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히로사키의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입학식서 훈화를 한 교장은 아마 쿠로가네란 이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금테 안경을 쓰고 몸이 말랐으며 살짝 태도가 건방진 사람이었다. 타카타 사나에를 닮았다. 나무 심는 걸 좋아하여 학교 주위에 다양한 나무를 우아하게 배치하고 이따금 홀로 뒷짐을 친 채 그 나무 사이를 천천히 걷고는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교장으로 스즈키 신타로 씨가 왔다. 이 사람의 이름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 이 사람은 교장일을 그르친 사람이다.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정치가 기질이 있는 사람이며 조금은 정당과도 관련이 있었던 듯하다. 취임하자마자 일 주를 오 일로 하여 토요일을 쉬는 날로 삼으며 평일에도 오전 수업만 하고 싶다, 그 때문에 학생들이 나태해질 거 같지 않다. 자신은 학생을 믿는다. 그런 감상을 늘어놓았다. 덕분에 학생들은 크게 기뻐했으나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결국 감상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일을 실행했다.
학교를 하나의 국가로 간주하여 각 반에서 두 명씩 중의원을 뽑고 학교 직원 및 교우회 위원은 정부 위원이 되어 이따금 의회를 열어 교무 행정을 심의하는 소위 유신을 단행한 것이다.
교장 본인은 대강 한 나라의 재상쯤 되는 듯했다. 중의원 선거에는 불이 붙었다. 학교 복도엔 선고 포스터가 빼곡히 붙었다. 선거 사무소도 거창했고 어떤 학생은 교문 아래에 서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일일히 명함을 나눠주며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자세를 낮춰 인사를 했다. 또 어떤 이는 중학교 선배라는 학연을 이용해 후배를 위협하고 향응을 받고 금전을 빼앗았다는 황당한 소문마저 돌았다.
이 의회 제도는 후에 재상을 추방했다. 그때는 보통 소란이 아니었다. 교장이 학생들이 돈을 거두어 마련해둔 학교 회비 몇 만 엔을 몰래 써버린 것이다. 무엇에 썼는지는 가볍게 이야기할 수 없다. 교장 본인이 잘 알 터이다. 요즘 정치판에서야 그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을 테지만 당시에 현의원을 하던 우리 형은 "교육계에서 그런 일을 하다니 멍청한 일이다"하고 말했다. 처음부터 평범하지가 않았다. 학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문양을 새긴 헐렁한 일본옷이 잘 어울리고 모치즈케 케이스케와 닮았다. 그것만으로도 대강 알 수 있으리라. 양복을 입을 때는 골프 바지를 입었다. 사람이 당당하고 얼굴도 아름다웠다. 가끔 인력거를 타고 학교에 와 비서를 끼고 교내를 한 바키 돌았다. 일본옷에 하얀 비단 장갑, 은손잡이 지팡이의 차림으로. 한 바퀴를 돌면 직원들의 배웅을 받아 인력거를 타고 유유히 집에 돌아갔다. 대단한 사람이었다. 정말이지 형의 말을 따라 할 셈은 아니지만 교육계서 이런 짓을 했으니 일을 그르친 게 보통 그르친 게 아니다. 차라리 당시의 정계서 움직였다면 혹은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불행한 사람이었다.
교장에겐 아들이 있었다. 역시나 히로사키 고등학교 이과 소속이었다. 나는 그 사람하고는 말을 섞은 적이 없지만 교장의 관사와 내 하숙집이 가까워서 등교하는 도중에 잠깐 웃음을 주고받고는 했다. 교장 추방 소동 때는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교장은 전교생을 강당에 모아 사과했다. 이번 일은 정말로 미안하다. 용서해달라. 당당히 연설하는 꼴에 학생들은 모두 웃었다. 도둑놈! 그렇게 외치는 열혈 학생도 있었다. 교장은 한동안 연단 위에 서있었다. 내 가까운 자리에 교장의 아들이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신발 끝 주변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재능은 있어서 반 수석이었다는데 지금은 어쩌고 있을까.
스즈키 교장이 검찰에게 끌려 가 다음으로 온 건 토자와란 사람이었다. 나는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이 교장의 이름도 확실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틀릴지도 모른다. 키쿠치 유호 씨의 제자였다. 사진으로 보는 그 키쿠치 유호 씨와 아주 닮아 있었다. 몸집이 작고 뚱뚱했다. 영문학자의 기질이 있었다. 군사 교련 사열 때에 교장 선생님께 경례! 라는 호령에 우리가 총을 들어 올리자 교장은 가을 햇살을 정면으로 받으며 부끄러워 진정이 안 된다는 기색을 하고 있었다. 아, 역시 유호의 제자구나. 그때는 문득 그리워졌다. 우리는 이 교장님이 있을 때에 졸업했다. 그 후의 일은 전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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