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 내리는 날의 오후였다. 나는 어느 그림 전시회장의 한 방에서 작은 유화 한 장을 발견했다. 발견――그렇게 말하면 거창하게 들려도 실제로 그렇게 말해도 별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그럴만한 게 이 그림만이 채광이 좋지 않은 구석에서 굉장히 빈곤한 액자에 담긴 채 잊힌 것처럼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은 "늪지"라고 하는 듯하며 화가는 알려진 사람도 아니었다. 또 그림 자체도 단지 탁한 물과 습기 찬 흙, 그리고 그 흙에 자란 목초를 그린 게 전부이니 아마 일반적인 관객에겐 말 그래도 눈길조차 받지 못 하리라.
그런데다 신기하게도 이 화가는 울창한 목초를 그리면서 녹색은 조금도 쓰지 않았다. 갈대나 버들, 무화과를 칠한 건 아무리 보아도 탁한 노란색이었다. 마치 젖은 벽만 같은 무겁기 짝이 없는 노란색이다. 이 화가에겐 녹초의 색이 실제로 그렇게 보이는 걸까. 아니면 달리 생각이 있어 일부러 이렇게 과장을 한 걸까――나는 이 그림 앞에 서서 그러한 감각을 맛보는 동시에 이러한 의문 또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보고 있자니 그림 안에 무시무시한 힘이 담겨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특히 전경의 흙 따위는 그곳을 밟을 때에 발에서 느껴지는 감각마저 느껴질 정도로 정확히 그려져 있었다. 밟으면 푹하는 소리와 함께 발꿈치가 가려지는 듯한 매끄러운 진흙의 감각이다. 나는 이러한 작은 유화 속에서 날카롭게 자연을 움켜쥐려 하는 애처로운 예술가의 모습을 찾아냈다. 그리고 갖은 우수한 예술품에서 받는 것처럼, 이 노란 늪지의 목초에서도 황홀한 비장의 감격을 받았다. 같은 회장에 걸린 크고 작은 그림 속에서도 이 한 장에 필적할만한 힘을 지닌 그림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크게 감탄하신 거 같네요."
누군가가 그런 말과 함께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마치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어 곧장 뒤를 돌아보았다.
"보기에 어떠십니까."
상대는 개의치 않고 그렇게 말하며 막 면도한 턱으로 늪지 그림을 가리켰다. 유행하는 갈색 양복을 입고 품이 넉넉한, 소식통을 자처하는――신문 미술부 기자였다. 나는 전에도 이 기자에게서 두어 번 불쾌한 인상을 받은 기억이 있었기에 내키지 않은 투로 대답했다.
"걸작이지요."
"걸작――인가요. 그거 재밌군요."
기자는 배를 흔들어 웃었다. 그 목소리에 놀란 거겠지. 근처에서 그림을 보던 두세 명의 관객이 모두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를 보았다. 나는 기어코 불쾌해졌다.
"정말 재밌네요. 본래 이 그림은 말이죠, 회원의 그림이 아니랍니다. 하지만 작가가 입버릇처럼 여기에 내겠다 내겠다 해서 유족이 심사원에게 부탁해 겨우 구석에나 걸게 된 거죠."
"유족이요? 그럼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죽은 건가요?"
"죽었지요. 하기사 살아 있을 때부터 죽은 거나 매한가지였다지만요."
내 호기심은 어느 틈엔가 불쾌한 감정보다 강해져 있었다.
"무슨 말씀이시죠?"
"이 화가는 꽤나 오랫동안 미치광이처럼 지냈다네요."
"이 그림을 그렸을 때도 그랬나요."
"아무렴요.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이런 색의 그림을 그릴까요. 그런데 당신은 걸작이라며 감탄하고 계시지요. 재밌지 않습니까?"
기자는 또 의기양양히 소리 내어 웃었다. 그는 내가 나의 부족한 식견을 부끄러워하리라 생각했겠지. 혹은 한 발 나아가 자신의 관람안이 우위에 있음을 내게 보여주려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두 개나 헛수고가 되었다. 그의 말을 듣는 동시에 엄숙함에 가까운 감정이 내 모든 정신에 말할 도리 없는 파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싹해져 다시 늪지 그림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이 작은 캔버스 안에서 굉장한 초조함과 불안에 괴롭힘당하는 애처로운 예술가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림이 생각처럼 그려지지 않아서 미쳐버린 모양이지만요. 그 점만은 뭐, 못 사줄 건 없지요."
기자는 밝은 얼굴을 하고 거의 기쁘다는 양 미소 지었다. 이게 무명 예술가가――우리 중 한 사람이 그 생명을 희생하여 겨우 세간에게서 받아낸 유일한 보수인 셈이다. 나는 온몸에 이상한 전율을 느끼며 한 번 더 이 우울한 유화를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어두컴컴한 하늘과 물 사이에 젖은 노란흙의 색을 한 갈대가, 버들이, 무화과가, 자연 그 자체를 보는 듯이 굉장한 기세로 살아 있다………
"걸작이지요."
나는 기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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