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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애니메이션

[리뷰]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by noh0058 2021.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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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조금 고민을 했다. 프라임 비디오에 공개되어 며칠이 지났고 볼 만한 사람은 어지간히 봤지 싶다. 그럼에도 과열된 분위기가 좀처럼 식는 거 같지 않아 괜한 말을 했다 돌부리나 날아 들지 않을까 했다.

 그래도 마무리라는 작품의 대전제에 조금 힘을 빌렸다. 이래 봬도 Q를 실시간으로 보고 11년을 주구장창 기다린 팬이기도 하다. 스스로의 정리를 위해서도 쓰고 싶었다. 작품 주제 상으로도 내 안에 담아두는 것만은 결코 좋지 않을 거 같기도 했다. 만약 이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냥 이런 해석이나 이런 글덩어리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주길 바란다. 특히 TV판의 경우 감상한지 시간이 꽤 되었기에 해석에 착오가 있을 수도 있다.

 

자폐와 관계의 이야기

 

 에반게리온 시리즈가 자폐――스스로의 마음을 닫은 사람들――에서 딛고 나가는 이야기란 것도 이제는 새삼스러운 이야기일 터이다. TV판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이카리 신지가 자폐에서 한 발짝 나아가는 이야기다. 자신을 상처 입힐지 모르는 모든 관계를 거절하고 모두가 동일한 세계로 옮겨 가려는 그 순간에 '자신은 여기에 있어도 된다'는 깨달음을 얻고 그 직전으로 돌려 놓는 게 TV판과 EOE의 결말이었다.

 

전설의 '오메데토' 엔딩

 

 문제는 그 방식이 자아성찰이라는 점일까. 레이나 인류의 무의식이 거들기는 했으나 결국 신지는 자문자답 끝에 답을 내린 것이다. 자폐란 상태에서 한 발짝 나온 것은 사실이나 누군가와 함께하지 못한 걸음은 상황을 바꾸어주지 못 했다. 둘만 남은 아스카와 "기분 나빠"로 대표되는 새로운 관계가 그 과제를 말해주고 있다.

 

기껏 걸음을 내딛었으나 달라진 건 없었다. 이제는 정말로 신지 하기 나름이다.

 

 EOE는 그런 과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로 마침표를 찍는다. 또 동시에 시청자들에게 말한다. 에반게리온을 통한 성찰로 무언가를 얻은 게 있는가? 하지만 그게 무언가를 크게 바꿔주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는 너 하기 달렸다, 하고서. 결말도 아마 제각기 다를 것이다.

 신 극장판 시리즈가 중단되는 동안 쌓인 불만과 풍평피해는 TV 시리즈와 EOE까지 미쳤다. 때문에 이제는 두 시리즈의 메세지성이나 의의를 부정하는 목소리도 서슴 없이 나온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두 작품의 메세지에서 힘이 떨어지는 날이 과연 오기나 할까 싶다.

 되려 더 삭막해져 가고, 더 멀어져도 충분한 시대가 되어 가면서 공감을 사는 일이 늘어나는 건 아닐까. 어느 때 이상으로 가까워지기 어렵고 거리 두기 쉬운 시대다. 하물며 화면과 인터넷 너머에는 딱 적당한 거리감을 가진 익명의 존재도 여럿 존재한다. 비록 자문자답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를 선택한 신지가 대견해 보이는 게 비단 필자 하나뿐이지 않으리라 믿는다.

 하물며 냉소적으로 보자면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주제는 결국 건담 시리즈의 뉴타입론의 독자적이고 어두운 해석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건담 시리즈가――철혈의 오펀스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언제나 관계성과 상호 이해를 내려놓지 않는단 점에서도 에반게리온 시리즈가 가진 힘을 엿볼 수 있으리라.

 

신 극장판은 한 발짝 나아간 이야기

 

 <에반게리온 극장판: 서>부터 <신 에반게리온 3.0+1.0>까지의 신 극장판 시리즈는 TV판과 EOE 시리즈의 뒷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사실 <에반게리온: Q>까지는 이게 리메이크인지, 리부트인지, 후속작인지 구분이 어려웠는데 이번 <신 에반게리온> 덕에 확신을 지닐 수 있었다. 신 극장판 시리즈는 TV판과 EOE의 한 발짝을 진작부터 내포하고 있었음을.

 이게 두드러지는 게 <에판게리온:파>이다. 지금도 회자되는 몇몇 장면들을 돌이켜 보자. 신지와 함께 있음으로서 일찍부터 감정을 자각하고, 신지와 겐도를 위한 식사 자리를 마련하는 '포카레이', 이번엔 뭔가 다르다는 걸 느끼게 해준 '아야나미를 돌려줘!', 신지의 선택을 긍정해준 미사토의 '네가 원하는 걸 위해 싸우라'는 외침까지.

