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월 초순의 찌는 듯이 더운 밤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D언덕 큰길가의 중간쯤에 위치한 '하쿠바이켄'이라는 단골 카페에서 차가운 커피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당시 학교를 막 졸업하여 이렇다 할 직업도 없이 하숙집에서 뒹굴거리며 책이나 읽고는 했다. 그마저도 질리면 정처 없이 산책을 나와 값싼 카페나 도는 것이 매일의 일과였다. 이 하쿠바이켄이라는 가게는 하숙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어디로 산책을 가든 반드시 그 앞을 지나기 마련이었기에 자주 출입하는 가게 중 하나였다. 나는 매우 질 나쁜 버릇을 하나 지녔는데, 한 번 카페에 들어가면 오랫동안 엉덩이를 떼지 못 한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원체 식욕이 적은 편인 데다가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못 한 탓에 그럴싸한 음식 한 접시 주문하는 법 없이 저렴한 커피를 바꿔 가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들러붙고는 했다. 그렇다고 딱히 종업원에게 정이 간다던가 희롱하는 법도 없었다. 하숙집보다 어딘가 화려한 탓이 엉덩이를 붙이기 편했던 것이겠지. 나는 그 날 밤에도 여느 때처럼 차가운 커피 한 잔을 십 분이나 들이마셔가며 길가와 붙어 있는 테이블에 진을 친 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하쿠바이켄이 자리한 D언덕은 이전에는 국화꽃 인형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좁았던 거리가 행정 개편으로 확장되고 이름마저 붙은 큰 길이 되었거늘 길 양옆에는 아직 공터만 자리했던, 지금보다 훨씬 쓸쓸할 적의 이야기다. 현재, 큰길 넘어 하쿠바이켄의 정면에는 한 척의 고서점이 자리해있다. 나는 사실 아까부터 그 가게를 바라보고 있다. 허름한 외견의 고서점 따위 이렇다 바라볼만한 가치가 있는 광경도 아니지만 내게는 조금 특별한 관심거리가 있었다. 요즘 들어 이 하쿠바이켄에서 알게 된 묘한 한 남자가 있는데, 그 이름은 아케치 코고로다. 말을 터보니 참 독특한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머리가 썩 좋아 보이는 데다가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요전에 듣기로는 그런 아케치 코고로의 어릴 적 친구가 저 고서점의 안주인이라고 하지 않던가. 두어 번 책을 사면서 느낀 것은, 그 고서점 안주인이 제법 미인인 데다가 뭐라 표현은 못 해도 묘하게 남자를 끌어들이는 관능적인 부분이 있었다. 안주인은 밤마다 가게를 보는 듯했다. 오늘 밤도 그럴 게 분명하다고 생각해 가게 안을──그래봐야 두 첩 반 밖에 안 되는 작은 가게지만──살펴보았는데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곧 나오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안주인은 도통 나오는 법이 없었다. 슬슬 귀찮아져 옆에 위치한 시계방으로 시선을 돌렸을 그때였다. 나는 불쑥 가게와 안쪽 방을 나누는 장자의 격자문이 닫힌 걸 발견했다. 장자는 전문가들이 무창이라 부르는 물건으로, 일반적으론 종이가 붙기 마련인 중앙부가 자잘한 세로의 이중 격자로 되어 있어 그걸 여닫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고서점이란 도둑질이 쉬우니 가령 가게는 보지 않아도 안에 사람이 자리하여 장자 틈새로 망을 보기 마련이건만, 그 틈을 닫아버린다니. 날이 추울 때면 모를까 이제 겨우 구 월 초입의 찌는 듯이 더운 밤에 장자를 닫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바라보고 있자니, 고서점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것만 같아 시선을 돌릴 생각이 싹 달아나 버렸다.
