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수술 마취서 깨서 내 얼굴을 보았다.
오른손에 두텁게 붕대를 감긴 했으나 손목이 절단된 건 꿈에도 알지 못한다.
그는 명성 높은 피아니스트니 오른 손목이 사라진 건 치명상인 듯했다. 범인은 그의 명성을 질투한 동업자일지 모르겠다.
그는 어두운 밤길에서 길가는 사람한테 날카로운 칼날로 오른 손목 관절부 위를 잘려 정신을 잃었다.
다행히 내 병원 근처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그는 실신한 채로 이 병원에 옮겨졌고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다.
"아, 자네가 봐준 건가. 고마운걸……취해서 말야. 어두운 거리서 누군지도 모르는 녀석한테 당했네……오른손인가. 손가락은 괜찮아?"
"괜찮아. 팔을 조금 다치긴 했지만 뭐, 금방 나을 거야."
나는 친구가 낙담하는 걸 바라지 않아 조금 좋아질 때까지 그의 피아니스트 인생이 끝난 걸 숨겨두기로 했다.
"손가락도? 손가락도 원래대로 움직이겠어?"
"괜찮을 거야."
나는 도망치듯이 침대를 벗어나 방을 나왔다.
담당 간호사에게도 한동안 손목이 잘린 걸 말하지 말하라고 못을 박아두었다.
그로부터 두 시간 정도 지나 나는 그의 병실을 찾았다.
환자는 살짝 기운을 되찾았다. 하지만 아직 자신의 오른손을 확인할 힘은 없다. 손목이 사라진 걸 알지 못한다.
"아파?"
나는 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아니, 많이 편해졌어."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 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그리고 이불 위에 내놓은 왼손의 손가락을 피아노 치듯 멋지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른손 손가락 좀 움직여도 되나? ……새로 곡을 써서 말야. 매일 한 번은 해야 기분이 풀리거든."
나는 놀랐지만 즉흥적으로 환부를 움직이면 안 된다는 핑계로 그의 위팔 척골신경을 손가락으로 눌러두었다. 그곳을 압박하면 손가락이 없어도 있는 듯한 감각을 뇌중추에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내내 천 위의 왼 손가락을 기분 좋게 움직였으나
"그래, 오른 손가락도 괜찮은 모양이네. 잘 움직여."
하고 중얼거리며 가공의 노래를 연주하는데 푹 빠졌다.
나는 견딜 수 없었다. 간호사에게 환자의 오른팔 척골신경을 압박하라며 눈으로 지시한 채 발소리를 죽여 병실을 나왔다.
그렇게 수술실 앞을 지나고 있으니 한 간호사가 그 방 벽에 걸린 선반을 바라보며 서있는 게 보였다.
그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얼굴은 새파랗고 눈은 이상하리만치 크게 열린 채 선반에 놓인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수술실에 들어가 그 선반을 보았다. 그곳엔 그의 손목을 알콜에 담은 커다란 유리병이 놓여 있었다.
그걸 본 순간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병의 알콜 속에서 그의 손목이 아니, 그의 다섯 손가락이 하얀 게의 다리처럼 움직였다.
피아노의 건반을 치는 듯한 박자로, 하지만 실제 움직임보다 훨씬 작게, 아이처럼, 힘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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