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공망 하니 생각나는군요, 황공망의 추산도는 보신 적 있으십니까?"
어느 가을밤, 우향각을 찾은 왕석곡은 주인 운남전과 차를 홀짝이며 이런 질문을 했다.
"아뇨, 보지 못했습니다."
대치노인 황공망은 매도인이나 황학산초와 함께 원 시대의 유명한 화가이다. 운남전은 그렇게 말하며 과거에 본 사막도나 부춘권이 눈가에 또렷이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글쎄요, 그걸 봤다고 해야 할지 보지 못했다 해야 할지 참 애매한데――"
"봤다고 해야 할지 못 봤다고 해야 할지――"
운남전은 의아하다는 양 왕석곡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모사본이라도 보신 겁니까?"
"아뇨, 그것도 아닙니다. 진품을 보았습니다만――그것도 저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추산도에 관한 건 연객 선생님(왕시민)이나 염주 선생님(왕감)도 인연이 있지요."
왕석곡은 또 차를 홀짝인 후 깊게 생각에 잠긴 듯이 작게 웃어 보였다.
"지루하지 않으시다면 이야기해 볼까요."
"부탁드리지요."
운남전은 화롯불을 긁으며 은근히 손님을 재촉했다.
* * *
원재 선생(동기창)이 살아 계셨을 적의 일입니다. 그해 가을 선생께선 연객 옹과 화론을 나누는 사이 문득 옹께 황일봉의 추산도를 본 적이 있냐 물으셨지요. 알다시피 옹께선 화가 중에선 황공망을 추종했던 사람입니다. 허니 인간이 가진 황공망의 그림이란 그림은 전부 알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허나 그 추산도란 그림만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뇨, 보기는 고사하고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군요."
연객 옹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묘하게 부끄러워지는 걸 느꼈다 합니다.
"그럼 기회가 되는 대로 한 번쯤 봐두시지요. 하산도나 부람도와 비교하면 또 특색 있는 작품이지요. 아마 황공망 노인의 작품 중에서도 백미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걸작인가요? 그거 꼭 보고 싶군요. 하지만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윤주 사는 장 씨 가문에 있답니다. 금산절에 들를 일이 있으시면 문을 두드려 보시지요. 제가 소개장 써드리겠습니다."
연객 옹은 선생님의 편지를 받고는 곧장 연주로 향했습니다. 그런 보기 드문 그림을 가진 집안이지 않습니까. 거기 가면 황공망 이외에도 대단한 그림을 여럿 볼 수 있을 테지――그렇게 생각한 연객 옹은 더는 서원 글방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헌데 막상 윤주에 가보니 기대하던 장 씨 가문은 거창하게 넓기는 해도 참 볼품없었다 합니다. 담장에는 덩굴이 얽혀 있고 정원에는 풀이 무성했지요. 그런 가운데 닭이나 집오리가 손님을 신기하다는 양 바라보고 있지 뭡니까. 그 모양이니 옹께서도 이런 집에 정말 황공망의 명화가 있나 싶어 한 시는 원재 선생의 말이 의심스러워졌을 정도라 합니다. 하지만 일부러 찾아온 길이니 가만히 돌아오는 건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손님을 맞이하러 온 머슴아이에게 황공망의 추산도를 보고 싶어 먼 길을 지나 왔단 걸 전하고선 선생께서 써주신 소개장을 건넸습니다.
그러자 연객 옹은 머지않아 대청으로 안내받았습니다. 그곳에는 자단 의자와 책상이 차갑게 줄지은 채로 차가운 먼지 냄새가 났지요――역시나 황폐한 기운이 포전 위에 감돌았다 합니다. 하지만 모습을 드러낸 주인은 다행히도 병약해 보일지언정 나쁜 사람은 아닌 듯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창백한 얼굴이나 가련한 손을 통해 귀족 같은 품격이 보이는 인물이었지요. 옹은 주인과 첫인사를 마치고는 곧장 명성 높은 황공망을 보고 싶다 말했습니다. 옹이 말하기론 이틈에 봐두지 않으면 안개처럼 사라질 듯한 묘한 심정이 들었다고 합니다.
