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 번역/에도가와 란포

천장 위를 걷는 자 - 에도가와 란포

by noh0058 2021. 2. 27.
728x90
반응형
SMALL

1

 

아마 그것은 일종의 정신병이기도 했을 겁니다. 고다 사부로는 어떤 놀이도, 어떤 직업도, 무엇을 보아도 도무지 이 세상이 즐거워지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나온 이후로――그 학교에서도 일 년에 며칠 정도 밖에 출석하지 않았습니다만――할 수 있을 법한 직업은 전부 해본 것입니다. 하지만 그야말로 평생을 바칠만한 일은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 그를 만족시킬만한 직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길어봐야 일 년, 짧으면 한 달 단위로 직업을 바꾸어 갔습니다. 그리고 끝내 깨달은 것일까요. 이제는 다음 직업을 찾는 법도 없이 말 그래도 아무것도 않고 재미도 없는 그날그날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놀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카루타, 당구, 테니스, 수영, 등산, 바둑, 장기, 심지어는 각종 도박까지. 이곳에는 도무지 적어낼 수 없을 정도의 놀이란 놀이는 하나도 남김없이, 오락 백과전서 같은 책까지 구매하며 찾아보았던 것입니다. 물론 직업과 마찬가지로 이렇다 할 게 없어서 항상 실망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여자"와 "술"이라는 어느 인간이라도 평생 질리지 않는 굉장한 쾌락이 있지 않은가. 여러분께서는 분명 그렇게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의 고다 사부로는 신기하게도 그 둘에도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체질에 맞지 않는지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못 했고, 여자 쪽은 물론 그런 욕망이 없는 건 아니며 상당히 놀기도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 때문에 살아갈 보람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런 재미없는 세상에서 오래 살아갈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싶습니다."
 그쯤 되니 사부로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생명을 아까워하는 본능만은 갖추고 있었던 것인지 스물다섯 살이 된 지금까지 "죽는다죽는다" 타령을 하면서도 끝내 죽지는 못 한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부모가 한 달에 얼마씩 보내주는 그는 직업 없이도 생활에 지장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런 안정감이 그를 이렇게 제멋대로 굴게 만든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부로는 이윽고 그 돈으로 하다못해 조금이라도 재밌게 살자고 나쁜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를테면 직업이나 놀이나 마찬가지로 빈번히 숙소를 바꿔 가는 것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온 도쿄의 하숙집을 한 집도 빠짐없이 알고 있었습니다. 한 달이나 보름쯤 지나서는 곧장 다음 하숙집으로 거처를 바꾸는 것입니다. 물론 그중에는 방랑자처럼 여행을 하며 걷던 적도 있었습니다. 혹은 자못 신선이라도 된다는 양 산 깊은 곳에 틀어박힌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도심에 익숙한 사부로에게는 한적한 시골에 오래 있을 수 없었습니다. 잠깐 여행을 떠나 있다가도 어느 틈엔가 도심의 등불에 인파에 이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도쿄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하숙집을 바꾼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번에 그가 엉덩이를 붙인 것은 토에이칸이라는 이제 막 신축하여 아직도 벽에 온기가 남은 듯한 하숙집이었습니다. 사부로는 이곳에서 굉장한 즐거움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그런 사부로의 새로운 발견에 연관된 어떤 살인 사건을 주제로 삼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진행하기 전에 주인공 고다 사부로가 아마추어 탐정 아케치 코고로――이 이름은 아마 아실 거라 봅니다――와 지인이 되어 이제까지 도통 깨닫지 못 했던 "범죄"라는 운율에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잠시 이야기해둬야 할 듯합니다.
 두 사람이 지인이 된 계기는 어떤 카페였습니다. 두 사람이 우연히 자리를 함께하게 되었는데, 그 때 동석한 사부로의 친구가 아케치를 알고 있어 소개해준 것이었습니다. 이때 사부로는 아케치의 총명한 외모나 말투 몸가짐 등에 매료되어 그로부터 한동안 이따금 아케치를 찾게 되고, 때로는 아케치가 사부로의 하숙집에 놀러 오는 사이가 된 것입니다. 아케치는 어쩌면 사부로의 병적인 성격에――一일종의 연구 소재로서――관심을 가진 것일지도 모르지만, 사부로는 아케치가 들려주는 매력적이고 수많은 범죄담을 듣는 것을 다른 뜻 없이 기뻐하였습니다.
 동료를 살해해 실험실 화로의 재로 만든 웹스터 박사. 수많은 나라의 언어를 통역하고 언어학상 대발견까지 해낸 유진 에아람의 살인죄. 소위 보험 사기꾼이자 뛰어난 문예 비평가이기도 했던 웨인라이트. 소아의 엉덩이 살을 삶아 장인어른의 병을 치료하려 한 노구치 오사부로. 수많은 여자를 여종으로 삼아 죽이려 한 소위 블루베야도의 란돌이나 암스트롱 등의 잔혹한 범죄담 같은 것이 지루해하던 고다 사부로를 얼마나 기쁘게 했을까요. 아케치의 뛰어난 언변으로 들으니 그러한 범죄 이야기도 마치 아름다운 색의 두루마리만 같이 끝을 모르는 매력을 품고 사부로의 눈앞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아케치를 알게 된 후 두세 달 가량은 이 밋밋한 세상을 잊어 가는 듯한 사부로였습니다. 그는 범죄에 관련된 수많은 책을 구입하여 매일 같이 탐독했습니다. 그런 서적 중에는 에드거 앨런 포, 호프만, 혹은 가보리오나 부아고베니 그 외에 다양한 탐정 소설도 섞여 있었습니다. "아아, 이 세상에는 아직 이런 재미 있는 게 남아 있었나." 그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닫을 때마다 후우 한숨을 내쉬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자신 또한 그런 범죄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눈부시고 격한 놀이(?)를 해보고 싶다고 무서운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부로라도 그렇게 법률상 죄인이 되는 것만은 아무리 생각해도 싫었습니다. 그는 아직 부모님이나 형제, 친척지기 등의 슬픔이나 굴욕마저 무시하면서까지 즐거움에 잠길 용기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책들에 따르면 아무리 교묘한 범죄라도 반드시 어긋난 곳이 있어서 그게 발각의 원인이 되며, 평생 경찰의 눈에서 벗어나는 건 아주 극히의 일부를 빼면 전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부로에게는 그게 무서울 따름이었습니다. 사부로의 불행은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을 느끼지 못 하는 주제에 하필이면 "범죄"에만 끝을 모르는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층 더 큰 불행은 발각의 두려움 탓에 그 "범죄"를 저지르지 못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윽고 사부로는 손에 넣은 책을 전부 읽고는 "범죄"의 흉내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흉내일 뿐이니 처벌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사부로는 진작 질려버린 아사쿠사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장난감 상자를 짊어매고 그 위로 수많은 그림 도구를 늘어 트려 놓은 듯한 아사쿠사의 유원지는 범죄 애호자에게 더할 나위 없는 무대였습니다. 사부로는 아사쿠사로 외출해서는 영화관과 영화관 사이의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법한 좁은 통로나 공동 화장실의 뒤편 등에 자리한, 아사쿠사에도 이런 여유가 있나 싶어지는 묘하게 뻥 뚫린 공터를 찾아 즐겼습니다. 그리고 범죄자가 동류라 확신케 하기 위한 거라도 된다는 것처럼 하얀 먹으로 주변 벽에 화살표를 그리고 다니거나 돈이 많아 보이는 보행자를 발견하면 소매치기라도 된 것마냥 한없이 뒤를 쫓아보거나 묘한 암호문을 적은 종이를――항상 무서운 살인 사건과 얽혀 있었습니다――공원 벤치의 빈틈 사이로 꽂아놓고 수풀 뒤에 숨어 누군가가 그걸 발견하는 걸 기다리거나 그 외에 비슷한 놀이를 즐기며 혼자 즐거워했습니다.
 또는 이따금 변장을 하며 마을 사이를 오갔습니다. 노동자가 되어보고, 거지가 되어보고, 학생이 되어보는 둥 다양한 변장 중에서도 여장이 사부로의 난병을 가장 기쁘게 했습니다. 때문에 사부로는 옷이나 시계를 팔아 돈을 만들어 고가의 가발이나 여자 옷 등을 구입했습니다. 시간을 듬뿍 들여 취향인 여자 모습을 갖추고는 머리 위로 외투를 걸쳐 밤을 틈타 하숙집을 나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당한 장소에서 외투를 벗고 때로는 한산한 공원을 훌쩍이거나 때로는 이미 잘 시간인 영화관에 들어가 일부러 남자 자리에 섞여 보거나, 끝내는 지독한 장난까지 나섰습니다. 복장을 통한 일종의 환각으로, 마치 자신이 달기 오하쿠나 우와바미 오요시 같은 독부라도 된 것처럼 다양한 남자들을 자유자재로 희롱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범죄" 흉내는 어느 정도 사부로의 욕망을 만족시켜주었고, 이따금 조금 재미난 사건으로 번져 당분간은 충분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흉내는 어디까지나 흉내일 뿐. 위험하지 않은만큼――관점에 따라 "범죄"의 매력은 그런 위험함에 있는 것이니까요――흥미도 깊지 않았고 한사코 사부로를 기쁘게 해주지는 않았습니다. 대략 석 달쯤 지났을까요. 사부로는 이런 즐거움과도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나 이끌리던 아케치하고도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2

