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주부 대상 잡지의 면회실.
편집장 통통한 40대 전후의 신사.
호리카와 야스키치 안 그래도 마른데 편집장이 뚱뚱한 만큼 더 말라 보이는 서른대 전후의――한 마디로는 형용할 수 없는 남자. 하지만 어찌 되었든 신사라 부르기에 주저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편집장 이번엔 저희 잡지사에 소설을 써주시지 않겠습니까? 요즘 들어 독자도 고급화되었는지 종래의 연애 소설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좀 더 깊은 인간성에 뿌리를 둔 진지한 연애 소설을 적어주셨으면 합니다.
야스키치 그야 써드리죠. 실은 주부 잡지에 쓰고 싶은 소설이 있습니다.
편집장 그런가요? 그거 다행이군요. 만약 써주신다면 신문에 크게 광고해드리겠습니다. "호리카와 씨가 쓰시는 애완 넘치는 연애 소설"하고요
야스키치 "애완 넘치는"? 하지만 제 소설은 "연애는 최고다"하고 말하는걸요.
편집장 그럼 연애 찬미로군요. 더더욱 좋습니다. 쿠리야가와 박사의 "근대연애론" 이후로 일반 청년남녀의 마음은 연애지상주의로 기울었으니까요……물론 근대적 연애겠지요?
야스키치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근대적 회의나 근대적 도적, 근대적 백발 염색――그런 건 확실히 존재하겠지요. 하지만 도무지 연애만은 이자나기나 이자나미 시대 이후로 별로 달라진 거 같지 않습니다.
편집장 그건 이론이나 그렇지요. 이를테면 삼각관계 같은 건 근대적 연애의 한 사례니까요. 적어도 일본에서는 말이죠.
야스키치 아, 삼각관계인가요? 제 소설에도 삼각관계는 나옵니다……한 번 줄거리를 이야기해 볼까요?
편집장 그래주시면 좋지요.
야스키치 여주인공은 젊은 사모님입니다. 외교관의 부인이죠. 물론 도쿄 야마노테에 자리한 저택에 살고 있지요. 키도 크고 굉장히 상냥한 항상 머리를――독자는 보통 어떤 머리 모양을 가진 여주인공을 바라나요?
편집장 미미카쿠시
겠죠.
야스키치 그럼 그렇게 하지요. 항상 미미카쿠시로 머리를 묶은, 피부가 하얗고 눈이 또렷하며 입술이 특징적인――뭐 영화로 따지면 쿠리시마 스미코가 맡을만한 캐릭터입니다. 남편인 외교관도 신시대의 법학사이니 신파비극에 나올 법한 벽창호는 아니지요. 학창 시절에는 야구 선수였고 취미 삼아 소설 정도는 읽는 약간 까무잡잡한 호남입니다. 신혼인 두 사람은 야마노테 저택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지요. 같이 음악회를 관람하기도 합니다. 긴자를 산책하기도 하지요………
편집장 물론 지진 이전의 이야기지요?
야스키치 네, 그보다 훨씬 전이지요……같이 음악회를 관람하고 긴자를 산책하기도 하죠. 혹은 또 서양식으로 꾸민 방의 전등 아래에서 말없이 서로 웃어 보기도 합니다. 여주인공은 서양식으로 꾸민 그 방을 "우리의 고치"라 이름 붙였죠. 벽에는 르노알이나 세잔느의 복제도 걸려 있죠. 피아노도 검게 빛납니다. 야자 분재도 하나 놓여 있습니다――이러면 제법 힘이 들어 간 거 같지만 집세는 의외로 비싸지 않습니다.
편집장 그런 설명은 필요 없지요. 적어도 소설 본문에는.
야스키치 아뇨, 필요합니다. 젊은 외교관의 월급이 그리 비쌀 리도 없으니까요.
편집장 그럼 화족의 아들로 해두지요. 물론 백작이나 자작으로요. 어떻게 된 일인지 소설에는 공작이나 후작은 잘 나오지 않더라고요.
야스키치 물론 백작 아들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서양식 방만 나오면 돼요. 그 서양식 방이, 긴자 거리가, 음악회가 제1화가 되는 거니까요……하지만 타에코는――이게 여주인공의 이름입니다――음악가 타츠오와 친해진 이후로 서서히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타츠오는 타에코를 사랑하죠――여주인공은 그렇게 직감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런 불안은 나날히 커져 가기만 합니다.
