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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오우가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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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봄밤――그래도 아직 바람이 차고 달이 밝은 밤 아홉 시 가량. 야스키치는 세 친구와 우오가시 거리를 걷고 있었다. 세 친구란 하이진 로사이, 서양 화가 후츄, 시화사 죠탄――세 사람 모두 본명은 밝힐 수 없지만 각자 분야에서 이름을 알린 수완가들이다. 특히 로사이는 한참 때라서 신경향 하이진치고는 일찍부터 이름을 날린 남자였다.
 우리는 모두 취해 있었다. 물론 후츄와 야스키치는 술이 잘 받지 못 하고 죠탄은 희대의 호주가이기에 세 사람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단지 로사이만은 발걸음이 조금 위태로웠다. 우리는 로사이를 가운데에 둔 채로 비린내 섞인 밤바람이 구는 거리를 니혼바시 쪽으로 걸어갔다.
 로사이는 태생부터 에도 남아였다. 증조부는 쇼쿠산이나 분쵸와 교우가 깊었던 사람이다. 집도 카시의 마루세이라 하면 주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로사이는 그런 가업을 한참 전부터 다른 사람한테 넘긴 채로 자신은 산이나 길구석에서 구와 글과 전각 따위를 즐겼다. 그래서일까, 로사이에겐 우리에겐 없는 어딘가 위세 좋은 품격을 지녔었다. 아랫마을 기질보다는 용맹한, 야마노테하고는 물론 거리가 먼――말하자면 카시의 참치 스시와 통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로사이는 자못 성가시다는 양 이따금 외투 자락을 펄럭이며 쾌활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죠탄은 조용히 웃으며 이야기에 맞장구를 쳤다. 그러던 사이 우리는 어느 틈엔가 카시의 끝자락까지 왔다. 이대로 카시를 넘는 건 다들 묘하게 부족한 듯했다. 그러자 그곳에 양식집 하나가 한 쪽을 비추는 달빛에 하얀 노렌을 늘어놓고 있었다. 이 가게의 소문은 야스키치도 몇 번인가 들은 적이 있었다. "들어갈까?", "들어가도 좋겠네."――그런 대화를 하는 사이에 우리는 후츄를 가운데에 두고 좁은 문안으로 들어갔다.
 가게에는 손님 둘이 길고 얇은 탁자를 둔 채 앉아 있었다. 손님 하나는 카시의 젊은이, 또 하나는 어딘가의 직공인 듯했다. 우리는 둘씩 마주 앉아 같은 탁자를 나눠 앉았다. 키조개 구이를 안주 삼아 마사무네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물론 술을 못 마시는 후츄나 야스키치는 두 잔 이상은 들지 않았다. 대신 요리를 비웠다. 두 사람 모두 꽤 잘 먹는 편이었다.
 이 가게는 탁자도 의자도 니스칠을 하지 않은 백목이었다. 더군다나 가게 주위에는 에도 때부터 이어진 갈대밭을 두르고 있었다. 그러니 양식을 먹더라도 양식집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후츄는 주문한 비프스테이크가 오자 잘라 먹는 거라고 말했다. 죠탄은 나이프질에 큰 경의를 드러냈다. 야스키치는 이런 장소인 만큼 전등이 밝은 게 고마웠다. 로사이도――로사이는 육지 사람이라 별로 신기하지 않은 듯했다. 사냥모 챙을 위로 올려 쓴 채 죠탄과 잔을 주고받으며 여전히 쾌활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중절모를 쓴 손님 하나가 노렌을 넘어 들어왔다. 손님은 모피 외투 목깃에 통통한 뺨을 묻으며 노려보기라도 하듯이 좁은 가게 안을 둘렀다. 그러고는 인사 한 마디 없이 죠탄과 젊은이 사이의 자리에 큼지막한 몸을 두었다. 야스키치는 카레를 뜨면서 불쾌한 녀석이지 싶었다. 이게 이즈미 쿄카의 소설이었다면 임협심 넘치는 게이샤에게 퇴치 당할만한 녀석이지 싶었다. 하지만 현대의 니혼바시는 도무지 쿄카의 소설처럼 움직이지는 않을 거 같기도 했다.
 손님은 주문한 후에 거만하게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소설 속 악당의 작법을 따르는 듯했다. 기름진 붉은 얼굴은 물론이요, 오오시마 하오리, 눈에 띄는 반지――하나같이 형식에서 빠져나가는 법이 없다. 야스키치는 그 모습이 내키지 않았다. 손님의 존재를 잊기 위해 옆에 자리한 로사이에게 말을 걸었다. 로사이는 응, 그래 하는 적당한 대답밖에 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그도 기분이 상했는지 전등빛에 등을 돌린 채로 일부러 사냥모를 깊게 눌러 썼다.
 야스키치는 도리 없이 후츄나 죠탄과 먹을 것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잘 풀리지 않았다. 이 뚱뚱한 손님이 나타난 후로 우리 세 사람의 심경이 묘하게 꼬이기 시작한 건 도리 없는 사실이었다.
 손님은 주문한 튀김이 오자 마사무네 병을 꺼냈다. 그리고 잔에 따랐다. 그때 누군가가 옆에서 "코우 씨"하고 불렀다. 손님은 척 봐도 놀란 듯했다. 심지어 그 놀란 얼굴은 목소리 주인을 보자 곧 당혹스럽게 변했다. "아니, 나리 아니십니까"――손님은 중절모를 벗으며 목소리 주인에게 몇 번이나 인사를 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하지 로사이, 카시 마루세이의 나리였다.
 "오랜만인걸"――로사이는 아무렇지 않단 얼굴로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 잔이 비자 손님은 재빨리 자신의 술을 따랐다. 옆에서 봐도 우스울 정도로 로사이의 기분을 살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쿄카의 소설은 죽지 않았다. 적어도 도쿄의 오우가시에는 아직도 그러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양식집을 나왔을 때, 야스키치의 마음은 침울해져 있었다. 야스키치는 물론 '코우 씨'에게 어떤 동정도 지니지 않았다. 그런 데다 사이로의 이야기에 따르면 손님은 인격도 나쁜 듯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밝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야스키치의 서재 책상 위에는 읽다 만 로슈푸코의 어록이 있다――야스키치는 달빛을 밟으며 어느 틈엔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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