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극 구락부가 만들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굉장히 막연하게 만들어진 형태이다. 하지만 그런 게 만들어지는 필연성은 있었다 할 수 있다. 굉장히 쉽게 만들어진 걸로도 그렇게 볼 수 있고, 만들어진 것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가 상당히 크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런 기대를 받은 건 사실이나 또 한편으론 그런 기대에 보답할 수 있는 역할이 가능하겠냐는 걱정 또한 보이고 있다.
세간이 어떻게 보든 내부에선 즉, 구락부 자체로선 자신들의 목표가 정해져 있는 한 기대가 지나치게 큰일도 없을 터이며 장래의 발전 따위는 모든 회원의 열정에 달려 있다 믿을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조직의 성질상 선구적인 무언가가 만들어지진 않으리라. 가맹 개인 및 단체의 특수한 입장을 모조리 내포하면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아 최대 공약수적 이상을 발견하기 위해 나아가는 게 이 조직의
'자신의 역할'과 '구락부의 역할'을 적절히 구별해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 본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자기 혼자선 '자신의 역할'을 생각처럼 할 수 없다는 이기적 계산은 별개로, 자신의 일부를 자신 뒤에 찾아올 자를 위해 도움이 되려 한다는 약간의 보리(?)가 있어도 되지 않겠는가. 젊은 사람에게 그런 기대를 품는 건 바람직하지 못할 수 있으나 구태여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구락부의 존재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일이 불가능하리라.
결국 앞으로 있을 구락부의 사업은 그 명목에 고집하지 않고 실적만을 보며 회원 개개인의 모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말고 '공평'하며 '합리적'인 정도가 고작이리라. 하지만 '합리적'이라는 것이 연극 사회에 결여되어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때문에 좋은 일이 좋은 걸로 취급받는 게 느리며 성장해야 할 게 도무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한 마디를 보태자면 이 구락부의 목표는 우리가 협력해 화려한 연극적 행동을 일으키리란 공상은 배제하고 되레 개개인의 뛰어난 의지와 재능을 충분히 길러내 결실을 맺을 수 있는 토양을 공급하는 일에 있으며, 이를 위해 나 개인의 의견을 제시하자면 오늘날까지 바랐으나 얻지 못했던 '좋은 연극적 분위기'의 양성이 일본 신극 구락부 설립으로 그 기운을 포착하게 됐다는 점에 적잖은 의의가 있다고 본다.(193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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