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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세 가지 보물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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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숲속. 세 도둑이 보물을 두고 다투고 있다. 보물은 단숨에 천 리를 뛰는 장화, 입으면 모습이 사라지는 망토, 철이라도 두 동강 내는 검――단지 생김새만은 하나같이 골동품 같다.

첫 번째 도둑 그 망토를 내게 넘겨.

두 번째 도둑 헛소리 마. 그 검이야말로 나한테 넘겨――이 자식, 내 장화를 훔쳤겠다.

세 번째 도둑 이 장화는 내 거 아냐? 네놈이야말로 내 물건을 훔친 거지.

첫 번째 도둑 좋아좋아. 그럼 이 망토는 내가 받아 가지.

두 번째 도둑 개소리 마! 네놈 따위한테 넘길 거 같아?

첫 번째 도둑 잘도 날 때렸겠다――이 자식, 또 내 검을 훔쳤군?

세 번째 도둑 뭐라고 이 망토 도둑이!

세 사람의 싸움이 커진다. 그때 말에 탄 왕자 하나가 숲속 길을 지난다.

왕자     너희는 뭐 하는 거냐?(말에서 내련다.)

첫 번째 도둑 전부 이 녀석 탓입니다. 제 검을 훔친 걸로 모자라 망토마저 건네라니――

세 번째 도둑 아뇨, 저 녀석 탓입니다. 망토는 제 걸 훔친 겁니다.

두 번째 도둑 아뇨, 이 두 사람 모두 도둑놈입니다. 이건 전부 제 거니까요――

첫 번째 도둑 거짓말 마라!

두 번째 도둑 이 허풍쟁이가!

세 사람이 다시 싸우려 한다.

왕자     그쯤 하거라. 고작해야 낡은 망토니 구멍 뚫린 장화니 누가 가져도 그만 아니더냐.

두 번째 도둑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망토는 입으면 모습이 사라지는 망토입니다.

첫 번째 도둑 어떤 철 투구를 써도 이 검은 자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도둑 이 장화는 신으면 한달음에 천 리를 갑니다.

왕자     그러냐. 그런 보석이라면 싸우는 것도 이해가 가는구나. 하지만 그럼 욕심 부리지 않고 하나씩 나눠 가지면 될 일 아니더냐.

두 번째 도둑 그렇게 하면 제 목이 언제 저 검에 날아갈지 모릅니다.

첫 번째 도둑 아뇨, 그보다 곤란한 건 저 망토를 입고 무언가를 훔칠지 모르니까요.

두 번째 도둑 아뇨, 무엇을 훔쳐본들 이 장화가 없으면 생각처럼 도망치지 못 할 터입니다.

왕자     그래, 하나 같이 일리가 있구나. 허면 나한테 파는 건 어떠냐. 그럼 걱정 할 일도 없을 테지.

첫 번째 도둑 어때. 이분께 팔아 볼까?

세 번째 도둑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두 번째 도둑 가격이 문제지.

왕자     가격은――그래. 그 망토 대신 이 붉은 망토를 주마. 이 녀석엔 자수도 되어 있다. 또 그 장화 대신에 이 보석이 박힌 장화를 주마. 이 황금 세공이 된 검이라면 그 검을 줘도 손해는 없을 테지. 어떠냐, 값이 되느냐?

두 번째 도둑 저는 이 망토 대신 그 망토를 받겠습니다.

첫 번째 도둑과 세 번째 도둑 저희도 충분합니다.

왕자     허냐. 그럼 바꾸자꾸나.

왕자는 망토, 검, 장화 등을 바꾼 후 다시 말위에 올라 숲속 길을 향했다,

왕자     이 너머에 숙소는 있느냐?

첫 번째 도둑 숲 밖으로 나가면 '황금 각적'이라는 숙소가 있습니다. 그럼 잘 가시지요.

