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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속 바쇼 잡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3.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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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사람

 

 나는 바쇼가 한문에도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었다 적었다. "개미는 여섯 다리를 지녔다"라는 문장은 혹은 너무 딱딱할지 모른다. 하지만 바쇼의 하이카이는 번번이 이 번역에 가까운 모험에 공적을 이뤄냈다. 일본 문예에선 적어도 "빛은 항상 서쪽에서 왔다" 바쇼 또한 이 사례서 벗어나지 않는다. 바쇼의 하이카이는 당대 사람들에겐 참으로 모던했으리라.

 오싹오싹히 벽 밟아가며 자는 낮잠이구나

 "벽 밟아가며"란 말은 한문에서 뺏어 온 것이다. "답벽면(벽을 밟아가며 자다)"란 성어를 쓴 한문은 물론 적지 않으리라. 나는 무로우 사이세이 군과 함께 바쇼의 근대적 정취(당대의)가 한 시대를 풍미한 이유를 짚고 있다. 하지만 시인 바쇼는 또 한 면으론 "처세"에도 능했다. 바쇼와 어깨를 나란히 한 하이진 본쵸, 죠소, 이젠 등은 이 점에선 바쇼에게 미치지 못한다. 바쇼는 그들처럼 천재적이었던 동시에 그들보다 한층 더 고생인이었다. 키카쿠, 쿄리쿠, 시코 등이 그에게 마음을 끌린 간 그의 하이카이가 뛰어난 것도 결코 적지 않았으리라. (세상 사람들의 소위 '덕망'은 적어도 그들을 다루는데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또 그의 뛰어난 처세도――혹은 그의 영웅적 수완도 교묘히 그들을 농락했을 터이다. 바쇼가 속세에 능통한 건 그가 단린시대에 쓴 하이카이를 보면 된다. 혹은 그가 쓴 서란의 뒤에서도 동서 제자를 조종한 그의 기세를 엿볼 수 있으리라. 마지막으로 그는 겐로쿠 2년에도――"오쿠노 호소미치"의 여행에 오를 때에도 이런 구를 쓰는 '강한 사람'이었다.

 여름 맞은 산 높은 신발 기리며 오르는 과정

 "여름 맞은 산"도 "높은 신발"도 더욱이 "과정"까지 이어지는 기세는 역시나 '강한 사람'이었던 잇사도 고개를 못 들지 모르겠다. 그는 실로 '사람'으로서도 문예적 영웅 중 한 명이었다. 바쇼가 살던 무상관은 바쇼 숭배자가 믿는 것처럼 약한 감상주의를 머금고 있진 않다. 되려 거침없는 용맹을 품은 불구퇴전의 한 줄기 길이다. 바쇼가 번번이 라이카이마저 "평생의 길 위에 자란 풀"이라 부른 건 우연이 아니었을 테지. 어찌 됐든 그는 후대에는 물론이요 당대에도 쉽게 이해받지 못한(숭배받은 일이 없다고는 안 하겠다.) 굉장히 마음 독한 시인이다.

 

     둘 전기

 

 바쇼의 전기는 세부로 들어가면 아직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 많은 듯하다. 하지만 나는 대강은 아래와 같다 믿고 있다――그는 잘못을 저질러 이가를 나와 에도에 와서 유곽을 출입하다 어느 틈엔가 근대적(당대의) 대시인이 되었다. 또 혹시 몰라 덧붙이자면 몬가쿠마저 두렵게 한 사이교만한 육체적 에너지는 없었던 건 확실하며 역시나 제 자식을 엔가와서 걷어차 떨어트리는 사이교만한 신경적 에너지도 없었던 건 분명하다. 바쇼의 전기도 갖은 전기처럼 그의 작품을 제외하면 별달리 신비하지도 않다. 아니, 사이가쿠의 "오키미야게"에 나온 탕아의 일생과 별 차이가 없다. 단지 그는 그의 하이카이를――그의 "평생의 길 위에 자란 풀"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그를 낳은 이가는 '이가야키'란 도기를 낳은 곳이었다. 그러한 예술적 분위기도 봉건시대에는 그를 만드는데 어떠한 힘으로 작용했으리라. 나는 언젠가 이가의 향합서 뻔뻔하면서도 고담한 바쇼를 느꼈다. 선승은 이따금 칭찬하는 대신 내리까는 말을 쓰곤 한다. 그런 심정은 우리가 바쇼를 대할 때도 느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는 실로 일본이 낳은 삼백 년 전의 대사기꾼이다.

 

     셋 바쇼의 의발

 

 바쇼의 의발은 시적으론 죠소 등에게도 전해져 있다. 또――이 세기 시인들에게도 혹은 전해져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생활적으로는 이가처럼 산이 많은 시나노의 대시인, 잇사에게만 전해졌을 뿐이다. 한 시대의 문명은 물론 시인의 작품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도 잇사의 작품은 바쇼의 작품과 같은 언덕에 이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배 밑바닥에선 어느 쪽도 "똥밭"을 지나왔다. 바쇼의 제자였던 이넨도 혹은 그런 사람 중 하나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잇사처럼 뻔뻔한 근성을 지니진 않았다. 대신 잇사보다도 가련하였다. 그의 광기는 연기서 보는 것처럼 쇄탈하거나 정취 있지 않다. 그에게는 그의 가족은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 건 광기다.

 가을 밝아와 오니 꿰뚫어버린 저녁일까나

 나는 이 구가 이넨의 작품 중에서도 명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광기는 이 구 안에서도 보이는 것만 같다. 이넨의 광기를 기뻐하는 자는――특히 경묘함을 기뻐하는 자는 얼마든지 멋대로 감탄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내가 믿기로 거기서 우리를 움직이는 건 끝내 바쇼에 미치지 못한 바쇼에 가까운 어떤 시인의 통곡이다. 만약 그의 광기를 "흐트러져 있다"고 말하는 비평가라도 있다면 나는 이 비평가에게 경의를 표하는 설 주저하지 않으리라.

 추기. 이는 '바쇼 잡기'의 일부이다.

(쇼와 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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