 

 이상의 이야기를 통해 고다 사부로와 아케치 코고로의 교류 및 사부로의 범죄 취미 등은 이해하셨을까요.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토에이칸이라는 신축 하숙집에서 고다 사부로가 어떤 즐거움을 발견했는가. 그런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사부로가 토에이칸의 건축이 끝나는 걸 기다려 가장 먼저 자리를 옮긴 것은, 그가 아케치와 교제하기 시작하여 1년가량이 지났을 즘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미 "범죄" 흉내에는 관심을 잃은지 오래였죠. 그렇다고 해서 달리 대신할 것도 찾지 못 해서, 사부로는 매일 같이 지루하고 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토에이칸으로 옮겼을 당초에는 새로운 친구도 생겨 어느 정도 기분이 풀렸습니다만, 역시 인간이란 참 지루하기 짝이 없는 생물입니다. 어디를 가고 무엇을 보아도 비슷한 사상, 비슷한 표정, 비슷한 말을 반복하고 거듭하고 발표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모처럼 하숙집을 바꾸고 새로운 인물을 접해도, 일주일만 지나버리면 끝 모를 권태에 젖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토에이칸으로 옮긴지 열흘쯤 된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사부로는 지루한 나머지 문득 묘한 생각을 떠올린 것입니다.
 사부로의 방에는――그건 2층에 있었는데――저렴한 마루와 코노마의 옆에 단 칸 자리 벽장이 있었습니다. 그 내부 중앙쯤에는 벽장 폭을 꽉 매우는 튼튼한 선반이 놓여 위아래로 분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부로는 그 아래 칸에 옷가지를 수납하고 위 칸에 이불을 올려놓았는데, 한 번 이불을 꺼내 방 중앙에 까는 대신에 선반에 쌓아 올려 그 위에서 자보는 건 어떨까 싶었던 것입니다. 이제까지 지낸 하숙집이었다면 설령 벽장 안에 같은 선반이 있어도 벽이 지독히 더럽거나 천장에 거미줄을 쳐져 있어 도무지 그 안에서 잘 생각이 들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신축한지 얼마 되지 않은 토에이칸의 벽장은 아주 깔끔하고 천장도 새하얀 데다가 누렇고 매끈한 벽에는 얼룩 하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선반의 구조 탓인지 전체적인 구조가 어쩐지 배에서 사용하는 침대만 같아, 한 번 그곳에서 자고 싶다는 유혹마저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사부로는 바로 그날부터 벽장 안에서 자기로 했습니다. 토에이칸은 방별로 내부에서 문을 잠글 수 있어, 여종이 허락 없이 들어오는 일도 없었습니다. 사부로가 안심하고 기행을 거듭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렇게 막장 침대 삼아 보니 생각보다 더 느낌이 좋습니다. 이불 네 장을 겹쳐 깔고 그 위에 몸을 던져서는 눈 바로 위에 펼쳐진 천장을 바라보니 꽤나 독특한 풍미가 느껴졌던 것입니다. 벽장문을 닫고는 그 틈으로 새어 나오는 전기의 빛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자신이 탐정 소설 속 인물이 된 것만 같아 유쾌해졌습니다. 또, 문을 살짝 열고는 스스로의 방을 도둑이 다른 사람의 방이라도 훔쳐보는 기분으로 여러 격정적인 장면을 상상하며 바라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웠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사부로는 대낮부터 벽장에 들어가 직사각형 상자 같은 공간에서 좋아하는 담배를 뻑뻑 피우며 끝 모르는 망상에 젖고는 했습니다. 그럴 대면 닫힌 문 틈새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 벽장 안에서 불이라도 난 건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행을 이틀이고 사흘이고 반복하는 사이, 사부로는 또다시 묘한 걸 깨달았습니다. 쉽게 질려 하는 사부로는 사흘째 때쯤 되니 벽장 속 침대에 관심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금세 지루해져서는 벽이나 손이 닿는 천장 등에 낙서를 하고 있었는데, 문득 보니 머리 위 천장판 한 장이 못을 까먹기라도 한 것처럼 덜컹덜컹 움직이지 뭡니까. 어떻게 된 건가 싶어 손을 뻗어 들어 올려보니 위쪽으로 들어 올려져 버립니다. 묘한 것은 그 손만 떼면은 못 하나 박지 않았건만 마치 스프링이라도 달린 것처럼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위에서 누르고 있는 것만 같은 감각이었습니다.
 혹시 그 천장판 위에 무언가의 생물이, 이를테면 커다란 뱀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요. 사부로는 살짝 꺼림쩍어졌습니다만, 그대로 도망치는 것도 아쉽지 싶어 다시 한 번 손으로 밀어보았습니다. 그러니 덜컹하고 무거운 감각이 느껴지는 것은 물론이요, 천장판을 움직일 때마다 그 위에서 무언가가 데굴데굴하고 둔중한 소리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이상합니다. 사부로가 있는 힘껏 힘을 주어 천장판을 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위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습니다. 사부로는 곧장 몸을 옆으로 틀어 피했습니다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 무언가에 얻어맞아 크게 다칠 뻔했습니다.
"뭐야, 재미없게."
 하지만 떨어진 것을 본 사부로는 실망했습니다. 무언가 독특한 것은 아닐까 적잖이 기대하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메주돌을 작게 만든 듯한 돌덩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전등 공사를 할 적에 천장 위로 넘어갈 통로 삼아 천장판 한 장을 일부러 열어 놓았고, 그 틈으로 쥐 등이 들어가지 못 하도록 돌덩이로 막아 놓은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희극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희극이 계기가 되어, 고다 사부로는 어떤 굉장한 즐거움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부로는 한동안 자신의 머리 위로 열린 동굴 입구만 같은 그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천성적인 호기심이 발휘되어 대체 천장 위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머뭇머뭇 그 구멍에 고개를 넣어서는 사방을 둘러봅니다. 마침 아침일 적입니다. 천장 위는 불이라도 들어온 것처럼만 보였습니다. 무수한 틈새로 얇고 수많은 광선이 마치 크고 작은 탐조등처럼 천장 위 동굴을 비추어주어 제법 밝았던 것입니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옆으로 길게 뻗은 두텁고 비틀어진 뱀만 같은 마루대였습니다. 제아무리 밝아도 천장 위. 그리 멀리까지는 보이지 않는 데다가, 얇고 긴 하숙집 건물이니 실제로 긴 나무를 쓰긴 했겠지만 마치 저 너머가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멀리멀리 이어져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루대와 직각으로 뱀의 늑골쯤은 될 거 같은  들보가 천장의 경사를 따라 뾰족뾰족 튀어나와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웅장해 보이는 경치입니다만, 천장을 받치기 위해 들보에서 뻗은 무수한 봉이 마치 석회암 동굴에라도 온 것처럼 느끼게 한 것이었습니다.
"이거 멋진걸."
 한 번 천장 위를 둘러 본 사부로는 그만 그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병적인 사부로는 세간이 일반적으로 관심 가지는 것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 하면서, 일반인은 하찮아 볼 법한 무언가에 되려 말로 못 할 매력을 느끼고는 했습니다.
 그날부터 사부로의 '천장 위 산책'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가해지면 밤낮 구분 않고 도둑고양이처럼 발소리를 죽이며 마루대와 들보 위를 걷는 것이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이제 막 세운 건물이라 천장 위에 따라붙기 마련인 거미줄도 없을뿐더러 때나 먼지도 조금도 없었고, 쥐의 더러운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때문에 옷이나 손발이 더러워질 걱정도 없었습니다. 사부로는 셔츠 한 장만 입고서 천장 위를 활보했습니다. 시각도 마침 봄이라 천장 위라고 해서 덥거나 춥지는 않았습니다.