왕자     그러냐. 그럼 잘 있거라.(떠난다)

세 번째 도둑 좋은 거래를 했군. 그 장화가 이런 장화가 될 줄은 몰랐어. 잘 봐, 이음매가 다이아몬드야.

두 번째 도둑 내 망토도 훌륭하지 않아? 이걸 입으면 높으신 분처럼 보일 거야.

첫 번째 도둑 이 검도 보통내기가 아냐. 자루에 칼집까지 황금이라고――그나저나 그렇게 쉽게 속아 넘어가다니 그 왕자도 바보 아냐?

두 번째 도둑 쉿!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댔어. 자, 빨리 어디로 가서 한 잔 하자.

세 도둑은 비웃음을 하며 왕자와 반대 길로 향했습니다.

 

 

'황금 각적'이란 숙소의 주점. 주점 구석에는 왕자가 빵을 먹고 있다. 왕자 이외에도 손님 예닐곱 명――다들 마을 농부인 듯했다.

숙소 주인   드디어 왕녀님의 혼례가 열린다는군.

첫 번째 농부 그렇다네. 듣자니 남편이 될 사람은 새까만 임금님이라는데?

두 번째 농부 근데 왕녀님은 그 임금님을 아주 싫어한다던데.

첫 번째 농부 싫으면 결혼을 안 하면 되잖아.

주인     그런데 그 새까만 임금님이 세 보물을 가지고 있다나 봐. 하나가 천 리를 가는 장화, 또 하나는 철마저 자르는 검, 마지막으로 모습을 감추는 망토――그런 걸 전부 헌상한다니 욕심 많은 이 나라 임금님이 왕녀를 내놓으신 거지.

두 번째 농부 왕녀님만 불쌍하게 됐구만.

첫 번째 농부 누가 왕녀님을 못 구해주나?

주인     아니, 여러 나라의 왕자 중엔 그런 사람도 있다는데 그 새까만 임금님께 이기지 못 해서 다들 손가락만 빨고 있다나 봐.

두 번째 농부 더군다나 욕심 많은 임금님은 왕녀가 도둑맞지 않도록 용을 파수꾼으로 두었다는군.

주인     용이 아니라 병대라던대?

첫 번째 농부 내가 마법이라도 쓸 줄 알면 바로 구할 텐데――

주인     아무렴. 나도 마법을 쓸 줄 알면 댁한테 맡겨두겠어?(일동 웃는다)

왕자     (대뜸 일동 앞으로 뛰쳐나가며) 좋아 걱정 말아라! 내가 반드시 구해내마.

일동     (놀라서) 당신이!?

왕자     그래, 새까만 왕이든 누구든 오라지.(팔짱을 낀 채로 주위를 둘러본다) 내가 전부 퇴치해주마.

주인     허나 임금님께서는 세 개의 보물을 가지고 계십니다. 먼저 천 리를 가는 장화와 또――

왕자     철마저 가르는 검이냐? 그런 건 나도 가지고 있다. 이 장화를 봐라, 이 검을 봐라. 이 낡은 망토를 봐라. 새까만 왕이 가진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는 보물들이지.

일동     (다시 놀라서) 그 장화가!? 검이!? 망토가!?

주인     (의심스럽다는 양) 하지만 그 장화엔 구멍이 뚫려 있는데요?

왕자     그야 구멍은 뚫려 있지. 하지만 구멍은 뚫려 있어도 단숨에 천 리를 갈 수 있다.

주인     정말로요?

왕자     (애처롭다는 양) 네게는 거짓말처럼 들릴지 모른다. 좋다, 그럼 보여주마. 문을 열어다오. 잘 봐라. 뜀박질을 하면 보이지 않을 거다.

주인     그전에 계산부터 해주시죠?

왕자     무얼, 금방 돌아올 거다. 선물은 뭐가 좋으냐? 이탈리아의 석류냐? 스페인의 참외냐? 아니면 그보다 더 먼 아라비아의 무화과냐?

주인     선물이라면 뭐라도 좋지요. 자, 가보시죠.

