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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에도가와 란포

쿠로테구미 上. 밝혀진 사실 - 에도가와 란포

by noh0058 2021.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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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시 아케치 코고로의 공적 이야기입니다.
 이는 제가 아케치와 알게 된지 일 년 정도 지났을 즘 있었던 일로, 사건에 비극적인 색채가 담겨 꽤나 재밌을뿐더러 저희 집안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제게는 한 층 더 잊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저는 아케치에게 훌륭한 암호 해독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독자 제군의 흥미를 위해 그가 푼 암호문을 미리 서두에 적어두겠습니다.

 

一度お伺いしたい/\と存じながらつい

(한 번 뵙고 싶다/\생각하면서도) 


好い折がなく失礼ばかり致して居ります

(마땅한 때가 보이지 않아 실례만 끼치고 있습니다)


割合にお暖かな日がつゞきますのね是非

(마침 따스한 날이 계속되고 있으니 부디)


此頃にお邪魔させていただきますわさていつ

(가까운 시일 내에 찾아뵙겠습니다. 요전)


ぞや[#「は」は「×」付き]つまらぬ品物をお贈りしましたところ

(번에는[#"는"에는 "X" 표가 쳐져 있다] 볼품없는 것을 보냈건만 아)


叮嚀なお礼を頂き痛み入りますあの手提てさげ

(주 정성스러운 보답을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 가)


袋は実はわたくしがつれ/″\のすさびに

(방은 사실 제가 심심풀이 삼아)


みず[#「か」は「×」付き]つたな刺繍ししゅうをしました物で却ってお

(저의(#"의"에는 "X"표가 쳐져 있다] 부족한 자수 실력으로 만든 물건으로 되려 화)


叱りを受けるかと心配したほどですのよ

(를 사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였습니다)


歌の方は近頃はいかが?時節柄御身お大

(노래 쪽은 요즘 어떠신가요? 부디 몸 조)


切に遊ばして下さいまし

(심하세요)

 

さよなら

(마치겠습니다)

 

 이건 어떤 엽서의 내용입니다. 충실히 원문 그대로 표시했습니다. 문자를 지운 곳부터 각행의 위치까지 전부 원문 그대로입니다.