그러고 보니 요전 번에 카페 점원들이 고서점 주인을 두고 묘한 소문을 쑥덕거리는 걸 들었다. 듣자 하니 욕탕에서 만난 부인들이나 아이들의 뒷담화 중 하나인 모양으로, "고서점 부인은 생긴 건 그렇게 예쁜데 옷을 벗으면 온몸에 상처가 있더라고요. 때리고 할퀸 멍 자국일 거예요 분명. 부부 사이가 나쁜 거 같지도 않던데 이상한 노릇이야"하고 말하니, 다른 여자가 그걸 듣고 말했다. "그 옆 국수집 부인도 상처가 그렇게 많잖아. 분명 그 상처도 얻어맞아 생긴 상처가 분명해……."하고서. 나는 그 소문을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주인이 많이 무서운 사람이겠지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독자 제군,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이 소문은 아주 사소하지만 이 이야기 전체에 크게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렇게 삼십 분 정도 같은 장소를 보았다. 일종의 예감이라고 할까, 이렇게 바라보는 동안 모종의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도무지 바깥을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아까 한 번 이름이 나온 아케치 코고로가 자주 입는 세로 줄무늬 유카타를 입고서 괜히 어깨를 흔들며 창밖을 지나가는 게 보였다. 코고로는 나를 보고 가볍게 인사하더니 안으로 들어왔다. 차가운 커피를 시키고 나와 마찬가지로 창문을 보며 내 옆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내가 한 곳을 바라보는 걸 눈치챘는지, 나의 시선을 따라 나란히 고서점을 바라보았다. 참 신기하게도 그 또한 매우 흥미진진하다는 양, 조금도 눈을 돌리지 않은 채 고서점 쪽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렇게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같은 장소를 바라보며 수많은 잡담을 나누었다. 그때 우리 사이에 어떤 화제가 오갔는지는 진작에 잊어버렸다. 본론과 별 상관없는 이야기기에 생략하여도, 그게 범죄나 탐정에 관한 내용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시험 삼아 견본을 하나 꺼내보자면,
"절대 발견되지 않을 범죄는 정말 불가능한 걸까요? 저는 가능하다 봅니다. 타니자키 준이치로의 '도상'이 그렇죠. 그런 범죄는 발견되지 않아요. 물론 작중에서는 탐정이 발견해버리지만, 그건 작가의 멋진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아케치.
"아뇨, 저는 다르다고 봅니다. 현실의 문제라면 모를까, 이론적으로 찾지 못 할 범죄는 없습니다. 단지 현재의 경찰 중에 '도상'에 나올 법한 대단한 탐정이 없을 뿐이죠." 하고 말하는 나.
대강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두 사람은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줄곧 대화하면서도 눈을 돌리지 않았던 건너편 고서점에 재밌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쪽도 알아차린 모양이군요."
내가 속삭이니 그가 바로 대답했다.
"책도둑이군요. 이상한걸요. 저도 여기 들어온 시점부터 지켜보고 있었답니다. 이걸로 네 명째군요."
"그쪽이 들어온 지 삼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넷이나 나타나는 건 조금 이상하긴 하죠. 저는 그쪽이 오기 전부터 보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요. 저 격자가 닫힌 게 보이나요? 그 이후로 줄곧 주시하고 있었어요."
"가족 중 한 명이 나간 거 아닐까요?"
"저 장자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어요. 나갔다하면 뒷문이려나요……하지만 삼십 분이나 사람이 없는 건 이상하죠. 어떠신가요. 보고 오시겠어요?"
"그럴까요. 집안에서 무슨 일이 없었어도 바깥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걸지도 모르니까요."
나는 이게 범죄 사건이면 재밌겠다 생각하며 카페를 나섰다. 아케치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게 분명했다. 그 또한 적잖이 흥분한 것이다.
가게에서는 도통 마루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서점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형태다. 정면과 좌우에 천장까지 닿을 법한 선반이 놓여 있고, 허리 부근부터 책을 얹기 위한 받침이 놓여 있다. 가게 중앙에는 마찬가지로 책을 줄짓거나 쌓아 놓기 위한 정사각형의 받침이 섬처럼 놓여 있다. 그리고 정면 책장의 오른쪽이 삼척 정도 열려 있어 안쪽 방과 이어져 있으며, 방금 말한 한 장의 장자가 놓여 있다. 평소에는 장자 앞 반첩 정도의 공간에 다다미가 놓여 있어, 주인이나 안주인이 앉아 가게를 지키는 것이었다.