 

3

 

토에이칸의 건물은 하숙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앙에 정원을 두고 그 주변을 미음자의 건물로 둘러싸이는 형태였습니다. 따라서 천장 위쪽도 같은 형태로 쭉 이어져 있어 막다른 길이란 게 없습니다. 사부로의 방 천장에서 출발하여 한 바퀴 빙글 돌면 다시 사부로의 방까지 돌아오게 됩니다.
 천장 아래의 각 방에는 꽤나 엄중히 벽으로 구분되어 있고, 출입구에 문단속을 위한 자물쇠까지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천장 위는 참 개방적이지 않습니까. 어느 방 위를 걷던 자유자재입니다. 다들 사부로의 방처럼 메줏돌이 놓여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그 틈으로 방에 침입하여 무언가를 훔치는 것도 가능합니다. 반면 복도를 통해 죄를 저지르면 어떻게 될까요. 방금도 말한 것처럼 미음자의 건물인 통에 각 방향에 시선이 존재하는 것은 물론이요, 언제 어디서 하숙인이나 여종이 지나갈지 모르니 아주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물론 천장 위 통로로는 그런 위험이 절대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곳에서는 타인의 비밀을 훔쳐보는 것도 아주 간단합니다. 제아무리 신축이라도 하숙집 건축에 큰돈을 들였을 리도 없습니다. 천장 곳곳에 틈새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방안에서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어두컴컴한 천장 위에서 보니 그 틈이 의외로 커 놀랄 정도였습니다. 때로는 못 구멍 같은 것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천장 위라는 굴지의 무대를 발견한 탓일까. 고다 사부로의 머리에 이제까지 있던 범죄 취미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무대라면 당시에 꾀한 것보다도 훨씬 자극이 큰 '범죄 흉내'가 가능할 게 분명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부로는 기쁘기 짝이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렇게 재미난 것이 있다는 걸 이제까지 알지 못 한 걸까요. 마물처럼 어두운 공간을 돌아다니며 스무 명에 가까운 토에이칸 2층의 하숙인들의 비밀을 하나둘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사부로는 충분히 유쾌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살아 있는 보람마저 느끼고는 했습니다.
 또한 그는 이 '천장 위 산책'을 더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일단 준비부터 갖추었습니다. 마치 진짜 범죄자 같은 치장을 빼먹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몸에 딱 맞는 짙은 갈색의 모직 셔츠, 같은 바지――가능하면 영화에서 본 여도적 프로테아처럼 검은 셔츠를 입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런 걸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참기로 했습니다――양말과 장갑을 차고――천장 위는 전부 거칠게 깎인 목재로 이루어진 탓에 지문이 남을 걱정도 없었습니다――그리고 손에 권총을……들고 싶었지만 그도 없었기에 손전등을 들기로 했습니다.
 밤이 되니 낮과 달리 들어오는 빛이 지극히 적어졌습니다. 한껏 차려 입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살금살금 마룻대 위를 걷고 있자니, 마치 자신이 뱀이라도 되어 두꺼운 나무뿌리를 기어오르는 것만 같아 묘하게 굉장해졌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인과인지 그런 굉장함이 오싹오싹할 정도로 기쁜 것이었습니다.
 사부로는 이렇듯 며칠 동안 기분이 좋아진 채로 '천장 위 산책'을 계속했습니다. 역시나 수많은 일이 사부로를 기쁘게 했습니다. 그것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소설 한 편이 만들어질 정도입니디만, 이 이야기의 본론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으니 아쉽게도 잠시 접어두고, 아주 간단히 두세 개의 예시만 들까 합니다.
 천장에서 훔쳐본다는 게 얼마나 요상하고 즐거운지는 실제로 해본 사람이 아니면 아마 상상도 못 할 것입니다. 가령 그 아래에서 대단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아무도 보지 않는다 믿으며 그 본성을 드러내는 인간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는 법입니다. 잘 주의해 보면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있을 때와 혼자 있을 때에 행동거지는 물론이요 그 얼굴부터가 달라지기에 사부로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게다가 평소에 옆에서 같은 수평선에서 바라보는 것과 달리,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이니 눈에 각도에 따라 당연한 광경이 꽤나 이상한 경치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람의 정수리나 양 어깨, 책장, 책상, 장롱, 화덕 등은 그 윗부분이 주로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벽은 거의 보이지 않고 대신에 다다미가 모든 광경의 배경처럼 펼쳐집니다.

 아무 일이 없어도 이렇게 재밌는 데다가, 왕왕 해학적이거나, 비참하거나, 혹은 굉장한 광경이 전개되고는 합니다. 평소에 과격한 반反 자본주의를 소리 높이던 회사원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는 이제 막 받은 승급 임명장을 가방 안에서 꺼냈다 넣기를 반복하며 기뻐하는 광경. 평소 헐렁이는 옷을 입으며 용맹과감히 행동하는 어느 도박꾼이 여차 마루에 누울 때는 낮 동안 대충 입던 옷을 마치 여자처럼 정중히 접어 다다미 아래에 넣는 것은 물론이요 얼룩이라도 보이면 정성껏 입으로 핥아――얼룩 등의 작은 흔적은 입으로 핥는 게 가장 좋다고 합니다――일종의 클리닝을 하는 광경. 아무개 대학의 야구 선수라는 여드름투성이 청년이 운동선수에게 어울리지 않게 겁을 한껏 먹은 채 여종을 향해 쓴 연문戀文을 다 먹은 식판 위에 올려놓았다, 빼놓았다, 품에 넣었다, 다시 올려놓았다 머뭇머뭇 같은 짓을 반복하는 광경. 개 중에는 대담히 창부(?)를 불러 이곳에 적는 것조차 꺼려지는 엄청난 추태를 연기하는 광경조차도 누구에게 혼나는 법 없이 원하는 만큼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사부로는 하숙인 사이의 감정 갈등을 연구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같은 사람이 상대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모습, 방금 전까지 웃으며 이야기하던 상대를 옆방으로 옮겨서는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매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박쥐처럼 어디에 가도 형편 좋은 소리만 하다 뒤에서 낼름 혀를 내미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여자 하숙인――토에이칸 2층에는 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쯤 되면 관심은 더욱 강해집니다. "사랑의 삼각관계" 따위가 아닙니다. 오각육각, 복잡한 관계가 손에 잡히듯이 보이는 것은 물론이요 투쟁자들이 아무도 모르는 본인의 진의가 부외자인 '천장 위 산책자'만은 똑똑히 알 수 있지 뭡니까. 옛날이야기 중에 뒤집어쓰면 보이지 않는 은거풀이란 게 있던가요. 천장 위 사부로는 말하자면 그런 은거풀을 입는 중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만약 이에 더해 다른 방의 천장판을 떼어내 안에 들어가 좀 더 다양한 장난을 하면 한 층 더 재밌었겠지만, 사부로는 그럴 용기가 없었습니다. 천장에는 여섯 걸음에 하나라는 비율로 사부로의 방과 같은 무거운 돌덩이가 올려진 구멍이 놓여 있으니 숨어드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언제 주인이 방에 돌아올지 모르는 데다가, 창문이 전부 투명한 유리로 된 탓에 누가 밖에서 볼 위험성도 있습니다. 게다가 천장판을 뒤집어 벽장 안에 들어가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 다시 벽장 위로 올라 천장 위로 돌아오는 동안 소리가 안 날 수가 없습니다. 복도나 옆방에서 누가 듣기라도 하면 큰일입니다.
 그렇게 어느 날 밤의 일이었습니다. 사부로는 '산책' 한 바퀴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들보 사이를 오갔습니다. 사부로의 방하고 정원 하나를 두고 딱 마주 보는 동쪽 구석의 천장에서 문득, 이제까지 보지 못 했던 약간의 틈새를 발견한 것입니다. 대략 6cm 정도의 구름형으로, 실보다도 얇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부로가 뭔가 하고 손전등을 비추어 보니, 그건 꽤나 큰 나무옹이로, 절반 이상 주위 판과 엇나 있지만 남은 절반이 겨우 이어져 구멍이 되는 걸 면하고 있었습니다. 손톱으로 살짝 긁어내면 쉽사리 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사부로는 다른 틈새로 아래를 보아 주인이 자는 걸 확인하고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한참을 살살 긁어내 겨우 떼어냈습니다. 운 좋게도 떼어낸 구멍이 잔 형태로 아래쪽이 좁아져 있었기에 떨어진 것을 원래 위치에 놓으면 아래로 떨어질 리도 없었고, 그곳에 그런 커다란 구멍이 있다는 걸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거 잘 됐네 생각하며 구멍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아래가 좁아도 직경 4cm쯤은 되는 덕일까요. 세로로는 길어도 폭은 얼마 되지 않아 불편한 다른 틈새와 달리, 방의 전경이 쉽사리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사부로는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 머물러 그 방을 내려다보았는데, 우연찮게도 사부로가 가장 싫어하는 엔도라는 치과대 졸업생으로 지금은 어딘가의 치과의 아래에서 조수로 일하는 남자의 방이었습니다. 그런 엔도가 괜히 평평하고 불쾌한 얼굴을 한 층 더 늘어트리며 눈앞에서 잠들어 있지 뭡니까. 괜스레 깐깐해 보이는 얼굴값을 하는지, 어느 하숙인보다 방이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책상 위의 문구의 위치, 서재 속 책들, 이불 까는 법, 배게 맡에 둔 해외에서 사 왔는지 익숙하지 않은 형태의 자명종, 칠기 안에 든 담배, 색유리로 된 재떨이, 무엇을 보아도 그러한 물품의 주인공이 깔끔한 것을 어지간히 좋아하고 깐깐한 사람이란 걸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엔도 본인의 자는 모습도 아주 예의 바릅니다. 다만 그런 광경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그가 입을 크게 벌리며 번개 같은 코골이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사부로는 무언가 더러운 것이라도 보는 것처럼 얼굴을 찌푸리며 엔도의 자는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엔도의 얼굴은 깔끔하다면 깔끔합니다. 오호라, 자신이 떠드는 것처럼 여자가 좋아할 법한 얼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로 길게 늘어진 얼굴입니다. 짙은 머리, 얼굴 전체가 긴 것치고는 묘하게 좁은 뾰족한 앞머리, 짧은 눈썹, 얇은 눈. 시종 웃는 듯한 눈꼬리의 주름, 긴 코,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큰 입. 사부로는 그 입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코 아래부터 단층을 이루어 위턱과 아래턱이 앞으로 툭 튀어나와 있고, 그 부분 한껏 창백한 얼굴과 묘하게 대조적인 커다란 보랏빛 입술이 벌려 있습니다. 그리고 지방성 비염이라도 있는지, 시종 코를 킁킁거리며 커다란 입을 벌린 채 호흡하고 있습니다. 자면서 코를 고는 것도 역시 코의 병 때문이겠지요.
 사부로는 엔도의 얼굴을 볼 때면 어쩐지 등이 간질간질하며 그의 늘어진 뺨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은 기분이 들고는 했습니다.