 이야기를 시작해보자면 저는 당시 어떤 용무가 생겨 추위도 피할 겸 아타미 온천이 위치한 한 여관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매일 수도 없이 욕탕에 몸을 담그고, 산책하고, 드러누워 자고, 이따금 붓을 드는 등 아주 느긋한 나날을 보냈지요.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여느 날처럼 온천욕으로 적당히 데워진 몸을 해가 잘 드는 곳에 놓아 둔 등의자 위에 던져 별생각 없이 그날 신문을 펼치니 불쑥 이상한 기사가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당시 수도에서는 "쿠로테구미"라 자칭하는 도적 집단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었는데, 경찰의 갖은 노력도 별다른 보람을 이루지 못 하는 듯했습니다. 전날에는 아무개 부호가 당했고 오늘은 모 귀족이 당했다는 둥 소문이 소문을 낳아서 수도 사람들의 민심이 편한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신문 사회면도 매일 같이 그 일로 소란이었는데 그날도 여전히 "신출귀몰의 도적 운운"하는 큼지막한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이미 익숙한 일이라서 별 관심도 없었습니다. 대신 그 기사 아래쪽에 위치한 쿠로테구미 피해자 목록에 작게 "XXX 씨 표적이 되다"라는 열두어 줄짜리 기사를 발견하여 아주 크게 놀랐습니다. 그 XXX 씨가 바로 저희 큰아버지셨던 것입니다. 기사가 간단하고 짤막하여 자세한 건 알 수 없었지만 딸 후미코가 도적패에게 납치당해 그 몸값으로 만 엔을 빼앗겼다는 듯했습니다.
 저희 집은 아주 가난하여 저도 이렇게 온천까지 와서도 붓으로 돈을 벌어야 할 정도입니다만, 큰아버지께서는 제법 큰돈을 지니셨습니다. 두어개 가량의 회사에서 중역도 맡고 있으시니 "쿠로테구미"의 표적이 될만한 자격은 충분했습니다. 큰아버지께는 항상 이래저래 신세를 지고 있으니 저는 다 제쳐두고 찾아가 봐야 했습니다. 몸값을 빼앗길 때까지 알지 못 한 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분명 큰아버지께서 제 하숙집에 전화 정도는 하셨겠지만,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온 탓에 기사화나 돼서야 겨우 이 불상사를 접해버린 것입니다.
 고로 저는 재빨리 짐을 정리해 귀경했습니다. 그리고 짐을 풀자마자 큰아버지의 집을 찾았습니다. 가보니 어떻게 된 걸까요.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부부께서 불단 앞에서 일사불란히 북이나 박자목을 두드리며 법화경을 외우시고 계시지 뭡니까. 큰아버지 집안은 광적인 불교 신자로, 마치 일본 불교의 기반을 세운 니치렌 본인이라도 되시는 거 같았습니다. 지독한 것은 지나가던 상인마저도 반드시 종교를 확인한 후에야 출입을 허락하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손 쳐도 시간도 되지 않았건만 독경을 올리실 분들은 아니셨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수소문해보니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건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입니다. 도적의 요구대로 몸값을 넘겼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중요한 딸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합니다. 두 분이 법경을 외우시는 것도 이해가 갔습니다. 부처님 소매자락을 붙잡는 한이 있더라도 딸을 돌려 받고 싶은 심정이시겠지요.
 여기서 잠시 "쿠로테구미"의 방식을 설명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소동으로부터 아직 몇 년 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독자 여러분 중에는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분도 있으시겠지요. 그들의 수법은 아주 뻔해서, 납치한 아녀자들을 인질로 삼아 거액의 몸값을 요구하고는 했습니다. 협박 장에는 언제 어디에 얼마를 가져오라고 아주 자세히 지정되었고, "쿠로테구미"의 수령이 그 장소에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요컨대 몸값은 피해자가 직접 도적 손에 건네는 것입니다. 참 대담한 방식이지 않나요? 