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서적은 구판의 서론에 적은 것처럼 종전 직후 부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내 안에서 꿈틀이는 감정을 정리할 생각으로 쓴 메모에 가깝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와 같은 입장에서 시대의 혼란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그에 따라 조국의 운명에 하나의 희망이 되리란 염원을 담아 '수신인 없는 편지'라 이름 붙였었다.
잡지 '겐소'에 연재되고 요토쿠샤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된 당시엔 생각보다 그 반향이 컸으며 심지어 그 성질은 제각기 달랐다. 한편에선 내가 하는 말을 선의로 받아 주어 이러한 논의가 헛수고가 아니라 인정해주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또 한편에선 이 글에 대한 생각지 못한 반감을 보이며 거의 분개에 가까운 분위기로 나를 나무라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다.
그리 부족한 글이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런 예상지 못한 결과가 나온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물론 그 점을 두고 반성했다. 말이 너무 부족했다는 점도 남의 긍정을 어렵게 만들었음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귀찮은 문제는 나 같은 사람이 그런 식으로 대할 게 아니다 하는 견해가 성립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이는 지극히 지당한 말로 나도 참 괜한 참견을 했다는 생각도 들곤 한다. 하지만 덮어놓으면 그만이란 태도만큼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일도 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걸 말해야만 하는 인물, 말해줬으면 하는 인물이 좀처럼 말하지 않는 일본의 현상황을 생각하면 누구라도 좋으니 말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되는 대로라도 말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자신을 격려하며 채찍질한 것이다. 나는 아무리 혼이 나고 아무리 욕을 먹어도 구태여 이를 말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
단지 요토쿠사판이 이미 절판이 되었음에도 굳이 새로 이를 공개하는 건 지나친 집착이지 않은가 하는 걱정이 없지는 않다. 또 어떤 사람들에겐 거듭 불쾌함을 줄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이제 그만 입 다물고 있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내심의 목소리를 쉽사리 흘려 듣지 못하는 게 속내긴 하다.
결코 책임을 전가할 생각은 없으나 모든 걸 T・K 군의 재량에 맡겨 그 호의와 격려를 바탕으로 버티기로 했다.
195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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