 

4

 

그렇게 엔도가 자는 얼굴을 보는 사이 사부로는 문득 묘한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바로 구멍에 침을 뱉으면 마침 엔도의 크게 벌어진 입안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었던 것입니다. 왜냐면 엔도의 입이 마치 꾸미기라도 한 것처럼 구멍의 바로 아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부로는 재미 삼아 팬티실을 하나 뽑아 구멍 아래로 수직으로 내려 마치 총을 조준이라도 하는 것처럼 확인해봅니다. 그러니 어찌나 신비한 우연입니까. 실과 구멍, 엔도의 입이 딱 한 점으로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즉 구멍으로 침을 뱉으면 반드시 아래에 떨어짐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정말로 침을 뱉을 수도 없었습니다. 사부로는 구멍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고 자리를 뜨려 했었습니다만, 마침 그때 불쑥 번뜩하고 어떤 무서운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사부로는 그만 천장 위 어둠 속에서 새파랗게 질려서는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그건 사실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는 엔도를 죽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사부로는 엔도에게 어떤 원한도 없음은 물론이요, 서로 얼굴을 튼지는 이제 막 보름이 되었을 따름입니다. 그마저도 우연히 둘이 같은 날에 이사 온 덕에 두세 번 서로의 방을 찾았을 뿐으로, 유달리 깊은 교류를 나누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왜 그런 엔도를 죽이자는 생각이 들었는가. 지금 말한 것처럼 엔도의 외모나 언동이 때려주고 싶어질 정도로 내키지 않은 것도 조금은 돕고 있을지 몰라도, 주된 동기는 어디까지나 살인 행위 자체에 관한 흥미 내지는 관심일 뿐이었습니다. 거듭 말해왔듯이 사부로의 정신 상태는 아주 변태적이었습니다. 범죄 애호라는 병을 지녔으며, 그런 범죄 중에서도 가장 매력을 느낀 것이 살인이었으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었습니다. 단지 이제까지는 가령 살의가 올라오더라도 죄가 들통날 것이 두려워 한 번도 실행행할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엔도라면 조금도 의심받지 않고, 들통날 우려도 없이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부로는 자신만 안전하다면 설령 얼굴조차 모르는 타인이라도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되려 그 살인 행위가 잔혹하면 잔혹할수록 그의 이상한 욕망을 한 층 더 만족시켜주고는 했습니다. 그럼 왜 엔도에 한해서는 살인죄가 들통나지 않는가――적어도 사부로는 그렇게 믿었습니다――그에는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었습니다.
 토에이칸에 이사 와 사오일쯤 지났을 적입니다. 사부로는 친해진 어느 하숙인과 근처의 카페에 나섰습니다. 그때 엔도도 같은 카페에 와 셋이 한 테이블을 둘러싸며 술을――물론 술을 싫어하는 사부로는 커피를 마셨습니다만――마시게 된 것입니다. 세 사람 모두 기분이 좋아져 나란히 하숙집으로 돌아왔는데, 살짝 취기가 돈 엔도가 "제 방에 오세요"하고 둘을 억지로 자신의 방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엔도는 혼자 신이 나서는 날이 새는 것도 아랑곳 않고 여종을 불러 차를 내오게 하고 카페에 이어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거듭하는 것이었습니다――사부로는 이때부터 엔도를 싫어하게 되었습니다――당시 엔도는 새빨갛게 충혈된 입술을 할짝할짝 핥으며 아주 자랑스럽다는 양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말이죠. 그 여자하고 한 번 동반 자살을 할 뻔한 적이 있었어요. 아직 학교에 있었을 적인데요. 왜, 저는 의대잖아요. 약은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어요. 그래서 둘이 쉽사리 죽을만한 모르핀을 준비해서, 좀 들어봐요. 시오바라까지 갔다니까요?"
 엔도는 그렇게 말하며 비틀비틀 일어나 벽장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습니다. 안에 쌓아 둔 고리짝 중 하나의 밑바닥에서 아주 작은, 새끼손가락만 한 갈색 병을 찾아 두 사람 앞에 놓습니다. 병 밑바닥에 무언가 반짝이는 가루가 살짝 쌓여 있습니다.
"이거에요. 이 정도면 두 사람을 죽일 수 있으니까요. ……근데 여러분, 이 이야기 절대 밖에서는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그의 연애 이야기는 한없이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었는데, 사부로는 마침 당시의 독약을 떠올린 것이었습니다.
"천장 구멍으로 독을 넣어 사람을 죽인다! 이 얼마나 기상천외하고 멋진 범죄야!"
 사부로는 그런 계책에 한껏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참 극적이기는 해도 가능성은 한없이 낮고, 굳이 이런 성가신 방법을 쓰지 않더라도 달리 얼마든지 간단한 살인 법도 있었을 테지요. 하지만 묘한 발상에 매혹되어버린 사부로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 머리에는 그저 이 계획의 형편 좋은 점만이 하나부터 열까지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약을 훔칠 필요가 있었습니다. 어렵지는 않겠지요. 엔도의 방을 찾아 대화를 나누다 보면 화장실이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자리를 비울 때가 생길 테니까요. 그 틈에 눈에 익은 고리짝에서 갈색 병을 꺼내면 그만이었습니다. 엔도라고 하루 종일 그 고리짝만 보는 건 아닐 테니까 하루 이틀 만에 알아차릴 일도 없을 것입니다. 가령 알아차린다 하여도 그런 독약을 지닌 자신부터가 범법자가 되는 셈이니 밖에 퍼트릴 수도 없을 터이며, 잘 하면 누가 훔쳤는지 생각도 못 할 테지요.
 그런 짓 않아도 천장에서 숨어드는 게 편할까요. 아니, 그건 위험했습니다. 방금도 말한 것처럼 언제 주인이 돌아올지 모르고 밖에서 누군가가 볼 우려도 있습니다. 애당초 엔도의 방 천장에는 사부로의 방처럼 돌을 얹어 둔 비밀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못을 박은 천장판까지 벗겨가며 숨어드는 위험한 짓을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그렇게 손에 넣은 가루약을 물에 녹여 콧병 탓에 시종 크게 벌려 있는 엔도의 커다란 입에 뿌리면 그만인 것입니다. 단지 잘 삼켜줄지가 걱정이었습니다만 무얼, 이 또한 걱정할 것은 없었습니다. 약이 극소량인 데다가 짙게 녹이면 고작 몇 방울이면 충분한 것입니다. 숙면 중이라면 알아차리지도 못 할 정도겠지요. 하물며 알아차린다 해도 뱉어낼 여유도 없을 터. 사부로도 모르핀이 쓰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만, 양도 적으니 설탕이라도 섞어두면 실패할 걱정은 없었습니다. 누가 설마 천장에서 독약이 떨어질 거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엔도도 그 급작스러운 상황에서 그런 것까지 떠올리지는 못 하겠지요.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약이 잘 통할지 어떨지, 엔도의 체질상 약이 너무 많거나 적어 그저 괴로워하기만 할 뿐 죽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일까요. 확실히 매우 아쉬운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사부로가 위험해질 걱정은 없는 것입니다. 그야 구멍은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을 것이고, 천장 위에는 아직 먼지 하나 쌓이지 않았으니까요. 흔적이 전혀 남지 않는 셈입니다. 지문은 장갑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가령 천장에서 독약이 떨어졌다는 사실까지는 알아도 누가 한 짓인지는 알 수 없겠지요. 운 좋게도 사부로와 엔도가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원한을 품을만한 관계가 아니란 것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방면으로든 사부로에게는 혐의가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아니, 굳이 그런 가정까지 가지 않아도 숙면 중인 엔도가 약이 떨어진 방향 따위를 인지할 리도 없습니다.
 이상이 사부로가 천장 위에서 제 방까지 돌아오며 떠올린 형편 좋은 논리였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이미 가령 이상의 가정이 잘 풀려도, 하나의 커다란 착오가 있다는 걸 깨달으셨겠지요. 하지만 사부로는 실행에 착수할 때까지, 이상하리만치 그 사실을 깨닫지 못 한 것이었습니다.