심지어 그들은 조금의 틈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납치, 협박, 몸값 수수에 이르기까지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고 해낸 것이었습니다. 또 피해자가 미리 경찰을 찾아 몸값을 건넬 장소에 형사 등을 깔아두면 어떻게 알아차린 것인지 결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피해자의 인질은 지독한 꼴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쿠로테구미 사건은 흔히 볼 수 있는 불량 청년의 변덕 따위가 아니라, 아주 머리가 좋고 매우 대담한 녀석들의 짓일 게 분명했습니다.
 하여튼 간에 그런 흉적의 손이 뻗은 큰아버지 일가는 지금도 말한 것처럼 큰아버지 부부를 시작해 아주 큰 혼란에 빠져 계셨습니다. 만 엔은 빼앗기고 딸은 돌려받지 못 해서야, 아무리 업계에서 늙은 너구리 소리나 책사 소리를 듣는 큰아버지라도 손 쓸 도리가 없는 것이겠지요. 이례적으로 저처럼 새파란 젊은이에게 어쩌면 좋을지 상담마저 하실 정도셨습니다. 사촌동생 후미코는 당시 열아홉 살이었고, 꽤나 미인이기도 했습니다. 돈을 주어도 돌려보내지 않는 걸 보면 이미 도적의 마수가 뻗은 것일지도 몰랐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도적이 아버지를 빼먹기 좋다 여겨 한 번도 모자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몸값을 갈취하려는 것일지도 몰랐습니다. 어느 쪽이든 큰아버지께서는 매우 크게 고민하셨을 게 분명합니다.
 큰아버지께는 후미코 외에 사내아이 하나를 두셨는데 이제 막 중학교에 들어 간 차라 도움이 되어줄 수 없었습니다. 달리 방법도 없는 탓에 제가 큰아버지의 조언자격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야기를 잘 들어보니 도적의 방식은 소문처럼 아주 교묘하기 짝이 없었고, 어딘가 요기라도 깃든 것처럼 굉장한 부분마저 있었습니다. 저도 범죄나 탐정 같은 일에는 보통 사람 이상으로 관심을 지니곤 했습니다. "D언덕 살인사건"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한 때는 직접 나서 아마추어 탐정 흉내를 낼 정도의 앳됨마저 지니고 있었죠. 그런 만큼 가능하다면 한 번 진짜 탐정을 향해 힘을 내보자고 이래저래 머리를 짜보았습니다만 도통 쉽지가 않았습니다. 일단 단서라 부를만한 것이 없었으니까요. 큰아버지께서 신고는 해두신 모양입니다만 과연 경찰의 손으로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요. 적어도 오늘까지의 성적만 보면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때, 저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케치 코고로를 떠올렸습니다. 그라면 이 사건에서도 무언가를 발견해줄지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한 저는 바로 큰아버지께 상담을 해보았습니다. 큰아버지께서도 마침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상담 상대를 필요로 하던 차였고, 제가 평소부터 아케치 코고로의 탐정 수완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 덕에(물론 큰아버지가 그의 재능을 크게 믿으신 건 아닌 듯하지만) 일단 불러보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바로 차를 타고 담배 가게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책을 산처럼 쌓아 놓은 2층의 사첩반 방에서 아케치와 만났습니다. 운이 좋았던 것은 그가 며칠 동안 "쿠로테구미"에 관한 갖은 자료를 모아 추리를 세워가는 중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심지어 말투를 들어보니 무언가 단서를 얻어낸 모양입니다. 제가 큰아버지에 관해 설명하니 그런 실제 사례와 접하는 걸 바라던 차라며 바로 승낙해주었고, 지체 없이 나란히 큰아버지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곧 아케치와 저는 큰아버지 댁의 정취 있는 응접실에서 큰아버지와 마주 앉았습니다. 큰어머니나 서생 마키타도 나와 이야기에 참가했습니다. 마키타란 녀석은 몸값 수수 당일에 큰아버지의 호위로서 현장에 동행한 남자로, 큰아버지가 참고삼아 불러낸 것이었습니다.