 

 

 신지를 포함한 대부분의 캐릭터――후술하겠지만 아스카는 특히 그렇다――가 원작의 자폐성을 많이 덜어낸 채 관계성과 행동 양쪽에 충분한 적극성을 지니고 있다. 관람 당초에는 런닝타임을 이유로 간략화된 거겠니 싶었지만 이제 와 돌이켜 보면 의도적인 캐릭터성의 변화지 싶다.

 아쉽지만 <에반게리온: Q>는 스토리 특징상 이런 면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처음으로 신지에게 공감했다'는 말이 돌 정도로 신지가 무어라도 해보려 적극적으로 나선 건 사실이다. 카오루의 케어 덕이기도 하나 기존 동료들에게 미움 받는 한이 있더라도 제 뒷습은 제가 하겠다는 강렬한 의지는 분명 신지의 것이었다. 설령 결과는 좋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Q가 끝나고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신지는 <파> 이후로 간만에 대탈주를 이뤘다. 마음을 닫고 말을 잃은 채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피했다. 이때는 혹여 EOE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그동안 에반게리온 팬들이 입을 모아 말하던 '신지 주위의 멀쩡한 어른들'이 있었다. 신지 또한 TV판과 EOE, 그리고 서파Q의 성장이 있었던 만큼 비교적 일찍 마음을 굳히고 선택할 수 있었다.

 바로 이 부분이 TV판과 신 극장판 시리즈의 결정적 차이이다. TV판의 신지는 주위에 마땅한 어른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결국 자문자답 끝에 한 걸음을 내딛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극장판의 신지는 이미 그 한 걸음을 내딛었다.

 

졸지에 승리자가 되어버렸다.

 

 여러 적극성 덕에 주위의 아군도 많이 벌 수 있었다(거리가 먼 뷜레 크루마저 원수기도 하지만 영웅이라 말한 걸 떠올려 보자). 토우지도, 켄스케 같은 아군도 멋진 어른이 되어 돌아와 있었다. 자가완결 끝에 '자신의 자리가 용납되어 있었다 깨닫는 게'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자신이 있어 마땅한 곳'이란 보다 정확한 위치에 자리할 수 있었다.

 어쩌면 신 극장판의 신지에게 "자폐"란 이미 과제가 아니었던 걸지도 모른다. 물론 이러한 자폐의 극복은 비단 신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아스카의 변경점을 꼽아 보고 싶다. 이런저런 구설수의 중심인 걸 알지만 신지 이상으로 달라진 캐릭터가 아스카이니 도리가 없다.

 

히로인에서는 멀어졌어도 '주인공'으로서는 오히려 강해지지 않았을까.

 

 TV판과 EOE의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는 어떤 캐릭터였을까? 옆에 두면 정신병 걸릴 거 같은 캐릭터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머니와 멀어진 후, 자신의 존재 의의를 확인하기 위해 끊임 없이 무언가를 떠봐야 하는 캐릭터였다

 일개 중학생이 잘 알아 먹지 못할 말로 다가오라고 꼬셔 놓고 오지 않으니 저 혼자 절망하는 캐릭터이다. 물론 다가가면 다가간 대로 걷어 찰 캐릭터가 소류기도 하다. 설령 남이 자신을 받아 들여줘도 그 날만 반짝 기분이 좋아질 뿐 다시 전전긍긍할 뿐이다. 남의 감정보다도 자신의 감정에 더 민감한 에반게리온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앳되고 무른 소녀기도 했다.

 

제리코의 벽이 뭔데 씹덕아

 

 그런 캐릭터가 이제는 어엿한 어른이 되어 돌아왔다. 화풀이를 하고 애송이 신지라고 깔보면서도 그의 앳된 부분을 부정치 않고 기다릴 줄 안다. 신지의 심정에도 민감하고 정확하게 반응하며 그가 어떤 문제를 품고 있는지 신랄하게 저격하는 모습에서는 이제까지 알지 못한 전혀 다른 아스카를 볼 수 있었다.

 이는 분명한 캐릭터의 완성이다. 커플링이나 파-Q 사이의 공백 등 전부 풀어지지 않은 탓에 생기는 문제는 있으나――이 또한 나중에 이야기할 텐데 <신 에반게리온>의 영화적 완성도는 썩 좋지 않은 편이다――TV판부터 이어지는 캐릭터의 마침표로는 분명한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물론 아스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캐릭터에 적용되는 사안이며, 분명 이게 내가 <신 에반게리온>을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이유기도 할 터이다.

 

"어른이 되어라"?

 

 물론 이렇게 모두가 어른인 세계, 신지의 말을 빌리자면 '너무나 상냥한 세계'로는 영화가 성립되지 않으리라. 대다수의 캐릭터가 자폐에서 한 발짝 나서서 제 할 일을 해내는 와중에도 단 한 명(두 명?)만이 자신을 닫아둔 채로 이야기의 빌런 역할을 맡는다. 물론 이 양반이다.

 

EOE에선 손이더니 이번엔 눈이다.