 

5

 

 사부로가 적당한 때를 보아 엔도의 방을 찾은 것은 그로부터 네다섯 날이 지났을 즘이었습니다. 물론 그동안에는 계획을 거듭 확인하여 위험하지 않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장치를 새로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독병 처리 방법이 그렇습니다.
 만약 운 좋게 엔도를 죽이게 되면 그 병을 구멍 아래로 떨어트리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사부로는 이중의 이익을 얻습니다. 하나는 만약 발견되면 중대한 단서인 병을 은폐할 귀찮음이 덜하다, 또 하나는 그 병이 엔도 본인의 작품이란 걸 언젠가 사부로와 함께 이야기를 들은 그 남자가 증명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더욱 형편 좋게도, 엔도는 매일 밤 방범을 하고 잠든다 합니다. 입구는 물론이요 창문에도 잠금쇠를 걸어 외부에서는 절대 침입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모날, 사부로는 매우 높은 인내력으로 얼굴만 봐도 침이 끓는 엔도와 오랜 잡담을 나누었습니다. 이야기 도중에 계속 살의가 올라와 상대를 겁주고 싶다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욕망이 생기는 걸 겨우겨우 막아야 했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증거가 남지 않는 방법으로 널 죽일 거야. 네가 그렇게 여자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어. 이틈에 많이 떠들어둬." 사부로는 멈추지 않는 커다란 입을 바라보며 속으로 그런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이 남자가 얼마 지나지 않아 새파란 시체가 될 거라 생각하니 유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동안 예상대로 엔도가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밤 열 시쯤의 일입니다. 사부로는 빈틈 없이 주위에 주의를 들이고 유리창 바깥 등도 확인하고는, 소리는 없되 되도록 빨리 벽장을 열고 궤짝 안에서 약병을 꺼냈습니다. 넣는 장소를 잘 봐두었기에 찾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가슴이 뛰고 겨드랑이 아래로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사실 사부로는 이 독병을 훔치는 것이 이번 계획 중 가장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엔도가 어떤 이유로 불쑥 돌아올지 모를 일이고, 누군가가 보고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도 생각했습니다. 만약 발견되면 혹은 발견되지 않더라도 엔도가 약병이 사라진 걸 알게 되면――잘 주의하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특히 사부로에게는 천장의 구멍이라는 무기가 있으니까요――살해를 그만두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독병을 훔치는 것만으로는 큰 죄도 되지 않으니까요.
 하여튼 사부로는 결국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손쉽게 약병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엔도가 돌아온 이후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적당히 이야기를 마무리하고는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창문에 빈틈 없이 커튼을 치고 입구 단속을 합니다. 책상 앞에 앉아서는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품 안에서 귀여운 갈색병을 꺼내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MORPHINUM HYDROCHLORICUM(o.g.)

 

 아마 엔도가 적은 것이겠지요. 작은 라벨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사부로는 이전에 약물학 서적을 읽고 모르핀이 무엇인지 조금 알기는 했지만 실물을 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습니다. 아마 이건 염산모르핀이란 것이겠지요. 병을 전등 앞으로 가져가 보니 티스푼 반이 될까 말까한 극히 적은 양의 하얀 가루가 아름답게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정말 이런 걸로 사람이 죽는 걸까. 그렇게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야 사부로는 정밀한 저울 같은 걸 지니지 못 했습니다. 분량에 한해서는 엔도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엔도의 태도나 말투는 술에 취해 있다 해도 결코 엉망인 거 같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라벨의 숫자 또한 사부로가 아는 치사량의 딱 두 배였으니 틀림없었습니다.
 사부로는 병을 책상 위에 두고 미리 준비해둔 설탕과 물을 늘어놓았습니다. 약제사 같은 정밀함으로 열심히 조합을 시작합니다. 하숙인들은 다들 잠들었는지 주위는 정막만 흐릅니다. 그런 가운데 성냥에 적신 물을 주의 깊게 한 방울, 또 한 방울 병안으로 흘려보내고 있자니, 스스로의 호흡이 악마의 한숨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상하게 울려 퍼지지 뭡니까. 그런 감각은 사부로의 변태적인 취미를 얼마나 만족시켜주었을까요. 그쯤 되니 사부로의 눈앞에 어두운 동굴 속에서 펄펄 끊는 독항아리를 바라보며 꺼림칙하게 웃는 옛이야기 속 무서운 마녀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제까지 조금도 예상치 못 했던 감정이 사부로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틈엔가 솟아오르기 시작한 공포와 비슷한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조금씩 넓어져만 갔습니다.

 

MURDER CANNOT BE HID LONG, A MAN'S SON MAY, BUT AT THE LENGTH TRUTH WILL OUT.

 

 어딘가의 인용으로 외운 셰익스피어의 꺼림칙한 문구가 눈이 부실 정도의 빛을 쏘아 사부로의 뇌리에 새겨진 것이었습니다. 이 계획에는 절대 빈틈이 없다 한사코 믿으면서도 시시각각 커져만 가는 불안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원한 하나 없는 사람을 그저 살인이 재밌다는 이유로 죽여버리다니. 정말 제정신인가. 악마에게 매료 당한 것은 아닌가. 정신이 나간 것은 아닌가. 자기자신의 그런 마음이 무섭지는 않은가.
 한참 동안 날이 새는 것도 모른 채, 사부로는 조합이 끝난 독약병을 앞에 두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잠시 계획을 접어두자. 몇 번이나 그런 결심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사부로는 결국 살인의 매력을 단념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번뜩하고 어떤 치명적인 사실이 사부로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우후후…………"
 사부로는 대뜸 우스워 견딜 수 없다는 양, 그러면서도 잠든 주위를 신경 쓰며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바보 자식. 참 뛰어난 광대로군! 진지하게 이런 계획이나 꾸미고 말이야. 마비된 머리로는 우연과 필연 조차 구분 짓지 못 하나. 엔도의 크게 벌려진 입이 어쩌다 한 번 구멍 바로 아래에 있다고 해서, 다음에도 똑같은 일이 있으란 보장이 어디 있나. 아니 되려 불가능에 가깝다 해야지."
 그건 정말로 재밌는 착각이었습니다. 사부로의 계획은 그 시발점부터 큰 망상에 젖어 있었던 것입니다. 왜 이제까지 이런 당연한 사실을 알지 못 했던 걸까요. 정말 이상했습니다. 아마 꽤나 영특한 척 한 사부로의 두뇌에 큰 결함이 있었단 증거는 아닐까요. 어찌 되었든 사부로는 이 발견으로 크게 실망하는 한 편, 동시에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덕분에 내가 무서운 살인범이 될 일은 없어졌군. 이거 참 다행이야."
 말은 그렇게 해도 미련이 남은 것이겠지요. 사부로는 그 이후로도 "천장 위 산책"을 할 때마다 구멍을 열어 엔도의 동향을 살피는 걸 소홀히하지 않았습니다. 그야 엔도가 독약을 도둑 맞은 걸 알아차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품은 탓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번처럼 엔도의 입이 구멍 바로 아래에 오는 우연을 기다렸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 되겠지요. 그도 그럴 것이, 사부로는 "산책"하는 도중에도 주머니에 넣은 독약을 떼놓으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6

 

