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거에 쉬아레스를 알기 위해 또 동시에 '프랑스 사람이 본 입센'을 확인하기 위해 이 'Trois Hommes'를 읽었다.
근대극의 시조란 이름으로 또 깊이 있는 사상극 작가란 이름으로 이 북유럽의 천재를 보던 내 눈앞엔 곧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민족의 꿈과 고질병을 짊어지고 심지어는 이에 맞서는 거친 고독의 혼이었다. 우리가 단순히 '입센적이다'하고 생각하는 것 중엔 실제론 되려 '노르웨이적'이라 해야 마땅할 기후가 감돌고 있음을 처음으로 확인하고 이 거대한 정신을 새로 이해하기 위한 열쇠를 받은 것처럼만 느껴졌다.
이 발견은 더욱이 파스칼 및 도스토옙스키의 글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나는 이 '세 사람' 덕에 다양한 감동과 즐거움을 맛보았는데 무엇보다 큰 이익이었던 건 입센이 노르웨이 사람이며 도스토옙스키가 러시아 사람이고 파스칼이 프랑스 사람이란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사실을 제각기 문학적 특징 위에서 처음으로, 단순히, 명확한 인식을 받았단 점에 있다. 외국 문학의 이해와 음미는 이러한 기반 위에 서지 않으면 자칫 잘못된 해석에 빠지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쉬아레스는 결코 민족적 입장서 이 '세 사람'을 흡수한 게 아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근대에 사는 고고한 비극 시인으로서 이러한 선배에게 열렬한 악수를 청하고 있을 뿐이다. 그의 비평안은 차갑게 얼어 있지 않다. 그 분석은 깊은 안쪽의 비밀을 살피는 듯하지만 되려 늘 성실한 인사이며 솔직한 환호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이 일본에 소개되는 걸 바라 야마모토 쇼텐 주인에게 권하며 가장 적임이라 생각되는 미야자키 미네오 군에게 번역을 위탁했다. 때문에 내용, 번역 모두 내가 책임을 지고 추천할 수 있음에 기뻐하고 있다.(1935년 3월)
'고전 번역 > 키시다 쿠니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장 뛰어난 체계를 갖춘 근대극 총서 - 키시다 쿠니오 (0) | 2022.08.13 |
---|---|
'만주 문학 선집' 선자의 말 - 키시다 쿠니오 (0) | 2022.08.12 |
'월, 수, 금' 후기 - 키시다 쿠니오 (0) | 2022.08.10 |
후일담 - 키시다 쿠니오 (0) | 2022.08.09 |
연습곡 - 키시다 쿠니오 (0) | 2022.08.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