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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키시다 쿠니오

'붉은 오니'의 작가 사카나카 마사오 군 - 키시다 쿠니오

by noh0058 2022.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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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극을 자주 보는 사람일 수록 사카나카 마사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지. 또 창작좌의 지지자면서 '말'의 무대에서 무언가 '새로운 걸' 느끼지 않은 사람도 없으리라.

 사카나카 군은 희곡가로서 리리시즘(서정미)서 출발해 현실 해부로 나아간 우수한 작가 중 한 명이나 최근에 이르러 그의 착안은 서서히 인간 생활의 복잡한 기구인 '이해관계'의 심리라 해야 마땅할 일종의 소박하며 처참한 정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천성의 예술가이며 그의 정의는 차가운 냉소를 지닌 채 항상 이 비극을 내려보고 있다. 그점에서 판타지가 만들어지고 해학미가 묻어난다.
 그가 기획하는 건 아마 하나의 타입이 발생하는 동기와 환경, 그리고 그 타입이 과거와 미래에 걸쳐 작용하는 힘에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는 그야말로 일본이 발자크의 세계를, 심지어 그의 가까운 주위를 추구해 이를 극명히 그려내려는 야심이자 이를 위해서는 희곡 형식으론 지극히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가 구태여 이 형식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그야말로 '사상'에 대한 그의 시적 파악에 있으리라 본다. 요컨대 현실의 이미지는 그의 심안서 어떤 포즈를 취하기보다 되려 어떤 '운율(리듬)'을 울리며 흘러 가는 셈이다.
 이런 의미서 그의 희곡은 유니크하며 이번에 창작좌가 뽑은 '붉은 오니' 또한 그가 원하는 만큼 펜을 움직일 수 있었다면――요컨대 좀 더 충분한 페이지 수가 주어졌다면――그 출세작인 '말' 이상의 특색과 깊이를 드러낼 수 있었으리라.
 일본 극작가는 소위 '신극' 분야에서마저 '어른'을 어른으로 요컨대 나이에 따라 성숙된 성격의 전모를 그대로 대상으로 고른다는 필요한 모험을 꾀한 자는 극히 적은 듯하다. 작가 자신이 젊은 탓도 있지만 그보다도 무언가 좀 더 안이한 동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카나카 군의 작품을 상연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인데, 그의 작품은 배우의 기교는 별개로 제각기 역할에 적어도 연령에 이른 배우가 연기하지 않으면 정말로 '재미난 인물'이 되지 않는단 점에서 무서운 작품 생리의 비밀이 담겨 있다. 이는 당연한 일인 듯하나 그런 당연함을 그의 작품만큼 또렷이 느끼게 하는 극은 이제까지 우리 희곡계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리얼리즘의 진정한 묘미는 신극의 무대 위에서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는 게 내 지론이다.
 창작좌는 이 사실을 알고 그의 작품과 마주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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