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팡 3세, 다채롭다
다채로움은 곱셈이다. 세월과 시도가 뒤엉킨 끝에 어느 틈엔가 위화감 없이 그럴싸 해진다. 처음에는 잔 가시 같아서 괜히 보기 불편하고 쳐내버릴까 싶어진다. 몇 번 보고 나서는 이쪽 방향도 제법 나쁘지 않지 싶다. 오래 지나서 한 발 물러나 보면 그 가지도 나무를 풍성하게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분명한 건 나는 루팡 시리즈의 니와카にわか, 팬이 된지 얼마 안 된 주제에 거들먹거리는 팬이다. 가장 먼저 접한 건 명탐정 코난 vs 루팡 OVA였고, TVA 파트 4, 파트 5, 극장판 더 퍼스트, 코난 vs 루팡 시리즈, 칼리오스트로의 성, 넷플릭스나 왓챠서 제공하는 몇몇 TV 스페셜을 본 게 고작이다.
그나마도 칼리오스트로의 성 같은 경우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으로 본 거지 루팡 시리즈로 본다는 접근법은 아니었다. 하물며 파트 4를 그렇게나 재밌게 보고도 다른 OTT를 결제하는 게 싫어 파트 5가 넷플릭스에 뜰 때까지 마냥 기다리기만 한 그런 팬이다. 어쩌면 니와카란 말마저 과분할지 모르겠다.
그런 만큼 루팡의 다채로움이니 집대성이니 운운하는 건 분명 같잖은 소리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하지만 파트 5는 그런 니와카도 알기 쉬울 정도로 과거를 잘 집약해놓았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건 역시 루팡이 입는 코트의 색일까.
파란색의 현대적인 모던 루팡부터. 빨간색의 명랑 만화 같은 루팡. 녹색의 의적 루팡까지.
루팡을 잘 알지 못하고 파트 5로 입문한 사람이라도 몇 화인가 지나면 절로 다음 화 예고의 코트 색을 눈여겨보게 될 것이다. 또 어느 틈엔가 과거 작품의 코트를 신경 쓰며 하나둘 찾아보게 되리라. 그것만으로도 파트 5가 루팡 3세 시리즈에 얼마만큼 생명력을 주었는지, 시리즈가 그동안 쌓아 올린 다채로움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는, 말 그대로 선순환의 집대성 아닐까 싶다.
한편으로 소위 시리즈 헌정 작품이 빠지기 쉬운 함정에도 걸리지 않은 게 포인트다. 과거를 돌아보는 데에만 집중하여 과거에 머물기만 할 뿐인 작품과 달리 루팡 3세 시리즈가 나아가야 할 미래와 또, 현대의 시청자들에게 과거의 루팡이 해줄 수 있는 큰 의미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루팡 3세가 현대의 시청자에게 묻다
작중에서 루팡 일당은 과거의 존재로 다뤄진다. 이는 물론 루팡 3세의 잘못은 아니다. 루팡은 되려 그 어떤 괴도보다도 현대적이다. 심심치 않게 보안 장치를 해킹하고, 3D 프린터로 변장 도구를 만들고 가상 화폐를 훔치러 잠입하기까지 한다.
그런 루팡을 옭매는 것은 다름 아닌 SNS, 즉 촘촘해진 인간과 인간의 사회망이다.
이러한 SNS는 작중에 두 종류가 등장한다. 에피소드 1의 루팡 게임과, 에피소드 4의 휴먼 로그가 그렇다. 가짜 뉴스로 관계를 현혹하고, 자신과 남이 제공한 정보로 정체를 간파하고, 무수한 빅데이터로 행동을 예측한다. 이 모습은 어딘가 익숙하다. 루팡이 놓인 자리는 바로 우리가 놓인――혹은 우리 스스로 올라간――자리기도 하다. 그 안에서 루팡을 향하는 질문은 마치 우리를 향하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나는 당신에게 뭐지, 루팡?
