘두르겠다며 서둘렀습니다만 어떻게 된 건지 몸을 낮춘 스님 주위에는 자연스레 어둠이 깊어지는 모양인지 간단히 뛰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혹은 그 어둠 속에 무어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소용돌이 치는 듯해서 검을 정확히 휘두를 수 없었다 해야 할까요. 이는 조카도 마찬가지였는지 이따금 신음하듯 소리쳤습니다만 칼날은 한 사코 그 머리 위에서 어지럽게 돌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스물일곱

 

 그런 가운데 마리시 스님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십자가 호부를 좌우로 흔들며 폭풍이 부는 듯한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야 이 놈들아, 목숨 아까운 줄 몰라서 천상황제의 위덕을 무시할 셈이더냐. 너희의 그 탁한 눈으론 이 마리시 스님의 몸이 마냥 검은 법의 하나만 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듯하나 진정으론 갖은 제천동자의 수를 빌어 백만의 천군이 지키고 있느니라. 허면 손에 든 그 칼날을 휘둘러 스님 뒤를 따르는 성스러운 차마건촉과 힘을 겨뤄보거라"하고 비웃듯이 매도했습니다.

 본래 이렇게 겁을 주어도 쉽게 벌벌 떨 저는 아닙니다. 조카와 저는 이를 듣곤 마치 줄에서 풀린 소처럼 양쪽에서 스님을 향해 달려 들었죠. 아니, 베어 들려 했다고 말해야 옳을까요. 왜냐하면 저희가 검을 휘두른 순간에 마리시 스님이 십자가 호부를 머리 위에서 흔들자 그 호부의 금색이 번개처럼 공중으로 날아가 곧장 우리 앞에 무서운 환영을 드리웠기 때문입니다. 아아, 그 무서운 환영은 도무지 저 같은 것의 입으로는 이야기할 수 없을 테죠. 만약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건 아마 기린 대신에 말을 가리키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더러다도 굳이 말하자면 당초 그 호부가 공중으로 뻗은 박자에 저는 강가의 어둠이 갑자기 마리시 스님의 뒤에서만 갈라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자 그렇게 어둠이 갈라진 곳에는 수를 알 수 없는 불꽃말이나 불꽃 수레가 용이나 뱀 같은 기이한 모습과 함께 비보다 빠른 불똥을 튀기면서 당장이라도 저희 머리 위에 떨어질 것처럼 하늘에 흘러 넘칠 듯 떠올랐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그 가운데 깃발 같은 것이나 검 같은 것이 수천수백 개로 휘황찬란이며 거기서 마치 태풍을 맞은 바다 같은 무시무시한 소리가 강가의 돌마저 날려버릴 기세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걸 등진 채로 역시나 옅은색 옷을 어깨에 걸치고 십자가 호부를 뻗은 채로 엄숙히 선 스님의 기이한 모습은 정말로 어딘가의 대텐구가 지옥 밑바닥에서 군사를 끌고 이 강가 안에 내려온 것만 같았지요――

 저희는 그 괴기함에 저도 모르게 검을 놓치고서 머리를 부여잡고 좌로우로 자세를 낮추었습니다. 그러자 그 머리 위로 마리시 스님의 매도 소리가 또 날카롭게 울려 퍼지며

 "목숨이 아깝다면 그대들 모두 천상황제께 사과하라. 그렇지 않으면 호법백만의 성웅들이 그대가 선곳에 시체를 쌓으리라"하고 번개처럼 소리쳤습니다. 그 무서움, 그 박력은 이제 와 생각해도 몸이 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저도 기어코 참을 수 없어 합장한 손을 위로 뻗으며 눈을 감은 채 머뭇머뭇 '나무아미타불 천상황제'라 소리쳤지요.