 

 으레 예상한 바였지만 이카리 겐도는 신지보다 더 자폐 성향이 강한 사람이었고, 이번 극장판에서 그 내막이 좀 더 직접적으로 서술된다. 혼자 사는 게 편했고 어쩌고 했는데 유이를 만났고, 그 유이가 사라지니 만나러 가야겠고. 결국 스케일은 커졌지만 EOE랑 다른 게 없는 유일한 양반이다. 참 한결 같지 싶다.

 그러나 EOE와 <신 에반게리온>의 가장 큰 차이는 그와 신지가 직접적인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그것도 TV판 시리즈까지 포함해서 거의 처음으로 대등하게. 이 부분은 <신 에반게리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 좀 할애하겠으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지와 동료들의 노력으로 겐도를 구워 삶게 된다.

 

개봉 이후 엄청 본 사진이다.

 

 이 구도가 이미 어른이 된 신지 vs 아직도 어린 아이로 남은 겐도로 비춰지다 보니 "어른이 되어라"란 주제가 입방아에 오른다는 건 이해한다. 그러나 정말 그런 주제인지는 조금 의문이 남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신지와 겐도를 대하는 주위의 태도다.

 작중 초반, 신지가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도피했을 때 켄스케나 아스카, 토우지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를 훈계하고 부정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일깨워주고 받아 들일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주었다. 신지가 일어나서 주위와 어울리기 시작했을 때에는 마땅한 일거리를 쥐여주고, 다른 역할도 얼마든지 있으니 싸우기 싫다면 도망쳐도 된다고 서슴없이 말해준다. 싸우겠다면 싸우는 대로 말리지 않는다.

 겐도를 대하는 신지 또한 마찬가지다. 애당초 싸우는 게 의미를 없는 걸 알고 대화로 서로를 이해할 필요를 느꼈다. 서로가 바라는 걸 호소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과거의 자신과 전혀 다르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지하철에서 홀로 헤드폰을 끼고 주위를 거부해 온 경험이 있는 신지는 겐도를 부정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그렇게 신지는 겐도를 기다려주었다. 유이가 그러했던 것처럼 겐도를 이해하고 받아 들이려 했다. 겐도는 그런 모습에서 비로소 자신을 찾던 유이를 신지에게 겹쳐 볼 수 있었다.

 

미안했다, 신지

 

 이러한 결말은 '어른이 되라'는 강요하고는 조금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히려 누구나 '어른이 될 수 있다'며 기다려주고 격려하는 격은 아닐까? <신 에반게리온>이 과거의 모든 에반게리온을 포섭하고 긍정하면서 마무리했듯이, 어른이 자신의 앳됐던 옛날을 부정하지 않고 보듬어주는 듯한 모습마저 엿보인다.

 

그와 별개로 지독한 완성도. 그래도……

 

 다만 이러한 해석과 별개로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결코 높게 살 수 없지 싶다. 작별이라는 테마가 부정적으로 받아 들이는 경우――앞서 말했듯이 안노 감독이 전하려던 메세지는 결코 과격하지 않다고 본다――가 많은 건 명백히 연출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오랜 제작 기간 탓인지 Q와 맞물리지 않는 듯한 일부 내용, 여전히 불친절하게 자기 혼자 달려 가는 독자적인 설정과 용어들, 패러디 탓에 희생된 클라이맥스, 미묘한 3D 레이, 결국 EOE를 답습한 내용, 마리의 갑작스러운 진 히로인 등극 등등등.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팬이 아니라 단독 영화로는 도무지 추천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런 마당에 10년이란 세월 동안 단단히 미운 털이 박힌 것도 사실이니, 사실 어디서 열심히 실드치기도 뭐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건 미리 알고 봐도 당황스럽다

 

 그럼에도 에반게리온 팬들이 "이만하면 됐지"하고 성불한 이유 정도는 알 법도 하다. 앞서 말한 캐릭터의 성장은 물론이고(이제는 신지가 되려 미사토를 격려하고 있다!), EOE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비튼 오마주, 드디어 제대로 대화한 신지와 겐도, 결국 구원 받은 겐도, 드디어 신지 주위에 모인 멀쩡한 어른 등등.

 그간 2차 창작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대화 속에서 에반게리온 팬들이 좋아했던 요소가 담겨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신 에반게리온>이 정말 팬을 위한 영화인지, 아니면 단순히 안노 감독의 일기장이 과대 평가 된 건지 까지는 내가 단언할 수 없는 일인 거 같다(이런 일에 방어적이고 마는 고질병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간 시리즈를 챙겨 봐온 팬이라면 일단 한 번 보고 나서 생각할 정도의 강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마침 프라임 비디오는 첫 가입이면 일주일의 무료 체험 기간을 갖는다. 극장에서 몰입하여 볼 수 없는 건 굉장히 아쉬운 일이지만――거실 TV로 볼 때는 조금 조마조마한 부분도 있다――무시하고 넘어가기에는 뒷맛이 찜찜한 건 사실이다.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플랫폼: 아마존 프라임

상영시간: 1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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