편집장 타츠오는 어떤 남자지요?
야스키치 타츠오는 음악 천재입니다. 롤랑이 쓴 장 크리스토프와 바서만이 쓴 다니엘 노토합트를 하나로 합친 듯한 천재지요. 하지만 아직 가난하거나 무언가를 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 하죠. 이건 제 친구 음악가를 모델로 삼을 생각입니다. 물론 제 친구는 미남이지만 타츠오는 미남이 아니죠. 얼굴은 얼핏 고릴라와 닮은 토후쿠 출신의 야만인입니다. 하지만 눈만은 천재적인 빛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의 눈은 한 덩어리 석탄불처럼 끌 수 없는 열을 품고 있다――그런 눈을 지니고 있습니다.
편집장 천재는 분명 통하겠지요.
야스키치 하지만 타에코는 외교관 남편에게 불만을 지니지 않았습니다. 아니, 되려 전보다도 열렬히 남편을 사랑하고 있죠. 남편 또한 타에코를 믿습니다. 이건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때문에 아코에의 괴로움은 더해만 갑니다.
편집장 제가 말한 근대적 연애란 게 바로 그런 겁니다.
야스키치 타츠오는 전등을 키면 매일 같이 서양식으로 꾸민 방을 찾습니다. 남편이 있을 때면 차라리 괴로울 게 없어요. 하지만 타에코 혼자 있을 때에도 역시 찾아오지요. 타에코는 그럴 때면 도리 없이 피아노를 치게 합니다. 물론 남편이 있을 때에도 타츠오는 대개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마는.
편집장 그러는 사이 사랑에 빠지는 건가요?
야스키치 아뇨, 쉽게는 빠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2월 밤, 타츠오는 대뜸 슈베르트의 "실비아에게"를 연주하기 시작하죠. 그 흐르는 불꽃같은 정열을 품은 노래 말입니다. 타에코는 큰 야자나무 잎 아래에서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는 사이 서서히 타츠오를 향한 사랑을 느끼기 시작하죠. 동시에 눈앞에 떠오른 금색의 유혹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5분――아니, 1분만 있었다면 타에코는 타츠오의 품안에 몸을 던졌을지 모릅니다. 그때――마침 그 곡이 끝날 쯤에 다행히 남편이 돌아오죠.
편집장 그래서요?
야스키치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후, 아코에는 괴로움을 참다 못 해 자살하려 결심합니다. 하지만 마침 임신하고 있었기에 단행할 용기를 갖지 못 하지요. 그래서 타츠오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남편한테 밝힙니다. 물론 남편이 괴롭지 않도록 자신도 타츠오를 사랑한다는 것은 밝히지 않지만요.
편집장 그럼 결투가 벌어지는 걸까요?
야스키치 아뇨, 단지 남편은 타츠오가 왔을 때 차갑게 방문을 거절합니다. 타츠오는 입술을 깨문 채로 피아노만 바라보죠. 타에코는 문밖에 자리한 채 조용히 울고 있습니다――그 후,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대뜸 발령을 받은 남편은 중국 한커우의 영사관에 부임하게 되죠.
편집장 타에코도 같이 갈까요?
야스키치 물론 같이 가지요. 하지만 타에코는 떠나기 전에 타츠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당신의 마음에 동정합니다. 하지만 저는 어쩔 도리가 없어요. 서로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포기하지요."――대강 그런 식으로요. 그 후 타에코는 오늘까지 줄곧 타츠오를 만나지 못 합니다.
편집장 그럼 거기서 소설이 끝나는 거군요.
야스키치 아뇨, 조금 더 남아 있습니다. 타에코는 한커우로 간 후로도 이따금 타츠오를 떠올립니다. 그뿐 아니라 끝내는 남편보다도 타츠오를 사랑하고 있었다 생각하게 되어요. 아시겠나요? 타에코를 둘러싼 건 쓸쓸한 한커우의 풍경입니다. 당의 최호의 시에 "말게 갠 강가에 또렷한 것은 한양의 나무요, 향기로운 풀 무성한 곳은 앵무섬이다"하고 노래한 그 풍경이지요. 타에코는 끝내 다시 한 번――일 년 가량 지났습니다만마――타츠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했어요. 지금도 당신을 사랑하지요. 부디 스스로를 속인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그런 편지를 보냅니다. 그 편지를 받은 타츠오는……
편집장 바로 중국으로 향하겠지요.