 

        스물여덟

 

 그 후의 일은 말하는 것마저 부끄러우니 되도록 짧게 하겠습니다. 저희가 천상황제에게 기도를 올린 덕인지 그 무서운 환영은 금세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신 커다란 칼소리가 들려 일어난 비인들이 사방에서 저희를 둘러쌌지요. 그게 또 대다수는 마리교 신자였으니 저희는 검을 버린 걸 다행으로 여겨 여차하면 당장이라도 달려드는 걸 주저하지 않을 기세로 입을 모아 굉장한 매도를 쏘아내며 마치 함정에 빠진 여우라도 보는 듯이 남자고 여자고 겹쳐져 원망스레 우리를 바라보는 그 얼굴을 들여다 보려 했습니다. 그 몇 명인지 모를 백나 얼굴이 새로 불타는 모닥불 빛을 받아 밤하늘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후좌우서 목을 뻗고 있는 꺼림칙함은 도무지 이 세상 걸로 느껴지지 않았지요.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마리시 스님은 천천히 목소리를 높여 비인들을 진정시키곤 그 괴이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 앞에 다가와 천상황제의 위덕이 얼마나 감사한지 열심히 피력했지요. 단지 그 동안에도 제가 마음에 걸렸던 건 그 스님의 어깨에 걸려 있던 아름다운 옅은색 옷이었습니다. 하기사 옅은색 옷이란 게 어디 세상에 하나둘이겠냐마는 혹시 저건 나카미카도 아가씨의 물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요. 만일 그렇다면 아가씨는 어느 틈엔가 저 스님과 만난 걸 테고 어쩌면 마리교에도 귀의했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생각한 저는 상대가 하는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실수로라도 그런 기색을 보이면 또 무서운 꼴을 당할지 모를 일이지요. 심지어 마리시 스님의 상태를 보아하니 저희가 천상황제를 모독한 게 미운 듯하지 야습을 한 거라곤 생각하지 않은 듯합니다. 다행히 호리카와 도련님을 모시고 있단 것도 모르는 눈치였으니 그 옅은색 옷에 되도록 눈길을 주지 않으며 강가 모래 위에 앉은 채로 일부러 조용히 스님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척 했습니다.

 그러자 그게 참으로 기특하게 보인 걸 테죠. 한참 설교를 듣고 있자니 마리시 스님의 얼굴색이 밝아지며 그 십자가 호부를 저희 위로 뻗고는

 "그대들의 잘못은 무지몽매함 때문이니 천상황제도 용서해주시리라. 허면 나도 더 이상은 화내고 벌줄 수는 없는 노릇. 언젠가 또 오늘밤 야습이 인연이 되어 그대가 마리의 가르침에 귀의할 일도 있을 테지. 허면 그 때가 올 때까진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나도 좋다"하고 상냥하게 말해주었습니다. 물론 그때에도 비인들은 당장이라도 드잡이질을 할 법한 무서운 기세를 보여주었습니다만 이 때도 스님의 일갈 한 번으로 순순히 우리가 돌아갈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러니 저와 조카는 검을 회수하는 시간도 아깝다는 양 제빨리 시조 강가에서 도망쳤습니다. 그때 제 심정은 기쁜지 슬픈지 내지는 아쉬운지 어떻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하니 강가가 멀어져 단지 모닥불이 일렁이는 주위에 백라 환자들이 개미처럼 모여 무언가 괴이한 노래를 부르는 게 희미하게 귀에 들어왔을 때에도 우리는 서로의 얼굴조차 보지 않고 조용히 숨소리만 내쉬며 걸어갔습니다.

 

        스물아홉

 

 그 후로 저희는 일이 있을 때마다 이마를 모아 마리시 스님과 나카미카도 아가씨의 행보를 서로 추측하며 어떻게든 그 텐구 스님을 떼어내고 싶다고 여러모로 회의를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그 무서운 환영을 생각하면 명안도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지요. 물론 조카 쪽은 저보다 젊으니 아직 집요한 초지일관을 버리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선 헤이다유에게 한 것처럼 사람을 모아 다시 한 번 니조 강가의 오두막을 덮칠 생각을 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저희는 또 생각지도 않게 마리시 스님의 신비한 법력에 놀라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건 벌써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할 적이었습니다. 나가오의 릿시 님이 아미다도를 세우게 되어 그 공양을 받을 때의 일이지요. 그 아미다도도 지금은 불타버렸습니다만 나라의 좋은 소재를 모은 데다가 고명한 장인들만 모아 막대한 돈을 들여 만든 것이니 규모가 커져도 그 장엄함이 어느 정도일지는 대충 추측이 가실 테지요.

