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희곡 창작과 거리를 두고 있었더니 요즘 들어 또 희곡을 쓰고 싶어졌다. 왜 희곡을 쓰지 않는가. 사람들이 곧잘 묻곤 했는데 딱히 깊은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단지 조금 쉬는 게 좋겠다 싶었을 뿐이다.
쉬는 사이에 이제까지 쓴 게 왜 그리 만족스레 무대화되지 않았는가 하는 원인이 스스로도 확고해져 어떤 각오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어느 정도 느낌이 다른 걸 쓰게 되리라. 현재 일본이 처인 문화적 여러 조건을 받아 들이면서 일개 연극인의 숙명에 충실히 임할 생각이다.
따라서 과거의 작품은 내가 밟아 온 발자취라는 의미 이외엔 다시 세간을 향해 내던지는 야심을 잃었으나 한 작가의 역사란 이미 누구도 닦을 수 없는 공적인 성질을 지니는 법이다. 때문에 소겐샤의 요청을 받아 들여 선집을 내기로 했다. 또 작품 선택 및 편집을 사원 아키야마 군에게 일임했다.
'종이풍선'은 다이쇼 14년 5월 잡지 분게이슌주의 의뢰를 받아 썼다. 분명 그달의 창작란 모두를 희곡으로 채우는 기획이었지 싶다. 당시의 나는 테마극이란 것에 반대하여 줄거리 없는 스케치극을 시도했다. 이 판타지를 너희가 알겠냐며 내심 우쭐해한 것도 사실이다. 또 알만한 사람은 이게 결혼 전에 쓴 거란 걸 알 수 있으리라. 그런 점이 얄팍하다면 얄팍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우시야마 호텔'은 쇼와 3년 12월 츄오코론의 의뢰를 받았다. 아사쿠사 방언은 친구 H군의 신세를 빌어 겨우 체면을 갖추었다.
여기저기서 읽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참고 읽어준 사람은 확실히 이건 방언을 써야만 하는 글이라고 말해주었다.
등장 인물에 모델이 있을 법 하지만 사실 또렷한 모델은 누구 하나 없다. 단지 장소만은 베트남의 하이퐁의 이미지를 따와 지금도 그곳에 자리한 '이시야마 여관'을 무대로 삼았다. 이전에 한 번 찾아 다양한 인상이 공상의 단서가 된 건 사실이나 인물 하나하나에 실재 인물의 그림자를 드리우진 않았다.
"세월"은 쇼와 11년 카이조에 개제되었다. 이건 어떤 단순한 사건에 힌트를 얻어 단숨에 쓴 것이데 이게 우연히 나의 '희곡을 쓰기 위해 무언가를 말하는' 최후의 작품이 되었다. 적어도 이런 종류의 천하태평극은 당분간 쓰지 못할 듯하다.
어떤 기준으로 선택된 건진 모르나 내 과거 대표작들이 잘 뽑힌 거 같아 작가로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호오는 문제 삼지 않아도 좋다.
쇼와 14년 7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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