어느 밤의 일입니다――사부로가 "천장 위 산책"을 시작한지 열흘쯤 지났을까요. 사부로는 열흘 내내 조금도 들키는 법 없이, 특별한 일도 없이 천장 위를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사부로의 고심은 심상치 않았습니다. 세밀한 주의. 그런 흔해 빠진 말로는 도무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요――사부로는 또다시 엔도의 방 위를 어슬렁거렸습니다. 마치 운세라도 뽑는 듯한 기분입니다. 길일까 흉일까. 오늘은 혹여 길이지 않을까. 부디 길이어라. 그렇게 신에게까지 바라면서 자신이 낸 구멍을 열어 봅니다.
 그러자 아아, 사부로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언젠가 본 광경과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모습입니다. 드르렁 코를 고는 엔도의 입이 딱 구멍 바로 아래에 와있지 뭡니까. 사부로는 몇 번이나 눈을 문지르며 다시 확인하고는, 팬티줄을 뽑아 직접 확인까지 해봅니다. 역시나 틀림없습니다. 실과 구멍, 입이 정확하게 일직선상에 위치했던 것입니다. 사부로는 그만 소리칠 뻔한 걸 겨우 참아냈습니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는 기쁨과, 한 편으로는 말로 다 못 할 공포. 그런 두 감정이 교차한 일종의 묘한 흥분 탓에, 사부로는 어둠 속에서 홀로 새파랗게 질려버렸습니다.
 사부로는 주머니에서 독약병을 꺼내서는 혼자 떨기 시작한 손끝을 꾹 참아내며 뚜껑을 뽑았습니다. 실로 조준을 하고――오오, 그 순간의 형용 못 할 마음이란!――졸졸졸졸 몇 방울. 그게 고작이었습니다. 사부로는 곧장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깼어. 분명 깬 거야. 깼을 거라고. 그리고 당장이라도, 아아. 당장이라도 큰 소리를 지를 거야."
 사부로는 만약 양손이 비어 있다면 귀를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부로의 그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아래에 자리한 엔도는 음도 쿨도 하지 않았습니다. 독약이 입안에 떨어지는 것까지는 보았으니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조용함은 무엇일까요. 사부로는 머뭇머뭇 눈을 뜨고 구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엔도는 입을 어물어물거리다 양손으로 입을 문지르는 행동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마침 끝난 참이겠지요. 다시 쿨쿨 잠들어버립니다. 걱정도 팔자라던가요. 잠에 취한 엔도는 무서운 독약을 먹었다는 걸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 한 듯했습니다.
 사부로는 불상한 피해자의 얼굴을 미동조차 하지 않고 빤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시간이 길게 느껴집니다. 실제로는 이십 분도 되지 않았는데 마치 두세 시간은 그러고 있었던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자 그때, 엔도가 번쩍 눈을 뜹니다. 그리고는 몸을 반쯤 일으켜 이상하다는 양 방안을 두리번거립니다. 현기증이라도 느껴지는지 고개를 젓고, 눈을 문지르고, 의미 없는 헛소리를 중얼거리는 등 온갖 괴상한 동작을 합니다. 그럼에도 끝내는 다시 몸을 눕혔습니다만 이번에는 성대히 몸을 뒤척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뒤척이는 힘이 점점 약해져 갑니다. 이제 움직이지 않는가 싶었더니 그 대신에 번개 같은 코골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내려다보니 마치 술이라도 취한 사람처럼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있습니다. 코끝이나 이마로는 땀을 뻘뻘 흘립니다. 잠에 취한 엔도의 몸 안에서 참으로 무서운 생사의 투쟁이 벌어진 걸지도 모릅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으니 붉었던 얼굴색이 서서히 식어 종이처럼 하얗게 물듭니다. 또 다시 바라보고 있자니 이번에는 청남색으로 변해 갑니다. 그리고 어느 틈엔가 코골이가 멈추고 호흡의 숫자가 줄었습니다. ……가슴이 무거워지는 것이 슬슬 끝이 나는 건가 싶었더니, 곧 새삼 떠올리기라도 한 것처럼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며 둔한 호흡이 돌아왔습니다. 그런 상황이 두어 번 반복되다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엔도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베개에서 축 늘어진 얼굴에는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웃음이 작게 드리워 있었습니다. 엔도는 소위 "부처"가 되어버린 것이겠지요.
 숨을 죽이고 손에 땀을 쥔 채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부로는 처음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사부로는 끝끝내 살인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참 편하게 죽었지 싶습니다. 사부로의 희생자는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괴로운 표정 짓는 법도 없이 코를 골며 죽어 간 것입니다.
"나 참. 살인이라는 게 이렇게 맥빠지는 거였나."
 사부로는 어쩐지 실망스러웠습니다. 상상의 세계에서는 더할 나이 없이 매력적이었던 살인이 막상 저지르고 보니 의외로 일상다반사처럼 별로 특별할 게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나 간단하다면 아직 몇 명은 더 죽일 수 있겠는걸. 그렇게 생각하는 한 편으로는, 무어라 말로 못 할 두려움이 방심한 사부로의 마음을 스멀스멀 덮치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어두운 천장 위. 교차되어 괴물 같은 마룻대나 들보. 그 아래에서 도마뱀처럼 죽은 시체를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 갑자기 꺼림칙하게 느껴지는 사부로였습니다. 묘하게 목덜미 부근이 쩌릿쩌릿하여 살짝 귀를 기울여 보니 어디선가 천천히, 처언처언히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만 구멍에서 눈을 떼고 어둠 속을 둘러봅니다. 하지만 한동안 밝은 곳을 보지 않은 탓이겠지요. 눈앞에 크고 작은 노란 원 같은 것이 차례로 나타났다가 사라져 갑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그 원의 뒤에서 엔도의 이상하리만치 두터운 입술이 훌쩍 튀어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사부로는 당초 계획한 것만은 틀림없이 실행해냈습니다. 구멍으로 약병――그 안에는 아직 몇 방울의 독약이 담겨 있었습니다――을 떨어트리는 것, 구멍을 막는 것, 혹시 천장 위에 무언가 흔적이 남지는 않았나 손전등으로 잘 조사하는 것, 그렇게 실수가 없다는 걸 알고서는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드디어 이걸로 끝났다."
 머리도 몸도 묘하게 쩌릿쩌릿 한 것이 뭐라도 잊은 것만 같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듯이 그는 벽장 안에서 옷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확인을 위해 사용한 팬티 끈을 어떻게 했던가요. 혹시 그곳에 둔 채 까먹은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사부로는 황급히 허리춤을 뒤집니다. 역시 없는 모양입니다. 사부로는 서둘러 온몸을 조사했습니다. 그러자 왜 이런 곳에 두고 잊었던 것일까요. 셔츠 주머니 속에 들어 있지 뭡니까. 이거 참 다행이다. 그렇게 안심하고는 주머니에서 끈과 손전등을 꺼내다가 다시 번쩍 깜짝 놀랍니다. 그 안에 또 다른 물품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독약이 든 병의 작은 코르크 마개였습니다.
 사부로는 독약을 뿌리면서 잃어버리면 큰일이라며 일부러 주머니에 뚜껑을 넣어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까먹고 병만 아래에 떨어트리고 온 듯했습니다. 아주 작지만 이대로 두면 발각의 씨앗이 되고 맙니다. 사부로는 겁먹은 마음을 다스리며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구멍에 뚜껑을 떨어트려 두어야 했습니다.
 그날 밤 사부로가 자리에 누운 것은――이미 그때에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벽장에서 자는 걸 관뒀습니다――오전 세 시나 되었을 즘이었습니다. 그러나 흥분한 나머지 좀처럼 잠에 들지 못 했습니다. 뚜껑을 떨어트리는 것도 까먹을 정도이니 달리 무언가 착오가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마음 같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머리를 억지로 진정시키며 그날 밤의 행동을 차근차근 하나씩 떠올려 갑니다. 무언가 실수는 없었나 확인하는 것이었는데, 적어도 머릿속 안에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범죄에는 조금의 실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사부로는 그렇게 날이 밝을 때까지 생각에 잠겼습니다만, 이윽고 일찍 일어난 하숙인들이 씻으러 가기 위해 복도를 걷는 소리가 들려오자 벌떡 일어나 외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엔도의 시체가 발견되는 걸 두려워한 것이었습니다. 발견되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좋을까요. 혹여 나중에 의심받을만한 묘한 거동을 취해서야 큰일입니다. 때문에 그동안 자리를 비워두는 게 가장 안전하다 생각했습니다. 물론 아침도 먹지 않고 외출해서야 되려 이상하기만 하겠지요. "그래, 맞아. 뭘 까먹고 있는 거야" 그런 사실을 깨닫고는 다시 잠자리 안에 기어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사부로는 아침 먹기 전 두 시간을 종일 움질거리며 보내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그가 황급히 식사를 마치고 하숙집을 도망쳐 나올 때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숙집을 나온 사부로는 정처 없이,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7