 자리를 잡는 동안 과자니 홍차니 많은 것들이 나왔습니다. 아케치는 외국산 접대 담배를 한 개 들어서는 조심히 연기를 내뿜었던가요. 큰아버지는 업계의 늙은 너구리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게, 일평생을 미식이나 운동부족과 함께 지내 몸집이 꽤나 비대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럴 때마저도 상대를 위압하는 분위기는 여전하십니다. 그런 큰아버지의 양옆에는 큰어머니와 마키타가 앉았습니다. 두 사람은 몸집이 마른 데다가 특히 마키타 쪽은 평균보다도 키도 작은 탓에 큰아버지의 두툼한 폭이 한 층 더 눈에 띄었습니다. 대강 인사가 끝나니 큰아버지가 설명을 시작하셨습니다. 저도 적당히 사정을 설명하였지만 아케치가 한 번 더 자세히 듣고 싶다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건 그래, 오늘로부터 6일 전, 즉 13일이었군요. 점심쯤이었나요. 후미코가 잠깐 친구 집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선 이후로 밤이 되서도 돌아오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저희도 "쿠로테구미"의 소문에 벌벌 떨던 참이었으니 먼저 집안 사람이 걱정을 시작했죠. 그 친구 집에 전화도 해봤는데 오늘은 한 번도 오지 않았다 했습니다. 깜짝 놀랐죠. 알고 있는 친구 집에는 전부 전화를 돌려봤습니다만 역시 어디도 찾지 않았다 했습니다. 서생이나 집에 들락날락하는 자동차 기사도 쥐잡듯이 모아 주위를 수색시켰습니다. 그날 밤에는 결국 눈 한 번 붙이지 못 했어요."
"이야기 중에 죄송합니다만 그날 아가씨가 나가시는 모습을 실제로 본 분은 계신가요?"
 아케치가 물으니 큰어머니가 대신 대답하셨습니다.
"글쎄요. 여종이나 서생이 보았다 하였습니다. 특히 우메라는 여종은 그 아이가 문을 나서는 뒷모습을 기억하고 있다고 해서……"
"그 이후로는 전혀 행방을 모르는 거지요? 이웃이나 길가에서 아가씨의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도 없었고요."
"그렇습니다." 큰아버지께서 그렇게 대답하십니다. "딸아이가 차를 타고 간 것도 아니니 만약 지인과 엇갈렸다면 얼굴도 기억했을 테지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곳은 한가한 주택가라서요. 오가는 숫자 자체가 워낙 적은 탓인지 제아무리 묻고 다녀도 누구 하나 딸을 보지 못 했다는군요. 그래서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그다음 날 점심쯤이었나요? 걱정하던 "쿠로테구미"의 협박장이 날아 온 것입니다. 혹시나 싶긴 했습니다만 아주 놀랐습니다. 안사람은 바로 울음부터 터트리더군요. 경찰에 제출한 탓에 협박장을 보여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문구는 몸값 만 엔을 15일 오후 11시에 T들판의 소나무까지 현금을 들고 와라. 지참인은 반드시 한 명만 올 것. 만약 경찰에 알리면 인질은 죽을 줄 알아라……딸은 몸값을 받은 다음 날 돌려주마. 대강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T들판은 큰아버지 댁 근교에 위치한 연병장입니다. 들판 동쪽 끝자락에 자그마한 관목림이 있는데, 소나무는 그 한가운데에 서있었습니다. 말이야 연병장이지 그 주변은 낮에도 사람이 좀처럼 오가지 않는 한가한 장소로, 겨울이라는 계절까지 더해져 한 층 더 사람이 없는지라 비밀스러운 만남 장소로 아주 적합했던 것입니다.
"경찰이 협박장을 살펴 뭔가 알아낸 건 없었나요?"하고 묻는 아케치.
"그게 단서가 전혀 없다는군요. 흔해 빠진 종이에 봉투도 갈색의 저렴하고 얇은 녀석이었고, 표식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형사는 손자국 같은 흔적조차 하나 없다고 했습니다."
"경시청에는 설비가 잘 갖춰져 있으니 실수하진 않았겠죠. 도장은 어디 도장이 찍혀 있던가요."
"아니, 도장은 없었습니다. 우편으로 온 게 아니라 누군가가 우편 수취함에 집어넣어 둔 모양이더군요."
"그걸 꺼내신 분은 누구십니까."
"접니다." 서생 마키타가 얼빠진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우편물은 항상 제가 정리해서 사모님께 전해드리니까요. 13일 오후 첫 우편물 중에 그 협박장에 섞여 있었습니다"
"누가 그걸 넣었는지도" 큰아버지가 덧붙이셨습니다. "근처 파출소의 순사 등에게도 물어보는 등 이래저래 조사해봤는데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케치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는 이런 의미 없는 문답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려 고생하는 듯했습니다.
