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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쿠스야마 마사오

할머니 - 쿠스야마 마사오

by noh0058 2022.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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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파란 안경

 카즈오는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겨우 한 달도 되지 않아 불숙 눈병에 걸려 학교를 쉬어야만 했습니다.
 그로부터 카즈오는 매일 같이 의사에게 받은 파란 안경을 쓰고 할머니와 둘이서――아직 전철이 없었던 시기니까――승합 인력거를 타고 안과에 다녔습니다.
 "먹을 걸 조심하세요. 눈이 안 좋은 건 위장이 안 좋은 탓이니까요."
 의사는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흰살 생선을 드세요. 되도록 죽이 좋고요."
 죽도 간만에 먹는 데다가 할머니가 이따금 작은 냄비에 삶아주는 한펜이나 감자도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르기에 카즈오는 이삼일 동안 썩 즐거웠습니다. 더군다나 파란 안경을 쓰고 먹으니 모든 게 파랗게만 보였습니다.
 "파랗다, 파래. 뭘 먹어도 파래."
 카즈오는 그게 재밌어서 접시 위를 젓가락으로 콕콕 찌르고 다녔습니다. 그때는 마침 장마철이라 어두운 날이 연이어졌습니다. 이윽고는 매일 같이 비만 내리게 되었습니다.
 카즈오는 점점 마음이 무거워지고 눈 안쪽이 찌릿찌릿 따가웠습니다. 파란 안경으로 무언가를 보는 게 우울하고 지겨워서 슬퍼질 정도로 불쾌했습니다.
 먹을 것마저도 편식을 넘어서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어 "싫어싫어"만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전부 다 새파래서 맛이 없는 걸."
 "그럼 밥 먹을 때만 안경을 벗으려무나."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경을 벋어도 한동안은 역시나 파랗게 보였습니다. 겨우 하얀 빛에 익숙해지니 이번에는 눈이 부셔서 눈에 스며드는 듯한 심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역시 안경 써야 해, 할머니."
 카즈오가 통 아무것도 먹지 않으니 할머니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도자기 가게에서 작은 도자기 계란 후라이 냄비를 사 왔습니다.
 그 냄비 형태에 카즈오는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건 뭐야, 할머니?"
 "계란을 굽는단다."
 "이걸로 굽는 거야? 재밌네."
 "이걸로 계란 구울 건데 먹을 거니?"
 "응."
 평소와 달리 먹으려 하는 카즈오의 모습에 할머니는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그날 저녁, 카즈오가 거실 구석에서 아무리 만들어도 진짜가 되지 못하는 나무 쌓기 장난감 집을 짓거나 부시는 사이에 할머니는 계란을 구웠습니다.
 불이 들어오고 상이 나오자 새로 산 귀여운 계란 후라이 냄비가 카즈오의 작은 상 위에 얹혀 있었습니다.
 "자, 열어 보렴. 맛있게 됐단다."
 카즈오가 도자기 뚜껑을 열자 부드럽고 살짝 탄내 섞인 그래도 맛있는 향이 올라왔습니다.一
 "아직 뜨거우려나."
 그렇게 말하며 보기 드물게 방긋 웃은 카즈오는 계란 후라이 안에 젓가락을 꽂았습니다.
 할머니도 방긋방긋 웃으시며
 "그래, 천천히 조심히 먹으려무나"하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한 입 계란 후라이를 입에 담으니 카즈오는 불쑥 얼굴을 찌푸리며 바로 뱉었습니다.
 "아, 냄새 나. 나 이거 싫어. 술 냄새 나."
 카즈오는 눈물을 터트릴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그래, 싫으면 먹지 마라."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대뜸 냄비를 들어 올려 내용물을 정원에 던져버렸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포치가 그걸 보고 다 먹어버렸습니다.
 할머니가 왜 이렇게 화가 났는가. 카즈오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도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스스로 알지 못 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실망하고 안타까워 할머니와 손자는 제각기 다른 심정으로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두 사람이 하루 종일 기대하던 저녁 식탁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처럼 손자 입에 맞을까 싶어 몇 방울이나 뿌린 술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반대의 결과를 낳은 것이었습니다. 그걸 안 카즈오는 더욱 슬퍼졌습니다.

      둘 화투

 카즈오의 집에서 일하던 아이 중에 그림을 잘 그리는 애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커다란 아기새 그림을 어디선가 사와 골판지에 깔끔히 붙이고는 마흔여덟 개로 가른 얇은 선을 가로세로로 긋더니 그 하나하나에 12개월의 꽃이나 나무 그림을 멋지게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카즈오는 그걸 갖고 싶었던 거겠지요.
 "테키치, 테키치 다 그리면 나 주라."
 테키치는 아이의 이름이었습니다.
 "근데 이건 아직 다 완성된 게 아닌데요. 제대로 다 되면 드릴게요."
 "그치만 언제 다 될지 모르잖아. 됐으니까 그거 주라."
 "안 돼요. 아직 색칠도 안 했고……"
 "됐어. 색칠은 내가 할 거야."
 "억지 부리시면 안 돼요. 색칠할 줄 아세요?"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달라니까."
 그럼에도 테키치는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리던 벚꽃이나 새 깃털을 손질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카즈오는 안 되겠지 싶었는지 겁주려는 듯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정말로 슬퍼져 엉엉 울며 거실로 갔습니다.
 "왜 그러니?"
 할머니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테키치가, 테키치가……안 준단 말야."
 테키치는 거실로 불려 한참을 혼나고는 이유도 없이 열심히 그리던 화투 그림을 반밖에 완성되지 못한 채 뺏겨버렸습니다. 아름답게 그려진 매화나 모란, 국화나, 단풍 같은 화투는 그날 밤부터 카즈오의 육 색 색연필로 아낌 없이 칠해져버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빨간색이나 파란색, 노란색으로 지독하게 칠해져 본래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된 테키치의 화투는 다시 한 번 카즈오의 가위에 갈기갈기 찢겨 툇마루에서 정원으로 떨어졌습니다.
 "정말이지, 이렇게 쓰레기나 만들고. 도련님은 곤란하네요."
 그날 낮에 여종 키요는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청소를 했습니다. 단 한 장 소나무에 학이 그려진 화투만이 툇마루의 돌 아래에 꽂힌 채로 그 후로도 한동안 비바람을 견뎌야 했습니다. 카즈오는 이미 화투를 떠올리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열흘이 지난 후의 일이었습니다. 카즈오는 툇마루서 놀다 문득 돌 사이에 껴 다 벗겨진 골판지에 붙은 화투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불쑥 화투가 아까워졌습니다.
 테키치는 화났을 게 분명해. 테키치한테 미안한걸. 카즈오는 그렇게 생각하자 어쩐지 슬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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