 

결국 사부로의 계획은 훌륭히 성공했습니다.
 점심이 되어 돌아와 보니 엔도의 시체는 이미 치워져 있었습니다. 경찰의 임시 검사도 이미 끝나 있었고, 듣자 하니 예상대로 누구 하나 엔도의 자살을 의심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경찰 또한 형태뿐인 조사를 마치고는 바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물론 엔도가 자살한 원인은 조금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평소 행실을 미루어 보아 치정 문제일 것이라며 입을 모았습니다. 실제로 얼마 전에 어떤 여자에게 차였다는 사실마저 드러났다고 합니다. 무얼, 엔도 같은 남자들이 "차였어, 차였어"하는 건 일종의 말버릇에 가까워 별 의미도 없기 마련이지만, 달리 원인이 없는 탓에 의견이 좁혀졌던 것입니다.
 애시당초 원인이 있든 없든 엔도의 자살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입구도 창문도 안쪽에서 잠겨 있었고, 독약 용기는 머리맡을 구르고 있었습니다. 독약이 엔도의 소지품이었음도 밝혀졌으니 당최 무엇을 의심해야 할까요. 천장에서 독약을 떨어트린 건 아닐까. 그런 멍청한 의심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도무지 안심이 되지 않아 하루 종일 움찔거렸던 사부로였습니다만, 이윽고 하루 이틀 지나는 사이에 조금씩 침착해져 갔습니다. 그뿐일까요, 끝내는 자신의 수완을 자랑스러워할 여유마저 생겼습니다.
"역시 나는 대단해. 이거 봐, 누구 하나 살인범과 같은 하숙집에 산다는 걸 알지 못 하잖아."
 사부로는 이래서야 세상에 얼마나 많은 미제 범죄가 있을지 모르겠다 생각했습니다. "완전 범죄란 없다"던가. 분명 옛 위정자들의 선전 문구나 사람들이 미신일 뿐이다. 실제로는 어떤 범죄든 교묘함만 갖추면 절대 드러나지 않는다. 사부로는 그런 생각 또한 품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아무리 그런 사부로라도 밤이 되면 엔도의 얼굴이 눈앞에 일렁이는 것만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그날 밤 이후로 "천장 위 산책"까지 중지했습니다만, 결국은 심리의 문제일 뿐 곧 잊어버릴 게 분명했습니다. 실제로 죄만 드러나지 않는다면 족할 일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엔도가 죽은지 딱 삼 일째 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사부로가 막 저녁 식사를 마치고 콧노래를 부르며 양치하던 차에, 아케치 코고로가 훌쩍 방을 찾아왔습니다.
"오랜만이네."
"웬일이야?"
 두 사람은 꽤나 마음 편히 그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사부로 쪽은 이 아마추어 탐정의 방문이 썩 내키지만은 않았습니다.
"누가 이 하숙집에서 독 먹고 죽었다며?"
 아케치는 앉자마자 사부로가 피하고 싶었던 화제를 입에 올렸습니다. 아마 누군가에게 엔도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이겠지요. 마침 사부로가 같은 하숙집에 있겠다, 탐정적 흥미 삼아 찾아 온 게 분명했습니다.
"그래, 모르핀이라네. 나는 마침 외출 중이라 잘은 모르는데, 듣자 하니 치정 문제가 있었다나 봐."
 사부로는 화제를 돌리고 싶어 하는 걸 들킬 수는 없다며, 자신 또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어떤 사람이야?"
 그러자 아케치는 곧장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렇게 둘은 잠시 동안 엔도의 성품, 사인, 자살 방법 등의 문답을 나누었습니다. 사부로는 당초 움찔거리는 심정으로 아케치의 물음에 답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익숙해지며 마음이 편해졌고, 이윽고는 아케치를 놀리고 싶어질 정도였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해? 이거 혹시 타살 아닐까? 뭔가 근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자살이 분명한 줄 알았는데 사실 타살이었다는 이야기는 왕왕 들어 볼 수 있잖아."
 어떠냐, 아무리 명탐정이라도 이건 모르겠지? 사부로는 속으로 비웃으며 그런 소리까지 해보았습니다.
 그는 그게 유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야 아직은 아무 말도 못 하지. 실은 나도 어떤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인이 조금 애매하다 싶었거든. 어때, 그 엔도란 사람의 방을 한 번 보러 가지 않겠어?"
"얼마든지." 사부로는 되려 의기양양히 대답했습니다. "옆방에 엔도의 동향 친구가 있거든. 그 녀석이 엔도 아버지께 짐을 맡아달라 부탁받았어. 네 이야기를 하면 분명 기꺼이 보여줄 거야."
 그렇게 둘은 엔도의 방으로 향했습니다. 사부로는 그때 선두에 서서 걸으며 묘한 감각에 휩싸였습니다.
"범인이 탐정을 살인 현장으로 안내하다니, 앞으로도 이런 일은 없을 거야."
 싱글싱글 웃고 싶어지는 걸 꾹 눌러 참았습니다. 사부로는 평생을 살면서 이 순간만큼이나 득의양양한 적은 없었습니다. "무서운 남자일세" 스스로에게 그런 목소리라도 날려주고 싶어질 정도로 악당 기분에 흠뻑 젖은 것이었습니다.
 엔도의 친구――키타무라란 남자로, 엔도가 차였다는 증언을 해주었습니다――는 아케치의 이름을 잘 알고 있어, 흔쾌히 엔도의 방을 열어주었습니다. 엔도의 아버지가 찾아와 간이 장례식을 마친 게 오늘 오후의 일로, 방안은 짐 정리도 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엔도의 변사체가 발견된 건 키타무라가 출근한 이후의 일로, 발견한 당시에 어떤 모습인지는 모르는 듯했습니다. 대신 사람들에게 들은 걸 정리하여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사부로도 그걸 따라 마치 부외자라도 된다는 양 소문을 줄줄 늘어놓았습니다.
 아케치는 두 사람의 설명을 들으면서 꽤나 전문가 같은 눈초리로 방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책상 위에 놓인 자명종 시계를 무슨 생각인지 한참이나 들여다보았습니다. 분명 그 기묘한 외견이 아케치의 눈에 끌린 것이겠지요.
"이건 자명종 시계군요?"
"맞습니다." 키타무라가 답해주었습니다. "엔도가 자랑하던 거였죠. 꼼꼼한 녀석이었거든요. 아침 여섯 시에 울리도록 매일 밤 감아두는 걸 잊지 않았어요. 저는 아예 그 소리에 잠에서 깰 정도에요. 엔도가 죽은 날도 그랬죠. 그날 아침에도 울린 탓에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났을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 했어요."
 그 이야기에 아케치는 길게 내려 온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면서 열심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날 아침 알람이 울렸다. 분명한가요?"
"네, 틀림없습니다."
"경찰에는 이야기하셨고요?"
"아뇨……왜 그러시죠?"
"왜냐뇨, 묘하지 않습니까. 그날 밤 자살하려 결심한 남자가 일부러 아침 알람을 맞춰둘까요?"
"확실히 그건 그러네요."
 키타무라는 어리석게도 이제까지 그 사실을 깨닫지 못 한 듯했습니다. 그리고 아케치의 말이 무슨 뜻인지도 확실히 받아들이지 못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방은 밀실이었고, 독약 용기는 시체 옆에 떨어져 있었으며, 그 외 모든 상황이 엔도의 자살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문답을 들은 사부로는 마치 발밑의 지반이 무너져 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놀랐습니다. 그리고 왜 이런 곳에 아케치를 데리고 온 것이냐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했습니다.
 아케치는 그 이후로 한층 더 세밀하게 방안을 조사했습니다. 물론 천장도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아케치는 천장판을 한 장 한 장 두드려 가며 사람이 출입한 흔적이 없는지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사부로에게는 다행인 것이, 아무리 아케치라도 구멍을 통해 독약을 흘리고 다시 닫아 둘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는지 천장판이 떨어지지 않은 것만 확인하고는 더 이상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결국 그날은 대단한 발견도 없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엔도의 방을 다 둘러본 아케치는 사부로의 방으로 돌아와 잠시 잡담을 나누고는 아무 일 없이 돌아갔습니다. 다만 그 잡담 속에 이러한 문답이 있었다는 건 반드시 적어둬야 했습니다. 왜냐면 이는 극히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이 이야기의 결말에 아주 크고 중대히 관여해 있으니까요.
 아케치는 소매에서 꺼낸 담배에 불을 붙이며 문득 떠올린 것처럼 물었습니다.
"아까부터 담배를 한 대도 안 피우네? 무슨 일 있어?"
 듣고 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사부로는 요 이삼일 동안 그렇게나 좋아하던 담배를 마치 잊고 있었던 것처럼 한 입도 피우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상하네. 그만 까먹고 있었나 봐. 게다가 네가 그렇게 피우고 있어도 조금도 내키지 않아."
"언제부터?"
"생각해 보니 벌써 이삼일은 피우지 않은 것 같아. 그렇지, 지금 가진 걸 산 게 일요일이었으니까 벌써 삼 일 동안 한 대도 안 피웠네. 왜 이러지?"
"그럼 마침 엔도가 죽은 날부터네."
 그런 말에 사부로는 그만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엔도의 죽음과 자신의 흡연에 인과 관계가 있을 거 같지 않았기에 그 자리에서는 그저 웃어넘겼습니다. 하지만 훗날 생각해 보면 그건 결코 웃어넘길만한 사안이 아니었습니다――그리고 사부로의 이런 혐연 기질은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습니다.