주인은 곧장 승낙했습니다. 그리고 마루의 벽을 향하니 그곳에 한 첩의 그림이 걸려 있었습니다.
"이게 찾으시는 추산도입니다."
그 그림을 본 연객 옹은 저도 모르게 감탄하고 말았습니다.
그림은 청록색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협곡물이 졸졸 흐르는데 그 밑에 마을과 작은 다리가 산재해 있지요――그 위로 솟은 봉의 중턱에는 느긋한 가을 구름의 짙고 옅음이 조갯가루로 표현되어 있었지요. 산은 고방산의 횡점을 겹쳐 가을비를 맞은 것 같은 경치를 표현했는데 이게 또 붉은 먹으로 그려진 단풍잎과 함께 발휘하는 아름다움은 무어라 형용해야 좋을지 말을 찾을 방법이 없을 지경이었다나요. 이렇게 말하면 단지 화려하고 가련한 그림처럼만 들리겠지만 그 폭은 장대할뿐더러 붓질도 강렬하기 짝이 없었죠――말하자면 화려한 색채 속에 공령담탕의 정취가 저절로 묻어나는 그런 그림인 셈입니다.
연객 옹은 거의 넋을 잃다시피 하여 한사코 이 그림을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그 그림은 보면 볼수록 더욱 신묘함이 더해져 갔지요.
"어떠신가요? 마음에 드셨는지요."
주인은 미소를 머금은 채 비스듬하게 옹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야말로 신품神品이로군요. 원재 선생께서 한 절찬은 부족할지언정 과하다곤 못 하겠습니다. 실제로 이 그림에 비하면 제가 이제까지 봐온 그림들은 다 어딘가 부족할 정도입니다."
연객 옹은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추산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그런가요? 정말 그만한 걸작인가요?"
옹은 저도 모르게 주인을 향해 놀란 시선을 보냈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을까요?"
"아니요, 문제랄 건 없지요. 하지만 사실――"
주인은 거의 어린아이처럼 당혹스럽단 양 얼굴을 붉혔습니다. 하지만 이윽고 쓸쓸한 웃음을 짓더니 머뭇머뭇 벽 위의 명화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어쩐지 눈을 뜬 채 꿈을 꾸는 기분이 듭니다. 확실히 가을 산은 아름답지요.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저에게만 보이는 아름다움이지 않나? 나 이외의 사람에겐 평범한 그림에 지나지 않는 거 아닐까?――어째서인지 그런 의심이 시종 저를 고민스럽게 했지요. 이는 제가 미친 건지 아니면 이 그림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참 묘하니 그만 선생님의 찬사에도 확인을 받고 만 거지요."
하지만 그때 연객 옹께선 주인의 말에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건 꼭 추산도에 반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옹께는 주인이 철두철미하게 감식안이 부족한 걸 숨기기 위해 괴상한 말을 늘어놓는 걸로 밖에 들리지 않았던 거지요.
옹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폐가나 다를 바 없는 집을 뒤로 했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잊히지가 않았다고 합니다. 눈이 번쩍 뜨이는 듯한 그 추산도 말입니다. 실제로 황공망의 법등을 이어 받은 연객 옹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면 뭘 버려도 그것만은 손에 넣고 싶었겠지요. 그뿐 아니라 옹은 수집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집안에 걸린 그림들도, 황금 20냥과 바꿀 수 있다는 이영구의 산음범설도마저 추산도의 경지에 비하면 손색이 바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하니 옹은 수집가로서도 이 희대의 황공망을 원해 마지않았습니다.
