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옛날 어떤 곳에 작고 귀여운 여자아이가 있습니다. 누가 잠깐 보기만 해도 귀여워하는 여자아이였는데 그럼에도 아이의 할머니만큼 아이를 귀여워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애만 보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 대체 뭘 해줘야 좋을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붉은 벌벳으로 아이에게 두건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게 또 이 아이에게 굉장히 잘 어울려서 더 이상 다른 건 쓰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이 아이는 빨간 두건아, 빨간 두건아 하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아이를 불렀습니다.
"빨간 두건, 잠깐 와볼래? 여기에 과자 하나랑 포도주 한 병이 있단다. 빨간 두건이는 이걸 할머니에게 가져다 주렴. 할머니가 병으로 누워 계시는데 이걸 드리면 분명 기운을 찾으실 거야. 그럼 날이 더워지기 전에 다녀오렴. 그리고 밖에 나가면 조심하고 또 버릇없게 굴지 말고. 괜히 옆길로 새도 안 된다? 그러다 구르기라도 하면 모처럼 산 포도주병도 깨질 거고 할머니에게 드릴 수 없으니까 말야. 그리고 할머니 집에 들어가면 먼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 거 까먹지 말고. 들어가서 방안을 두리번거리면 안 되는 거야, 알았지?"
"나도 잘 할 수 있어." 빨간 두건은 어머니께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 약속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의 집은 마을서 꽤나 떨어진 숲 안에 있었습니다. 빨간 두건이 숲에 들어가자 늑대가 폴짝 튀어나왔습니다. 하지만 빨간 두건은 늑대가 얼마나 나쁜 짐승인지 알지 못 했기에 별로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빨간 두건 양." 늑대는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늑대 씨."
"이른 아침부터 어디 가시나요."
"할머니한테 가는 중이에요."
"앞에 든 바구니에는 뭐가 들었나요?"
"과자하고 포도주요. 할머니가 병으로 누워 계시대요. 그래서 병문안하는 김에 가져다 드리려고 어제 집에서 구웠어요. 이걸 드시면 할머니가 기운을 차리시겠죠."
"할머니 집은 어딘가요, 빨간 두건 양?"
"이제 8, 9 미터 정도 걸어서 숲 안쪽에 커다란 나무 세 그루가 세워진 곳 아래에 있어요. 집 주위에 나무 울타리가 있어서 바로 알 수 있죠."
빨간 두건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늑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리고 부드러워 보이는 계집이로군. 이 녀석은 기름져셔 맛있을 거야. 할머니보단 훨씬 맛이 좋겠지. 둘 다 한 번에 먹을 궁리가 중요하겠어."
때문에 늑대는 한동안 빨간 두건과 나란히 걸으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빨간 두건 양, 어머 저기 예쁘게 핀 꽃 좀 보세요. 한 번도 제대로 본 적 없죠? 아, 저기선 작은 새가 좋은 목소리로 노래하네요. 빨간 두건 양, 한 번도 못 들어본 거 같죠? 학교 갈 때처럼 무작정 바쁘게 걸으니까요. 숲속은 이렇게나 밝고 즐거운데 말이죠."
그 말에 빨간 두건은 고개를 돌려보았습니다. 그러자 햇살이 나무와 나무 사이서 새어 나와 여기저기서 즐겁게 춤을 추고 어떤 나무에나 아름다운 꽃이 가득 핀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저, 할머니에게 기운 차고 싱싱한 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럼 할머니가 분명 기뻐하실 테죠. 아직 이른 아침이니까 충분히 늦지 않을 거예요."
하고 생각하며 옆길로 그 안에 들어가 숲 안에서 여러 꽃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꽃 하나를 꺾고는 앞에 더 아름다운 게 있지 않을까 싶어 그쪽으로 향했습니다. 빨간 두건은 서서히 숲 안쪽으로 또 안 쪽으로 이끌려 갔습니다.