아케치와 나는 그 방 앞까지 가서 큰 소리를 내 주인을 불러보았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말로 아무도 없는 모양이다. 나는 장자를 조금 열고서 안을 들여다봤다. 안은 불도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했지만, 아무래도 사람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방 한구석에 쓰러져 있는 듯했다. 수상쩍어 다시 한 번 말을 걸어본다.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어쩔 수 없죠. 올라가 확인해볼까요."
두 사람은 척척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케치의 손으로 전등에 불이 들어왔다. 그 순간, 우리는 동시에 "앗"하고 소리를 질렀다. 밝아진 방 한구석에 여성의 시체가 구르고 있었던 것이다.
"안주인이시네요." 나는 겨우 목소리를 냈다. "목을 조인 거 같지 않나요?"
아케치가 옆으로 다가가 시체를 조사해본다. "아무래도 이미 돌아가신 모양이군요. 어서 경찰을 불러야겠습니다. 제가 전화까지 다녀오죠. 그쪽은 이곳을 지켜주세요. 근처에는 아직 알리지 않는 게 좋을 거 같군요. 단서가 사라질 수 있으니까요."
그는 그렇게 명령적인 말을 남기고 전화를 향해 달려 나갔다.
평소부터 범죄니 탐정이니 말로는 한 사람 몫을 깨나 하던 나지만 막상 실제 범죄 현장을 겪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방안을 뚫어져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방은 여섯 첩 크기의 단칸방으로, 안쪽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틀면 좁은 복도를 지나 두 평쯤의 정원과 변소가 나온다. 정원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다. 여름이라고 열어 놓은 통에 밖이 훤히 보인다. 왼쪽으로는 문이 위치해 있다. 그 너머에 두 첩 정도의 마루방이 있고 뒷문을 통해 좁은 욕탕이 보인다. 아래가 보이지 않는 장자가 닫혀 있다. 방의 오른쪽에는 네 장의 후스마가 닫혀 있고 안은 2층으로 오르는 계단과 창고인 듯하다. 저렴한 연립주택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구조다.
시체는 왼쪽 벽에 가깝게 위치했으며, 가게 쪽을 향해 머리를 둔 채 쓰러져 있었다. 나는 되도록 범행 당시의 상황을 흐트러 놓지 않기 위해, 또 꺼림칙하기도 했기에 시체 쪽엔 다가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방이 좁기도 해서 둘러보다 보면 자연스레 시선이 가기 마련인 것이다. 여성은 거친 중간형 유카타를 입고 있으며, 거의 천장을 바라본 채 쓰러져 있다. 단, 옷이 무릎 위까지 올라가 있고 다리 사이도 드러나 있으며 이렇다할 저항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잘 모르긴 몰라도 목에 보랏빛의 졸린 흔적이 남아 있다.
큰길에서는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 큰 대화소리나 게다를 질질 끄는 소리, 술에 취해 유행가를 부르는 소리 등 아주 천하태평이 따로 없다. 장자 하나 너머에서는 한 여자가 지독하게 죽어 쓰러져 있건만. 참 아이러니하다. 나는 묘하게 감상에 젖어 멍하니 자리에 서있었다.
"곧 온다는군요."
아케치가 숨을 헐떡이며 돌아왔다.
"아, 그런가요."
나는 어쩐지 입을 놀리는 것도 피곤하게 느껴졌다. 둘은 오랫동안 말 한 마디 없이 서로의 얼굴만 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복 차림의 경관이 등이 넓은 남자와 함께 왔다. 나중에 안 것인데 제복 쪽은 K 경찰서의 사법 주임이었고, 또 한 쪽은 얼굴이나 소지품으로 알 수 있었듯이 같은 서에 소속한 경찰의였다. 우리는 사법 주임에게 사정을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덧붙였다.