때문에 옹은 윤주에 있는 동안 몇 번이나 장 씨를 찾아 추산도를 구매하고 싶다고 몇 번이나 교섭을 해봤습니다. 하지만 장 씨는 도통 옹의 말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심부름을 맡은 사람의 말에 따르면 그 얼굴 창백한 주인은 "그리나 이 그림이 마음에 드신다면 기꺼이 선생께 빌려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놓는 것만은 사양하고 싶군요"하고 말했답니다. 그게 또 연객 옹에겐 조금 불쾌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무얼, 지금 주지 않아도 언젠가는 반드시 손에 넣으리라――옹은 그렇게 다짐하면서 기어코 추산도를 남긴 채로 윤주를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또 1년 후, 연객 옹은 윤주에 온 김에 장씨 집을 찾았습니다. 그러자 담에 얽힌 덩굴이나 정원에 무성한 풀색은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맞이해준 머슴아이의 말을 들으니 주인이 자리를 비웠다고 합니다. 옹은 주인은 됐으니 추산도를 한 번 더 보자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몇 번 부탁해도 머슴아이는 주인이 없는걸 이유로 완고히 안에 들여보내주지 않았습니다. 아뇨, 끝내는 문을 굳게 닫은 채로 대답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옹은 도리 없이 이 황폐한 집 어딘가에 있을 명화를 떠올리며 실망한 채 홀로 돌아왔습니다.
헌데 그 후 원재 선생과 만나니 선생께서 이르시길, 장 씨 집안에는 황공망의 추산도만 아니라 심석전의 우야지숙도나 자수도 같은 걸작도 남아 있다지 뭡니까.
"전에 말하는 걸 잊었는데 이 두 개는 추산도와 마찬가지로 세기의 작품이라 해도 좋을 물건이지요. 제가 다시 한번 편지를 써줄 테니 이도 꼭 한 번 보시길 바랍니다."
연객 옹은 곧장 장 씨 집안으로 심부름꾼을 보냈습니다. 심부름꾼은 원재 선생의 편지 이외에도 그러한 명화를 구매하기 위한 거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장 씨는 앞서 말한 것처럼 황공만은 놔줄 생각이 없다고 말합니다. 옹은 끝내 추산도를 단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 *
왕석곡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여기까진 제가 연객 선생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럼 연객 선생께선 분명히 추산도를 보신 건가요?"
우남전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확인받듯이 왕석곡을 봤다.
"선생은 봤다 하셨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봤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요."
"하지만 이야기를 듣기로는――"
"뭐 마저 들어보시지요. 끝까지 들으시면 저절로 저하곤 다른 생각이 들지도 모르니까요."
왕석곡은 이번에는 차도 홀짝이지 않은 채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 * *
연객 옹이 제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 건 추산도를 처음 본 날로부터 이미 오십 년 가까이 지난 후의 일이었습니다. 원재 선생께서도 작고하신지 오래였지요. 장 씨 가문 또한 어느 틈엔가 3대가 변해 있었습니다. 그러하니 그 추산도도 이제는 누구 집에 있는지 아니, 아직 그 존귀함을 갖추고 있을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연객 옹은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추산도의 영묘함을 이야기하면서 유감스럽다는 양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황공망은 공손대랑의 검만 같았습니다. 붓과 먹을 썼지만 그 흔적은 보이지 않았죠. 무어라 말로 못 할 신비함만이 마음에 확 와닿았습니다――마치 용이 춤추는 것은 보아도 사람이나 검놀림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참이었습니다. 저는 홀로 남쪽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지요. 그런 이야기를 옹에게 하니
"그럼 마침 좋은 기회이니 추산을 찾아보시지요. 그게 한 번 더 세상에 나온다면 그림계의 경사일 겁니다"하고 말하지 뭡니까.
