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유령――서양이라 해봐야 영미뿐이지만 이 영미 소설에 나오는 근래 유령의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요. 조금 먼곳부터 흐름을 따라가면 영국에서 명성 높은 '오트란토의 성'을 슨 월폴, 래드클리프 부인, 매튜린(이 사람의 '멜모드'는 발자크나 괴테에게도 영향을 준 걸로 유명하다만), '몽크'를 써 몽크 루이즈란 별명을 받은 루이즈, 스콧, 리턴, 보그가 있고, 미국에는 포나 호손 등이 있는데 유령――혹은 일반적으로 요괴라 불리는 걸 다룬 작품은 지금도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특히 유럽 전역 이후로 종교적 감정이 널리 퍼진 동시에 여러 전쟁에 관여된 유령 이야기도 나온 모양입니다. 전쟁 문학에 괴담이 많은 건 재밌는 현상이 분명하겠지요. 그럴만한 게, 프랑스 같은 나라마저 마치 과거의 잔 다르크처럼 클레엘 페르쇼 같은 여자가 나와 그리스도나 천사를 본다. 푸앵카레나 클레망소가 그 여자를 본다. 포슈 장군이 신자가 된다――그런 마당이니 소설 쪽도 초자연적인 일이 들어가는 것도 당연합니다. 이런 소설을 읽어 보면 꽤나 기발한 괴담이 있지요. 이건 미국이 유럽 전역에 참가한 후에 생긴 이야기인데, 워싱턴의 유령이 미국 독립군의 유령과 하나 되어 대서양을 횡단하는 조국 출정군에게 얼마간의 힘을 빌려 간다는 소설이 있습니다. (Harrison Rhodes: Extra Men) 워싱턴의 유령은 독특하지요. 그런가 하면 프랑스 여성 병대와 독일 병대가 대치하고 있고, 독일 병대는 인질로 잡은 어린아이를 방패로 삼았습니다. 그러던 때 전사한 프랑스 남자 병대가――여자 병대의 남편들이 유령이 되어 서리처럼 덮쳐 독일 병사를 해치우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Frances Gilchrist Wood: The White Battalion) 어찌 되었든 종류로 따지면 근래의 유령 소설 중에는 이미 이 방면에 특화된 소설가마저 나왔을 정도로 (Arthur Machen 등) 전쟁물이 눈에 띄는 듯합니다.
종류상의 이야기는 이쯤 하겠지만 보통 요즘 소설에선 유령――혹은 요괴를 다루는 방식이 굉장히 과학적입니다. 결코 고딕식 괴담처럼 허투루 피투성이 유령이 나오거나 해골이 춤추는 법은 없습니다. 특히 몇 년 동안 있었던 심령학의 진보는 소설 속 유령에 놀라운 변화를 준 듯합니다. 키플링, 블랙우드, 비어스 쯤 되면 다들 그 책상 서랍에 심령학회 연구 보고서라도 빼곡히 담아두는 것만 같습니다. 특히 블랙우드는 (Algernon Blackwood) 본인이 이미 시오소피스트이니 어떤 소설이나 굉장히 심령학적으로 이루어져 있죠. 이 사람의 소설에 "존 사일렌스"가 있는데 그 사일렌스 선생님은 말하자면 심령학의 셜록 홈즈 씨로, 유령 든 저택에 탐험을 가거나 악령에 빙의된 걸 고쳐주는 등 하는데, 이런 걸 하나로 엮어 한 편의 이야기로 내놓은 것입니다. 또 "쌍둥이"라는 소설도 있죠. 이건 굉장히 짧은데 쌍둥이가 한 사람이 되어버립니다――이래서는 통하지 않을 테죠. 쌍둥이가 몸이 둘은 있어도 혼은 하나가 되어버리고 맙니다――一사람 하나에 두 사람의 성격이 생기는 동시에 다른 한 사람은 백치가 돼버립니다. 그 경로를 쓴 것인데 바깥 세계에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데 내면에서 이상한 변화가 이뤄지는 내용이 굉장히 교묘히 그려집니다. 이것만은 루이즈나 매튜린에게선 도저히 볼 수 없는 뛰어난 기술입니다. 