야스키치 하지만 그럴 수도 없지요. 타츠오는 먹고 살기 위해서 아사쿠사에 위치한 영화관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으니까요.
편집장 그건 조금 살풍경이네요.
야스키치 살풍경이라도 도리가 없지요. 타츠오는 구석 카페의 테이블에서 타에코에게 온 편지 봉투를 뜯지요. 창밖 하늘에선 비가 내립니다. 타츠오는 멍하니 편지를 바라보죠. 어쩐지 그 행간서 타에코의 서양식 방이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피아노 뚜껑에 전등이 반사하는 "우리의 고치"가 보이는 것만 같죠……
편집장 조금 부족한 느낌도 들지만 어찌 됐든 근래의 걸작이군요. 꼭 한 번 써주시길 바랍니다.
야스키치 사실은 좀 더 있습니다.
편집장 네? 아직 안 끝난 겁니까?
야스키치 네, 그러는 사이 타츠오는 웃음을 터트립니다. 그러고는 원망스러운 투로 "빌어 먹을"하고 욕을 하죠.
편집장 하하, 발광했군요.
야스키치 무얼, 바보 같아져서 속이 뒤집어진 겁니다. 그럴 만도 하지요. 타츠오는 본래 타에코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았으니까요……
편집장 하지만 그래서야……
야스키치 타츠오는 단지 타에코의 집에 피아노를 치러 간 거뿐입니다. 말하자면 피아노를 사랑했을 뿐이에요. 빈곤한 타츠오는 피아노를 살 돈도 없었으니까요.
편집장 하지만 호리카와 씨.
야스키치 하지만 영화관 피아노라도 칠 적에는 차라리 행복한 편이었습니다. 타츠오는 대지진 이후로 순사가 되었지요. 호헌운동이 있었을 때에는 선량한 도쿄 시민을 위해 두들겨 맞기도 했습니다. 단지 야마노테 순찰 중에 이따금 피안 소리라도 들리면 그 집 밖에 선 채로 덧없는 행복을 꿈꾸고는 합니다.
편집장 그래서야 모처럼의 소설은……
야스키치 뭐, 들어 보시죠. 타에코는 그동안에도 한커우 생활을 하며 여전히 타츠오를 그리워합니다. 아니, 한커우뿐일까요. 외교관 남편이 전임할 때마다 상하이니 베이징이니 톈진이니 거처를 옮기면서도 여전히 타츠오를 그리워합니다. 물론 대지진 때에는 많은 아이들을 가지게 되었지요. 으음, 연년생으로 쌍둥이를 낳았으니 아이가 넷이군요. 더군다나 남편은 어느샌가 대주가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돼지처럼 뚱뚱해진 타에코는 정말로 자신과 사랑을 나눈 건 타츠오뿐이었다 믿고 있지만요. 연애는 정말로 최고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타에코처럼 행복해질 수는 없으니까요. 적어도 인생의 진흙탕을 미워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겠죠――어떻습니까, 이런 소설은?
편집장 호리카와 씨, 지금 진지하게 하시는 말입니까?
야스키치 아무렴요. 물론 진지하지요. 세간의 연애 소설을 보시죠. 여주인공은 마리아 아니면 클레오파트라 아닙니까? 하지만 인생의 여주인공이 꼭 동정녀가 아님은 물론이요 꼭 창부이지도 않지요. 만약 사람 좋은 독자 중에 한 명이라도 이런 소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남녀가 있다 치죠. 물론 연애가 원만히 이뤄질 경우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만에 하나 실연이라도 한 날에는 반드시 바보 같은 자기희생을 하거나 혹은 좀 더 바보 같은 복수적 정신을 발휘하지요. 심지어 당사자 본인은 무언가 영웅적 행위처럼 자아도취하니까요. 하지만 제 연애 소설은 조금도 그런 악영향을 보급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결말은 여주인공의 행복을 찬미하고 있죠.
편집장 농담하시는 거죠? ……아무튼 저희 잡지에는 실을 수 없을 거 같군요.
야스키치 그런가요? 그럼 다른 잡지에 실어야지요. 이 넓은 세상에 제 주장을 받아 들여줄 주부 잡지 하나 없겠습니까?
야스키치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단 증거로, 이 대화는 이곳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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