이러한 질문 중 대표되는 건 루팡 일당의 관계 재정립이다. 루팡과 동거 생활 끝에 어떤 자극도 느끼지 못한 미네 후지코는 루팡을 찬 후 그에게 묻는다. 루팡에게 자신은 어떤 존재인지. 또 휴먼 로그의 분석에 휘둘린 고에몽 또한 같은 질문을 한다. 루팡에게 나란 어떤 존재인지.
루팡 3세는 어느 쪽에도 명확히 대답하지 않는다. 단지 그 답을 찾는 걸 도울 뿐이다. 실제로 고에몽은 그 물음을 싸움 속에서, 참철검 속에서, 또 자신 속에서 찾으려 했다. 그리고 혈투 끝에 루팡을 크게 다치고 하고는 곧장 자신이 어떤 짓을 했는지 깨닫고 이해하게 된다.
중요한 건 자신이 루팡에게 어떤 존재인지가 아니라, 루팡이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이시카와 고에몽은 그렇게 스스로 답을 내리게 된다. 엇비슷하게, 스스로 답을 내는 과정은 그 후로도 수없이 반복된다. 수없는 고난 속에서도 자신을 관철하는 게 자신의 존재 의의라는 루팡 3세, 그런 파트너를 지켜보겠다는 지겐 다이스케, 서로가 서로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보물로 대할 때 비로소 사랑을 느낀다는 걸 깨닫는 미네 후지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제니가타 경부까지.
이러한 주관의 관철은 분명 여러 작품서도 찾아볼 수 있는 화두이다. 그러나 SNS와 미디어, 가짜 뉴스 또 루팡 3세라는 오래된 시리즈가 한데 얽혀 있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루팡 3세 다움이란 무엇인가? 결국 루팡 3세가 하고 싶고, 하고, 또 해낸 게 루팡 3세 다운 게 아닌가?
이러한 질문은 캐릭터는 물론이요 시리즈를 관통하고 나아가서는 우리의 삶까지 관통하고 있다. 루팡 3세 파트 5는 루팡 3세로, 시리즈의 다채로움으로, 또 휴먼 로그로 묻는다. 현대의 우리는 남이 내린 가치 판단에 너무 기대고 있는 건 아닐까? 다른 누군가의 평가에 자신의 가능성을 거세해버리지는 않았나? 믿기 이전에 확인해 보지는 않았나?
그게 정말 루팡 3세 다운, 나다운 일――쿨하고 모던하며 멋진 일인가?
3년이나 지났음에도
니와카 팬은 그 물음에 개탄하고 있다. 남이 내린 평가에 선입견부터 가진 채 거세해버린 수많은 기회들, 주위가 무서워 단지 엇비슷하게 하나 얹기만 한 수많은 말들. 확인해 보지 않고 그저 믿어버린 말들. 도둑이자 악당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을 봐놓고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우스울 정도로 꽤나 많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물론 루팡 3세 파트 5는 완벽한 애니메이션은 아니다. 특히 마지막 화 5분 만에 빠른 개심을 해버리고 캐릭터가 저 멀리 떨어져 버리는 최종 보스 같은 경우에는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옴니버스 에피소드 중 하나를 줄이더라도 이쪽 서사를 제대로 보충해야 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그러한 흠집은 위에서 말한 장점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루팡 3세 파트 5는 아직도 생기가 넘친다. 혹은 이렇게 생기 넘치는 게 입안이 씁쓸해질 정도로 현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루팡 3세 파트 5는 2018년 작품이니까.
요즘 같은 세상에 3 년만한 과거도 없다. 하물며 19년부터 시작된 판데믹은 시대상과 사회상을 너무나 급진적으로 바꿔버린 탓에 단지 1년 차이만으로도 와닿지 않는 부분이 곳곳에서 눈에 밟히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루팡 3세 파트 5가 말하는 주제가 더욱 와닿는 건 필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사회가 더욱 좁아지고 예민해졌단 증거기도 하니까. 주관을 똑바로 세우기에는 조금 험난한 시국임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그렇기에 니와카 팬은 부끄러움을 잊고서 이런 글을 끄적이고 있다.
루팡 3세, 그 이름을 마음속에 담아두면 지루할 일은 없으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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