 별개로 그 공양 당일은 윗사람들은 물론이요 여종들도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모였으니 동서 회랑에 모인 수많은 수레도 그렇고 그 회랑을 둘러싼 녹색 발들도 그렇고, 또 발에서 나온 사철쑥, 길경, 백목련 등의 옷자락도 그렇고 맑은 햇살을 받은 경내의 아름다움은 마치 연꽃옥토의 경치를 보는 듯했습니다. 또 복도에 둘러싸인 정원 연못에는 빈틈 없이 홍련백련 조화가 심어져 있고 그 사이를 용배 한 척이 비단으로 된 돛을 칠렁이며 남만옷을 입은 아기의 노질을 따라 미묘한 음악 소리를 내며 서서히 움직이는 것도 눈물이 나올 정도로 존귀하게만 보였습니다.

 하물며 정면을 보면 건물을 지키는 개들이 눈을 빛내고 있으며 그 뒤로는 향이 좋은 연기가 오르는 가운데 여래를 시작으로 세지관음의 모습이 황금 얼굴이나 옥으로 된 영략을 드러내는 모습은 또 한 층 더 와닿는 게 있었지요. 그런 불전 앞 정원에는 예식을 위한 그릇들 사이로 보는 것도 눈부신 자개 아래로 강사독사의 자리가 놓여 있었습니다만 공양식에 모인 몇십 명의 스님도 적색과 푸른색이 섞인 화려한 법의를 입고서 경전을 읽고 방울을 흔들고 또 전단수 향 따위를 그 뒤로 끝없이 펼쳐진 가을 하늘에 일렁일렁 퍼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런 공양이 한창이던 와중에 네 방향의 문밖에 무리지어 안을 보려던 사람들이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술렁이기 시작하더니 마치 바람 부는 바다처럼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서른

 

 그 소란을 본 경비대가 재빨리 달려 가 높게 활을 뻗으며 문으로 들이 닥치는 사람들을 때려눕혔습니다. 하지만 그 인파 속을 가르며 기이한 차림의 스님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니, 경비대장은 곧장 활을 버리고 길을 가로 막긴 고사하고 그대로 자리에 몸을 낮추어 마치 높은 사람을 대하듯이 예의를 다 하지 뭡니까. 바깥 소동에 정신이 팔려 술렁이던 문이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또 '마리시 스님, 마리시 스님'하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마치 갈대를 쓰다듬는 바람처럼 어디선가 들려왔습니다.

 마리시 스님은 오늘도 여느 때처럼 검은 법의 어깨로 긴 머리를 흩날리며 황금 십자가 호부를 가슴춤에서 빛내며 다리마저 보일 법한 추워 보이는 맨발로 나타났습니다. 그 뒤로는 여느 때처럼 여보살 깃발이 가을 햇살 속에 뻗어 있었는데 이걸로 어떻게 된 건지 대충 알 법도 하겠지요.

 "여러분께 소개하오. 나는 천상황제의 칙명을 받아 우리 일본에 마리교를 퍼트리려는 마리시 스님이라 하오."

 그 스님은 느긋이 경비대장의 인사에 답하며 모래를 깐 정원 안으로 거침 없이 걸어와 엄숙히 선언했습니다. 그걸 들은 사람들은 또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만 검비위사만은 생각지 못한 거친 일에 놀라면서도 제 역할을 잊지 않은 걸 테지요. 두세 명 가량이 제 무기를 들고서 무슨 횡포냐고 큰 목소리로 나무라며 그 스님을 향해 달려가 네 방향에서 붙들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시 스님은 원망 섞인 눈초리로 그들을 보며

 "때릴 거면 때리고 잡을 거면 잡으라. 허나 천상황제의 벌이 내릴 게야."하고 비웃듯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때 가슴에 차고 있던 십자가 호부가 햇살을 받아 눈부신 빛을 내뿜는 동시에 왜인지 검비위사들이 무기를 버리고 낮번개에 맞기라도 한 것처럼 스님 발밑에서 구르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어떠한가. 천상황제의 위덕이란 게 지금 본 것과 같네."