하지만 늑대는 그 틈을 노려 허겁지겁 할머니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쿵쿵 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신가요?"
"빨간 두건이에요. 병문안으로 과자하고 포도주 가지고 왔어요. 문 열어주세요."
"손잡이를 잡고 밀어주겠니? 할머니가 병으로 누워서 일어날 수가 없구나."
늑대는 손잡이를 밀었습니다. 문이 천천히 열립니다. 늑대는 곧장 안에 들어가 아무 말도 않고 대뜸 할머니가 자고 있는 곳으로 향해 한 입에 할머니를 집어삼켰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옷을 입고 할머니의 두건을 뒤집어쓴 채 할머니 침대에 누워 커튼을 쳤습니다.
빨간 두건은 그 와중에도 꽃을 모으는데 여념이 없어 숲속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모을 만큼 모아 더 들 수 없게 되었을 때야 할머니를 떠올려 다시 걷던 길로 돌아왔습니다. 할머니 집까지 돌아오니 문이 열려 있어 이상하다 싶어 하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무언가가 평소와 달라서
"이상하네, 왜 이러지. 오늘은 어쩐지 가슴이 뛰고 꺼림칙해. 할머니집에 오면 항상 즐거운데"하고 생각하며 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그렇게 불러보았습니다. 하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침대로 향해 커튼을 열어 보았습니다. 그러니 할머니가 침대 안에 누워 계셨는데 두건을 눈까지 푹 눌러 쓴 게 어쩐지 평소와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어머, 할머니. 귀가 왜 이렇게 커지셨어요."
"네 목소리를 잘 듣고 싶어서 말이야."
"어머, 할머니. 눈도 참 커졌네요."
"너를 잘 보고 싶어서 말이야."
"어머, 할머니. 손도 참 커졌네요."
"너를 잘 잡고 싶어서 말이야."
"근데 할머니, 입이 참 크고 꺼림칙해요."
"너를 잘 먹고 싶어서 말이야."
늑대는 그렇게 말하자 대뜸 침대서 일어나 불쌍한 빨간 두건을 한 입에 꿀꺽 삼켜버렸습니다.
이렇게 배를 한껏 불린 늑대는 다시 침대로 들어가 오랫동안 누워 있었습니다. 이윽고 엄청난 소리를 내며 코를 골기 시작합니다.
마침 그때 사냥꾼이 옆을 지나가다 묘하다 싶어 멈췄습니다.
"할머니가 엄청 코를 고시네. 이상한걸. 어디, 뭐 이상한 게 없나 확인해야겠다."
그렇게 안에 들어가 침대를 확인하니 늑대가 누워 있었습니다.
"젠장, 이 천벌받을 녀석을 드디어 찾았군. 오랫동안 네놈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사냥꾼은 곧장 총을 꺼냈습니다. 그때 문득 어쩌면 늑대가 할머니를 집어 삼켰을지 모르고, 어쩌면 아직 안에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문에 총은 거두고 대신 가위로 자고 있는 늑대 배를 척척 가르기 시작했습니다.
가위질을 하고 있자니 곧 빨간 두건이 힐끔 보였습니다. 더 가위질을 하니 여자아이가 튀어나와
"어쩜,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늑대의 배 안은 엄청 깜깜했어요"하고 말했습니다.
이윽고 할머니도 아직 살아 계셔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많이 약해져 가는 숨을 내쉬고 계셨습니다. 빨간 두건은 곧장 커다란 돌을 영창영차 옮겨와 늑대 배에 가득 채웠습니다. 곧 눈을 뜬 늑대가 뛰쳐나가려 하니 돌 무게 때문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세 명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사냥꾼은 늑대 가죽을 입고 집에 돌아갔습니다. 할머니는 빨간 두건이 가져 온 과자를 먹고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그렇게 기운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빨간 두건은 '이제 두 번 다시 숲 속에서 옆길로 새 돌아다니지 말자. 엄마가 안 된다고 말했으니까'하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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