"여기 계신 아케치 씨가 카페에 들어올 때 우연히 시계를 보았는데 그게 여덟시 반쯤이었습니다. 이 장자의 격자가 닫힌 건 대략 여덟 시 쯤 되겠죠. 그때는 분명히 불이 들어와 있었어요. 그러니 적어도 여덟 시쯤에는 누군가 산 인간이 이 방에 있었다는 뜻이 되겠군요."
사법 주임이 우리의 진술을 수첩에 적는 동안, 경찰의가 대략적인 시체 검사를 마쳤다. 그는 우리의 말이 끝나는 걸 기다리다가 말했다.
"교살입니다. 손으로 당했군요. 보시죠. 보라색 멍자국. 이게 손가락 흔적입니다. 그리고 피가 난 건 손톱이 닿은 부분이고요. 목 오른쪽에 엄지의 흔적이 있는 걸 보면 오른손으로 저질렀군요. 아마 죽은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셨고요."
"위에서 누른 모양이군요." 사법 주임이 생각을 전했다. "그런 것치고는 저항한 흔적이 없는데……아마 굉장히 갑작스러웠나 봅니다. 힘도 지독했고요."
그리고 우리를 보고는 집주인은 어디 갔느냐 물었다. 물론 우리가 알 리도 없었다. 그때, 아케치가 기지를 발휘하여 옆의 시계집 주인을 불러왔다.
사법 주임과 시계집 주인의 문답은 대강 아래와 같았다.
"주인이 어디로 가셨는지 압니까."
"이 가게 주인은 매일 밤마다 고서를 찾으러 나갑니다. 평소에는 열두 시나 되어야 돌아오지요."
"고서를 어디서 구하지요?"
"우에노의 히로코지에 자주 간다고 들었습니다만 오늘 밤은 어디로 가는지 못 들었군요."
"한 시간쯤 전에 무슨 소리 못 들으셨습니까?"
"소리라 하심은."
"이만한 난리니까요. 여자가 죽을 때 지른 비명이나 싸우는 소리 같은 거……"
"이렇다 들은 건 없군요."
그러는 동안 이야기를 주워 들어 모인 주변 이웃들과 지나가던 구경꾼으로 고서점 밖이 가득 차버렸다. 그 중에 고서점 옆의 양말 가게 안주인이 있어 시계집 주인에게 가세했다. 그녀도 아무 소리도 듣지 못 했다는 요지의 진술을 했다.
주위 이웃들은 그동안 협의를 거쳐 고서점 주인에게 소식을 전할 사람을 보낸 모양이었다.
그때, 자동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리더니 몇몇 사람이 무리를 지어 고서점 안에 들이닥쳤다. 경찰의 급보를 듣고 달려온 재판소 사람들과 우연히 동시에 도착한 K 경찰서장, 그리고 당시에 명탐정으로 명성 높았던 코바야시 형사 일행이었다. 물론 이것 또한 나중에 알게 된 일이다. 내 친구 중에 사법 기사가 한 명이 있는데, 녀석이 이번 사건을 담당한 코바야시 형사와 아주 친근한 덕에 훗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 발 먼저 도착한 사법 주임은 찾아온 일행에게 이제까지의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도 방금 전 진술을 다시 반복해야 했다.
"문을 닫지요."
불쑥 검은 알파카 상의에 하얀 바지 차림의 말단 회사원처럼 보이는 남자가 큰 소리로 말하고는 문을 닫아버렸다. 이 사람이 코바야시 형사다. 코바야시 형사는 그렇게 구경꾼들을 물리고 조사에 임했다. 그의 방식은 참으로 안하무인이어서 검사나 서장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눈치였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활동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그의 수완을 방관하기 위해 찾아온 구경꾼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가장 먼저 시체를 조사했다. 목 부근은 특히 힘을 주어 둘러보았는데,
"손가락 흔적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군요. 즉 아주 평범한 사람이 오른속으로 눌렀다는 것 이외에는 어떤 증거도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검사를 보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한 번 시체의 옷을 전부 벗겼다. 마치 의회의 비밀 회견이라도 된다는 양, 방청객인 우리는 가게 쪽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 조사로 어떤 것을 발견했는지는 몰라도 추측하기에 그들은 시신의 온몸에 수많은 상처가 난 것을 주목했을 게 분명하다. 카페 종업원들이 쑥덕거린 것처럼.