"그 후로 어떻게 되었나요." 이윽고 고개를 든 아케치가 이야기를 재촉했습니다.
"저는 역시 경찰을 데려가야 하나 싶었지만 설령 한 줄짜리 협박문이라도 딸의 목숨이 위험하다니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안사람도 말리기에 귀여운 딸과 바꿀 수는 없다며 내키지는 않아도 만 엔을 건네기로 했지요.
 협박장이 지정한 것은 방금도 말한 것처럼 15일 오후 11시 T들판의 소나무였지요. 저는 조금 일찍 준비를 하여 백 엔짜리 지폐로 만 엔을 만들어 품에 넣었습니다. 협박장에는 반드시 혼자 오라 적혀 있었지만 안사람이 크게 걱정한 것도 있고, 고작 서생 하나 데리고 간다고 하여 도적 무리가 성가셔할 리도 없으리라 생각해 이 마키타를 데리고 그 한적한 곳으로 향했습니다. 우습지 않습니까? 저는 이 나이 먹고 처음으로 권총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마키타보고 가지고 있으라 했지요."
 그렇게 말한 큰아버지는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저는 당일 밤의 뒤숭숭한 광경을 상상하고 그만 뿜을 뻔한 것을 겨우 참아냈습니다. 이 덩치 큰 큰아버지가 세상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로 작고 우둔한 마키타를 데리고 어두운 밤 속을 어물어물 걸어 현장으로 가는 기묘한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했기 때문입니다.
"그 T들판의 네다섯 블록 전에 자동차를 내리고 손전등으로 길을 비추며 소나무 아래까지 향했습니다. 어두우니 마키타가 들킬 염려는 없었습니다만 되도록 나무 뒤로 숨어가며 일곱여덟 걸음 쯤 거리를 두고 뒤를 따라왔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소나무 주위는 일대의 관목림으로 어디에 도적패가 숨어 있을지 모르니 아주 꺼림칙했지요. 하지만 저는 꾹 참으며 그 자리에 섰습니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요. 마키타, 나는 그 동안 어떻게 했느냐."
"글쎄요. 어르신께서 쉰 걸음 정도 떨어진 수풀 속에 엎드려 권총 방와쇠에 손가락을 걸고 가만히 어르신의 손전등 빛을 바라보았습니다. 꽤나 길었지요. 저는 두세 시간은 기다린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도적은 어느 방면에서 왔습니까?"
 아케치가 열심히 물었습니다. 그는 적잖이 흥분한 듯합니다. 왜, 산발의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넣고는 뱅글뱅글 돌리는 버릇이 시작되었으니까요.
"도적은 들판 쪽에서 온 모양입니다. 즉 우리가 지난 통로하고는 반대 쪽에서 온 거지요."
"어떤 차림을 하고 있던가요?"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새까만 옷을 입고 있는 듯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데, 얼굴 일부분만이 어둠 속에 허옇게 떠올랐습니다. 제가 괜한 화를 사고 싶지 않아 손전등을 꺼버렸거든요. 하지만 키가 매우 큰 남자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저는 이래 봬도 오척오촌(209cm)는 되는데 그 남자는 저보다도 두세촌(7cm) 정도는 커 보였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무슨 말을 할까요. 제 앞까지 와서는 한 손에 든 권총을 들이밀며 반대편 손을 쭉 내밀더군요. 그래서 저도 말없이 돈 봉투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딸에 대해 물으려고 입을 뗐을 때, 도적 녀석이 대뜸 입 앞에 검지를 세우며 힘을 담은 목소리로 쉿 소리를 내더군요. 저는 닥치고 있으라는 뜻인 줄 알고 아무 말도 않았습니다."
"그 후로는 어떻게 되었나요."
"어떻게 될 거나 있나요. 도적은 피스톨을 제게 들이민 채 뒷걸음질 쳐서 물러났습니다. 숲 안에 들어가 찾을 수 없었죠. 저는 잠시 움직이지 못 하고 가만히 서있었습니다만 그래서야 끝이 없으니 뒤를 돌아 작은 목소리로 마키타를 불렀습니다. 그러니 마키타가 수풀에서 기어 나와 움찔거리는 목소리로 갔나요 하고 물었죠."
"마키타 씨가 숨어 계시던 장소에서도 도적은 볼 수 없었나요?"
