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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키시다 쿠니오

오카다 군의 개인전 - 키시다 쿠니오

by noh0058 2022.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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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파리에서 오카다 군을 안 건 유럽 대전이 끝난 1919년 연초였습니다. 오카다 군은 저보다 먼저 파리에 와서 파리 생활에 관한 여러 지식을 주었죠. 또 빈곤하면서도 본인의 일에 손을 새겨 넣는 모습이 저를 끝없이 자극하고 편달해 주기도 했습니다.

 오카다 군은 그림에 관해선 완전히 아마추어인 제게 자신의 포부와 이미 걷고 있는 길을 종종 말해주곤 했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론 그는 일본제 서양화는 그리고 싶지 않다, 일본풍으로 신기하단 시선을 받는 거나 서양인을 모방해 시선을 끄는 건 어렵지 않다, 요컨대 자신은 평소 생활부터 서양인이 되어 서양인이 아니고선 그리지 못할 유화란 걸 그리고 싶다, 그렇게 유화의 본질까지 발을 들이는 게 진짜 자신이 바라는 바이다, 따라서 자신은 사람이 십 년이면 졸업할 것에 이십 년을 들여도 상관없다, 일본인이 유화로 그림을 그린다는 부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것뿐이다――그렇게 말하곤 했지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오카다 군에게 어느 정도의 재능이 있는가. 아마추어인 저로선 잘 알 수 없었지만 설령 그가 비범한 재질 밖에 가지지 못했다 해도 이 노력, 이 마음가짐은 예술가로서의 업적에 비범한 무언가를 남길 수밖에 없겠지요.

 과연 그는 시류를 쫓지 않고 기술만 내세우지 않고 착실히 또 당당히 본격적 수업에 몸을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대다수의 친구도 그걸 인정하는 듯했지요.

 오카다 군은 가을 살롱에도 곧잘 입선하여 권위 있는 비평가의 시상도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일본으로 돌아갈 때, 그는 곧 자신 있는 게 만들어지면 보낸다 말했습니다. 아마 그때가 온 걸 테지요. 얼마 전 그는 우편을 통해 제게 수십 점의 작품을 보내고 좋아하는 건 가지고 나머지는 적당히 처분하라 말했습니다.

 또 그는 여전히 곤란한 생활과 싸우고 있으며 도구를 파는 할아버지를 돌보는 일을 통해 도구 값을 내고 있다고도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과분하지만 오카다 군의 선배와 지인에게 연락해 오는 7월 1일부터 4일 동안 긴자니시히도 회랑에서 오카다 군의 개인전을 열게 되었습니다. 한 번 직접 보러 오시지요. 그리고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면 '파격적인 가격'으로 오카다 군을 지원하는 의미도 포함해 구입해 주셨으면 합니다.(193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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