이윽고 그 비밀 회의가 끝났다. 하지만 우리는 안쪽 방에 들어가지 않고 가게와 방 사이의 다다미에서 안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우리는 사건의 발견자였고, 나중 가서는 아케치의 지문을 채취할 필요가 있었기에 마지막까지 추방 당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억류 당했다고 표현하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단 코바야시 형사의 활동 범위는 안쪽 방에 제한되지 않고 안팎의 넓은 범위에 걸쳐 있었기에 한 곳에 줄곧 자리했던 우리는 그 조사 상황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운 좋게도 검사가 안쪽 방에 진을 친 채 종일 움직이지 않은 덕에 형사가 오가며 조사 결과를 일일이 보고하는 것을 빠짐없이 들을 수 있었다. 검사는 그 보고를 바탕으로 조서의 바탕이 될 기록을 적어 내려갔다.
먼저 시체가 발견된 방을 조사했는데, 유류품도 발자국도 달리 눈이 갈만한 무언가도 없는 듯했다. 단 하나를 빼고는.
"전등 스위치에 지문이 있군요." 검은 에보나이트 스위치에 무언가 하얀 가루를 뿌린 형사가 말했다. "전후 사정을 생각하면 전등을 끈 것은 범인이 분명합니다. 이걸 킨 것은 두 분 중 어느 분이십니까?"
아케치가 자신이라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당신 지문을 채취하게 협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전등은 건들지 말고 이대로 떼어가죠."
그런 형사는 2층으로 올라 잠시간 내려오지 않았다. 내려와서도 곧장 길가를 조사하러 갔다. 십 분쯤 걸렸을까. 이윽고 그는 손전등을 한 손에 든 채 한 남자를 데리고 돌아왔다. 더러운 크레이프 셔츠에 카키색 바지 차림의 마흔 쯤 되어 보이는 칙칙한 남자였다.
"발자국은 어려울 거 같습니다." 형사가 보고했다. "이 뒷문 부근은 해가 잘 들지 않는 탓에 많이 축축합니다. 발자국이 한 번 생기면 잘 지워지지 않아 특정하는 건 불가능하군요. 그리고 이 남자 말입니다만" 지금 데리고 온 남자를 가리키고는 "이 분은 이 뒷골목에서 아이스크림 장사를 하시는 분인데, 만약 범인이 뒷문으로 도망쳤다면 일방통행인 골목 특성상 반드시 이 남자의 눈에 들기 마련입니다. 한 번 더 제 질문에 답해주시렵니까?"
그 아이스크림 장수와 형사의 문답이란 것이,
"오늘 밤 여덟 시 전후로 이 골목에 오간 사람은 없습니까?"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해가 진 이후로는 들고양이 한 마리 지나지 않았어요." 아이스크림 장수는 꽤나 요령 좋게 대답했다.
"저는 오랫동안 여기서 장사를 했는데 이 골목은 밤이 되면 이 주택 주민들도 잘 오가시지 않습니다. 걷기에도 영 안 좋은 데다가 어두컴컴하기까지 하니까요."
"손님 중에 골목으로 간 사람은 없나요?"
"없습니다. 다들 제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드시고 온 방향으로 돌아가시니까요. 분명합니다."