왕자     그럼 간다, 하나, 둘, 셋!

왕자는 기세 좋게 뜀박질한다. 하지만 문에도 이르기 전에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일동이 웃음을 터트린다.

주인     이럴 줄 알았지.

첫 번째 농부 천 리는 고사하고 두세 걸음도 못 갔는데?

두 번째 농부 무얼, 천 리를 간 거지. 한 번 천 리를 가서 다시 천 리를 와서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 온 거야.

첫 번째 농부 웃기는 소리 하네. 그게 말이 돼?

일동이 웃음을 터트린다. 왕자는 기운 없이 일어나 주점 밖으로 나가려 한다.

주인     이보세요, 계산은 하고 가야죠.

왕자는 말없이 돈을 던졌다.

두 번째 농부 선물은 안 줘요?

왕자     (자루에 손을 얹으며) 뭐라고?

두 번째 농부 (엉덩방아를 찧더니)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혼잣말처럼) 검만은 목 정도는 떼낼지 모르지.

주인     (말리듯이) 자, 당신은 아직 젊으니까요. 일단 고국으로 돌아가시죠. 아무리 당신이 소란을 피워본들 그 새까만 임금님께는 이기지 못 합니다. 인간이란 항상 제 분수를 잊지 않도록 진중히 생각해야 하는 법이죠.

일동     그래그래. 우리가 나쁜 말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왕자     나는 뭐든지――뭐든지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대뜸 눈물을 흘린다) 너희에게도 부끄럽구나 (얼굴을 감추며) 아아, 이대로 사라지면 좋을 텐데.

첫 번째 농부 그 망토 한 번 둘러보시죠?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왕자     이 개자식! (발을 동동 구른다.) 좋아. 얼마든지 바보 취급하거라. 나는 반드시 새까만 왕에게서 불쌍한 왕녀를 구해낼 거다. 장화는 천 리를 가지 않았어도 아직 검은 있다. 망토도――(열심히) 아니, 맨손으로라도 구해낼 테다. 그때는 후회하지 말도록.(미치광이처럼 주점을 뛰쳐나간다.)

주인     곤란하네. 새까만 임금님한테 죽지나 않으면 다행인데――

 

 

왕성 정원. 장미꽃 안에 분수가 흐른다. 처음에는 아무도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망토를 쓴 왕자가 나타난다.

왕자     역시 이 망토를 입으면 모습이 감춰지는군. 성에 들어온 후로 병졸은 물론이요 시녀도 만났다. 하지만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어. 이 망토만 입으면 이 장미꽃에 부는 바람처럼 왕녀의 방에도 들어갈 수 있겠지――오, 저기 걸어오는 게 그 유명한 왕녀인가? 어디에 잠시 모습을 감추고――아니, 그럴 필요는 없나. 나는 여기에 서있어도 왕녀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테니.

왕녀는 분수 옆으로 와 슬픈 한숨을 내쉰다.

왕녀     나는 어쩜 이리도 불행할까. 이제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그 원망스러운 새까만 왕이 나를 아프리카로 데리고 가겠지.

사자나 악어가 있는 아프리카로(잔디 위에 앉으며) 나는 계속 이 성에 있고 싶은걸. 이 장미꽃 안에서 분수 소리를 듣고 싶어…… 

왕자     정말 아름다운 왕녀다. 설령 목숨을 버리더라도 이 왕녀를 구해내리라.

왕녀     (놀라서 왕자를 보며) 누구시죠?

왕자     (혼잣말처럼) 망했다! 소리를 내는 게 아니었는데!

왕녀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뇨? 미치광이인가? 얼굴은 좋은데――

왕자     얼굴? 지금 제 얼굴이 보이십니까?

왕녀     보이지요. 어머, 뭐가 그리 신기한가요?

왕자     이 망토도 보이시나요?

왕녀     그럼요. 꽤나 낡은 망토인걸요?

