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모를 잡목이 자란 쓸쓸한 언덕 위를 걷고 있었다. 언덕 아래에는 바로 연못이 있었다. 또 연못의 끝자락에는 물새 두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어느 쪽도 옅은 이끼가 낀 돌색에 가까운 물새였다. 나는 딱히 물새가 신기한 건 아니었다. 단지 날개가 너무나 선명히 보이는 건 꺼림칙했다――
――나는 이런 꿈속에서 덜컹덜컹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서재와 이어진 손님방의 유리문에서 나는 소리인 듯했다. 나는 신년호 작업 중에 서재서 잠을 취하고 있었다. 세 곳의 잡지사와 약속한 세 편은 하나 같이 불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마지막 일을 오늘 동이 트기 전에 정리할 수 있었다.
이불 끝자락의 장자에 대나무 그림자가 힐끔힐끔 드리워 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소변을 보았다. 요즘 들어 이만한 소변 수증기를 본 적은 없었다. 나는 변기를 보며 오늘은 평소보다 춥겠지 싶었다.
큰어머니나 아내는 손님방의 엔가와서 유리문을 닦고 있었다. 덜컹덜컹하는 게 그 소리인 듯했다. 민소매 우이ㅔ 타스키를 걸친 큰어머니는 바구니의 걸레를 짜면서 나를 살짝 놀리듯이 "벌써 열두 시란다"하고 말했다. 확실히 열두 시임이 분명했다. 복도를 지나 거실로 나오니 긴 목제화로 앞에 점심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어머니는 차남 타카시에게 우유나 토스트를 먹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습관상 아침 같은 심정이 들어 인기척 없는 주방에서 얼굴을 씻었다.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 나는 서재에 둔 코타츠에 들어가 두세 종류의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신문 기사는 아무개 회사의 보너스나 하고이타의 판매량 따위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조금도 밝아지지 않았다. 나는 일을 마칠 때마다 묘하게 약해지고는 했다. 그건 관계 후의 피로처럼 어쩔 도리 없는 일이었다………
K군이 온 건 두 시쯤이었다. 나는 K군을 코타츠로 오게 해 별 볼일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세로 줄무늬 양복을 입은 K군은 호우텐의 특파원――지금은 본사 소속의 신문기자였다.
"어떻게, 한가하시면 나갈래요?"
나는 잡담을 끝냈을 쯤,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게 답답해졌다.
"네, 네 시까지라면………어디 갈만한 데라도 있나요?"
K군은 조심스레 되물었다.
"아뇨, 어디든 좋죠."
"묘는 안 될까요?"
K군이 묘라고 말한 건 나츠메 선생님의 묘였다. 나는 반 년 정도 전에 선생님의 애독자였던 K군에게 묘를 가르쳐주기로 약속했다. 연말에 성묘를 한다――내 마음에 와닿는 게 없지는 않았다.
"그럼 묘로 갈까요."
나는 바로 외투를 걸치고 K군과 같이 집을 나섰다.
날씨는 춥긴 해도 맑았다. 비좁은 도우자카의 거리도 평소보다 인파가 많은 듯했다. 문 앞에 세워진 소나무나 대나무도 타바타 청년단 대기소인가 하는 판자 오두막 옆으로 치워져 있었다. 나는 이런 거리를 보았을 때, 어느 정도 내가 소년 시절에 품었던 연말의 기분이 돌아오는 걸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고코쿠지마에 행 전철을 탔다. 전철은 의외로 붐비지 않았다. K군은 외투 목깃을 세운 채로, 요전에 선생님의 탄자쿠 한 장을 겨우 손에 넣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후지마에를 지날 즘, 전철의 중간쯤에 위치한 전구 하나가 우연히 떨어졌다. 그곳에는 얼굴도 차림새도 좋지 않은 스물네다섯 된 여자 하나가 한 손에는 커다란 보따리를, 한 손에는 손잡이를 잡은 채로 서있었다. 전구는 마루에 떨어지는 순간에 그녀의 앞머리를 스친 듯했다. 그녀는 묘한 표정을 지은 채로 전철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건 남들의 동정을――적어도 사람들의 주의만큼은 끌려는 얼굴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모두가 말이라도 맞춘 듯이 그녀에게 냉담했다. 나는 K군과 이야기하면 어쩐지 맥이 빠진 듯한 그녀의 얼굴서 우스움보다도 슬픔을 느꼈다.
