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 번역/키시다 쿠니오

내일의 극단에 - 키시다 쿠니오

by noh0058 2022. 5. 5.
728x90
반응형
SMALL

 주문에 따르면 "극단에!" 한 마디 해달라는데 적어도 오늘날의 제겐 그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극단이란 게 극장을 중심으로 배우, 극평가, 작가, 장치가, 그 외에 연극 관계자를 망라한 한 사회를 가리키는 거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못해도 그 사회엔 이제 맥락도, 질서도, 이상도, 희망도, 발언자도, 청취자도, 건위도, 흥론도 없이 단지 상업주의의 맹단과 옛 습관을 답습하는 역적만이 존재할 따름입니다.
 상업주의도, 또 옛 습관의 인습도 마냥 나쁘다고는 못 합니다. 하지만 연극 사회에는 사회를 자극하고 유도하는 창조적 기운이 어디선가 기동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극단'의 현상황은 그런 기운의 성장을 가로막는 갖은 요소 위에 성립되어 있습니다.
 오늘까지 신극운동이라 칭해진 소수자의 청년적 의지는 기성 극단에 맞서 하나의 미래를 짊어져야 할 생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생명은 이를 기른 자의 독선주의에 일찍이 고갈되어 버렸습니다. 연극의 본질을 무시한 새로운 연극운동이란 게 결실을 맺지 않는 건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 '내일의 극단'을 위해 현일본의 현재에만 적용되는 두세 희망을 적어보고 싶습니다.
 먼저 하나, 앞으로의 희곡은 문학으로서의 평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이는 이미 끝이 난 논의처럼 보이지만 소위 '무대적'이란 말이 다시 한 번 음미 된 후의 일입니다.
 다음으로 앞으로의 배우는 소위 '연출자'의 꼭두각시가 아니어야 합니다. 이 점에선 다시 한 번 '신극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걸지 몰라도 먼저 제각기 인간으로서의 특수한 매력을 길러야만 합니다.
 더욱이 앞으로의 연출자는 연출자인 한 배우의 '영역'에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도 배우에게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관객은 '재미없는 것'을 확실히 재미없다고 해야 할 테지요. 하품을 죽여가며 무작정 감탄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재밌다면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고 배우에게 배우의 행복을 만끽하게 해줬으면 합니다. 이는 앞으로의 연극을 위해 일반이 해줄 수 있는 유일무위의 협력입니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