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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키시다 쿠니오

프로그램 - 키시다 쿠니오

by noh0058 2022.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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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도 매월 각종 극단의 프로그램과 티켓이 전해진다. 프로그램은 한 번 훑어보지만 티켓을 이용하는 일은 드물다. 실례지만 내 식욕을 자극하는 게 없다. 작가도 각본도 배우도 연출가도 아느냐 모르느냐에 무관하게 무대가 대개 상상이 간다. 프로그램의 냄새를 맡으면 알 거 같다.
 개중에는 내 각본을 무단 상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건 더더욱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겉모습만큼은 제법 꾸며 놓았으나 줄거리 문장이 유치하고 볼품없어 한심한 게 많다.
 요컨대 프로그램 하나로 극단의 정신, 두뇌, 면모, 걷는 방식까지 저절로 알게 된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아무리 선전에 힘을 줘도 믿을 수 없다면 누구도 보러 갈 생각이 들지 않으리라.
 하지만 얼마 전 드물게 나를 긴장시킨 프로그램이 있다. 또 무단 상연인가. 그렇지 않다. 어떤 극단에서 내가 모르는 작가의 각본을 상연하는데 프로그램의 줄거리를 읽는 사이에 이건 상당히 좋은 물건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작가 이름을 보았다. 창작극 부진인 오늘날, 좋은 작품에 속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이 작품이 실린 잡지가 없나 생각해 봤다. 연출자 이름으로 추측해도 어떤 레벨에 이르렀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이 신인 작가의 출현을 어쩐지 간과할 수 없는 것처럼 느꼈다.
 그 후 이래저래 바쁘기 짝이 없어서 아직 그 작품이 실린 잡지를 읽은 적은 없다. 하지만 실물을 읽지 않은 차에 운이나 시험해보는 기분으로 이 노트를 적어두고 싶었다.
 그건 창작좌의 출품물 중 하나로, 마후네 유타카 작 '족제비'를 말한다. 이 젊은 극단은 창단함에 오카다 여사의 '숫자'를 포함하여 출품 자체에는 성공했다고 단정 지어도 좋으리라. 
 프로그램의 유혹이란 이래야 한다.(193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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