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그 시절의 대학 생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6. 4.
728x90
반응형
SMALL

     하나

 내가 스물여섯이었을 때로 기억한다. 대학원생이 되니 마니 했는데 당시엔 도쿄에 살지 않았다. 그 탓에 퇴학서를 내는 게 늦어져 기간을 며칠인가 지나 퇴학서를 내게 되었다. 사무소 사람은 규칙을 엄수해 받지 않았다. "이미 기간이 늦었으니 30엔을 내셔야 해요"라고 말하며. 다이쇼 5, 6년의 30엔은 거금이었다. 나는 거금을 내기 어려웠기에 "그럼 어쩔 수 없죠. 제명 처분해주세요."하고 말했다. 사무소 사람은 내 장래를 걱정하며 "제명 처분을 받으면 앞으로 취직이 어려울지 모른다"하고 말했지만 끝내는 제명 처분을 받게 되었다.
 내 동급생인 철학과 학생이 그에 감격해서 말하길 "너도 셸링처럼 제명처분을 받았구나!" 셸링 또한 나처럼 30엔의 돈을 내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긴 걸까. 내가 아직 견문이 좁아서 이를 알지 못 하는 게 유감이다.

     둘

 우리 영문학과 선생님은 고 롤렌스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은 하루는 길거리서 나를 붙들고 끊임없이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의 말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 했기에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멀뚱멀뚱 선생님의 얼굴만 지켜보았다. 선생님 또한 내 분위기에 조금 당황하셨다. 대뜸 내게 묻기를 "Are you Mr. K.?" 내가 대답하기를 "No, Sir." 선생님은――선생님 또한 번개에 맞은 것처럼 멀뚱멀뚱 있으신 후 나를 뒤로한 채 떠나셨다. 내가 선생님과 친근히 접한 일은 이 도로 위 몇 분이 고작이었다.

     셋

 우리 "신사조" 동인은 다이쇼 덴노가 찾아오는 마지막 졸업식이 되리라. 우리는 쿠메 마사오와 마찬가지로 여름 교복을 지니지 못 했기에 알몸 위에 겨울 교복을 입고 수많은 인파 속에서 머뭇머뭇 있었다.

     넷

 나는 괴벨 선생님을 안다. 선생님은 항상 체크 셔츠를 입으시고 쇼펜하우어를 강의하셨다. 그 쇼펜하우어의 책이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났던 건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다섯

 2학년 때, 독일어를 곧잘 했기에 독일 대사 그래프 렉스에게 아른트의 시집 네 권을 받았다. 하지만 이건 정말로 곧잘 해서 받은 게 아니다. 실제로는 이발소에 갔을 때 독일어 선생님께 순서를 양보해 먼저 머리를 깎게 했기 때문이다. 이건 겸손이 아니라 지금도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는 일이다.
 나는 이 아른트를 이쿠분도우니 팔아 6엔을 받은 걸로 기억한다. 그 후로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나는 당시와 마찬가지로 아른트를 알지 못 한다. 저 먼 곳의 그래프 렉스는 과연 지금도 얼굴이 붉을까. 

     여섯

 나는 2학년인가 3학년일 때 야시로 유키오, 쿠메 마사오 둘과 함게 영문학과의 교육 방침을 공격했다. 장소는 히토츠바시의 학사회관이었던 거 같다. 우리는 적은 머릿수로 많은 사람들에게 맞서며 큰 개선가를 연주했다. 하지만 쿠메는 승리에 들떠서 심장에 이상이 생겨 걸어 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야시로와 함께 쿠메를 부축하여 인기척이 끊긴 전철길을 통해 겨우 하숙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