"글쎄요. 어둡고 나무가 무성한 탓에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도적의 발소리 같은 건 들은 거 같기도 하네요."
"그 후로는요?"
"제가 이만 돌아가려 하니 마키타가 도적의 발자국을 조사해보자 하더군요. 나중에 경찰하게 가르쳐주면 큰 단서가 될 거라면서요. 그랬지, 마키타?"
"네."
"발자국은 찾으셨나요?"
"그게 말입니다." 큰아버지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도적의 발자국은 찾을 수 없었어요. 결코 우리가 잘못 본 것도 아닙니다. 어제도 형사님께서 직접 조사하러 갔는데 워낙 한가한 탓에 나중에 사람들이 지나다닌 것 같지도 않고, 저희 두 사람의 발자국은 똑똑히 남아 있건만 그 외의 발자국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호오, 그거 정말 재밌군요. 좀 더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나요?"
"땅이 드러난 것은 그 소나무 바로 아래 정도고 그 주변에는 낙엽이나 잡초 따위 때문에 발자국이 남지 않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 땅이 드러난 부분에는 제 게다 자국과 마키타의 구두 자국 밖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선 곳까지 와서 돈 봉투를 받으려면 그 도적패 또한 발자국이 남을 위치까지 와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게 없어요. 족히 여덟 걸음은 될 탠데도요."
"뭔가 동물 발자국 같은 건 없었고요?"
 아케치가 의미심장한 투로 물었습니다. 큰아버지는 당황한 얼굴로,
"동물이라니요."
 그렇게 되물었습니다.
"말이니 개 발자국 같은 것 말입니다."
 저는 그 문답에 이전에 스트랜드 매거진에서 읽은 한 범죄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어떤 남자가 말발굽을 차고 범죄 현장을 왕복한 덕에 운 좋게 혐의를 벗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케치도 그런 생각을 한 게 분명했습니다.
"글쎄요.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마키타, 자네는 알겠나?"
"글쎄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런 건 없었던 거 같습니다."
 아케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당초 큰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생각한 것인데, 아무래도 이번 사건의 중심은 사라진 도적의 발자국에 자리한 듯합니다. 실로 꺼림칙한 사실이었습니다.
 긴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어찌 되었든." 이윽고 큰아버지가 운을 떼셨습니다. "이렇게 사건이 끝났다 생각한 저는 크게 안심한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딸이 돌아올 거라 믿었죠. 도적은 이름값을 높일수록 약속을 반드시 지키기 마련, 도적은 도적이라도 도적 나름의 도리를 지키게 된다 들었기에 설마 거짓말할 리는 없을 거라고 마음 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오늘로 벌써 나흘이나 되었건만 딸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언어도단이에요. 참지 못 한 저는 어제 경찰서에 신고하고 왔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건을 맡는 경찰만 믿고 있을 수도 없어요. 다행히 조카가 당신이라면 믿을만하다기에 크게 부탁해서 이렇게 모신 것인데……"
 그렇게 큰아버지의 이야기가 끝이 났습니다. 아케치는 한 번 더 자잘한 점에 관해 교모히 질문하며 하나씩 하나씩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따로 기술할만한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아케치가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가까운 시일 중에 따님께 뭔가 수상한 편지 같은 건 오지 않았나요?"
 이번에는 큰어머니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딸에게 오는 편지는 제가 반드시 확인하고 있어요. 뭔가 수상쩍은 게 오면 바로 알 터인데 글쎄요, 최근엔 딱히 이렇다 할 건……"