왕자     (낙담하여) 제 모습은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말이죠.

왕녀     (놀라서) 왜죠?

왕자     이건 한 번 입으면 모습이 보이지 않는 망토랍니다.

왕녀     그건 새까만 왕의 망토이지요.

왕자     아뇨, 이 또한 그렇습니다.

왕녀     하지만 모습이 안 감춰지잖아요?

왕자     병졸이나 시녀는 제 모습을 보지 못 했을 텐데요. 그 증거로 이렇게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으니까요.

왕녀     (웃음을 터트린다) 그럴만하지요. 그런 낡은 망토를 입고 있으면 시종으로 볼 테니까요.

왕자     시종! (낙담해서 주저앉는다) 역시 이 장화와 마찬가지인가

왕녀     그 장화는 또 뭐죠?

왕자     이 또한 천 리를 가는 신발입니다.

왕녀     새까만 왕의 장화처럼요?

왕자     네――하지만 요전 번에 뛰어봤더니 고작 두세 걸음 밖에 가지 못 하더군요. 또 검도 있습니다. 이건 철도 자를 수 있을 텐데――

왕녀     뭐라도 잘라 보시죠?

왕자     아뇨, 새까만 왕의 목을 자를 때까지는 아무것도 자르지 않을 셈입니다.

왕녀     어머, 새까만 왕과 승부라도 하시려고요?

왕자     아뇨, 승부는 하지 않습니다. 당신을 구하러 왔지요.

왕녀     정말로요?

왕자     정말이죠.

왕녀     어머 기뻐라!

대뜸 새까만 왕이 나타난다. 왕자와 왕녀가 깜짝 놀란다.

새까만 왕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막 아프리카에서 왔습니다. 어떻습니까. 이게 제 장화의 힘이지요.

왕녀     (냉담히) 그럼 다시 한 번 아프리카로 가시지요.

      아뇨, 오늘은 당신과 천천히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왕자를 본다.) 누구죠, 이 시종은?

왕자     시종? (화가 나서 일어난다) 저는 왕자입니다. 왕녀를 구하러 온 왕자지요. 제가 여기 있는 한 당신은 왕녀께 손가락 하나 대지 못 합니다.

      (일부러 정중히) 저는 세 가지 보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걸 아시나요?

왕자     검과 장화와 망토인가요? 확실히 제 망토는 일 리도 가지 못 합니다. 하지만 왕녀와 함께라면 이 장화를 신고도 천 리나 이천 리도 우습지요. 또 이 망토를 보시지요. 제가 시종으로 여겨져 왕녀 앞으로 오게 된 건 역시 이 망토 덕입니다. 이래 봬도 왕자 모습만은 감출 수 있지 않았나요?

      (비웃는다) 건방지군! 내 망토의 힘을 보거라. (망토를 입는다. 동시에 모습을 감춘다.)

왕녀     (손뼉을 치면서) 아아, 벌써 사라져버렸어요. 저는 저 사람이 사라지면 정말 기쁘답니다.

왕자     저런 망토도 편리하군요. 마치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거 같습니다.

      (대뜸 다시 나타난다. 원망스럽다는 양.) 그렇죠. 당신을 위해 만들어진 거 같습니다. 제게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아요. (망토를 던져버린다) 하지만 나는 검을 가지고 있지. (대뜸 왕자를 노려보며) 너는 내 행복을 뺏으려 하는구나. 자, 승부다. 내 검은 철도 가를 수 있다. 네 목 정도는 어렵지 않지.(검을 뽑는다.)

왕녀     (일어서자마자 왕자를 감싼다.) 철도 가를 수 있다면 제 가슴도 찌를 수 있겠지요. 자, 단숨에 찔러주세요.

      (엉덩방아를 찧으며) 아뇨, 당신은 벨 수 없습니다.

왕녀     (비웃듯이) 어머, 이 가슴도 뚫지 못 하나요? 철도 자른다 하신 주제에!