우리는 종점에서 전철을 내려 신년 장식을 파는 가게 따위가 생긴 거리를 조우시가야에 자리한 묘지를 향해 걸었다.
오오이쵸의 잎이 다 떨어진 묘지는 오늘도 여전히 쓸쓸했다. 폭이 넓은 중앙의 모래길서도 성묘객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나는 K군의 앞에 선 채로 오른쪽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은 홍가시나무 울타리나 붉게 녹이 슨 철책 안에 크고 작은 묘가 줄지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선생님의 묘는 찾아 볼 수 없었다.
"한 블럭 더 가야 했던 거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골목을 되돌아 걸으며 매년 12월 9일엔 신년호 작업에 쫓겨 선생님의 성묘도 제대로 하지 못 한 걸 떠올렸다. 하지만 몇 번 오지 않았다 한들 묘의 위치마저 알지 못 하는 건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
다음 블럭의 살짝 넓은 골목도 묘가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이번에는 걸음을 되돌리는 대신에 나무 울타 사이를 좌로 돌았다. 하지만 묘는 찾을 수 없었다. 그뿐 아니라 내가 기억하던 몇몇 공터마저 찾을 수 없었다.
"물어볼 사람도 없고………곤란하네요."
나는 이렇게 말하는 K군의 말에 또렷한 냉소에 가까운 걸 느꼈다. 하지만 가르쳐준다고 해놓고 성을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도리 없이 오오이쵸를 찾아 다시 한 번 옆길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도 묘는 없었다. 나는 물론 짜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 깃든 건 묘하게 울적한 심정이었다. 나는 어느 틈엔가 외투 아래서 내 체온을 느끼며 이전에도 비슷한 심정을 느낀 적 있다는 걸 떠올렸다. 그건 내가 어릴 적에 어떤 골목 대장에게 괴롭힘당하고 심지어는 울음을 참으며 집에 돌아왔을 때의 심정이었다.
몇 번이나 골목을 오고 간 후, 나는 침향을 태우던 묘역 청소 직원한테 길을 배워 커다란 선생님의 묘 앞에 겨우 K군을 데리고 갈 수 있었다.
묘는 전에 왔을 때보다 꽤나 세월을 두르고 있었다. 더군다나 묘 주위의 흙도 서리로 거칠어져 있었다. 묘에선 9일에 놓인 듯한 겨울 국화나 남천 다발 외에 어떠한 친근함도 느낄 수 없었다. K군은 일부러 외투를 벋고 정중히 묘에 인사를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와서 쾌활하게 K군과 같이 인사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벌써 몇 년이나 됐지요?"
"이제 딱 구 년 됐죠."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고코쿠지마에의 종점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K군과 같이 전철에 타고 나 혼자 후지마에서 내렸다. 그리고 토우요우분코에 있는 어떤 친구를 찾은 후, 해가 질적에 도우자카에 돌아왔다.
도우자카의 길거리는 아침보다도 더 붐볐다. 하지만 코우신도우를 지나자 인파도 점점 줄기 시작했다. 나는 몸을 작게 움츠러트린 채 눈앞만을 보듯이 바람 부는 거리를 걸었다.
그러자 키지우라의 하치만자카 아래서 수레를 끄는 남자 하나가 손잡이를 놓고 쉬고 있었다. 수레를 바라보니 정육점 수레에 가까웠다. 하지만 다가가 보니 옆으로 넓은 입구에 도쿄 포의 회사라 적혀 있었다. 나는 뒤에서 말을 건 후 쭉쭉 수레를 밀어주었다. 밀어주는 게 살짝 내키지 않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힘을 내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 또한 들 게 분명했다.
북풍은 긴 언덕 위에서 이따금 똑바로 불어 내려왔다. 키치의 가로수도 그때마다 잎이 떨어진 가지끼리 스쳐 울었다. 나는 이런 어둠 속에서 묘한 흥분을 느끼며 마치 나 자신과 싸우 듯이 일사불란히 수레를 밀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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