만약 이 아이스크림 장수의 증언이 믿을만한 것이라면 범인은 가령 이 집 뒷문으로 도망쳤다 하여도 뒷문에서 유일하게 뻗은 통로인 뒷골목으로는 나가지 않았다는 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앞문으로 나간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하쿠바이켄에서 지켜보고 있었으니 분명하다. 그럼 범인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코바야시 형사의 생각에 따르면 범인이 이 골목에 위치한 앞뒤 두 측의 주택 중 어느 곳에 잠복해 있거나, 혹은 주민 중 하나가 범인이라고 한다. 물론 2층에서 지붕을 건너 도망쳤다는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지만 2층을 조사해보니 앞쪽 창은 방범 격자가 있어 도통 움직이지 않고, 뒤쪽 창문도 더위 탓에 잠에 못 드는지 하나같이 불이 들어와 있는 데다가 안에서 빨래를 말리며 몸을 식히는 사람마저 있을 정도니 지붕 너머로 도망치는 건 어려우리라 추정된다고 한다.
그런 탓에 임검자들 사이에서 조사 방침에 관한 협의가 벌어졌다. 결과, 숫자를 나누어 주변 집들을 조사해보기로 했다. 물론 앞뒤의 건물을 합해 열한 집 밖에 없으니 크게 성가신 일은 아니다. 그와 동시에 집안도 다시 한 번 마룻바닥부터 천장 뒤편까지 빠짐없이 조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언가를 얻기는 고사하고 되려 사안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고서점 뒤편의 과자집 주인이 해가 질 적부터 지금까지 옥상에서 빨래를 말리며 퉁소를 불었다는 게 판명된 것이다. 그는 시종 고서점 2층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독자 제군, 사건이 꽤나 재밌어졌다. 범인은 어디로 들어와 어디로 도망갔는가. 뒷문도, 2층 창문도 아니다. 앞문은 더더욱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혹은 연기처럼 사라진 것일까. 이상한 게 그뿐일까. 코바야시 형사가 검사 전에 데리고 온 두 학생은 아주 묘한 말을 했다. 뒤쪽 주택에 사는 어떤 공업 학교 학생들인데, 어느 쪽도 헛소리를 할만한 인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의 진술은 이 사건을 아주 이해하기 어렵게 바꿔버린 것이다.
검사의 질문에 둘은 대강 아래처럼 대답했다.
"저는 딱 여덟 시 쯤에 이 고서점 앞에 서서 저기 놓인 잡지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안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길래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들어 장자 안쪽을 바라보았죠. 장자는 닫혀 있었지만 격자 틈새로 한 남자가 서있는 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고개를 든 것과 거의 동시에 격자를 닫아버린 탓에 자세한 것은 알지 못 합니다. 그래도 오비를 보면 남자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남자라는 것 말고 뭔가 아신 건 없습니까? 차림이나 옷 무늬 같은 거요."
"허리 아래 밖에 보이지 않아 외견은 알 수가 없군요. 옷은 검었습니다. 어쩌면 얇은 줄무늬나 잔무늬였을지도 모르지만 제 눈에는 검은 무지로 보였습니다."
"저도 이 친구와 함께 책을 봤습니다."하고 운을 떼는 또 한 쪽의 학생. "그리고 마찬가지로 소리를 듣고 저 또한 격자가 닫히는 걸 봤습니다. 하지만 그 남자는 분명 하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줄무늬도 모양도 없는 새하얀 옷이요."
"그거 이상하군요. 둘 중 하나가 잘못 본 거 아닐까요?"
"절대 아닙니다."
"저도 거짓말 안 해요."