왕자     기다리시죠. (왕녀를 밀어내며) 왕의 말은 지당합니다. 왕의 적은 저입니다. 맞서야 하지요. (왕에게) 자, 승부를 하자. (검을 뽑는다.)

      어린 것치고는 기특한 남자로군. 알겠느냐? 내 검에 닿으면 목숨은 없다.

왕과 왕자가 검을 맞댄다. 그러자 왕의 검은 지팡이라도 가르 듯이 왕자의 검을 자르고 만다.

      어떠냐?

왕자     확실히 검은 잘렸지. 하지만 나는 보다시피 네 앞에서 웃고 있다.

      그럼 승부를 계속할 거냐?

왕자     당연하다. 자, 오너라.

      이제 승부는 되었다. (불쑥 검을 던진다) 이긴 건 너다. 내 검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아.

왕자     (의아한 얼굴로 왕을 본다) 왜지?

      왜냐고? 내가 너를 죽여본들 왕녀에게 미움만 받기 때문이지. 그걸 모르나?

왕자     아니,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은 그런 걸 모르는 줄 알았다.

      (생각에 잠겨) 나는 세 가지 보물이 있으면 왕녀도 받아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잘못 알았군.

왕자     (왕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나도 세 가지 보물이 있으면 왕녀를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도 잘못 안 모양이야.

      그래. 우리 둘 다 잘못 알았던 거야. (왕자의 손을 쥔다) 자, 깔끔히 화해할까요. 제 실례를 용서해주시지요.

왕자     제 실례도 용서해주시지요. 이제 와서 보면 제가 이겼는지 당신이 이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뇨, 당신은 제게 이겼습니다. 저는 저 자신에게 이겼습니다. (왕녀에게)저는 아프리카로 돌아가지요. 안심하셔도 됩니다. 왕자의 검은 철을 자르는 대신 철보다도 단단히 제 마음에 꽂혔습니다. 저는 당신의 혼례를 위해 이 검과 장화와 망토를, 세 가지 보물을 드리지요. 이 세 가지 보물이 있으면 두 사람을 괴롭히는 적은 없을 테지요. 그래도 만약 나쁜 녀석이 있다면 우리나라에 알려 주시지요. 저는 언제라도 아프리카에서 백만의 새까만 기병과 함께 당신의 적을 정벌해드리겠습니다. (슬픈 얼굴로) 저는 당신을 들이기 위해 아프리카의 수도 한가운데에 대리석 어전을 세웠습니다. 그 어전 주위에는 연꽃이 한가득 피어 있지요. (왕자에게) 부디 이 신발을 신고 이따금 놀러 오시지요.

왕자     꼭 찾아뵙겠습니다.

왕녀     (새까만 왕의 가슴에 장미꽃을 건네며) 저도 실수를 범했네요. 당신이 이렇게 상냥한 분이실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답니다. 부디 용서해주시길. 정말로 죄송한 일을 했습니다.(왕의 가슴에 기대어 아이처럼 울기 시작한다.)

      (왕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래 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악마는 아닙니다. 악마나 다름없는 새까만 왕은 이야기에만 나오지요. (왕자에게) 안 그런가요?

왕자     그렇지요. (구경꾼을 보며) 여러분! 저희 세 사람은 눈이 떠졌습니다. 악마 같은 새까만 왕이나 세 가지 보물을 가진 왕자는 이야기에서나 보는 겁니다. 저희는 눈을 뜬 이 상 이야기 속 나라에서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 앞에는 안개 안쪽에 좀 더 넓은 세계가 떠오릅니다. 우리는 이 장미와 분수의 세계에서 같이 그 세계로 갈 겁니다. 좀 더 넓은 세계! 좀 더 추하고 좀 더 아름다운――좀 더 큰 이야기의 세계! 그 세계서 저희를 기다리는 건 괴로움일까 즐거움일까. 저희는 알지 못 합니다. 단지 그 세계에 용맹한 병졸처럼 나아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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