겸사겸사 하나 더 사례를 들자면 웰스가 처음으로 썼다는 네 번째 공간이 있으며, 모종의 박자에 거기에 들어가면 당사자는 살고 있어도 이 세계 사람은 보지 못 하는, 이를테면 일본의 카미카쿠시에 새로운 해석을 했다고 합니다. 이건 또 비어스가 네 번째 공간에 들어가는 찰나마저도 간결하면서도 또렷한 두세 편의 글을 남겼습니다. 특히 어떤 소년이 행방불명이 된다. 하지만 어떤 곳까지는 눈 때문에 발자국이 또렷이 남아 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건지 뒤로도 앞으로도 간 흔적이 없다. 단지 어머니가 그곳에 가자 목소리만 들린다. 한두 장의 짧은 내용이지만 애처로운 심정이 듭니다. 비어스는 꺼림칙한 걸 쓰는 걸로는 적어도 영미 문단에선 포 이후로 제일이라는 남자인데, 'Amborose Bierce' 본인도 네 번째 공간에 빠지기라도 했는지 멕시코인지 어딘지로 가는 도중에 모연히 행방을 감춘 채로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령――혹은 요괴의 표현 방식이 바뀌는 동시에 그 유령――혹은 요괴에도 이런저런 변화가 보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블랙우드의 소설에서는 엘레멘탈이란 게 이따금 소설에 튀어나옵니다. 이건 불이나 물, 흙 같은 오래된 의미의 원소 정령입니다. 엘레멘탈이란 이름은 원래부터 있었겠지만 그 활동이 소설에 표현되기 시작한 근래인 게 분명할 테지요. 블랙우드의 '버들'이란 소설을 읽으면 도나우강에 보트 여행을 나서는 두 청년이 강 안에 자라는 버들의 엘리멘탈 때문에 고생한다――엘레멘탈의 묘사는 어찌 되었든 야영하는 게 굉장히 잘 그려져 있습니다. 이 버들의 정령은 자그마한 징 소리를 내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산쥬산게토의 버들하고는 달라서 인간을 죽이려 드니 좀처럼 방심할 수 없습니다. 그 외에도 정체 모를 묘한 무언가가 나오는 소설이 있습니다. 묘한 무언가란 소리도 모습도 없는, 그런 주제에 촉각은 있는 말하자면 뭐, 묘한 무언가입니다. 이건 모파상의 오라와 비슷할지 모릅니다만 제가 기억하기론 영미 소설 중에 이런 괴물이 나오는 건 먼저 두 개 가량 있습니다. 하나는 비어스 소설인데, 이 괴물이 지나는 건 풀초가 흔들리는 걸로만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동물에게는 보이는지 개가 짖거나 새가 도망치고, 끝내는 인간을 목졸라 죽여버립니다. 그때 옆에서 다른 남자가 보면 그 괴물에게 조인 사람은 괴물의 몸에 가려지는 곳만큼 모습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그런 식입니다. (The Damned Thing) 또 하나는 이것도 달빛에 비춰 보면 얼굴은 주름진 시트처럼 보인다니까 새로운 방식임이 분명합니다.
이야기는 이 정도입니다만, 서양 유령은 해골이 아닌 한 옷을 입고는 합니다. 전라의 유령은 근래에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물론 괴물 중에는 전라도 적지 않습니다. 지금 말한 오브라이언의 괴물도 털복숭이 전라였습니다. 그 점에서 유령은 인간보다도 어지간히 예의를 차리나 봅니다. 그러니 누가 이틈에 전라 유령이 나오는 소설을 쓰면 적어도 이런 의미에선 전대미문의 신천지를 타개하는 격이 될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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