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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다자이 오사무

괴로움 일기 - 다자이 오사무

by noh0058 2022.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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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 일
 우편함에 누군가가 살아 있는 뱀을 넣었다. 화가 났다. 하루에 스무 번 가량 집 우편함을 들여다보는 팔리지 않는 작가를 비웃는 사람이 하는 일이 분명하다. 꺼림칙해서 종일 누워만 있었다.

 월 일
 고뇌를 팔지 마라. 지인이 그런 서란을 보냈다.

 월 일
 몸 상태가 안 좋다. 가래에 피가 섞여 나왔다. 고향에 이야기해도 믿어 주지 않을 듯하다.
 정원 구석에 복숭아꽃이 피었다.

 월 일
 백오십만의 유산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얼마나 있는지 자세히 알지 못 한다. 8년 전, 호적에서 파였다. 친형의 정으로 어제까지 살아왔다. 앞으로 어쩌면 좋을까. 스스로 생활비를 번다는 건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대로는 죽는 것 이외엔 도리가 없다. 오늘까지 더러운 일을 한 탓이다. 꼴좋다지, 문장이라고는 볼품 없이 더러운 자식.
 단 가즈오 씨가 찾아왔다. 단 씨에게 사십 엔을 빌렸다.

 월 일
 단편집 '만년'을 교정했다. 이 단편집으로 끝나는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하다.

 월 일
 요 일 년 간 내게 욕을 하지 않은 사람은 세 명? 그보다 적다? 설마?

 월 일
 동생의 편지.
 "20엔을 보낼 테니 받아두세요. 언제나 돈을 재촉하셔서 저도 정말로 곤란합니다. 어머니께 말해본들 듣지를 않으시고 제가 보낼 수밖에 없으니 정말로 곤란합니다. 어머니도 금전적으로 넉넉한 편은 아닙니다. (중략) 돈은 허투루 쓰지 말고 아껴 써야 합니다. 지금이라면 잡지사에게 조금이라도 받고 계실 테지요. 너무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열심히 절약해주세요. 어떤 일이든 조심하세요. 몸 건강에 조심하시고 친구하고도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게 좋겠지요. 모두가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후략)"

 월 일
 종일 맥이 없다. 불면이 시작되었다. 이틀 밤, 오늘은 자야 한다. 삼일 밤.

 월 일
 새벽, 의사를 찾아가는 좁은 길. 다나카 씨의 노래가 떠오른다. 이 길을 걸으며 우는 나를 내가 잊으면 누가 기억하랴. 의사에게 억지를 부려 모르핀 처방을 받았다.
 늦은 점심쯤에 눈이 떠졌다. 어린잎이 빛나고 어쩐지 슬펴졌다.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월 일
 부끄럽고 부끄러워 참을 수 없는 일을, 그 한가운데를 아내는 무신경하게 찔렀다. 뛰쳐 일어났다. 신발을 신고 선로! 순간 멈춰 섰다. 풍로를 걷어찼다. 양동이를 걷어찼다. 방으로 와 철로 된 장자를 걷어찼다. 장자의 유리가 울렸다. 밥상을 걷어찼다. 벽에 간장이 튀었다. 찻잔과 점시가 뒤접여졌다. 다 나를 대신하는 것이다. 이렇게나 박살 내지 않으면 나는 살 수 없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월 일
 오 척 칠 촌의 털복숭이. 부끄러워 죽다. 그런 문구를 떠올리고 혼자 히죽히죽 웃었다.

 월 일
 야마기시 가이시 씨 방문. 사면초가인걸. 내가 말하자 아니, 이면초가 정도야. 하고 정정했다. 아믈답게 웃고 있었다.

 월 일
 말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고 하던가요. 부디 들어주셨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아뇨, 이제 됐습니다. 단지――어제저녁에 1엔 50전 때문에 세 시간이나 아내와 언쟁을 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월 일
 밤에 홀로 화장실에 갈 수가 없다. 뒤에 머리가 작고 하얀 유카타를 입은 마른 열대여섯 먹은 남자아이가 서있다. 지금의 내게 뒤를 돌아보는 건 목숨을 건 일이다. 분명히 머리가 작은 남자가 있다. 야마기시 가이시 씨가 말하기론 그건 내 다섯, 여섯 대 전 사람이 말로 다 못 할 잔인한 일을 해서 그런 거란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월 일
 소설이 완성되었다. 이렇게 기쁜 일이었을까. 다시 읽어보니 괜찮다. 두세 친구에게 알렸다. 이걸로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다. 소설의 제목은 '하얀 원숭이 광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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