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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키시다 쿠니오

영화의 연극성 - 키시다 쿠니오

by noh0058 2022.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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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의 정의를 다룬 문제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연극의 본질을 떠올리자면 현재의 음성 영화는 그 매력의 일부를 연극적인 부분에 두고 있다 본다.
 물론 본질과 본질을 대립시키면 연극과 영화는 서로 침범을 용납하지 않는 독자적인 미학을 지니고 있으나 이야기의 환상(이미지)화, 혹은 눈과 귀에 주는 심리적 감감각적 리듬의 흐름이란 공통의 표현 수단을 지닌 점에서 적어도 자매 예술 중에서는 가장 닮았다 할 수 있으리라.
 특히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볼 수 있게 된 우수한 서양 영화의 대부분은 아직 음성영화의 본질적인 순수성을 발전시키지 못해서 말하자면 무성영화의 초기와 마찬가지로 '무대적인 것'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시대인 듯하다. '무대적인 것'이 무엇인가 하면 가장 먼저 배우의 연기이다. 총명하고 민감하며 유연성에 풍부한 무대 배우는 아마 영화서도 그 지위를 잃지 않으리라. 즉 무대에 서서 진정으로 '인물을 살릴 수 있는' 배우는 스크린 위에서도 어떤 역을 연기하며 그것을 진정으로 살리는 능력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단지 배우 연기만 아니라 무대와 스크린 사이서 근본적으로 다른 미적생명은 전자에 더 많은 제약이 존재하며 후자가 비교적 자유로운 조건을 지니고 있단 점으로 그건 즉 운문과 산문의 차이와 같다 해야 하리라. 이 '운문적 제작'서 만들어지는 무대미(혹은 무대취)의 영화화는 누구나 알다시피 지극히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역시 시간 예술이란 점에서 희곡적 리듬의 법칙을 따르되 전통적 제약선 벗어난 점에서 소설적 자유를 부여 받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 및 희곡을 영화할 때에 이 이면적 처리가 얼마나 적합했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리라.
 단지 이런 성가신 이론을 제쳐두더라도 영화는 아직 연극에 손을 뻗으며 뗑깡을 부릴 나이다. 적어도 서양 연극과 서양 영화의 관계는 그렇다. 일본은 항상 특수 사정이 통용되는 나라니 그렇게만 되지는 않는 듯하다. 일본 연극은 아직 근대 사실주의의 세례를 받지 않았다. 놀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렇다. 이게 영화를 반드시 자매로 취급할 수 없는 이유이다. 되려 최근의 일본 최신 연극은 서양의 음성영화를 견본 삼아 연극적 리얼리즘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지경이다. 물론 이는 좋은 일로 그런 걸 모른 채 연극 수업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되려 불행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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