"아뇨, 아주 사사로운 거라도 상관없습니다. 뭔가 마음에 걸리시는 게 있으면 사양 말고 말해주세요."
 아케치는 큰어머니의 말투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재확인하듯이 물었습니다.
"이번 사건하고는 관련이 없을 거 같은데――"
"일단 이야기해주세요. 그런 곳에 생각지 못 한 단서가 있을지 모르니까요."
"그럼 말해드리죠. 한 달 전쯤부터 딸에게 한 번도 보지 못 한 이름으로 띄엄띄엄 엽서가 오더군요. 언제였나 딸에게 학창 시절 친구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말만 그렇다고 하지 뭔가 숨기는 거 같더라고요. 저도 느낌이 쌔해서 언제 한 반 자세히 들어보자 하고 생각하던 차에 이번 일이 일어났답니다. 정말 사사로운 일이라 잊고 있었는데 방금 말로 문득 떠오르더군요. 실은 딸이 납치되기 며칠 전에 그 이상한 엽서가 와서 말이죠."
"그럼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아마 딸의 손궤 안에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말씀하신 큰어머니는 문제의 엽서를 꺼내 오셨습니다. 보니 일자는 큰어머니의 말처럼 12일이고, 보낸 사람은 가명이겠지요 그저 "야요이"라고만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내 모 우체국의 도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문면은 이 이야기 서두에 적어둔 "한 번 뵙고 싶다~"였습니다.
 저도 그 엽서를 많이 음미해보았습니다만 참으로 소녀스럽고 별 거 없는 문구의 연속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케치는 무슨 생각인지 아주 중요하다는 투로 엽서를 잠시 빌려가도 되겠나 묻지 뭡니까. 물론 큰아버지께서는 바로 승낙해주셨지만 저는 아케치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아케치의 질문이 끝났습니다. 큰아버지는 견디지 못 하겠다는 양 그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케치는 생각 끝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아뇨,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는 딱히 이렇다 할 의견을 세울 수 없어서요……어찌 되었든 한 번 해보지요. 어쩌면 이틀이나 사흘 중에 따님을 데리고 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큰아버지의 집을 나온 저희는 어깨를 나란히 하여 길을 걸었습니다. 저는 그때 이런저런 말로 아케치의 생각을 들어내려 했지만, 그는 그저 조사 방침의 일부를 얻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답할 뿐, 막상 그 조사 방침이란 게 무엇인지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저는 아침을 먹자마자 바로 아케치의 하숙집을 찾았습니다. 그가 어떻게 사건을 해결 해갈지 그 경로가 알고 싶어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여느 때처럼 책으로 쌓인 산 위에서 주특기인 명상에 잠긴 그를 생각하며, 친근한 사이이니 담배가게 주인께 가볍게 인사하고는 바로 아케치의 방으로 올라가려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 오늘은 없단다. 웬일로 이른 아침부터 어디로 가버렸더라고."
 그렇게 불러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서 행선지를 물었지만 남기고 가지 않았다 합니다.
 벌써 활동을 시작한 걸까. 그렇다 해도 아침잠이 많은 아케치가 이렇게 이른 시각부터 외출하는 건 보기 드물걸. 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일단 하숙집으로 돌아왔습니다만, 도무지 마음에 걸려 잠시 텀을 두며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아케치의 집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몇 번을 가도 그는 돌아와 있지 않았습니다. 끝내는 다음 날 점심쯤까지 기다렸습니다만 그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조금 걱정스러워졌습니다. 하숙집 주인도 크게 걱정하여 아케치가 방에 무엇을 남기고 가지는 않았는지 확인해보았지만 이렇다 할 것은 없었습니다.
 저는 일단 큰아버지께도 전해두는 게 좋겠다 싶어 바로 큰아버지 댁을 찾았습니다. 큰아버지 부부는 여전히 불경을 외우고 계셨습니다만 사정을 이야기하니 그거 큰일이다, 아케치마저 도적에게 붙잡힌 건 아닌가, 의뢰를 주었으니 자신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아케치의 부모님께 미안해진다며 큰아버지를 시작으로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아케치라면 절대 그런 실수는 하지 않으리라 믿었습니다만, 주위가 이렇게 소란을 떨어서야 같이 걱정되기 마련입니다. 어쩌지 어쩌지 하는 사이에 시간은 흘러만 갔습니다.
 하지만 그날 오후가 되어 저희가 큰아버지 댁의 거실에 모여 회의를 하는 차에 전보 하나가 전해져 왔습니다.
 후미카 씨와 동행. 지금 출발.