그야 물론 저도 바라는 바이니 옹의 손을 빌려 편지 한 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길에 올라보니 갈 곳도 참 많으니 쉽사리 윤주 장 씨 가문을 찾을 새가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옹의 편지를 소매에 넣은 채로 기어코 두견새가 울 때까지 추산을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때 문득 들은 것이 귀척 왕 씨가 추산도를 손에 넣었단 소문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유랑 중에 연객 옹의 편지를 보여 준 사람 중에는 왕 씨를 아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왕 씨는 그런 사람을 통해 추산도가 장 씨 가문에 있단 걸 알았겠지요. 들리는 소문으로는 장 씨의 손자는 왕 씨의 심부름꾼을 받고는 집안에 내려오는 이정이나 법서와 함께 곧장 황공망의 추산도 또한 헌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왕 씨는 기쁜 나머지 장 씨의 손자를 초대해 가희를 내보내고 음악을 연주하는 등 성대한 연회를 열고 천금을 주었다고 합니다. 저는 거의 뛰는 듯했습니다. 강산이 다섯 번 변하는 동안에도 추산도는 무사했던 거지요. 그뿐 아니라 저도 면식이 있는 왕 씨 손에 들어갔다니요. 연객 옹께서 아무리 고심을 해도 다시 이 그림을 보는 건 귀신이 끼었나 싶을 정도로 모조리 실패했던 과거가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왕 씨의 애타는 마음도 겪지 않은 채로 자연스레 우리 앞에 신기루처럼 나타난 것이지요. 그야말로 하늘이 도왔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추산을 보기 위해 무작정 금창에 있는 왕 씨 저택으로 향했습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나는군요. 왕 씨 댁 정원에 핀 모란이 옥란 옆에 핀 바람 없는 초여름 오훗날이었습니다. 저는 왕 씨 얼굴을 보고는 인사도 적당히 한 채로 저도 모르게 웃어 버렸습니다.
"이제 추산도가 우리 것이 되었군요. 연객 선생께서도 그 그림을 두고 많이 고생하셨는데 이제 안심하셨지 싶습니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유쾌해 지는군요."
왕 씨도 의기양양하셨습니다.
"오늘은 연객 선생이나 염주 선생께서도 와계십니다. 하지만 외출 중이시니 선생님부터 보시게 되겠군요."
왕 씨는 곧장 벽에 추산도를 걸어두었습니다. 물에 인접한 단풍 핀 마을, 계곡을 메운 하얀 구름 무리, 그리고 원근 곳곳에 선 병풍과 같은 수많은 푸른 봉우리들――제 눈앞에는 곧장 황공망 노인이 만든 실제 천지보다 더 아름답고 묘한 작은 천지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벅찬 가슴을 부여잡은 채로 가만히 벽 위의 그림을 바라봤습니다.
이 운연보화는 틀림없는 황공망 작품인 듯했습니다. 황공망 아니고선 누구든 이만큼 준점을 주면서 먹을 살리는 건――이만한 색조합을 중시하면서 붓필이 숨지 않는 건 불가능하겠지요. 하지만――하지만 이 추산도는 과거에 딱 한 번 연객 옹께서 장 씨 가문에서 봤다는 그림하곤 별개의 황공망인 듯했습니다. 그리고 그 추산도보다 아마 하위에 속하는 황공망일 테지요.
제 주위서는 왕 씨를 비롯하여 마주 앉은 손님들이 제 얼굴색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실망한 색이 얼굴에 조금도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어딘가 내키지 않는 표정이 저도 모르게 드러나고 만 걸 테죠. 왕 씨는 얼마 지나 걱정스레 제게 물었습니다.
"어떠신가요?"
저는 은근히 대답했습니다.
"걸작이군요. 연객 선생께서 놀라신 것도 이해가 갑니다."
왕 씨는 살짝 얼굴색을 고쳤습니다. 그럼에도 미간서는 아직 제 칭찬이 불만스러운 기색이 사라지지 않은 듯했습니다.
그때 마침 온 것이 제게 추산의 경묘를 논하셨던 그 연격 선생님이십니다. 옹은 왕 씨와 인사하는 동안에도 기쁜 웃음을 머금고 계셨습니다.
"50년 전 추산도를 본 건 황폐한 장 씨 댁이었지만 오늘은 이런 거부 댁에서 다시 이 그림을 보게 되는군요. 참 복잡한 인연입니다."
연객 옹은 그렇게 말하면서 벽 위에 걸린 황공망을 올려다봤습니다. 이 추산이 과거에 옹께서 본 추산인가. 그건 물론 그 누구보다 옹 자신이 알고 있을 터입니다. 그러하니 저도 왕 씨와 마찬가지로 옹께서 그림을 바라보는 모습을 주의 깊게 보았습니다. 그러자 옹의 얼굴도 점점 어두워지지 뭡니까.