두 학생의 이상한 진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리한 독자라면 아마 어떤 사실을 깨달았으리라. 실은 나도 그것을 깨달았다. 다만 재판소나 경찰들은 이 점을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은 부인의 남편이 소식을 듣고 돌아왔다. 그는 고서점 사람 답지 않게 삐쩍 마른 젊은 남자였다. 아내의 시신을 보고는 약한 성질을 드러내 소리도 내지 못 했지만 뚝뚝 눈물을 흘렸다. 코바야시 형사는 그가 진정되기를 기다려 질문을 시작했다. 검사도 거들었다. 그들은 곧 실망했다. 남편이 범인에 관해 짐작 가는 게 전혀 없다고 한 것이다. 그는 "이 사람은 남에게 화를 살 사람이 아닙니다." 하고 말하며 울었다. 게다가 그가 이래저래 조사한 결과 강도도 아니라고 한다. 남편의 경력이나 아내의 신분 등 여러 조사가 있었지만 이렇다 의심스러운 점도 없고 이야기의 줄기와 별 관계도 없기에 할애하겠다. 형사는 마지막으로 시신의 온몸에 난 수많은 상처에 대해 물었다. 남편은 매우 주저했지만 이윽고 자신이 낸 상처라 답했다. 하지만 그 이유에 관해서는 지겹게 물었음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답을 얻지 못 했다. 단 남편은 이 밤 내내 가게 밖에 있었다는 게 확연되었기에, 가령 학대의 흔적이 있더라도 살해 용의는 걸 수 없을 터였다. 형사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깊게 파고 들지 않았다.
그렇게 밤의 조사는 일단 막을 내렸다. 우리는 주소와 이름 등 인적 사항을 남기고 아케치의 지문을 채취한 뒤에야 귀가할 수 있었다. 시각은 이미 한 시를 넘어 있었다
만약 경찰 조사에 빈틈이 없고 증인들도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이는 참 이상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에 의하면 다음 날부터 다시 이뤄진 코바야시 형사의 갖은 조사도 별 보람이 없었는지, 사건 당일의 밤으로부터 조금의 진전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증인들은 하나같이 믿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열한 척의 주민들도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피해자의 고향도 조사해보았지만 이렇다 할 것은 없었다. 적어도 코바야시 형사――그는 아까도 말한 것처럼 명탐정이라 불리는 사람이다――가 전력으로 다해 조사한 것에 한해서는, 이 사건은 이해하기 어렵다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 또한 나중에 들은 것인데 코바야시 형사가 유일한 증거품으로 의지하여 가지고 간 전등 스위치에서도 아케치의 지문 밖에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의 아케치가 당황한 탓인지 수많은 지문이 찍혀 있었만 전부 그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아마 아케치의 지문이 범인의 지문을 지워버린 것이리라. 형사는 그렇게 판단했다.
독자 제군, 제군은 이 이야기를 읽고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가 살인사건'이나 코난 도일의 '얼룩 띠의 비밀'을 연상하지 않을까. 요컨대 이 살인 사건의 범인은 인간이 아닌 오랑우탄이나 인도 독사 아닐까 하고 상상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은 나 또한 같은 생각을 했다. 단, 도쿄의 D언덕 부근에 그런 게 있을 리도 없을뿐더러 애시당초 장자 사이로 남자의 모습을 보았다는 증인이 있다. 하물며 원숭이라면 발자국이 남기 마련이며 시선도 끌고 말 터이다. 그리고 사망자의 목에 남은 손가락 흔적도 분명 인간의 것이다. 뱀이 둘러져서야 그런 흔적은 남지 않을 테니까.
어찌 되었든 아케치와 나는 그날 밤 귀가하며 매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나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당신도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가 살인 사건'이나 르루의 '노란 방의 비밀'의 소재가 된 파리의 Rose Delacourt 사건을 알고 있지요? 백 년 이상 지난 오늘날에도 아직 수수께끼가 남은 그 이상한 살인 사건 말입니다. 저는 그 사건이 떠오르더군요. 오늘밤의 사건에서 범인이 떠난 흔적이 없는 게 닮은 거 같지 않나요?" 그렇게 말하는 아케치.
"그렇죠. 아주 이상합니다. 흔히 일본 건물에서는 외국의 탐정 소설 같은 심각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는데,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실제로 이런 사건도 벌어진 거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한 번 이 사건을 조사해보고 싶은 참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어떤 골목에서 헤어졌다. 그 후, 나는 문득 어깨를 흔드는 특유의 걸음거리로 골목을 지나 재빨리 돌아가는 아케치의 뒷모습이, 그 화려한 세로 줄무늬의 유카타와 맞물려 어둠 속에서 붕 떠보인 것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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