 

8

 

그날 밤, 사부로는 낮에 들은 자명종 이야기가 계속 마음에 걸려 잠 한숨 자지 못 했습니다. 가령 엔도가 자살한 게 아니란 걸 알아도, 사부로가 저질렀다 의심받을만한 증거는 무엇 하나 없으니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하필이면 그 아케치에게 꼬투리를 주었다 생각하니 좀처럼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보름이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걱정하던 아케치도 그 이후로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나 참, 드디어 대단원인가."
 사부로는 끝내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이따금 두려운 꿈에 휘둘릴지언정 대부분의 날을 유쾌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살인 이후로 이제까지 조금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갖은 놀이들이 이상하리만치 즐거워지기 시작한 사실이 사부로를 기쁘게 했습니다. 때문에 그 즈음에는 매일 같이 밖으로 나서 싸돌아다니고는 했습니다.
 어느 날의 일입니다. 사부로는 그날도 밤까지 밖에서 놀다가 열 시나 되어서야 귀가했습니다. 그럼 이만 자볼까, 이불을 꺼내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벽장의 문을 열은 순간이었습니다.
"우왓!"
 사부로가 대뜸 무시무시한 비명을 지르며 두세 걸음 뒷걸음질 쳤습니다.
 사부로는 꿈이라도 꾼 것일까요. 아니면 미치기라도 한 걸까요. 벽장 안에 죽은 엔도의 머리가 머리카락을 축 늘어놓으며 어두운 천장에 가까이 매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사부로는 도망 치려 일단 입구까지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달리 무언가를 잘못 본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머뭇머뭇 발을 돌렸습니다. 다시 한 번 살며시 벽장 안을 들여다보니, 잘못 보기는 고사하고 엔도의 머리가 싱긋 웃음을 머금지 뭡니까.
 다시 한 번 악 비명을 지른 사부로는 단숨에 입구까지 달려서는 문을 열고 바깥으로 뛰쳐나가려 했습니다.
"고다, 고다!"
 그러고 있자니 벽장 안에서 사부로의 이름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나야, 나. 도망칠 거 없어."
 엔도의 목소리는 아니었습니다. 어디선가 들어 본 적 있는 예상치 못 한 사람의 목소리였기에, 사부로는 뛰쳐나가려는 다리를 꾹 누르며 머뭇머뭇 돌아보았습니다. 그러자,
"이거 실례."
 아케치 코고로가 그렇게 말하며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사부로가 그랬던 것처럼 벽장의 천장 위에서.
"놀라게 해서 미안한걸." 양복 차림을 한 아케치가 싱글싱글 웃으며 벽장에서 나옵니다. "잠깐 자네 흉내 좀 내봤어."
 그야말로 유령보다도 현실적이며 한층 더 무서운 사실이었습니다. 아케치는 분명 모든 걸 알고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이 당시 사부로가 품은 심정은 그야말로 형용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갖은 생각이 머리 안에서 풍차처럼 회전하여, 아예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때처럼 그저 멍하니 아케치의 얼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거 말인데, 자네 셔츠 단추지?"
 아케치는 참으로 사무적인 어조로 운을 텄습니다. 손에 든 자그마한 단추를 사부로의 눈앞에 내밀어 보입니다.
"다른 하숙인도 조사해봤는데 이런 단추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고. 아, 지금 이 셔츠인가? 왜, 두 번째 게 없잖아."
 깜짝 놀라 가슴을 보니 옳거니. 단추 하나가 떨어져 있습니다. 사부로는 그게 언제 떨어졌는지 조금도 눈치 채지 못 했습니다.
"형태도 똑같겠다 분명하네. 그나저나 이 단추를 어디서 주웠을까? 천장 위야. 그것도 엔도의 방 위에서."
 사부로는 어째서 단추를 떨어트린 걸 알아차리지 못 한 걸까요. 분명 손전등으로 충분히 조사했을 터입니다.
"자네가 죽인 거 아냐?"
 아케치가 순진한 얼굴로 싱글싱글 웃으며――그게 참 꺼림칙하게 느껴졌습니다――사부로의 갈 곳 없는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며 끝마무리 짓듯 말했습니다.
 사부로는 이제 글렀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령 아케치의 추리가 제아무리 정밀하고 교묘해도 그게 전부라면 얼마든지 항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예상치 못 한 증거물까지 있는 마당이니 도리가 없습니다.
 사부로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리려는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한사코 입을 다문 채 멀뚱히 서있었습니다. 참 묘하게도, 이따금 먹먹해지는 눈앞에 먼 옛날일, 이를테면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환상처럼 떠오르고는 했습니다.

 두 사람은 그로부터 두 시간 동안 그 상태 그대로, 그 긴 시간 동안 자세 한 번 바꾸지 않은 채 대치했습니다.
"고마워. 사실을 밝혀줘서." 아케치가 마지막으로 말했습니다. "내가 자네를 경찰에 찌르는 일은 없을 거야. 그저 내 판단이 맞았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지. 자네도 알다시피 내 관심은 오로지 '진실을 아는 것'뿐이거든. 사실 그 이후로는 아무래도 좋아. 게다가 말야, 이 범죄에는 증거랄 게 하나도 없어. 셔츠 단추? 하하…… 그건 내 트릭이었어. 증거 없이는 자네가 받아들이지 않을 거 같았거든. 요전번에 자네를 찾았을 때 마침 두 번째 단추가 떨어진 걸 봐서 조금 이용해 본 거야. 이 단추는 내가 따로 주문 제작한 거지. 단추가 언제 어디서 떨어졌는지 신경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게다가 자네는 흥분할 테니까 아마 잘 될 거라 생각했지.
 내가 엔도의 자살을 의심한 건 자네도 알다시피 그 자명종 시계를 발견한 순간부터였어. 그 후로 이곳 관할의 경찰서장을 찾아 이곳을 조사한 형사에게서 당시의 자세한 상황을 들을 수 있었지. 이야기를 듣자 하니 모르핀병이 담배 상자 안으로 굴러 들어가 담배에 내용물이 흘렀다네. 경찰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하잖아. 엔도는 아주 꼼꼼한 남자였다 하고, 죽을 때까지 이불 안에서 죽었는데 말야. 그런 남자가 독약병을 담배 상자 안에 두는 것도 모자라 내용물을 흘린다고? 부자연스럽잖아.
 덕분에 내 의심은 더 커져만 갔지. 그때 문득 떠올린 게 자네가 엔도가 죽은 날 이후로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는 사실이야. 우연의 일치치고는 조금 묘하지 않나? 그러자 자네가 이전에 범죄 흉내를 내며 기뻐하던 사실이 떠올랐지. 자네한테는 변태적인 범죄 취향이 있어.
 나는 그 이후로 번번이 이 하숙집에 들러 자네 몰래 엔도의 방을 조사했지. 그리고 범인의 통로가 천장 외에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자네가 말한 소위 '천장 위 산책'으로 하숙인들의 동향을 살폈지. 특히 자네 방 위에서는 많이 머물렀어. 그리고 자네가 짜증을 내는 모습을 훔쳐볼 수 있었지.
 뒤지면 뒤질수록 모든 사정이 자네를 가리켰어. 하지만 아쉽게도 확증이랄 게 하나도 없었지. 그래서 그런 연기를 시도한 거야, 하하하하하. 그럼 나는 이만 실례하지. 이제는 더 못 보려나? 자네는 자수할 생각인 듯하니 말야."
 사부로는 아케치의 트릭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사부로는 아케치가 떠나는 것도 개의치 않는 얼굴로 "사형 당하는 건 무슨 기분일까"하는 생각을 멍하니 하고 있었습니다.
 사부로는 독약 병을 떨구면서 어디에 떨어지는지 보지 않았다 생각했지만, 사실은 담배가 독약에 젖는 것까지 똑똑히 지켜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광경에 심층 심리 안에 새겨져 사부로의 정신을 담배에게서 떨어 트려 놓았습니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