 마리시 스님은 가슴가의 호부를 벗고는 동쪽과 서쪽의 복도를 향해 번갈아 보여주면서

 "본래 이런 영험함이란 이상할 것도 없지. 애당초 천상황제는 이 천지를 만드신 유일무이의 신이시니 말이야. 이 신을 알지 못하기에 그대들은 이리도 신앙과 충성을 다 하며 아미타불여래 같은 요마에게 공양을 올리는 게지."

 이 폭언을 참다 못한 걸 테죠. 아까부터 경독을 멈추고 멍하니 사태를 바라보던 스님들이 술렁이기 시작하더니 '때려 죽여라', '붙잡아라'하고 매도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자리를 벗어나 마리시 스님을 혼내주려는 자는 없었습니다.

 

        서른하나

 

 그러자 마리시 스님은 태연히 그 스님들을 노려보며

 "잘못을 알고도 반성하는 걸 거리끼지 말라. 당나라 성인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한 번 부처가 요마임을 알았다면 어서 마리교에 귀의하여 천상황제의 위덕을 칭송해야 마땅한 법. 만약 마리시 스님의 말이 의심되어 부처가 요마인지 천상황제가 사신인지 구분 가지 않는다면 한 번 법력을 겨루어 어느 쪽이 올바른지 분별해보자"하고 거친 목소리를 냈습니다.

 하지만 검비위사들이 눈앞에서 정신을 잃은 꼴이 보이지 않습니까. 허니 발 안쪽도 발 바깥 쪽도 물이라도 맞은 것처럼 목소리를 삼키고서 스님들 중 누구 하나 나아가 마리시 스님의 법력을 시도해보려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나가오의 스님들은 물론이요 그날 처음 본 야마노자스나 닌나지의 스님들도 현인신만 같은 마리시 스님의 모습에 혼이 쏙 빠져 코가 꺾인 걸 테죠. 공양을 위한 정원은 한 동안 용주 음악 소리도 끊겨서 조화 연꽃만에 들어오는 햇살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습니다.

 마리시 스님은 그 사실에 한 층 더 힘을 얻은 걸 테지요. 십문자 호부를 뻗으며 텐구처럼 비웃더니

 "이거 참 우습구나. 남도북령의 성승들도 적지 않아 보이는데 누구 하나 이 마리시 스님과 법력을 비교하려는 자가 나타나지 않을 줄이야. 허면 천상황제를 시작으로 제천동자의 위신광에 겁을 먹어 귀천노야를 막론하고 우리 마리의 법문에 귀의하고 싶은 걸로 보이는구나. 허면 이 자리에서 먼저 야마노사즈에서 한 사람 한 사람 간정의 의식을 해볼까"하고 위세 높게 매도했습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미처 끝나기 전에 서쪽 복도에서 한 명 유유히 정원을 내려오는 기특한 스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금빛 치장, 수정 염주, 그리고 하얀 두 눈썹――얼핏 보기만 해도 하늘이 내린 공덕무량의 이름을 떨친 요카와의 스님이란 걸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요. 그 스님은 나이는 있었지만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몸을 천천히 옮기면서 마리시 스님의 눈앞에 걸음을 멈추더니

 "이 자식, 그대가 지금 말한 것처럼 이 공양 자리에는 법계의 수 모를 용상들이 모여 있다. 허나 쥐에게 던질 그릇도 아까운 마당에 누가 그대 같은 무례한 것과 법력의 높고 낮음을 가르겠느냐. 허면 그대는 먼저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어서 이 자리서 물러나야 마땅하거늘 이리도 신통함을 자랑하는 걸 보니 근래에 보기 드문 지독한 녀석이구나. 보아하니 그대는 어딘가에서 금강사선의 법도를 배워온 외도의 스님으로 보이는구나. 허면 하나는 삼옥의 영험함을 보이기 위해, 또 하나론 그대의 마록에 이끌로 무간지옥에 떨어지려는 중생을 위해, 늙은 몸이나 내 법험함을 겨루기 위해 이리도 나섰다. 설령 그대의 환술이 마치 귀신을 쓰는 것과 같아도 호법의 가호를 받은 이 늙은이에겐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할 테지. 허면 그대야말로 나의 이 기이하고 특이한 법력을 고스란히 받게 되리라"하고 거침 없이 쏘아붙이고는 곧장 인을 맺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서른들