 그건 의외로 아케치가 치바에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그만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아케치도 무사하다. 딸도 돌아온다. 침울해져 있던 집안이 단숨에 밝아져 마치 새 신부라도 맞이하는 것처럼 소란을 떨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다 못 한 우리 앞에 싱글싱글 웃는 얼굴의 아케치가 나타난 것은 해가 져가고 있을 즘이었습니다. 꽤나 초췌해진 후미코가 아케치의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지쳤을 거라는 큰어머니의 배려로 후미코만은 거실에 몸을 눕혔습니다만, 저희는 축하연이라며 술상을 차렸습니다. 큰아버지 부부는 아케치의 손을 부여잡고  상석으로 끌어 정말 백만 번쯤은 인사를 하셨을 겁니다. 정말로 소란이었습니다. 그럴 만도 하겠지요. 국가의 경찰력으로도 오랫동안 어떻게 하지 못 한 "쿠로테구미"니까요. 아무리 아케치가 명탐정이라 해도 그렇게 간단히 딸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 했겠지요.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요. 아케치는 혼자만의 힘으로 해낸 것입니다. 큰아버지 부부가 개선장군이라도 맞이하는 듯이 환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는 정말로 놀라운 남자입니다. 아무리 저라도 이번만은 깔끔히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로 여러분이 이 대탐정의 모험담을 들을 수 있도록 다가간 것입니다. 쿠로테구미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었던 걸까요.
"정말 아쉽지만 아무것도 이야기해드릴 수가 없네요." 아케치가 조금 곤란하다는 얼굴로 말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무모해도 나 홀로 그 흉적을 체포할 수는 없지요. 저는 이래저래 생각한 결과 아주 온건히 따님을 되돌려 받을 노력을 해본 겁니다. 요컨대 도적이 되려 얹어서 돌려줄 방법을요. 고로 저와 "쿠로테구미"는 이런 약속을 나누었습니다. 즉 "쿠로테구미"는 따님과 몸값 만 엔을 돌려줄 것, 그리고 앞으로도 이 집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을 것. 그리고 저는 "쿠로테구미"에 대해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을 것, 그리고 앞으로도 결코 "쿠로테구미" 체포를 돕지 않을 것. 저로서는 여러분의 피해를 복구시킬 수만 있으면 그걸로 역할을 다 하는 것이니 괜히 벌집을 건드릴 필요는 없겠지 싶어 도적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돌아온 것입니다. 그렇게 됐으니 여러분도 부디 "쿠로테구미"에 대해 묻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그리고 이게 돌려받은 만 엔이고요. 건넸습니다?"
 아케치는 그렇게 말하고는 하얀 종이 봉지를 큰아버지께 건넸습니다. 모처럼 기대했던 탐정담을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큰아버지 부부께는 이야기하지 못 할지는 몰라도, 제아무리 굳건한 약속이라도 친구인 나에게만은 밝혀주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연회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큰아버지 부부 입장에서는 자신의 집안만 안전하다면 도적패가 체포되든 되지 않든 문제될 게 없겠지요. 그저 고맙다는 일념 하나로 시끌벅적히 잔이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술이 강하지 않은 아케치는 금세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항상 실실 웃고 있는 얼굴을 더욱 무너트렸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잡담에 꽃이 피고 밝은 웃음이 집안 가득 퍼져 갑니다. 그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적을 필요도 없겠지만, 다음 대화만은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조금 끌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케치 씨는 그야말로 딸의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제가 약속하지요. 장래에 선생이 어떤 어려운 부탁을 해도 받아 들이겠다고요. 어떠십니까. 뭐 바라시는 거 없으십니까?"
 큰아버지가 기분 좋은 얼굴로 아케치에게 잔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그거 감사하네요."
 아케치가 대답합니다.
"그럼 이런 건 어떨까요. 제 친구 중에 따님을 굉장히 연모하시는 분이 있는데, 그 남자에게 따님을 주선하는 부탁이라도 괜찮을까요?"
"하하…… 당신도 좀처럼 얕볼 수가 없군요. 물론 선생께서 보증해주신다면 못 할 것도 없지요."
 큰아버지는 싫지 않다는 양 대답했습니다.
"그 친구가 기독교인이라도요?"
 아케치의 말은 즉흥치고는 조금 진지한 듯싶었습니다. 일본 불교에 굳게 발을 걸치신 큰아버지께서는 잠시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으셨지만
"좋습니다. 저는 기독교를 아주 싫어합니다만 다른 사람도 아닌 선생의 부탁이라면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언젠가 꼭 한 번 부탁하러 오겠습니다. 지금 하신 말, 잊으시면 안 됩니다?"
 일련의 대화는 조금 묘하게 느껴졌습니다. 즉흥이라 받아들이면 그렇게도 보이지만, 막상 진지한 이야기라 생각하면 또 그렇게도 보입니다. 저는 문득 배리모어 주연의 셜록 홈즈에서는, 셜록 홈즈가 사건을 통해 알게 된 여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 내용이 있었다는 걸 떠올리고 조용히 웃음을 지었습니다.
 큰아버지는 한사코 붙잡아 두려 하셨습니다만, 하도 길어지는 통에 저희는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습니다. 큰아버지께서는 아케치를 현관까지 배웅하며 감사의 마음이라며, 그가 거절하는 건 듣지도 않고 억지로 이천 엔이 든 돈봉투를 아케치의 품안에 떠미셨습니다.

 

 

쿠로테구미 下. 숨겨진 사실 - 에도가와 란포

"자네, 아무리 "쿠로테구미"와 나눈 약속이라도 나한테만은 이야기해줄 거지?" 저는 큰아버지 댁을 나오자마자 아케치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물론이지." 그는 의외로 간단히 받아들여주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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