잠시 침묵이 이어진 후, 왕 씨는 불안하다는 양 머뭇머뭇 옹께 물었습니다.
"어떠신가요? 석곡 선생께선 꽤 칭찬하셨는데――"
저는 솔직한 연객 옹께서 있는 그대로 대답하지 않을까 내심 조마조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왕 씨를 실망시키는 건 옹도 내키지 않았던 걸 테지요. 옹은 추산을 다 보더니 정중히 왕 씨께 대답했습니다.
"이걸 구하시다니 선생께선 참 운이 좋으십니다. 앞으로도 가보로 남아 더욱 광채를 내뿜겠지요."
하지만 그 말을 듣고도 왕 씨의 얼굴은 더더욱 어두워질 뿐입니다.
그때 염주 선생께서 뒤늦게 찾아오지 않았다면 저희는 더욱 어색해졌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선생께선 다행히도 연객 옹의 칭찬이 심드렁해질 즘에 쾌활하게 나타나셨습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추산도인가요?"
선생은 적당히 인사를 하면서 황공망의 그림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말없이 턱수염만을 깨작거리셨습니다.
"연객 선생께선 50년 전에 한 번 이 그림을 보셨다고 합니다."
왕 씨는 조심스레 그런 설명을 더하셨습니다. 염주 선생께선 아직 옹께 추산의 신묘함을 듣지 못했던 거지요.
"선생님이 보기엔 어떠신가요?"
염주 선생께선 탄식을 쉬고선 여전히 그림을 바라보았습니다.
"사양 없는 의견을 듣고 싶은데――"
왕 씨는 억지로 웃으며 다시 선생을 재촉했습니다.
"이거 말인가요? 이건――"
염주 선생께선 다시 입을 다무셨습니다.
"이건?"
"이건 확실히 황공망의 제일가는 명작일 테지요――저 구름의 농도를 보세요. 아주 생생하지 않나요? 나무의 색 또한 그야말로 하늘에서 따왔다 해도 좋습니다. 저기 봉우리도 하나 있네요. 전체적인 구도 덕에 얼마나 활력이 보이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제까지 조용히 있던 염주 선생께선 왕 씨를 보고는 그림 세부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활기차게 감탄사를 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말과 함게 왕 씨의 표정이 점점 밝아진 건 말할 것도 없을 테지요.
저는 그 사이에 연객 옹과 조용히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선생님, 이게 정말 그 추산도가 맞습니까?"
제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니 연객 옹은 고개를 적으며 묘한 눈 깜빡임을 한 번 하셨습니다.
"마치 전부 꿈인 것만 같군요. 어쩌면 그 장 씨 가문의 주인은 여우 선신 같은 걸지 모르겠습니다."
* * *
"이상이 추산도 이야기입니다."
왕곡석은 이야기를 마치고는 천천히 차를 홀짝였다.
"확실히 신비한 이야기로군요."
운남전은 아까부터 화롯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후로 왕 씨도 열심히 여러 곳을 찾아다녔다는데 역시 장 씨도 황공망의 다른 추산도는 알지 못했다 하는군요. 그러니 과거에 연객 선생께서 보신 추산도는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 있거나 혹은 선생님의 착각의 지나지 않거나 둘 중 하나겠지요. 저는 판별이 잘 서지 않습니다. 설마 선생께서 장 씨 가문에 추산도를 보러 간 것부터가 전부 환상일 리도 없으니――"
"하지만 연객 선생의 마음속에는 그 정체 모를 추산도가 또렷이 남아 있을 테지요. 그리고 당신의 마음 속에도――"
"산의 청록색이니 단풍색만은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합니다."
"그럼 추산도가 없더라도 아쉬울 게 없겠군요?"
두 대가는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고전 번역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괴한 재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3.01.15 |
---|---|
보은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2.12.22 |
미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2.11.22 |
장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2.10.22 |
어떤 원수 갚는 이야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2.10.08 |
댓글