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무대 감독을 받았을 때 곧장 작가 카네코 요분 군과 만나 이래저래 상담하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카네코 군이 여행 중이었기에 도리 없이 나만의 해석을 따라 연습을 진행했다.
얼마 후 여행에서 돌아와 연습을 봐준 카네코 군이 내 해석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주었다. 그게 꽤나 중요한 부분에 맞닿아 있어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 '꼴사나운 남자'는 처음부터 그 '여자'가 소꿉친구인 걸 알고 있었다 한다. 나는 되려 처음엔 그걸 몰랐으나 점점 어떤 '신비적 교감' 덕에 서로의 기억을 불러낸 거라 해석했다.
연습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부터 다시 해서야 형태가 흐트러지는 걸로 모자라 되려 인상이 흐릿해지고 만다. 다행히 작가의 허락도 있었기에 그 해석을 관철하기로 했다.
하지만 참 이상한 건 배우가 작가의 의견을 알게 된 후로 그쪽으로 끌려가는 것처럼만 느껴졌다. 작가 또한 그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나는 되도록 배우의 자발성을 키워주는 방침으로 그 액팅에도 적극적인 주문을 내지 않고 있다. 머릿속에 움직임이나 형태를 두어 배우를 그 안에 맞추는 방식을 배척하고 먼저 배우가 스스로 움직임과 형태를 갖추게 해 그걸 소극적으로 조정하는 방향을 택해 봤다. 그 결과는 무대 자체의 오리지널성은 발휘하지 못하더라도 인물 안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걸 느끼게 하는 방향에선 조금이나마 성공했다 여기고 있다. 나는 무대 예술가로서 그 점에서 출발하는 걸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또 배우 제군 또한 나의 이런 주장을 이해해 주고 있으리라 본다. 따라서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겸손한 고찰부터 연기에 충분한 궁리가 쌓이는 것이라 본다. 이번 연습으로 나는 그런 희망을 받게 되었다.
각본 경향, 배우 연기, 감독의 이론, 이 세 박자가 일치하는 건 무엇보다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 '엇갈림'에서 무언가 새로운, 생각지도 못하는 게 만들어지는 것도 기대해 봄 직하다.
너무 이론에 고착화되는 법 없이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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