 

 그러자 그렇게 인을 맺은 손 안에서 한 줄기 하얀 기운이 뻗어 하늘로 향한다 싶더니 그 스님의 머리 위에 보개와 같은 안개 한 무리가 나타났습니다. 아니, 안개라 하기에는 그 신비한 영기 모양이 아직 충분히 전해지지 않을 테지요. 그걸 만약 안개라 부른다면 그 방향에 있는 천장은 흐려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그 영기는 단지 허공에 모종의 형태가 보이지 않는 응어리만 잡힐 뿐으로 맑은 하늘색마저 낭랑히 드리워 있었습니다.

 정원을 두르고 있던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 영기에 놀란 걸 테죠. 또 어디서 부는 건지 모를 바람 같은 술렁임이 발을 움직였습니다만 그 목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인을 다시 맺은 요코가와의 스님이 천천히 살이 남은 턱을 움직여 비밀의 주문을 외우자 곧장 그 영기 속에서 몽롱한 두 금갑신이 용맹히 금강저를 휘두르며 그림자와 같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것도 있다 싶으면 있고 없다 싶으면 없는 환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공중을 밟으며 비무하는 모습은 지금도 마리시 스님의 뇌위에 일격을 가했겠다 싶을 정도의 신위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마리시 스님은 여전히 오만한 얼굴로 가만기 금갑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썹 하나 꿈틀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굳게 다문 입술 주위에선 여느 때와 같은 꺼림칙한 웃음의 그림자가 자못 비웃고 싶은 걸 참는 듯이 드리워 있었지요. 그러자 그 대담한 행동에 화가 난 걸 테죠. 요코가와 스님은 불쑥 인을 풀고서 수정 염주를 휘두르며

 "갈"하고 큰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그 목소리에 반응한 금곤신이 영기와 함께 공중에서 내려오는 것과 아래에 있던 마리시 스님이 십자가 호부를 이마에 얹으며 무어라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친 건 거의 동시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박자에 순식간에 무지개 같은 빛이 공중에 올랐습니다만 금곤신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신 스님의 수정 염주가 중앙에서 두 쪽나더니 구슬이 마치 안개처럼 네 방향으로 튀었습니다.

 "그대의 수법은 이미 보였다. 금강사선의 법도를 배우다니, 그러니 고칠 도리가 없지."

 승리를 확신한 듯한 마리시 스님은 목소리를 높여 주위 사람들의 목소리를 앞도하며 높게 이리 매도했습니다. 그 목소리를 받은 요코가와 스님이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테지요. 만약 그때 제자들이 앞다투어 안으러 오지 않았다면 아마 만족스레 정원으로 돌아가시지 못했을 겁니다. 그 사이 마리시 스님은 더더욱 자랑스럽다는 양 가슴을 펴고

 "요코가와의 스님은 하늘이 내린 법영무상의 대화상으로 알려졌으나 이 스님이 보기에도 천상황제 위업도 허투루 귀신을 사역하는 말로 다 못할 땡중인 듯하구나. 허면 부처는 요마이며 석가의 가르침을 따르는 너희는 지옥의 업이란 게 어디 마리시 스님 하나의 착각이겠느냐? 이제라도 마리교에 귀의하고 싶다면 그대들을 거절하지 않는다. 몇 명이든 좋으니 이 자리서 천상황제의 위덕을 직접 보라"하고 사방을 노려보며 말했습니다.

 그때 또 동쪽 복도에서

 "그래, 좋다"하고 시원스러운 대답이 들리더니 주위를 떨치며 유유히 정원에 나타난 건 다른 사람도 아닌 호리카와 도련님이셨습니다.

(미완)

(다이쇼 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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